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2022.09.12 10:29

유관순과 김만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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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옥에서 찍은 사진을 현대기술로 편집한 그림)

 

유관순과 김만덕

 

1. 유관순

 

대한민국 최고액 화폐의 주인공은 사임당 신 씨가 아니라 유관순조수옥이금순정순말이 적합하다한 사람 더 꼽으라면 기녀 출신 조선 여인 김만덕(1739-1812)이다.

 

국가건립, 민족사, 전승 기여도 등의 관점에서 꼽는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은 유관순 열사(1902-1920)이다. 일제 강점기의 독일운동가였다. 삼일운동으로 시작된 만세운동을 하다가 일본 형사들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을 받고 순국했다.

 

유관순은 1916년에 충청남도 공주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 감리교회 선교사 사애래시 부인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편입했다. 1919년에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했다. 항일운동을 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의 확정 선고를 받았다. 일제의 서대문교도소에서 1920928일에 순국했다.

 

일각에서는 유관순을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에 비유한다. 유관순을 실제 이상의 영웅으로 신화화 한다. 이는 따져볼 사안이지만 유관순이 민족사, 건국사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여성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은 유관순을 최고액 권 지폐의 주인공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2. 조수옥

 

유관순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액 권 지폐의 주인공으로 올려질 만한 여성 한 명이 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나라와 이웃을 위해 헌신해 온 특출한 인물이다. 조수옥 여사(1938-2002)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항일운동가이다. 신사참배거부운동으로 말미암아 1939년부터 해방 때까지 5년 이상 옥고를 치렀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다가 부산에서 검거되어 평양형무소에서 감옥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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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옥 여사

 

조수옥은 제2의 유관순으로 일컬어진다. 광복 후 마산에서 인애원을 설립하여 약 2000명 이상의 고아들을 자녀로 삼아 키웠다. 경남종합사회복지관, 청소년복지관, 노인보호소, 노인무료병원 등을 설립하여 사회복지운동을 주도했다. 아동, 청소년, 노인 등을 위한 각종 복지사업을 펼쳤다.

 

조수옥은 광복 후 고아들을 돌보는 사회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날 경찰서를 방문했다. 일제 시대에 일본인 앞잡이로 자기를 취조하고 고통을 주던 동족 왜경이 대한민국 경찰로 옷을 바꿔입고 근무하고 있었다. 그 경찰은 조수옥을 알아보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조수옥은 그 한 마디 말을 듣고 그를 용서해 주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친일파 인사들이 저지른 행악을 용서해 주었다.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조수옥이 세상을 떠날 무렵에 직접 필자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조수옥은 1986년에 대한민국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1997년에는 일가상, 그리고 2002년에 제1회 유관순상 수상했다. 조수옥 관련 저서로는 <조수옥 권사의 생애>(1997), <신사참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2002), <현대한국사 2> (2002), <한국기독교여성운동의 역사>(2003) 등이 있다.

 

3. 이금순

 

부덕(婦德) 타입의 가정주부로 존경을 받을만한 '한국인'은 이금순 여사이다. 본명 프란치스카 도너(Franziska Donner 1900-1992), 대한민국 건설의 주인공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부인이다. 결혼 후에 프란체스카 도너 리(Francesca Donner Rhee)라는 영어식 이름을 가졌다. 대한민국 국가건설과 전쟁 위기에서 내조를 잘 하고 근검절약에도 모범을 보인 한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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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순 여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빈에서 출생했다. 1900년 현재의 오스트리아 빈에서 천주교 가문 사업가 루돌프 도너의 3명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의 뜻을 다라 영국에서 유학을 했다. 독일어,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 한국어는 유창하지 않았다. 1920년에 독일의 자동차 경주 선수 헬무트 뵈링과 결혼했다가 3년만이 이혼했다.

 

이승만은 1934년 제네바에서 국제연맹 회의에 참석했다가 프랜체스카를 만났다. 모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재혼을 강행했다. 193410월에 미국 뉴욕에 있는 클레어몬트 호텔에서 결혼을 했다. 세련된 미모와 매너 외국어 실력으로 남편의 독립운동과 건국운동을 돕왔과, 동지로 활약했다. 이승만과 프란체스카의 결혼은 모두에게 재혼이었다.

