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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와 이명동일신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 여호와는 같은 신인가? 예일대학교의 신학교수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Miroslav Volf)가 저서 <알라>(2012)에서 서로 다른 이름의 신들은 실상 같은 신이며, 그 대상에 대한 두 종교의 이해가 다를 뿐이라고 한다

 

볼프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꾸란의 알라가 존재론적으로는 동일한 예배의 대상이며, 인식론적으로 그 분에 대한 이해가 기독교와 이슬람 간에 다르다는 것이다. 신에 대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이해 곧 인식론적 접근이 서로 다르지만, 존재론적으로 같은 신을 예배한다는 것이다.

 

볼프는 신들의 이름이 다르다고 말하지 않고 신이라는 대상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다르다고 한다. '이해부동동신설'을 말하는 셈이다신에 대하여 존재론적 접근이 아니라 인식론적 접근을 한다. 볼프의 주장은 종교다원주의자들이 말하는 "이명동일신설"(異名同一神說)과 다르지 않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태양 빛은 하나이지만 프리즘을 통과하면 7가지의 다른 색깔로 나타나듯이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문화 민족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등장한다고 본다알라와 여호와는 이름이 다를 뿐 동일한 신이라고 본다. 이명동일신설은 자유주의 신학의 아이콘과 같은 발상이다.

 

이명동일신설은 클레어몬튼신학교의 존 힉 교수(John Hick)가 저서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God has many names, 1989>에서 본격적으로 주장했다. 볼프와 비슷한 논리로 접근했다. 궁극적 실재에 대한 기독교·이슬람·유대교·힌두교의 인식과 이해가 다르지만, 모든 종교는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궁극적 실재를 예배한다고 했다. 모든 종교는 절대 진리와 구원에 이르는 동등한 길이며,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을 가르친다는 이론을 주창했다. 이 사상은 종교다원주의의 기본 이데올로기이다

 

볼프의 이해부동일동일신설은 힉이 1989년에 주장한 이명동일신설의 핵심을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볼프는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믿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신념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볼프의 “이해부동동일신설과 종교다원주의의 "이명동일신설"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종교다원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에 역사적 기독교의 문을 활짝 열어 준 셈이다.

 

볼프는 오순절파 교회 출신이며, 풀러신학교와 튜빙겐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한 복음주의 신학자이다. 적장의 장수보다 적과 내통하는 아군의 졸개 병사 한 명이 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성문을 열어주면 적이 쳐들어와 분탕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볼프는 결과적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상대화와 탈기독교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볼프의 이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힉의 이론을 각색하여 자기 것으로 천명한 것이다.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김경재 박사는 힉의 이론을 각색하여 자기 주장으로 펼친 경우과 비슷하다. 김경재는 저서 <이름 없는 하나님>(1992)에서 "등정로 이론"을 펼친다. 등산길이 다르지만 정상에 오르기는 꼭 같듯이, 신들이 이름이 다르지만 각 종교가 추구하는 대상 곧 신은 같은 분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힉, 김경재, 볼프의 주장은 일제말기에 순천중앙교회를 담임한 박용희 목사의 이명동일신설과 똑 같다. 박용희는 나중에 한신대학교(조선신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천조대신이나 여호와 하나님이 이름이 다를 뿐 같은 신이라면서, 신사참배와 일왕숭배라는 우상숭배를 권장했다. 힉이나 김경재가 등장하기 훨씬 전에 박용희가 이명동일신설을 주장하는 것은 특이하다.

 

천상천하에 존재하는 유일한 참 하나님은 창조자이신 여호와 한 분 뿐이다. 하나님은 편재하신다.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서도 일반은총 차원의 사랑과 자비를 베풀며 세상을 통치하신다. 그러나 그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가 둘을 갈라놓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거치지 않고는 참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구약시대의 유대인은 오실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

 

무슬림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자연만물에 드러난 보편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본성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1:20). 이슬람이 이해하고 있는 알라는 이러한 보편계시의 산물이다.

 

보편적, 자연적 신 지식은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시각장애자처럼 되었다. 왜곡되어 있으며, 편파적이다. 보편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복음을 알려 주지 못한다. 참 하나님과의 인격적·구원적 관계로 이끌 수 없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없는 자들이 믿는 하나님도 궁극적으로 창조자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다. 신에 대한 같음과 다름을 혼동하는 오류에 빠진다. 같은 신에 대한 인간들의 이해가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섬기는 신이라는 대상 자체가 같지 않음은 죄 곧 영적 암매(唵昧)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 없이는 참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간이 참 하나님을 이해하거나 예배할 수 없다.

