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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직운동
 
<베리타스>(2015.5.18-)
 
목차-
I. 케직운동의 시작: 역사적 기원
II. 케직사경회 
III. 케직운동의 영성
 
머리말
 

▲복음주의 신학자 김영한 박사 ⓒ베리타스 DB

오늘날 한국교회는 초창기의 거룩성과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하고 있다. 기독교 본래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한 하나의 대안은 1907년의 평양 대각성운동의 신앙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한국교회 초창기의 영성은 큰 틀에서 청교도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청교도 영성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케직사경회와 연결될 수 있다. 이 사경회는 1875년 성공회 목사 하트포드-베터스비(T. D. Hartford-Battersby)가 시무한 성 요한 교회에서 개최한 이래 오늘날까지 140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성공회 목사이며 강해설교자인 이반 홉킨스(Evan Henry Hopkins)가 첫 사경회의 주강사로 초빙되어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성공회 주교요 캠브리지 대학의 리들리 홀(Ridley Hall)의 학장인 핸들리 모울(Handley Moule)은 케직운동의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정리하였다. 모울 주교는 1884년 9월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케직사경회에 참석하여 에반 홉킨스의 설교를 듣고 자기 안에 있는 죄들을 직면하게 되었고 예수를 완벽한 구속자로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명한 영국 성공회 성직자 프레벤다리 웹-펩로(Prebendary Webb-peploe)도 케직 운동의 가르침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케직운동은 미국의 복음주의 성결운동에도 영향을 끼쳐 미국 복음주의자 무디(D. L. Moody), 무디의 절친한 친구요 침례교의 대표적인 복음주의자 고던(A. J. Gordon), 예일대와 예일신학부 출신인 무디성경학교 교장 토레이(R. A. Torrey), 장로교 출신의 초교파주의자 피어슨(A. T. Pierson)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영국의 복음주의 지도자 존 스토트(John Stott)는 1965년부터 2007년까지 케직사경회에서 42년간 설교하였다. 그는 20세기 하반기에 케직사경회를 대표하는 설교자로서 주강사였다. 
 
무디의 부흥운동, 특히 그가 1886년부터 시작한 대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은 수많은 선교사들(맥코믹신학교 학생이었던 윌리엄 베어드와 사무엘 모펫 등)을 결심하도록 만들고 한국의 평양대부흥운동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토레이의 성령론은 한국의 초기 선교사 하디(Robert A. Hardie, 1860-1949)와 무디의 선교적 도전에 감동을 받은 맥코믹신학교 출신의 한국 선교사들에게 전수되어,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과 1907년의 평양부흥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피어선은 1910년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고 성경학교설립을 약속했는데, 그의 유언에 따라 오늘날 평택대학교의 전신인 피어선성경학교가 설립되었다. 평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는 그의 저서들을 번역함으로써 케직운동의 역사적 기원과 그 정신에 대하여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리고 1980년대 한국교회에도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 Korean Evangelical Fellowship)를 중심으로 6년 동안(1985-2001) 케직사경회가 소개되고 여러 교회(할렐루야교회, 사랑의교회, 부산초량교회, 소망교회, 충현교회, 강변교회 등)에서 집회를 하였다. 이 일이 한국복음주의협의회의 시작과 더불어 된 것이므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케직 영성과 불가분적인 관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케직사경회는 지금도 청년층부터 노년층까지 매년 여름 1만여 명이 참석하고 있는 유서 깊은 부흥운동이다. 소망교회 담임목사 김지철은 다음 같이 케직사경회의 특징을 설명한다: “무엇보다 케직사경회는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성결과 헌신의 삶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주 되심, 삶의 변화, 복음전도와 선교, 제자도, 연합과 일치 등 다섯 가지 목표를 천명하고 지금도 초교파적인 말씀축제를 이어가고 있다”(이대웅, “하나님의 목적,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크리스찬투데이 [2014.01.24.]).     
 
I. 케직운동의 시작: 역사적 기원  
 
1870년대 초반에 이르러 영국의 복음주의가 퇴조하였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생활수준이 향상되자 중상류층의 관심은 교회로부터 여가활동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영국교회는 이신론(deism)의 합리주의와 고(高)교회(high church)의 의식주의(儀式主義)라는 쌍둥이 적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자유주의자들은 스포츠나 오락을 지원함으로써 시대적 조류에 적응하였으나 교회와 사회의 구별을 허물어뜨렸다. 세속주의에 대한 복음주의자 스펄전(Charles H. Spurgeon, 1834-1892)의 철저한 저항은 구체적인 결실을 맺지 못하고 논쟁만 일으켰다. 이때에 일어난 복음주의 운동이 중상류층 신자들 가운데 크게 확산된 ‘더 높은 영성’(the higher spirituality)을 추구하고자 하는 운동이었다. 18세기 초중반기에 일어난 웨슬리나 휫필드의 부흥운동은 주로 광부와 근로자들 중심의 대중운동이었는데 반하여,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케직운동은 중상류층을 지지층으로 하여 더 높은 차원의 영성을 추구하면서 일어났다. 이 당시에 성공회 신학자 이반 홉킨스가 자신이 편집하여 출간하였던 월간지 『신앙의 삶』(Life of Faith)을 통하여 영국교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케직운동의 교사였던 미국 선교사 피어선은 소책자 『케직운동』에서 다음 같이 쓰고 있다. 
 
“1873년 영국에서 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그 운동은 개울이 끊임없이 넓어지고 점점 깊어지며 더욱 세차게 흐르는 강과 같은 것이었다... 미국인 복음 전도자 로버트 퍼어설 스미스(Robert Pearsall Smith)와 그의 아내 한나 스미스(Hannah Withall Smith)는 둘 모두 거룩한 삶(holy life)에 관한 책과 소책자를 쓰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 운동의 발단에 관여하였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신현수 역, 『케직운동』 [생명의 말씀사, 2001], 17.). 
 