 

프란체스카가 대통령 부인으로 헌신할 무렵, 대한민국은 나라다운 기반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인재가 부족하고 지식도 부족하고 재정도 부족했다. 나라는 좌우대립으로 편한 날이 없었다. 후견국 또는 동맹국 미국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중요한 시기였다. 그 시절에 독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오랫동안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미국의 정서와 사회상을 잘 아는 '프란체스카 리' 여사는 내조로 대한민국 건설에 큰 역할을 했다.

 

이승만이 태평양 전쟁을 예고한 명저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는 그녀의 손 끝에서 태어났다. 이 책을 타자로 치던 여사는 세 번이나 손가락이 짓물렀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 반년 전에 출간된 이 책 덕분에 이승만은 "예언자"라는 명성을 얻었고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부인 탓으로 돌리는 평가자도 있는 듯하다.

 

이금순, 프란치스카는 남편 서거 후 고향 빈에 약 5년간 칩거하다가 서울 이화장으로 옮겨와 홀로 살았다. 자주 두 번째 양자 이인수 씨에게 성경을 읽어주던 고결한 아줌마였다. 임종 전에 내 관에 태극기를 넣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시장이 1983129일에 발행한 그녀의 주민등록증 번호는 000616-2001317이다.

 

4. 정순말

 

나는 장차 만들어질 대한민국 최고액 지폐 10만 원 권에 나의 어머니 정순말 여사가 주인공으로 등극하기를 기대한다. 나의 어머니는 현모양처와 비지니스 우먼을 겸한 경영가(CEO) 타입의 여인이다. 아들 넷과 딸 둘을 낳아 모범적인 대한민국 국민으로, 기독인으로 기른 여인이다. 믿아들은 민족상잔의 전쟁터에서 장렬히 산화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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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말 여사

 

정순말은 가렴주구 정치권력자들과 일제침략자들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았다. 자기 주도적으로 당당하고 살았다. 자식들과 이웃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으면서 굳센 삶을 지탱했다. 우리 민족사의 가장 어렵고 험란하고 가난했던 시절을 살아냈다. 일제치하에서 자라고 광복과 더불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했다.

 

정순말은 금수저로 태어나 자식 한명 잘 키워 오만 원 지폐의 주인공으로 등단한 사임당 신 씨에 미치지 못할 게 없는 여성이다.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거울삼아야 할 인물은 흑수저로 태어나고 국난을 겪으면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현실에 충실한 여성,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한 주체적 여성이다.

 

신 씨가 자식을 잘 키웠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할만하다. 신 씨의 아들은 정치적 힘을 누렸으며, 유명세를 보상받았다. 오래 동안 조선역사의 지성인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그러나 내 어머니도 자식을 잘 키웠다. 네 명의 아들은 모두 군복무와 납세와 교육의 의무를 다한 건강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맏아들은 순국자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나라를 위해 바쳤건만 그 순국자 아들의 어머니에게 돌아온 것은 슬픔뿐이었다.  사회적 보상, 정치적 힘, 국민의 존경도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그림서예시에 대한 재주는 없었지만 십자수와 옷감 제작에 능했다. 세계정세, 역사,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민족사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절에 사람들을 동원하여 길쌈을 하는 등 산업을 부흥시켰다. 나의 어너니는 "대한민국의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효과"를 기대하기에 충분한 듯하다. 가정, 산업, 민족사, 건희생정신사회봉사국가관, 자식의 순국 등을 고려하면 나의 어머니가 신 씨보다 더 존중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5. 김만덕

 

대한민국 최고액 화폐의 주인공으로는 사임당 신 씨보다는 차라리 기녀 출신 조선여인 김만덕(, 1739-1812)이 더 적합하다. 김만덕은 자기 자신의 삶을 개척 경영하여 당당하게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한 기녀 출신의 조선 여인이다. 입지전적 인물이다.

