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들의 ‘회심 준비론' 소고

by reformanda posted Jul 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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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들의 회심 준비론' 소고

 

 

오늘의 공청회의 주제가 되는 두 교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회심 준비론16세기 종교개혁 이후 200 년 이내의 기간 중에서 나름의 치열한 쟁론과정과 개혁주의 신학의 목회적 체험 속에서 정돈되어 그 후 지금까지 300여년의 개혁교회들 속에서 견지된 교리들이다.

 

 

개혁주의 교리 중에 신학적 치열한 공론을 거치지 않고 정립된 교리가 없다. 그래서 개혁주의의 역사는 교리사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물론 그 교리사는 사람들끼리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을 가르치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일환이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알다시피 개혁주의 교회는 그런 반석 같은 교리적 토대위에 서 있다.

 

 

어째서 이런 논란이 일었는지. 제가 알기로, 우리와 같은 칼빈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두 교단, 예장 고신과 예장 합신 교단은 이에 대한 논란을 이미 끝낸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어느 경로로 야기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한국교회로 하여금 복음의 대중추인 그리스도의 순종을 더 깊게 공부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력을 태한 백성들에게 적용하여 회심, 또는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 견고하게 서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의 방식을 더 학습하게 하시려는의중을 가지신 것으로 받아 경외어린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제게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회심 준비론의 핵심을 관통하는 진리의 맥을 상세하게 진술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저는 어거스틴과 칼빈과 청교도들과 그 후 이어지는 교회사의 맥락에서 정돈되고 적용된 이 교리의 논리의 중요한 핵심 몇 가지를 짚어 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하여 무엇 보다 먼저 그 교리를 정립한 청교도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장로교단과 청교도들은 무관한 것같이 말하는 이들도 있어 보이는데, 그것은 증거 충분한 역사적 사실들(facts)을 무시한 관점이다.

 

 

우리를 포함하여 전 세계 개혁주의 장로교단이 신학과 신앙의 표준문서로 받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그 대소 요리문답과 예배 모범과 권징조례를 작성한 경위는 우리로 하여금 청교도들에 바른 시각을 갖게 한다.

 

 

그 표준문서를 작성하는데 1643년에 시작하여 1648년에 잉글랜드 의회에서 공포하기 까지 5년이 소요되었는데, 그것을 작성한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는 정회원 목사 121명과 평신도대표로 참여한 의원 30명 도합 15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이 그 최종 문서를 결론짓기 위하여 무려 1천 번이 넘는 회의와 공론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목사회원 거의 대다수가 청교도적 관점을 가진 자들이었고, 의원들 대다수가 청교도적 노선에 서 있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 온 언약도 6(그들도 청교도들과 같은 신학적 관점을 견지하였음), 영국국교회 대표 3명이 참여하였다.

 

 

개혁주의 설교자 로이드 존스(D. M. Loyd-Jones) 목사는 청교도 신앙 : 그 기원과 계승자들( The Puritan : Their Origins and Successors)이란 책에서 사도 시대 이후 그 믿음과 행위에 있어서 가장 성경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하였다(D. M. Lloyd-Jones, 청교도 신앙 그 계승과 계승자들 , 서문 강 역, 생명의말씀사, 2002. 13, 참조).

 

 

감히 나는 로이드 존스의 이 말에 찬동하며, 증인으로 여기 서 있다. ‘증인이라 함은 어떤 일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자인데, 나는 주님의 은혜로 대표적인 청교도 저작들을 여러 권번역한 사람이다.

 

 

정직한 번역작업은 책의 한 문장도 빠짐없이 숙고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 번역자로서 감히 청교도들의 증인으로 증언으로 말하고 있다는 저의 말을 여러분들이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나는 칼빈주의적이고 청교도적 전통에 속한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의 책이 거의 다 이 점에 동의함을 확인했다. 존 칼빈의 설교집 2, 16세기와 17세기의 청교도들 특히, 청교도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며 설교자인 존 오웬의 대표작 4, 존 플라벨의 그리스도의 구속을 택한 백성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의 은혜의 방식을 말하는 책 1, 토마스 보스톤의 책 1, 18세기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 3, 조지 휫필드의 책 3, 그리고 내가 번역한 나머지 70여권의 책 등이다.

 

 

이상의 책들은 거의 다 그들의 신학과 신앙의 진술이며 강단에서 직접 외친 설교문들이다. 그들은 거의 모든 책들 속에서 사도가 말한 복음의 진수와 그 능력을 말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나는 이들의 책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칼빈주의 5대 교리로 요약된, 실로 아무도 변박할 수 없는 개혁주의의 견고한 진리와 은혜의 터를 만났다.

 

 

그들의 책들의 지면마다에서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의 부패한 본성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실상과, 그럼에도 긍휼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로 창세전에 뜻을 세우시고 이루시고 적용하시어 당신의 이름을 위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영광을 맛보았다.

 

 

그들은 인간의 의지력이나 공덕을 발판으로 삼아 하나님께 자신을 분발시키는 아르미니우스주의적인 발상이나, 은혜를 빙자하여 방자하게 구는 도덕 폐기론이 자리할 수 없게 한 성경을 제대로 강론하였다. 우리가 총신 신대원에서 배운 개혁주의의 실천적이고 권능 있는 실제, 곧 성경의 은혜와 권능을 저는 그들의 책 속에 발견하였다.