로버트 퍼어설 스미스, 이반 홉킨스, 핸들리 모울, 마이어(F. B. Meyer) 그리고 앤드루 머레이(Andrew Murray, 1828–1917)와 같은 케직운동의 지도자들은 1870년대 이후 영국인의 영적 삶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머레이는 화란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 출신의 남아프리카 선교사로서 독일 뫼틀링엔(Möttlingen)의 루터교 축사(逐邪) 목회자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Johann Christoph Blumhardt)의 영향을 받아 현대적 의미에서의 오순절주의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감리교도의 성결론에 열려 있었으며, 그의 저서들은 오순절주의를 세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1873년 영국 런던 YMCA의 정오기도 시간에 모인 여러 소집회에서 평신도 전도자인 스미스 부부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죄를 바로 물리쳐야 하는 의무와 특권”에 관하여 증언하였다. 이 모임에서 “지속적이고 분명하며 즉각적인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에 대하여 지체하지 않고 입술뿐만 아니라 삶으로 확신에 찬 간증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 작은 규모의 집회들이 점점 많은 참석자들로 붐비게 되었고 점차 넓은 장소에서 더 큰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Pierson, 신현수, 20). 그리하여 1874년에 동역자들이 새롭게 자신을 헌신하기 위한 마일드메이(Mildmay) 집회, 하노버(Hanover) 광장 집회, 등 2일 또는 3일 동안의 특별집회들이 있었다. 마일드메이 집회는 성공회 목사 윌리엄 펜파더(William Pennefather)가 1856년부터 바네트(Barnet)에서 개최되다가 1864년 런던 북쪽 마일드메이 공원으로 옮겨 계속 개최된 것이다. 노동자들이 주로 모였으며 개인적 성결을 주제로 매년 개최되었다. 이 모임에는 그 시대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설교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1869년에는 천 명이 운집하였다. 이러한 특별 집회는 맨체스터(Manchester), 노팅엄(Nottingham), 레스터(Leicester), 그리고 유럽 대륙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Dublin)에서도 열렸다. 이러한 집회의 특징은 오늘날 와그너(Peter Wagner)를 중심하여 신비로운 체험을 강조하는 신사도운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소망하고 이러한 소망을 실천하는 열망이 넘치는 운동이었다. 
 
이러한 성결운동에 미국의 무디와 그의 동료 생키(Sankey)가 영국으로 초청되어 부흥설교를 통하여 영향을 끼쳤다. 무디와 생키는 1873년 6월과 1875년 8월 사이에 영국 전역에서 복음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무디는 윌리엄 펜파더의 초청을 받아 마일드메이에서 설교하였다. 아일랜드 부흥집회 후에 1874년 3월부터 7월까지 영국에서의 부흥집회를 위하여 미국에서 런던에 도착한 무디와 생키는 브라이턴 집회에 참석하여 설교했으며 이들의 성결운동에 의하여 감동을 받았다.  
 
1874년 옥스퍼드의 사경회에서 한 성직자가 다음같이 선언하였다. “나는 나의 사역에서 커다란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에 여기에 왔다. 대중들이 왔다가 갔지만, 거의 결과는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이 옳다고 믿을 수 없었으며, 나의 형제들의 일부가 소유한 영적 힘의 비밀을 알기 위하여 왔다.” 케직운동의 전신인 옥스퍼드 집회에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다. 옥스퍼드 집회의 참석자들은 “예배에서 능력의 비밀”을 발견했다. 피어슨은 다음같이 피력한다. “이러한 집회가 있는 곳이면 그 어디든지, 보다 깊은 죄와 필요에 대한 의식, 보다 풍성한 복의 기대, 기도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감이 있었고, 아마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성향이 새롭고 놀랍게 변화되었다는 것이다”(Pierson, 신현수, 20). 이것은 보다 높은 영적 삶을 추구하는 성결운동이었다. “이것은 마음의 영이 새로워지는 것, 곧 성질을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죄의 마지막 본거지나 그리스도를 위한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하여서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진리를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삶을 찾는 일,” “죄와 결핍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필요한 그리스도 안에서 갖게 된 승리케 하는 힘을 새롭게 경험하는 운동”(Pierson, 신현수, 20-21)이 시작된 것이다. 죄는 지성의 눈을 가리고, 떨쳐버릴 수 없는 습관의 줄에 얽어매며, 그 희생자들을 우상과 미신의 맷돌에 잘게 갈리게 하여 마귀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이들 케직운동의 선구자들은 신자들과 사역자들이 죄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실망하는 데서 벗어나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기도의 호흡을 할 수 있으며, 그분의 강한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승리의 삶을 추구하였다. 영국과 그 밖의 나라에서 열린 여러 집회들을 통하여 이들은 이러한 승리의 삶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모든 것을 더욱더 풍성히 경험하였다. 이들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죄에 대한 승리, 마음의 순수함, 하나님과의 화목과 하나님의 평안 그리고 섬김의 능력 등을 체험하게 되었다”(Pierson, 신현수, 22). 수백 명의 신자들이 이러한 집회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려야할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다.   
 
1. 브로드랜드(Broadlands) 집회: 케직운동의 원형이 된 집회 
 
1874년 7월 17일부터 23일까지 영국 캠브리지의 브로드랜드 공원에서 6일에 걸쳐 수백 명이 참석하는 모임이 열렸다. 집회는 아침 7시에 시작하여 밤 11시에 끝났다. 일정은 식사 시간이 지체될 정도로 열정적이었으며, 조용한 명상과 성경공부와 비공식적인 담화연설, 기도와 여성집회, 전체집회 등으로 이어졌다. 각 집회 중간에 작은 그룹들이 공원의 숲과 물가를 거닐거나 모여서 나눈 일상대화에는 영적 주제가 논의되었다. 참석자들은 다음같이 증언하였다. 이들은 이 집회 시간을 “일상적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연구에서 벗어나 며칠간 조용히 명상과 기도를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받았으며, 이 모임을 통하여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항복하는 것, 주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는 것, 나날이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능력을 물리치는 것 등과 같은 영적 삶”(Pierson, 신현수, 23)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차원 높은 “영적 삶이 어떻게 가능하며, 이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 증거하는지를 알고자” 하였다.
 
1) 숨겨진 죄를 버리는 작업  
 
참가자들은 이 집회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에 이르려는 길을 찾고자 했다. 그 길은 적극적이기보다는 소극적인 길이었다. 먼저 알고 있는 죄를 버리고자 했다. 피어슨은 브로드랜드 집회의 영적 전개를 다음같이 서술한다. “먼저 알고 있는 죄를 버렸다. 눈이 열려서 죄와 무엇이 죄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악이 새롭게 분별되었고, 그 흉악성과 추함이 확실히 보여졌다”(Pierson, 신현수, 24). “의심의 여지가 있는 탐닉,”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롬14:23)까지도 죄로 인정하고 버리게 되었다. 자신의 숨어 있는 죄를 밝히는 탐조등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로 듣게 되었을 때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를 가로 막는 어떤 장애물도 밝혀지고, 어떤 우상도 드러나며, 또한 자신에 관하여 그리고 성령을 강력히 제한시켰던 모든 것”이 바르게 드러나게 되었다.
 