 

김만덕은 빈손으로 시작하여 일약 제주의 최고 부자에 올랐다. 자기의 재산을 모두 풀어 최악의 흉년이 들어 굶주림에 시달리던 수천 명의 제주인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상업을 천하게 여기던 조선 사회로 하여금 돈의 가치에 주목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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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 초상화

 

조선의 명재상 채제공의 책 <번암집>은 정조 20년 가을, 제주 출신이며, 한 때 기녀였던 여인이 서울의 궁궐에 들어가 임금을 알현한 바, 평민이 임금을 직접 알현한 것은 조선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김만덕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조선왕조실록> 정조 20년 기록이다. 실록은 조선 최 변방 제주에서 기생의 신분이었던 김만덕이 자신의 재물을 풀어 굶주리는 백성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승정원 일기>와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는 김만덕을 제주 기녀라고 기술한다. 박제가 등 당대의 실학자들이 그녀를 주목하고 칭찬하는 글을 남겼다. 그녀의 일대기를 기록한 <만덕전>도 존재한다고 한다.

 

정조 16년부터 4년간 최악의 흉년이 제주를 휩쓸고 있었다. 매년 전국에서 수천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습도 참혹했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던 말과 소를 훔쳐 잡아 먹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거나 시체를 뜯어 먹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조선시대까지 제주는 유배의 땅이었다. 돌 많고 바람 많아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었다. 제주에는 자연 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해일 피해가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태풍들이 보리 수확 철부터 가을까지 제주를 괴롭혔다. 척박한 자연 환경과 잦은 흉년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 둘 육지로 떠났다, 16세기의 제주 인구는 1만 여명이었다. 조정은 제주의 인구가 감소한 탓으로 해안 방어가 취약해 지자 제주도민의 육지 출입을 금지하는 출륙금지령을 내렸다.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과 같았다.

 

1794, 정조 18년의 극심한 흉년은 더욱 참혹했다. 제주는 조정이 보내는 구휼미 2만 섬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조는 전라도 강진 해남 장흥에 구휼미 마련을 지시했다. 정조 19년 윤2월 드디어 구휼미 만여 섬을 실은 배 열두 척이 영암을 출발했다. 그러나 열두 척 중 다섯 척이 풍랑을 만나 침몰했다. 제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갑인년과 을묘년에 걸쳐 제주도민 삼분의 일이 흉년으로 목숨을 잃었다. 상황은 심각했다.

 

당시 제주 최고의 부자였던 김만덕은 연이은 흉년의 참상을 그저 두고 보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모아온 전 재산을 담보로 전라 경상 등 육지에서 쌀을 들여와 모두 제주 관아로 보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관아로 몰려와 쌀을 배급 받았다. 사람들은 김만덕의 은혜를 칭송했다.

 

만덕은 굶주리는 제주도민을 위해서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았다. 당시 정승 채제공의 <만덕전>은 천금을 내놓았고 기록한다. 조수삼의 <추제기>는 그녀가 수천석의 쌀과 수천 가마의 돈을 바쳤다고 한다. 굶주린 백성을 위해 내 놓은 재산의 액수가 상당히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양인 집안에 태어난 민덕은 퇴기의 수양딸로 들어갔다. 기녀는 자신의 딸에게 기녀 직을 대물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퇴기는 만덕이 기예 재능이 있는 것을 알고 기녀 명부에 만덕의 이름을 올렸다. 만덕은 관아의 기방에서 춤과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 관기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기녀는 관원에게 수청 들 의무가 있었고, 지방 향족들의 연회에 참여해야 했다. 만덕은 춤과 노래 그리고 악기를 다루는 솜씨가 좋았다고 한다.

 

만덕은 조실부모한 후 퇴기에 의탁하여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타고난 재능이 재물을 모으는데 이롭게 작용했다. 만덕은 20여 세에 자신의 사정을 관아에 호소했다. “본시 양가 출생이 아닌데 소실부모하여 부득이하게 관기가 된 것이니, 소녀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제주 목사는 전후 사정을 알고 기녀 명부에서 이름을 삭제했다.

 

만덕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갔다. 제주항은 육지와 제주를 연결하는 해상 교통의 중심지이다. 만덕은 포구에서 객주를 차리고 장사를 시작했다. 객주업을 통해 재산을 모았는지, 기녀 활동으로 재산을 모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은 없다. 객주는 상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상품을 위탁 판매하는 일종의 중개 상인이었다.