 

볼프와 종교다원주의자들에게 묻고 싶다. 알라와 여호와가 같은 신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아프리카의 토속종교들과 아시아인들이 믿는 신들, 한국인들의 하늘님이나 일본인들의 가미가 창조주 하나님인가?

 

미국의 정성욱 교수(덴버신학교)<크리스천투데이>(2016.1.25.)에 기고한 글에서, 세 가지 점에서 볼프의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첫째,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모순된다. 성경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세 위격이 영원한 한 분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는 뜻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동일한 신적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상호 내주를 통한 완전한 페리코레시스(perichorresis)적 연합 (communion)을 이루고 계신다. 그리고 삼위일체는 영원한 사랑의 교제와 교통 가운데 존재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 자체가 코이노니아(koinonia, 교통)이다. 아버지도 아들도 성령도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세 분의 하나님들'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한 분 하나님'이 계신다. 이것이 기독교 신관의 근본 진리이다.

 

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볼 때, 꾸란의 알라와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완전히 다르다. 성경의 하나님은 삼인격적(tripersonal) 존재인 반면, 꾸란의 알라는 단일인격적(monad/unipersonal) 존재이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모든 다른 종교의 신들을 뚜렷하게 구별해 주는, 기독교의 절대적 독특성이다. 이 점을 부인하면서 기독교인임을 자처한다면, 그것은 자기 모순일 뿐이다.

 

둘째, 성경의 하나님은 기독론적으로 정의되는 분이다(Christologically defined God).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신약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이란 말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들 중에서도 아버지를 지칭하는 데 집중되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자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동일시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로 가진 분이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신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언하시는 분이 참 하나님이시다. 그렇지만 꾸란은 "알라에게 아들이 있다고 하는 자는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의적인 신성 모독이며 거짓이기 때문이다“(꾸란 18:4-6)라고 선언한다. 상식과 합리적 추론을 존중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성경의 하나님과 꾸란의 알라는 같지 않다.

 

셋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Kurios)이며 구세주라고 선포한다.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은 초기 예수 운동의 핵심 신앙고백이었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격으로서 사람의 본성을 취하여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확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예배하며 경배한다

 

정성욱은 그러나 무슬림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꾸란의 예수(이싸)는 결코 알라가 될 수 없다고 함을 지적한다꾸란이 묘사하는 예수는 단지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를 위해 성육한 하나님도, 죄인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주도 아니다. 꾸란은 마리아의 아들을 메시아로 믿거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을 불신앙으로 정죄한다(꾸란 5:17). 예수가 알라라는 주장은 이슬람의 근원을 무너뜨리는 발상이다.

 

볼프는 이 사실들을 몰랐을까? 볼프는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꾸란의 알라가 존재론적으로는 동일한 예배의 대상이지만, 인식론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 이해가 다르다는 것이다. 신에 대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이해가 서로 다르지만, 존재론적으로 같은 신을 예배한다고 말한다.

 

정성욱은 볼프의 주장이 네 가지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한다. (1) 논리학적 차원의 문제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 이해와 인식은 단순히 다름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양 종교의 신 이해는 서로 양립되거나 조화될 수 없을 정도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논리학의 기본 원칙인 모순율에 따르면, "AB인 동시에 B가 아닐 수는 없다" 또는 "A는 비() A가 아니다" 따라서 "예수는 신이다"라고 하는 기독교의 진리 주장은 "예수는 신이 아니다"라는 이슬람의 진리 주장과 양립될 수 없다. 둘 중 하나가 진리이거나 둘 다 거짓일 수는 있어도, 둘 다 진리일 수는 없다. (2) 진리론적 차원의 문제다. 특히 진리대응론(correspondence theory of the truth)에 의하면, 대상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인식이 대상과 일치할 때만 진리 주장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신에 대해, 기독교의 관념 또는 인식이 옳으냐 아니면 이슬람의 관념과 인식이 옳으냐는 반드시 양자택일의 문제이지 양립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서로 모순되는 인식과 관념이 둘 다 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3) 기독교의 예배관과 관련된 문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은 사람이 정할 수 없다. 도리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정하신다. 성경에 의하면 예배는 본질적으로 삼위일체적 행위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8)".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through Jesus Christ) 성령 안에서(in the Holy Spirit) 아버지께로(to the Father) 나아가는 행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정당한 예배일 수는 없다. 볼프는 무슬림들이 우상숭배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볼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무슬림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신을 자기들이 만들어 낸 방식을 따라 예배하고 있다. 성경은 이러한 경우를 우상숭배라고 일컫고 정죄한다.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에 선교적 접촉점이 있다. 양 종교가 초월적 유일신을 인정하며,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다. 인간의 죄를 지적하며, 죄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고, 죄와 심판에서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이 무슬림에게 전도할 때, 기독교와 이슬람의 유사점 또는 접촉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유익하다. 이 접촉점은 대화의 마당 역할을 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사용할 수 있다. 기독인과 무슬림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일에 협력할 수 있다. 평화를 진작시키고, 이웃을 사랑하며, 약자들을 보호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일에 협력할 수 있다.