2)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결단  
 
브로드랜드 집회에서 강조점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자의 거룩한 삶이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이라면 누구든지 그의 실재 상태가 가능한 한 그의 법적 신분에 상응하도록 진지하게 추구해야 마땅하다는 것, 그리고 높고 거룩한 부름에 합당한 거룩한 행실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러난 죄를 책하고 끊는 것뿐만 아니라 은밀한 죄를 분명히 밝히고 드러내 놓으며, 고백하고 버렸다.” 예전에는 죄에 대해 둔감했으나 이제 영적 감수성이 예민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정당화되거나 혹은 적어도 가볍게 다루었던 것들을 이제 적극적으로 죄된 것이라고 판단하는가 하면, 기껏해야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만 여겼던 것을 이제 의심의 여지없이 죄되고 해로운 것으로 보게 되었다”(Pierson, 신현수, 25).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탐조등으로 인하여 무의식적 유보들, 곧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다스림을 받지 않은 영역을 밝히 드러내고 “보다 철저한 자기 항복의 길이 마련되었다.” 참가자들은 하나님의 의로운 책망과 징계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수한 거룩”을 열망했으며 자신들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알게 되고 하나님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 “거룩한 분”으로서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집회에서 은혜와 복을 체험한 자들에 의하여 이 집회의 좋은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하나님과 보다 친밀하게 되는 삶의 비결”에 관하여 묻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 집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죄와 결핍을 새롭게 의식하여 하나님을 깊이 갈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초대받은 사람에게만 아니라 참석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더 큰 규모의 집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풍성한 헌금이 들어 왔다. “그 엿새 동안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흘러넘쳤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때가 그들이 이제까지 경험한 가장 엄숙하고 기쁨에 찬 그리스도와의 교제기간이었다”(Pierson, 신현수, 23).  
 
2. 옥스퍼드 연합집회(Oxford Convention): 이전의 어떤 집회보다 높은 수준의 집회
 
그리하여 브로드랜드 집회에 참석하였던 아더 블랙우드 경(Sir Arthur Blackwood)이 다음 집회를 방학기간에 옥스퍼드에 열자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1874년 8월 토마스 보샹 경(Sir Thomas Beauchamp)은 40명의 성직자들을 그의 시골 저택이 있는 랭글리 파크(Langley Park)로 초청하여 5일 동안 집회를 하였다. 8월 8일에는 옥스퍼드 집회의 세부사항이 마련되었다.   
 
옥스퍼드 연합집회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배타적이고 교권적인 분위기를 가진 대학도시에서 주로 교파를 초월하여 영국과 전 유럽에서 20-30명의 대표단격인 목회자들이 모여서 평신도들과 같이 기도와 찬양, 성경공부와 대담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 가졌다. “하나님을 더욱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형태의 개인 경건을 바라보고 조화롭게 연합을 이루었다.” 새벽기도회에 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고 “성직자나 평신도들이 같은 죄와 필요들을 고백하고, 같은 복들을 달라고 기도하며, 복을 받는 똑같은 경험들을 증거하였다”(Pierson, 신현수, 28). 피어슨은 옥스퍼드 집회는 이전에 있었던 다른 집회들, 즉, 미국의 만하임(Mannheim), 바인랜드(Vineland) 라운드 래이크(Round Lake), 오벌린(Oberlin)에서 있었던 집회뿐만 아니라 바네트, 마일드메이, 퍼스(Perth) 등지에서 있었던 집회보다 더 높은 수위에 이르렀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집회에서 성공회 목사 하포드-배터스비(Cannon Harford-Battersby)는 “믿음의 안식”(rest of faith)을 얻었고, 다른 참가자들도 믿음의 안식을 얻기를 열망하는 것에 동감하여 “케직사경회”를 갖자고 제안하였다. 옥스퍼드 연합집회는 그 자체 스스로 불어나는 강이 되어 케직사경회의 원천이 되었고, 영국의 많은 지역과 해외의 여러 집회가 열리도록 하는 원천이 되었다. 옥스퍼드 집회에 이어 이보다 규모가 작은 집회들이 스트라우드(Stroud)에서 그룸(T. Croome)의 주관 아래 개최되었다. 스트라우드 집회에 이어 챌턴험(Cheltenham)과 브라이턴 집회가 개최되었다.
 
3. 브라이턴 집회(Brighton Convention): 새로운 생명부여의 집회 
 
1875년 5월 29일부터 6월 7일까지 10일 동안 브라이톤 파빌리온(Pavilion)에서 집회가 열렸다. 피어슨은 세속주의가 주의 뜰에까지 침범해 들어온 상황을 다음같이 피력한다. “형식주의가 예배를 타락시켰고, 이기주의가 영성을 마비시켰으며, 냉담함이 선교 사역을 위협하고 있었다. 영적 쇠퇴의 징후가 너무나 분명하고 경악할만한 것이어서 믿음이 돈독한 사람들은 어떤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간섭해 주셔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기도하는 것에 몰두하게 되었다”(Pierson, 신현수, 31). 참가자들은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영적 준수”를 선언하였다.  
 
브라이턴 집회의 참가자들이 연합기도에서 성령의 능력을 추구하는 것은 두 가지 방향이었다. 하나는 “영혼의 거룩성 증대, 다른 하나는 섬김의 능력을 힘입는 것”이었다. 피어슨은 다음같이 영적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집회에서 “기도와 탄원의 영을 부어주셨다.”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 더욱 진지하고, 집요하며, 기대하고 있는 것이 되자, 어떤 새로운 영적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냉랭하고, 인습적이며, 형식에 의해 훼방과 장애를 받으며, 배타적이고 남에게 너그럽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드러나게 ‘새로운 생명’을 얻고 사랑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순수와 평안과 능력을 보다 풍부하게 경험하기에 이르렀다”(Pierson, 신현수, 32). 
 