 

만덕은 시장이 점점 활성화되면서 중개업을 넘어 시장을 움직이는 큰 손으로 등장했다. 만덕은 관기 활동으로 모은 밑천을 가지고 객주를 시작했다. 객주 초기 그는 관기 시절의 인맥을 십분 활용했다,

 

만덕은 이 과정에서 육지와 제주의 물류 동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상업적인 기질과 용모와 언변 그리고 관청에서 배운 예절 등 모두가 토착인들과 외래 상인들을 휘어 잡을 수 있는 능력 발휘에 이롭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인에게는 출륙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였지만 정조 후기에 들어서면 제주 상인도 전국 각지에서 자유로운 판매를 보장받았다. 제주도 특산물 말총, , 미역 등은 육지에 보내면 상당히 많은 차액을 얻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뱃길에 미곡을 싣고 제주도 들어오면 수십 배 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제주에 기근이 들자 재물을 잘 쓰는 자는 밥 한 그릇으로도 사람의 인명을 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재물은 썩은 흙과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전 재산을 풀어 굶주린 제주 사람들을 살려냈다.

 

제주 목사는 이런 만덕의 선행을 조정에 보고했다. 만덕을 기특하게 여긴 정조는 목사를 시켜 만덕에게 소원을 물었다. “이곳 제주를 벗어나 임금이 계시는 한양과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유람하는 것이옵니다.” 제주인들의 출국 금지령이 국법으로 엄연했던 시기에 육지 구경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만덕은 섬이라는 한계와 정치적 제약에 꽉 묶여져 있는 세상을 뛰어 넘고 싶었다.

 

정조는 만덕의 소원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그녀를 내의원 행수로 삼았다. 평민인 만덕이 궁궐에 들 수 있는 자격과 지위를 준 것이다. “네가 여자로서 의기를 발휘하여 수많은 굶주린 백성들을 구했으니 참으로 갸륵한 일이로다.” 정조는 만덕의 선행을 다른 도의 사람들이 본받도록 널리 알리라고 명했다. 만덕이 육지에 머무는 동안 양식과 노자를 지급했다.

 

이듬해 1797년에 만덕은 드디어 금강산 유람을 했다. 금강산 유람은 당시 풍류객들의 영예였다. 여성 만덕은 한 달여에 걸친 금강산 유람을 마쳤다. 한양에 도착한 만덕은 장안의 화제가 됐다. 변방 제주 여인으로 주린 백성을 살릴 만큼 상업으로 크게 성공한 부자였다. 사대부들도 쉽게 하지 못하는 금강산 구경을 두루 하고 돌아왔다.

 

김만덕은 18세기의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모험과 도전을 통해 큰 돈을 모은 전문 경영인(CEO)이었다. 시대적 제약이라는 금기를 깨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경영한 앞선 근대인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던 조선 여성이다.

 

만덕의 덕을 칭송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려 한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정조, 체재공, 정약용, 박재가, 이가환, 이들은 모두 새로운 조선사회 건설에 경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개혁군주와 실학자들이었다.

 

한 시대의 변화를 주도했던 이들이 제주 여상인 김만덕을 주목한 데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시기엔 언제나 반대 여론이 높은 법이다. 사농공상의 질서 속에서 여전히 상업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던 시대 여론을 무마하고 상업을 발달시킨 좋은 모범이 필요했을 것이다.

 

김만덕은 돈의 흐름을 쫓아서 영리하게 부를 축적할 줄도 알았지만 그 돈, 재물을 기꺼이 사회에 환원할 줄 알았던 여인 김만덕, 바로 이것이 그들이 꿈꿨던 상도의 전형이었다. 기부에 인색하지 않은 부자, 부의 사회 환원이라는 만덕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나눔의 미덕이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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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활란(金活蘭) 일제강점기의 교육자, 친일파 (1899–1970)   아래는 위키백과의 김활란에 대한 소개의 글이다.   생애   김활란(1899년 2월 27일~1970년 2월 10일)은 일제강점기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 재단이사장, 대한기독교교육협회 회장 등을 역임...
    Date2024.04.05 Byreformanda Reply0 Views67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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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히잡 거부한 용감한 이란 여성

        히잡 거부한 용감한 이란 여성     히잡 착용을 거부한 용감한 이란의 젊은 여성이 74차례 태형 처벌을 받았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 착용을 거부한 33세의 젊은 여성이 74대의 태형(笞刑)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024년...
    Date2024.01.09 Byreformanda Reply0 Views717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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