 

볼프는 자신이 자란 크로아티아와 1990년대의 유고연방이 경험한 종교간 갈등의 비극 그리고 현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미국의 20019·11테러 사건을 경험하면서, 기독교와 무슬림 간의 대화를 위한 접촉점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명동일신설과 다르지 않은 이해부동일동일신설을 주창하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볼프는 '정치신학'을 빙자하여 교회를 혼란케 하는 종교다원주의를 부추긴다볼프의 접근방법은 기독교를 공략하기 위해 타끼야(거짓말을 허용하는 교리)를 활용한 이슬람의 선교전략을 떠올린다. 기독교인들을 혼동에 빠지게 함으로 이슬람에 대한 경계를 무너뜨리려 한다.

 

기독교의 모세오경과 이슬람의 모세오경이 같은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타끼야 전략이다. 꾸란에 있다고 주장하는 모세오경은 십계명이 없으며, 레위기가 빠져 있다. 단지 모세오경에 있는 성경 몇 구절을 인용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라는 무함마드가 속했던 꾸라이시족이 섬기던 종족신인 달신(Moon god)의 이름이다. 달신의 딸들은 알라트, 웃짜, 마나트 였다. 이슬람 모스크 첨탑에 부착되어있는 초생달과 이슬람국가의 국기마다 그려져 있는 초생달로 나타나 있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인 반면에 이슬람의 상징은 초생달이다. 그런데도 알라와 여호와 하나님이 같은 신이라는 말인가?

 

진정 종교간 대화와 평화공존을 위한 제언을 할 용기가 있다면, 볼프는 이슬람교의 가르침이 무엇이며, 왜 저들은 그런 행동을 하는가를 지적하고 꾸짖어야 했다.

 

종교다원주의는 적그리스도 사상이다. 이명동일신론자는 이단자이다. 한국교회는 공격의 폭을 서서히 좁혀오는 사탄적인 신학사조를 분별하는 인식능력이 필요하다탈기독교적인 사상에 개방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자유주의 신학자들보다 더 무섭고, 자유주의 신학이 무신론 사상보다 더 위협적임을 기억해 두 필요가 있다. 이른바 복음주의 신학자 볼프는 역사적 기독교, 교회를 허물고 종교다원주의를 향하여 문을 활짝 열어주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 파수군의 경성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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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6.02.07 22:01
    신은 ‘깃발’이 아니라오
    <시사인>(2015.2.1.)
    장정일 (소설가)??|webmaster@sisain.co.kr

    기독교와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성스러운 책’에 근거한, 같은 뿌리에서 나온 ‘유일신교’라고 말해진다. 열거한 세 가지 공통된 특징은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의 대화와 공존의 가교를 마련해준다. 하지만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였던 자크 엘륄은 유작으로 남긴 <이슬람과 기독교>(대장간, 2009)에서 세 가지 공통점이 얼마나 피상적인가를 하나씩 따지고 난 끝에, 흔히 주장되었던 것과 반대로 이슬람은 “기독교적인 이단이 아니라 분명히 기독교와 관련 없는 종교”이며 “기독교와는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라고 단언한다.