이 집회에서 8천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성경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열렬하게 구하였다. 천국이 땅에 임하는 은혜가 있었다. 피어슨은 성령의 충만한 임재의 역사에 관하여 다음같이 증언한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두러지게 나타났다. 어두움뿐만 아니라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성령은 빛으로 비추었을 뿐만 아니라 불과 같이 태웠다. 성령은 바람처럼 불어와 그곳에 모인 무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 집회들은 일종의 하나님 임재의 영광으로 둘러싸여 있다”(Pierson, 신현수, 31). 브라이턴 집회는 새로운 오순절 사건, 곧, 전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새 영이 부여되는 영적 계절이었다.(계속)  
 

II. 케직사경회


1. 제1회 케직사경회

 

1875년 7월 케직사경회(Keswick Convention)는 “성경적 성결의 증진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으로서 호수 지방의 휴양도시 케직에서 역사적으로 열렸다. 옥스퍼드 집회에서 크게 은혜를 받고 “안식하는 신앙”(resting faith)을 경험한 캐논(Canon, 주교(主敎)) 배터스비(Thomas Dundas Hartford Battersby)가 이 브라이턴 집회에서 케직사경회를 계획하였고, 다음해 1875년 7월에 그가 시무하는 케직 성 요한 교회의 목사관의 아름다운 뜰에서 작은 규모의 집회로 열렸다. 배터스비가 이 집회를 계획했을 때, 그의 계획이 영구적이고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그저 브로드랜드 공원의 소유가 그의 저택 부지에 수백 명을 초청했을 때와 비슷하게 생각했다. 이 사경회는 비공식적으로 소집되고 배터스비가 주관하였고, 집회 운영은 “성령이 교회를 주관한다”는 견고한 원칙과 이에 반하지 않는 다른 것들에 대하여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었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케직운동』, 38.).

 

제1회 케직사경회에서 배터스비는 다음과 같은 내면적으로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인 신자를 지향한다고 피력하였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말을 매우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분명하게 신성한 삶의 비밀에 이르게 하는 사람, 기꺼이 자기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게 하는 사람, 우리에게 성실하고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사람, 그러나 우리의 죄를,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전적으로 누리고 거룩의 성장을 이루는 데 있어서 방해하는 것들을 매우 명확하게 밝힐 사람이다.”(“Keswick Convention, 1879,” 7, S. W. Patridge & Co.; 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케직운동』, 35.)

 

2. 케직의 목적과 정신

 

피어선은 케직사경회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 번째 목적이란 개인 성결의 증진이다.” 성결 증진을 위하여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어 조용히 그를 바라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귀 기울이고, 그분이 무엇을 명령하든지 순종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Keswick Convention, 1879,” 7, S. W. Patridge & Co.) 둘째는 “성화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더욱 풍성히 실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내주, 하나님의 사랑, 마음과 몸이 하늘에 계신 신랑과 완전히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Keswick Convention, 1879,” 8, S. W. Patridge & Co.; 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케직운동』, 36.). 케직운동은 “실천적 성결의 증진”(the promotion of practical holiness)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하나”(All One in Christ Jesus)를 추구한다. 미국 애즈베리신학대학원 번디(David D. Bundy)는 다음과 같이 케직운동의 목적을 소개한다. “복음적 신자들이 개인적 거룩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보이는 매년 한 주 동안 교리적 교회적 차이들은 최소화된다. 고전적 신학 범주에서 이들은 함께 개인적 사람 안에 있는 죄의 욕망과 경향을 제어함으로써 획득된 점진적 성화(progressive sanctification)를 추구한다.”(David Bundy, Keswick: A Bibliographic Introduction to the Higher Life Movements. First Frutis Press, Wilmore, Kentucky, 2-2012, 12.) 케직운동은 교단적이거나 전통적 구조가 없으며 성령 안에서 더 높은 영성의 삶을 추구하기 원하는 개인들의 모임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당시 영국에서 1856년 이후(1857년 제외하곤) 1870년대 지속적으로 연례집회를 열었던, 성결운동이었던 마일드메이 서클(Mildmay Circle)의 영향을 받았다. 데이비드 베빙톤은 마일드메이 집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마일드메이는 영국성공회 안에 있는 복음주의 당파의 한 부분을 그 세기 중엽에 일반적으로 환영받는 것 이상으로 더 높은 영적 열망으로 이끌었다.”(David Bebbington, 『영국의 복음주의 1730-1980』, 250.). 그러면서도 케직사경회는 “신앙에 의한 성결”을 강조한 점에서 개혁주의적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특징지을 수 있다.

 

케직사경회의 설교자들의 영적 태도에 대하여 배터스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의 입술이 희생제단에서 오는 성령의 불로 단련되고 순화되어서, 말하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고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이시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케직의 목적과 정신들은 “인간의 웅변에 불과한 것에 매달리는 것을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피하는 것,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고 얻기 위해 끊임없이 그분을 기다리는 것,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려는 간절한 소원 등이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케직운동』, 36.).

 

피어선은 그리하여 케직사경회는 처음부터 “사도적 특성”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말한다. 사도적 성격이란 “성령을 신적 선생이요, 모든 회집의 운영자로 높임으로써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 기도가 모든 성공과 복의 중대한 조건이요, 연설을 하거나 듣는 일을 준비하는 비결이요, 말씀의 씨가 뿌려진 뒤에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는 비결로 강조되었다. 또한 사람의 가르침은 그 적합성이나 권위 모두 최고의 교사에게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과 조화를 이루는 영적 상태가 현저하게 요구되었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케직운동』, 36-7.) 케직사경회에서 교회의 부흥과 성결운동을 중심으로 연합운동을 하면서 웨슬리적인 부드러운 알미니안주의와 정통개혁주의적인 부드러운 칼빈주의는 이러한 연합운동을 위한 협력에 있어서 교리적 장벽을 넘어섰다(David Bebbington, 『영국의 복음주의 1730-1980』, 253). 강경한 알미니안주의(hard arminianism)는 자유주의(liberalism)로 나아가고, 강경한 개혁주의(hard calvinism)는 과격 칼빈주의(hyper-calvinism)로 나아가나, 성경적이고 복음과 성결운동은 부드러운 사고 안에서 서로 연합하게 되었다.

 

3. 케직사경회의 진행 방식

 

-초기 케직 사경회에는 공식적인 기구를 통하여서는 물론 개인적인 연락관계를 통하여 자발적으로 모였다. 참여자들과 지도자들이 세계 도처에서 독자적으로 왔으며, 세속적인 방법으로 모이지 않았다. 케직은 전도대회가 아니고 사경회, 즉 말씀을 연구하는 모임이었다. 참가자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성서를 공부하였고, 이전의 집회들의 성과를 분석하였다. 사경회에는 성경학원생들과 기독교 사역자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초기 케직사경회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초기 사경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설교였다. 설교자들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하게 복음과 성결을 가르쳤다. 케직사경회는 잡지 발간 등의 여타의 방법들도 수용하였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구술(口述)에 의한 가르침이었다.

 

-피어선은 케직사경회의 진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고 시행된 방식을 다음의 여섯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성령이 모든 집회의 사회자와 최고 운영자시다. 모든 집회를 성령의 인도 혹은 주도 아래 위탁한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린다. 서로 간에 복을 받고 나누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으로서의 기도 안에서 하나님을 기다림이다. 셋째, 사람 경배를 피한다. 선생들은 그들의 재능이 아니라 받은 은혜와 말씀을 해석하는 능력으로 평가된다. 넷째, 세속적 매력과 후원에서 독립된다. 숫자는 성공의 지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재정은 직접 호소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으로 충당한다. 다섯째, 예배, 증언, 그리고 교제의 사도적 단순성을 지키고 계발한다. 음악과 가르침,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님 영광과 성결한 삶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에 종속한다. 여섯째, 신자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 케직 강단은 “성령의 영감, 그리스도의 신성, 성육신, 구속 및 부활, 성령으로 중생, 미래 나라의 상급 등 중요한 기본 사항에 대한 신자들의 일치라는 기반에 세워져 있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케직운동』, 77.).

 

-케직의 모임에서는 예배나 성경공부 등에서 주로 회중 전체가 찬양을 했다. 독창은 거의 없었다. 찬양은 말씀을 표현한 것들이었다. 그들은 성령의 임재에 대한 확신을 위해 기도 안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 또한 자발적인 헌금을 위해 케직 천막에는 나무로 만든 헌금함을 비치하였다. 케직사경회에 참석하였던 이들은 하나님의 복을 통한 사도적 방법을 단순하게 받아들여, 자기의 가정과 사회에서, 그리고 해외로 선교사가 되어 나아갔다.

 

-케직의 강사는 특정한 교파의 교리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신학 학위를 가졌어야 할 필요도 없고 목사가 아니어도 가능했다. 그렇다 해도 케직이 반지성주의를 위한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강사로 초빙되었고 케직의 성결교리 즉 믿음으로 구원을 받듯이 성화도 믿음으로 얻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하고, 실제로 자신의 생활 속에서 실증한 자로서 남에게 진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자로 선택되었다.

-케직사경회는 대략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월요일에는 죄에 대한 견해에 따른 일반적인 조사, 화요일에는 죄를 처리함, 수요일에는 그리스도의 능력 체험, 목요일에는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과 휴식, 금요일에는 봉사를 위한 성령의 능력, 토요일에는 선교, 성찬식, 교제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All one in Christ Jesus)(갈 3:28)를 실감할 수 있는, 7천여 명을 수용하는 대형 천막 속에서, 그야말로 인종, 언어, 문화, 신분의 모든 벽을 넘어 함께 떡을 뗀다. 천막은 집회가 끝나면 거두지만 주 안에서 함께 나누는 성도들의 교제와 주에 대한 사랑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상징과 복과 감격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4. 케직사경회의 파급력

 

1875년 제1회 개최 이후 케직사경회는 매해 개최되었고, 해를 거듭할수록 꾸준히 성장하였다. 1901-2년에는 3천 명 정도 수용 가능한 두 개의 천막이 매일 사용되었다. 이 외에도 비교적 넓은 서너 곳의 집회 장소들이 있어서, 보다 적은 규모의 모임, 사역자, 젊은 남성, 젊은 여성 등의 모임이 이루어졌다. 케직사경회가 열리는 10일 동안 대략 1만 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이 연례 모임에서는 유명 강사들 40-50명 정도가 모인다. 그리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 운동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고 이 운동의 목적과 가르침을 찬성하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모든 땅에 흩어져 있다. 케직사경회 기간에는 영국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대표들이, 마치 유대인들이 장막절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처럼 이 연례 축제에 참석하러 왔다. 이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고 알려짐에 따라 케직사경회 문헌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케직 도서관”이 생겨나 「신앙생활」(Life of Faith) 이라는 정기 간행물이 생겨 영적 삶에 관한 케직의 가르침을 전달하게 되었다. 케직사경회는 캐나다, 인도, 미국, 남아프리카, 스코틀랜드, 독일, 프랑스, 웨스트인도제도, 동양 (머리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 초창기 교회의 부흥운동) 등에까지 파급되었다. 그리고 케직운동은 미국근본주의, 오순절주의, 미국성결운동에 기념비적인 영향을 끼쳤다(David Bundy, Keswick: A Bibliographic Introduction to the Higher Life Movements. First Frutis Press, Wilmore, Kentucky, 2-2012, 12.).

 

말년의 무디는 미국에 케직 교사들을 초청하고 그 자신도 케직 강단에서 설교하였다. 무디는 1874년 초 죄의 용서만큼이나 온전한 성화에 관하여 설교하였다. 무디는 “참된 기독교인은 세상과 그 재미에 대한 취미와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기독교인은 세상에 대하여 못 박혔으며, 세상은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못 박혔다”(The Christian, 22 January 1874, p. 5.)고 역설하였다. 무디는 성화를 성결주의적 관점보다는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수용하였다. 무디는 1871년 “이전에 알지 못했단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영혼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식적으로 체험”하였다. 무디는 도덕적 투쟁의 삶을 넘어섰다고 주장하는 완전성결주의를 비판하면서 죄악된 본성은 제거될 수 없다며, 완전 성화를 가르치는 것을 부인하는 개혁주의 성화론에 입장에 섰다. 이는 케직 영성의 성화론의 입장과 같은 것이다. <계속>

 

 

III. 케직의 영성

 

1. 케직사경회의 지향점: 고도의 영적 삶으로써 그리스도의 성결 지향

 

아더 피어슨(피어선)은 1895년 여름 무디의 노스필드(Northfield) 집회에 참여하여 영국의 케직집회 강사였던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와 웹 펠로우(Webb Fellow)의 간증을 들으면서 케직 영성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그의 생애 마지막 15년을 케직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는 케직 영성의 핵심이란 성결이며 고도의 영적 삶이라는 것을 역설하였다. “케직 영성의 핵심은 그리스도인의 성결(holiness)인데, 피어슨은 자신의 교만과 이기심을 회개하고 성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을 통해 ‘고도의 영적 생활’의 옹호자가 되었다.”(Arthur T. Pierson, The Story of Keswick and Its Beginnings, London Marshall Brothers, Keswick House Parternoster Row, 류원렬 역, 『영국 케직집회 시작 이야기』, 평택대학교 출판부, 2014, 역자 서문, 11.). 케직의 영성은 설교에서 나타난다.

 

1) 케직의 설교는 지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중점을 둔다.