    미로슬라브 볼프의 <알라>(IVP, 2016)는 두 종교 사이의 공통점보다 차이점에 더 주목하는 자크 엘륄과 같은 접근 방식을 가리켜 배타주의적 종교관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배타주의적 종교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신앙에만 뭔가 특별하고 독특한 것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전력을 다하면서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반면 포괄주의적인 종교관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가능한 많은 원칙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대부분의 종교가 배타주의와 포괄주의라는 양면을 갖고 있기는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느 방식의 접근을 택하느냐에 따라 신학자는 높은 긴장 관계에 놓인 두 종교 사이의 중재자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종교와 싸움을 붙이는 독전대가 될 수도 있다. 자크 엘륄은 변명할 여지없이 후자를 택했다.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신학자인 미로슬라브 볼프는 <알라>에서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과 이슬람이 믿는 알라가 같은 신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매우 낯선 것 같지만, 사실은 영향력 있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과 이슬람교 창시자들이 똑같이 전제했던 생각이다. 이 책은 그런 전통과 규범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그것과 정반대의 상을 구축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 집중하기보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믿는 신이 공통의 신이라는 신학적 논증에 많은 공력을 들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독자들은 기독교와 이슬람 신학의 절대적 차이를 드러내는 삼위일체 논쟁에 대해 얼마만큼 윤곽을 짓게 된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동일한 신을 예배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지은이는 가장 먼저 두 종교가 묘사하는 신의 네 가지 유사성을 제시한다. 기독교인이나 무슬림에게 신은 오직 한 분이시며, 신이 신 아닌 모든 것을 창조했으며, 신은 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과 다르고, 그 신은 선하시다. 지은이는 양쪽이 서로 일치하는 신에 대한 네 가지 묘사에 두 종교가 중시하는 신의 계율 두 가지를 더한다. 하나는 신이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존재를 다해 신을 사랑하라고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이 우리에게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이다. 예수와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승인한 두 가지 핵심 계명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성서와 꾸란(코란)에 공통된 십계명이 나란히 들어 있다는 것은 크게 떠들 일이 아니다.

    “이 여섯 가지 주장에 대한 동의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예배 대상이 동일하다는 결론을 가져온다. 신을 묘사하는 처음의 네 조항은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예배하는 대상이 동일하다는 주장을 입증해준다. 신의 핵심 계명을 집약하는 나머지 두 가지 조항은 이러한 주장을 더욱 강화한다.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예배에서 지칭하는 신은 같다. 이는 그들이 같은 신을 실제로 예배한다는 의미인가? 아직은 아니다.”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논리상 같은 신을 지칭하고 있으며 같은 신을 예배하고 있지만, 아직은 둘이서 같은 신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 기독교와 이슬람을 믿는 신자들이 같은 신을 믿는 것으로 입증되기 위해서는 서로 형태와 기능이 유사한 모스크와 교회에서 충분한 유사성을 지닌 꾸란과 성서를 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들이 각자의 신에 충실하면서도 동일한 신을 믿는다고 말해질 수 있으려면 말보다 열매(행실)가 닮아야 하는데, 그것을 나타내주는 절대 기준이 ‘이웃 사랑’이다. 이 실천이 없는 한 두 종교는 공통의 신을 믿는 것이 아직 아닐 뿐 아니라, 진리로 떠받드는 자신의 교리조차 제대로 따르는 게 아니다. 이런 결론은 종교의 차이가 만들어낸 분쟁을 줄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만,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불편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신을 향한 숭배보다 중요한 건 ‘실천’

    이 책에 두 번 언급되었던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의 <현자 나탄>은 말로서만이 아닌 열매가 어떻게 특정 종교의 참된 신앙을 나타내주며, 박애와 관용이 필수인 이웃 사랑이 어떻게 하나의 신으로 완벽하게 수렴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주제가 압축되어 있는 ‘반지 설화’에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도를 상징하는 세 형제가 나와, 아버지로부터 직접 물려받았다는 본인의 반지만이 진짜(진리)라면서 서로를 고소한다. 현명한 재판관이 세 형제를 꾸짖는다.

    “진짜 반지는 사랑받게 하는 신통력을, 신과 인간에게 호감을 주는 신통력을 가진다고 들었다. 그 신통력이 결정해야 한다! 가짜 반지는 그렇게 하지 못할 테니까! 자, 너희 가운데 누가 다른 두 형제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느냐? 어서 말해보아라! 입을 다물고 있겠느냐? 반지의 신통력은 자신에게로만 돌아오느냐? 그리고 밖으로는 작용하지 않느냐? 각자 자기 자신만을 가장 사랑한단 말이냐? 오, 그렇다면 너희 셋은 모두 속임을 당한 사기꾼이다! 너희들의 반지는 셋 다 모두 진짜가 아니다. 진짜 반지는 아마도 없어진 모양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그의 이름을 널리 떨친 악명 높은 논문에서 종교가 규정하는 정체성은 거의 배타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사람이 반쪽은 프랑스인이면서 반쪽은 아랍인일 수 있고, 동시에 두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도 가능하지만, 반쪽은 가톨릭이면서 반쪽은 무슬림이기는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사례 가운데는 안수를 받은 성공회 사제가 알라를 함께 섬기거나, 신의 단일성(유일신론)을 교리의 핵심으로 삼는 이슬람이 우상숭배라고 맹렬하게 비난하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받아들인 존경받는 꾸란 학자도 있다.

    유대교와 불교의 영성을 조합하고자 하는 주부스(Jubus)처럼 여러 종교의 다양한 요소를 섞으려는 혼성 종교성은, 상호 의존성과 상호 공격성이 비례하며 높아지는 현대 세계에 지속 가능한 평화의 전망을 열어준다. 신을 향한 숭배가 이웃 사랑이라는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 모든 종교적 근본주의를 “정치적 팽창주의와 결합한 종교적 배타주의”로 질타하는 지은이는 신이 국기(國旗)와 같은 “정체성의 표지로 이해될 때 신은 화합의 근원이 아닌 차이와 분쟁의 근원이 된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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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장신대, 총신대, 한신대의 역사날조

    장신대, 총신대, 한신대의 역사날조 신사참배 80년 회개 및 3·1 운동 100주년을 위한 ‘한국교회 일천만 기도대성회’가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행사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협의체들이었...
    Date2019.12.02 Bydschoiword Reply0 Views1623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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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교황 프랜치스코와 중국 공산당

    교황 프랜치스코와 중국 공산당 1517년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이 독일 전역뿐 아니라 알프스를 넘어 밀라노에까지 영향을 미치자, 그동안 루터에 대한 이단 공세와 비방선전에만 머무르던 가톨릭은 자구적인 개혁에 착수하여 스스로 뼈를 깎는 개...
    Date2019.12.02 Bydschoiword Reply0 Views678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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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교회의 시국 선언문 (합신 총회, 제103회)

    교회의 시국 선언문 (합신 총회, 제103회) 교회는 항상 자기 시대의 과제에 충실해야 하고, 실천 가이드를 제공해야 한다. 신학자의 과제는 교회의 질문에 답을 제공하는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예장 합신 총회(총회장 홍동필 목사)가 발표한 아래의 긴급 시...
    Date2019.12.01 Bydschoiword Reply1 Views96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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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레바논의 참극과 코라비아 로맨스

    레바논의 참극과 코라비아 로맨스: 인도주의 앞세운 순진한 다문화주의, 썩은 동아줄 1. 기윤실의 성명 주일예배를 마치고 하버드대학 스퀘어까지 택시를 탔다. 택시운전사는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온 레바논 사람이었다. 운전사에게 “한국인들 상당수...
    Date2019.12.01 Bydschoiword Reply2 Views105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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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한반도기(韓半島旗), 석연치 않다

    한반도기(韓半島旗), 석연치 않다 한반도기(韓半島旗, Korean Unification Flag)를 보면 석연(釋然)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흰색 바탕에 하늘 색 지도가 새겨진 이 깃발은 올림픽 등 국제 행사에서 남·북한을 상징할 목적으로 두 국가가 합의하여 만든...
    Date2019.12.01 Bydschoiword Reply0 Views271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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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성장하는 미국교회도 있다

    YWAM 집회 청년들 (한국일보 사진) 성장하는 미국교회도 있다 기독교는 가난과 박해, 타락과 모순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키워왔다. 소멸할 것 같은 순간에도 신앙은 예기치 못한 형태로 새롭게 꽃을 피워 왔다. 기독교가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아 절대...
    Date2019.12.01 Bydschoiword Reply0 Views2087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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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직통계시파 목사부부

      그림: 연합뉴스, 조혜인의 합성 사진그림            직통계시파 목사부부   의정부지방법원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이영환)는 2018.6.8., 자살교사 혐의자 임 모 씨(64·여)에게 징역 5년의 형을 선고했다. 부모에 대한 자살방조범인 딸 이 모 씨(44)에게는...
    Date2019.12.01 Bydschoiword Reply0 Views1307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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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설교폭력

    설교폭력 (원제: 설교언어의 폭력성) 1. 설교자로 살아가면서 설교에서 상처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고통스럽다. 프란시스코 페레(Ferrer Guardia, Francisco)는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고 했는데 설교로 위로와 치유, 회복은커녕 회중에게 상처를 ...
    Date2019.12.01 Bydschoiword Reply0 Views71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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