 

피어슨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놀라운 배움과 학식, 수사학적이고 웅변적인 재능과 성취, 사회적·교회적으로 높은 지위는, 평가절하되거나 경시되지 않았으나 결코 지나치게 높이 평가되지 않았다. 케직운동은 영적 가르침이나 삶의 독특한 형태를 지키기에 힘쓰고, 그 밖의 모든 곳은 이것에 일관되게 종속되었다… 영적 진리는 그 어느 것이든 효과적으로 가르치려면 간증에 권위가 있어야 한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신현수 역, 『케직운동』, 생명의 말씀사, 2001, 40.). “케직사경회는 ‘뜨는 설교’와 뛰어난 수사학적 노력으로 쾌적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호의적인 태도로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연설 자체가 하나님과 은밀히 교제하는 가운데 나는 향기를 발한다.” “이 운동은 시작될 때부터 지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에 중점을 두었다… 모두 그분의 면전에서와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신현수 역, 『케직운동』, 41.) “케직이 대표하는 모든 진리는 신약성경처럼 오랜 것이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것을 보게 하고, 그 약속들을 붙들고 복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소유하도록 기도하고 힘쓰는 것을 목표로 한다.”(Arthur T. Pierson, Forward Movement of The Last Half Century, 안명준 역, 『지난 반 세기의 전진운동』, 보이스사, 2008, 63.).

 

케직의 모임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주도되지 않고 위원회가 이끌어 간다. “케직이 영국에서는 7월 말 여러 지역에서 모이는 모임의 중요한 센터이지만, 영적 삶을 심화시키지 위해 지역적인 대회들이 케직 지도자들과 교사들의 인도 하에 열린다.” 케직의 가르침은 “소홀했던 진리들을 강화는 것을 제외하곤 새로운 것이 없다.” 단지 “하나님께로 온 단순히 원시적이고 사도적인 방법들로의 복귀”가 있는데 “이것은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제공된 축복의 충만함의 체험을 생생하게 해주는 최고의 목적”이다.(Arthur T. Pierson, Forward Movement of The Last Half Century, 『지난 반 세기의 전진운동』, 70.).

 

케직에서 진리를 가르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날 혹은 둘째 날 죄를 다루고, 즉각적으로 죄를 떠날 것과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심판자로서 하나님을 대면하도록 하는 노력과 죄책감, 죄와 필요에 대한 확신을 주고자 하는 노력을 다룬다. 그 다음 날에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리스도와의 참되고 생명력 있는 연합,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죄의 방지와 거룩함의 촉진제로서의 하나님 말씀의 적절한 사용,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그 용서와 특권과 가능성을 가진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과 같은 주제들을 다룬다. 그리고 대회의 폐막 무렵 선교지와 그 선포가 촉구되는 토요일의 마지막 모임에서는 예배와 그 상태, 율법과 자질들을, 성령의 수여와 충만함에 관한 특별한 강조와 함께 다룬다.”(Arthur T. Pierson, Forward Movement of The Last Half Century, 『지난 반 세기의 전진운동』, 72.).

 

케직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즉각적이고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과, 참석하는 자들의 내적이고 외적 삶 모두의 변화”이다. “거룩함과 자기 복종” 또는 “거룩함과 봉사”이다. 케직의 결과는 “하나님이 그의 인을 특별한 복 속에서 케직의 교훈과 방법의 실제적인 결과에 치셨는데,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성품과 행동 모두를 변화시키는 생생한 힘이 그들의 삶 속에 들어왔다”(Arthur T. Pierson, Forward Movement of The Last Half Century, 『지난 반 세기의 전진운동』, 70.)는 것이다.

 

2) 높은 수준에 이르는 7가지 지속적 단계

 

케직운동은 일반적인 삶의 질보다 더 높은 수준의 믿음, 승리, 복된 삶을 시작한 신자들이 일반적으로 통과하는 7가지 주요 단계를 말한다.

 

① 죄 포기


 거룩한 삶을 사는 데 지장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케직 영성의 특징은 숨어 있는 죄를 발견하여 즉각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거나 심지어 그러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즉각 포기하는 것이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신현수 역, 44.). 그리하여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의식적 불순종이나 의무의 불이행에 관하여 깨끗하여 거리낌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② 주의 뜻 순종


 하나님의 뜻에 새롭게 복종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서만이 아니라 매일 삶의 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분을 이제 실제적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으로 받드는 행위다. 그리하여 “자기 탐닉, 그리고 자기의존과 더불어 자기중심적 삶을 버리는 것이다.”

 

③ 하나님 섬김


 주의 뜻 순종은 이제 영혼을 지키는 말씀이 된다. 그리하여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삶의 중심으로 오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자발적으로 높이 받아들이고, 그 뜻에 응하는 것이 몸에 배게 되고 자연스럽게 된다. 거룩한 삶이 체질화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인간 존재의 최고 목적이 된다.”

 

④ 하나님과 사귐


 하나님을 섬김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하는 것이다. “이 사귐은 가끔 있거나 방해받는 것이 아니라 가깝고도 한결같은 교제를 말한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신현수 역, 44.).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에 하신 예수의 약속은 삶의 경험에서 점차 실제적인 것이 된다.

 

⑤ 소유됨


 섬김과 사귐을 통하여 나의 전 존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 여기서 전 존재란 영과 혼과 육을 모두 가리킨다. 신자됨이란 더 이상 육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혼의 차원에서 생각이 변하고 영의 차원에서 가치관이 변한다. 내가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잡으신다. “하나님이 인간의 전 존재, 즉 영, 혼, 욕을 소유하고 있다”고 의식하기에 이른다. “더 이상 어떤 의식적 머뭇거림이 없이 전 존재가 기쁘게 하나님의 뜻에 응할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분의 것이 된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신현수 역, 44-5.).

 

⑥ 성령의 채우심


 하나님께 소유됨으로써 우리의 영 속에 “인간이 알 수 없는 새로운 기쁨과 평안, 우리 안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시, 성령의 참된 채우심이 있다.” 성령이 내면을 채우심으로 말미암아 신자의 삶 속에 성령이 주시는 영적 기뿜과 평안이 넘치게 된다. 이를 피어슨은 “우리 안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시”라고 부른다.

 

⑦ 봉사


 이러한 여섯 단계를 거치면 비로소 신자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가장 큰 봉사를 할 수 있는 여건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과의 영적 삶은 자기 구원의 즐거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진정한 봉사로 부름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헌신한 모든 성도에게 거룩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왕권을 주셨다.” 이 승리의 마지막 단계는 “죄를 이기는 힘, 기도를 지속하게 하는 힘, 그리고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힘의 단계이다.” 진정한 영적 삶의 최종 단계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섬김, 즉 봉사다.

 

2. 케직 영성의 특징

 

1) 개인적인 기도에서 은밀한 만남

 

피어슨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온 마음과 삶의 깊은 곳을 하나님께 열어 보이는 사람은, 그 이전에는 각종 우상이 감추어져 있던 바로 그 방들이 신성한 사귐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신현수 역, 52.). 피어슨은 케직운동이 기도라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기도로써 성장했다고 증언한다. “케직운동은 그 무엇보다도 기도가 두드러졌다. 집회의 전체 분위기는 기도로 가득 찼고, 매번 기도회들의 간격은 개인적인 혹은 두세 사람 혹은 그 이상이 하나님과의 더 깊은 대화를 위해 간청하는 기도로 찼다. 서로는 알지 못했지만, 오직 기도만을 위해 모임이 결성되었다. 하지만 그 모임의 유일한 접착제는 서로의 기도제목과 서로를 향한 매일의 간청기도제목들이다.”(Arthur T. Pierson, Forward Movement of The Last Half Century, 『지난 반 세기의 전진운동』, 104.).

 

2) 숨어 있는 죄의 각성

 

피어슨은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이러한 집회가 있는 곳이면 그 어디든지 보다 깊은 죄와 필요에 대한 의식, 보다 풍성한 복의 기대,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이 있었다.” 피어슨은 죄가 영적 삶과 성장에 해가 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모든 죄와 진보를 가로막는 모든 짐을 즉시 그리고 완전히 버려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고 계시한 것은, 그 어떤 것이든지 징벌 없이 제멋대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고 있는 죄는 모든 영적 삶과 성장에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파괴시킨다. 이것은 죽음과 연합되지, 생명과는 아니다. 그것 때문에 교제를 못하게 되고,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진정한 구원의 확신을 갖는 데 치명적이다. 구원이 우리의 공로에 달려 있기 때문이 아니라, 불순종이 신령한 것을 보는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죄가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섬김을 가로막는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순결과 평안, 그리고 능력의 새 삶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으며, 구원의 확신을 잃어버린 사람이 죄인을 도울 수 있겠는가?”(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케직운동』, 45-6.).

 

3) 자기를 쳐 복종시키는 것: 깨끗한 양심 소유

 

(1)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 포기

 

피어슨은 다음과 같이 케직의 영성을 특징짓는다.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거나 심지어 그러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즉각 포기하는 것이다. 양심은 무엇보다도 의식적 불순종 혹은 의무의 불이행에 관하여 깨끗해야 하고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거룩한 삶을 사는 데 지장이 되는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신현수 역, 『케직운동』, 44.). 즉각 포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출발점은 죄와 그리고 죄와 관련하여 현재까지 알려진 모든 중압감, 즉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저해하고 방해하는 모든 문제를 즉각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순간이라도 죄라고 느껴지는 것을 계속하는 것은 성결에 위협을 줄 뿐만 아니라, 구원 자체에 대한 희망에도 악영향을 미친다.”(Arthur T. Pierson, The Story of Keswick and Its Beginnings, 『영국 케직집회 시작 이야기』, 74-75.).

 

(2) 탐닉으로 의심받는 것 포기

 

케직운동의 지도자들은 삶에 있어서 탐닉으로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들은 모두 버리기로 하였다. 피어슨은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또한 탐닉으로 의심받을 만한 것은 무엇이든 그 의심 때문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어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유익하도록 해야 한다. 문제를 제기할 만한 일이나 쾌락은 계속하면 정죄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죄이기 때문이다.’ 악한 것은 해가 되기 때문에 필요 없다. 죄된 행위와 해가 되는 습관을 계속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케직운동』, 46.). 죄와 죄된 것으로 의심되는 습관이나 성향이나 생각(교만, 이기심, 고집, 쾌락, 나태, 안일, 헐뜯기, 증오, 복수심 등)은 신령한 것을 보는 눈을 흐리게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 지장을 초래한다.

 

3) 성령의 능력 체험

 

피어슨은 증언한다. “사백 명 이상이 무릎을 꿇고, 수천을 넘는 사람들이 허리를 구부리고 기도하였다. 묵상 기도의 시간이 세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두려움을 느낄 정도여서 기도나 노래 소리는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들 자신의 죄스러움, 그리고 동시에 더할 나위 없는 그분의 능력의 위대함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한 성령의 덧입음을 증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심하였다…”(Arthur T. Pierson, The Keswick Movement, 신현수 역, 76.). 오순절 성령 세례에 대하여 피어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시의 성령 세례는 모든 이를 위해 단 한 번 나타난 것으로, 더 이상 그 같은 성령의 유출(effusion)에 대해 오늘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제자들은 그 복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고, 오순절의 생명과 능력 안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그 생명과 능력이 자기 자신에게 들어 오도록 요청할 자격이 주어져 있다.”(Arthur T. Pierson, The Story of Keswick and Its Beginnings, 『영국 케직집회 시작 이야기』, 80-81.).

 

케직의 성령론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자기에 대한 죽음’이 먼저 강조된다. (2) 성령의 충만을 즉각 받아들이는 일이 요구된다. 물론 여기에는 온전한 헌신이 전제된다. 성령세례라는 용어보다는 ‘성령충만’이라는 용어가 잘 사용되었다. (3)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해서이다. 비록 죄를 이기는 능력과 봉사의 능력이 강조될지라도, 케직 가르침의 최종적인 극치는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중심적인 데 있다.

 

특이한 사항으로는 웨슬리주의 및 미국 성결운동의 완전주의 가르침과는 다른 입장을 취함으로써, 독자적인 성령세례의 교리를 낳게 되었다. 이들은 성화나 성령세례가 하나이자 동일한 경험이라는 정통 ‘성결’ 교리를 거부하고, 오히려 ‘성화’란 회심 시 시작되어 일생 동안 성장하는 과정으로 보았으며, 성령세례는 이와는 별개의 능력부여(Enduement of Power)라고 주장하였다. 성령세례는 오순절 제자들처럼 간구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근원적인 축복으로써 거듭날 때 받는 은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것과 충만케 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또한 미국 오순절주의자들의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강조는, 성결운동과의 간격을 더욱 멀어지게 했다.

 

4) 하나님 임재 체험

 

피어슨은 케직사경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 임재 체험을 피력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재하는 현존(indwelling presence)으로서 영혼에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케직 가르침의 절정이다. 성령의 내재와 내적 사역의 최상의 목표는 의식적으로 우리가 그분을 소유하고 또한 그분이 우리를 소유하는, 인격적인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 있다는 것, 이것은 신비로운 것이다.”(Arthur T. Pierson, The Story of Keswick and Its Beginnings, 『영국 케직집회 시작 이야기』, 82.).

 

피어슨은 미국의 교역자들과 친구들에게 편지하는 케직 교사의 글을 인용한다. “대서양 이편에서 내적 삶에 대한 교훈의 영향이 매우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은 참 기쁨이라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의 죽으심과 부활과 자아에 대해 죽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며, 성령의 내적 충만함, 믿음의 안식인 가나안을 향하여 요단강을 건너는 삶이라네.”(Arthur T. Pierson, Forward Movement of The Last Half Century, 『지난 반 세기의 전진운동』, 63.).

 

5) 거룩한 삶 운동: 새 성품으로 변화

 

피어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새로운 진리를 찾은 것이라고 하기보다 새로운 삶을 찾은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약속과 그 명령에 순종하는 새로운 힘을 새롭게 파악하게 되었다.”(Arthur T. Pierson, 『케직운동』, 21.). “습관적인 순종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뜻을 굴복시키는 것이, 모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 요구되는 근본 법칙이다.”(Arthur T. Pierson, 『케직운동』, 50.). “이분은 자기 백성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계시되, 오늘날과 같은 패역의 세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거룩하라.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케직운동의 중요한 지도자인 홉킨스(Evan Hopkins)는 성결을 죄의 뿌리인 죄성이 아닌, 악에 대한 경향성에 대한 거부로 설명했다. 그러므로 성결은 고정된 정결의 상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계속 유지되어야 되는 노력임을 역설했다.

 

6) 순종과 헌신의 삶

 

1874년 여름 브로드랜드 집회에서 일어난 하나님에 대한 항복에 대하여 피어슨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874년 여름 한 사경회가 브로드랜드에서 개최되었다. 성결집회가 학기 중에 케임브리지(Cambridge)에서 개최되었다. 이 때 몇몇 학생들이 그들에게 약속된 복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들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연구에서 벗어나 며칠간 조용히 명상과 기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들은 부분적인 복을 경험했다. 그들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항복하는 것, 주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는 것, 나날이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능력을 물리치는 것 등과 같은 영적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 증거하는지 더욱더 알고 싶어했다.”(Arthur T. Pierson, 『케직운동』, 23.). 피어슨은 케직 가르침에서는 하나님 섬김이 인간존재의 지고목적이라고 말한다. “순종은 이제 영혼을 지키는 말씀이 된다. 하나님의 뜻을 자발적으로 높이 받아들이고, 그 뜻에 응하는 것이 몸에 베게 되고 자연스럽게 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인간 존재의 최고 목적이 되는 것이다.”( Arthur T. Pierson, 『케직운동』, 44).

 

7) 높은 형태의 성결

 

피어슨은 “케직운동의 가르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결의 높은 형태는 항상 두 가지 실천적인 규칙을 지닌다. (1) 나는 모든 일에서 내 삶의 주님이요 전능자이신 나의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2) 나는 내 이웃에게 유익이 되어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그를 기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Arthur T. Pierson, The Story of Keswick and Its Beginnings, 류원렬 역, 『영국 케직집회 시작 이야기』, 77.). “순종의 의미로 하나님께 의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Arthur T. Pierson, The Story of Keswick and Its Beginnings, 류원렬 역, 『영국 케직집회 시작 이야기』, 78.).

 

피어슨은 무디의 출생지요 고향인 노스필드(Northfield)에서 개최된 1985년 집회에 소개된 케직사경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더 훌륭한 것은 사람들이 깨닫는 데에 그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약속을 삶에 적용하면서, 죄를 정복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성화의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이다, ‘케직운동’에 관하여 아직도 미국에서는 ‘수많은 증언들’이 있다.”(Arthur T. Pierson, Forward Movement of The Last Half Century, 『지난 반 세기의 전진운동』, 215.). 케직사경회의 지도자 핸들리 모울 주교는 신자의 성결(Christian Sanctity)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
 중심의 왕좌에서 자아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앉혀 드리는 것
아무리 작은 죄라도 일절 타협하지 않는 것
우리의 목표는 하루종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매시간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분과 그분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날마다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는 것
환난 중에 평안을 잃지 않는 것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는 것
날마다 순간마다 모든 쓴 뿌리와 원망과 악한 말을 버리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Thoughts on Christian Sanctity - Handley Moule, 2010.01.18 23:24 http://blog.daum.net/jsinvitesu/417).

 

8) 풍성한 승리의 삶

 

피어슨은 케직운동의 시작과 관련하여 케직사경회에 참석한 신자들의 삶에 일어난 풍성한 승리의 삶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 하신다. 즉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은 행할 수 있는 능력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보고 알며 느꼈다. 그러한 경험이 있는 곳에는 간증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마음의 풍성함에서 입이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증언이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듣고 스스로를 위해서 비슷한 복을 추구하러 나올 것이다.”(Arthur T. Pierson, 『케직운동』, 21). 케직사경회를 통하여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와 같이 인도함을 받아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들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 처음으로 난 자이신 그분 안에서 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에 알지 못하였던 죄에 대한 승리, 마음의 순수함, 하나님과의 화목과 하나님의 평안, 그리고 섬김의 능력 등을 체험하게 되었다.”(Arthur T. Pierson, 『케직운동』, 22.).

 

맺음말

 

케직운동은 당시 영국만이 아니라 미국의 케직운동가들 중 고든(Gordon), 피어슨(Pierson), 무디(Moody), 토레이(Torrey)와 같은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성결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케직운동은 140년 전에 역사적으로 있었던 과거의 운동이 아니라, 영국에서도 복음주의 지도자 존 스토트(John Stott)를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전개되었으며 1980년에 한국에 도입되어 한국복음주의협의회를 중심으로 한국의 예장 합동·통합 등의 한국교회 지도자들(한경직, 임옥, 림인식, 옥한흠 목사 등)이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였던, 한국교회 영성운동이었다. 여기에 주도적 역할을 한 분이 김명혁 박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다.

 

그는 2000년 7월 15일 21일 영국 케직에서 개최된 ‘케직사경회’와 7월 29일-8월 6일 화란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암스테르담 전도대회’에 참석하여 케직 지도자들의 메시지를 들으며 마음과 영혼에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고, 이를 번역하여 『케직, 암스테르담 메시지』라는 책자로 출판하였다. 최근 1965년부터 2007년까지 42년 동안 케직사경회에서 지도자로 주강사로 활동해온 존 스토트 설교집이 출판되었다. 그는 별세 전 2007년 고별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다시 말해, 이 일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평택대학교 신학부(신현수, 안명준, 류원렬 교수 등)가 케직운동의 교사인 피어슨이 쓴 케직에 관한 책들을 번역함으로써 한국교회 안에 소개하고 있으며, 개혁신앙의 영성을 추구하고 높은 영성의 삶으로서 성결, 순종, 섬김을 실천하고자 하는 기독교학술원(대표 차영배, 원장 필자)도 지역교회와 협력하여 케직의 위대한 전통을 계승하고자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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