 

 

이들이 말하는 어느 교리도 인간 편에서 행하는 도덕적 열심이나 개량이나 준비자신을 하나님께 회심하는 데 기여를 한다는 식의 논리가 설 자리를 주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사람이기에 어떤 미세한 표현들 속에는 미흡해 보이거나 오해를 낳게 할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책 전체와 그 맥락은 성경과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러므로 회심 준비론(doctrine of preparation for the conversion to God)’에 있어서 준비에 대한 강점은 사람이 사람을 준비시켜 회심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 들이게 한다는 개념이 아니다. 준비성령께서 사람을 하나님께 회심하게 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기 전에 그 회심을 위하여 그 사람을 내면적으로 준비, 또는 예비하게 하시는 은혜에 강점을 두고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나아가 믿음을 갖게 하시기 전에, 성령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을 절박성을 인식하기 위한 예비적인 역사를 그 사람 속에서 하신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앞에 세례요한으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 세례를 주시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기 위한 예비적인 단계를 주셨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옥토는 씨 뿌려지기 전에 이미 준비된 밭이었다.

 

 

자주 장사 루디아가 바울의 말을 듣고 마음을 여시는 주님의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사도행전 기자 누가는 그녀에 대하여 무어라 하였는가?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16:14)

 

 

이 말씀은 바울로부터 그녀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정식으로 믿기 이전에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 준비는 그녀가 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배운 자 마다 다 내게 온다고 하신 말씀에서 택한 백성이 예수님께 나아오기 전에 그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로부터 배우는 일이 선행된다는 논리와 같다.

 

 

물론 그 성령의 선행적 예비적 은혜는 웨슬리의 알미니우주의적인 선행 은총론과 판이하게 다르다. 알미니우주의자들의 선행 은총론보편 구속론, 그리스도께서 인류 전체를 위하여 구속하셨다고 전제한 개념이다.

 

 

그래서 선행 은총을 만민에게 차별 없이, 심지어 모든 인류를 향하여 하나님은 나면서부터 종교심을 주시어 하나님을 향한 회심에 대한 의식을 갖게 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회심의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지 않고 그 사람 자신의 의지의 선택사양에 달린 것이다.’ 선행 은총론인간에게는 아직도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분발시킬 수 있는 이지와 의지의 여력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회심케 하시는 성령의 준비적(예비적인) 은혜는 죄와 허물로 전적으로 타락하여 영적으로 죽어 있어 하나님을 향하여 아무 선도 할 수 없는 인간의 완전 무능을 전제한다. 그들은 스스로는 죽어 있는 자를 주권적 은혜로 각성하고 일깨시어 회심을 위하여 준비시키는 성령의 역사를 주목하였다.

 

 

웨슬레의 선행 은총론의 대상이 인류 전체로 보편적이라, 청교도들의 성령의 회심 준비 사역은 택하신 백성들에 한정적이었다. 전자가 인간 의지의 선택 사양에 결과를 맡긴다면,’ 후자는 회심의 시작과 결과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적 사랑과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행사에 집중시킨다.

 

 

둘째, 그래서 청교도들은 진실로 중생, 또는 회심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는 자는 사람마다 그 나타난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더라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각성(conviction of sin)’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과 그 연장선에서 구원에 대한 걱정과 열망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사랑의 표현인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절대적 필요를 알게 된다. 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공로는 아무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구원받을 가망 밖에 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도 한 사람의 택한 백성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영적인 행사에 대한 스토리가 아닌가. 번연 자신도 회심하기 이전에 깊은 죄의 각성과 지옥에 대한 공포로 한 동안 고심하였다. 그는 천로역정에서 죄 짐을 지고 수고하고 무거워 애타는기독인을 자서전적으로 그리고 있다.

 

 

셋째, 그런데 그 성령의 예비적인 준비는 공중에서 하지 않으시고 않고 그 사람 속에서 하신다.’ 그런데 그 사람의 회심을 위한 그 성령의 예비 사역을 하시는 방식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이어서 세부적인 국면에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주로 당신의 교회의 말씀사역이라는 은혜의 방편을 통해서 그 일을 하신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16:8).

 

 

이 말씀들은 다 교회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성례 등 은혜의 방편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사역자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율법의 요구와 그 아래서 정죄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의 실상을 증거하고, 거기서 긍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의 충분성과 완전성을 충실하게 증거할 절대 필요성을 늘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사역자는 회중 속에 아직 회심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로 하여금 은혜의 방편인 말씀에 집중하게 하고(정규적인 교회생활은 은혜의 방편의 보고), 그 하나님의 회심케 하시는 은혜를 준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함을 인식한다. 그래서 설교자는 회중으로 하여금 교회의 정규적인 출석과 말씀에 청종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여 그 은혜의 방편에 충실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바라고 자신을 준비하라고 독려한다.

 

 

넷째, 그러나 여기서 특히 주의하여 주목할 것은, 청교도 설교자들은 그런 것을 도식으로 삼아 이런 준비를 하면 곧 회심에 이르게 된다준비주의를 아주 철저하게 배격하였다.

 

 

예수님의 모든 것을 3년 여 동안 목격하고 숙식도 함께한 가룟 유다도 회심에 이르지 못한 것 같이 그런 준비에 참여한 자들모두가 회심에 반드시 이르게 된다는 공식을 만드는 것을 아주 배격하였다. 회심 준비 + 은혜 = 회심이라는 도식은 배격하였다.

 

 

외적으로 볼 때 은혜의 방편에 충실했던자라도 참된 회심에 이르지 못하는 이들을 청교도들은 자기 교회들 속에서 보았다.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6:65)

 

 

다섯째,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비적인 은혜의 행사를 바라고 자신을 준비하는 것은 자신을 선하고 의롭게 만들어 회심하기에 좋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오직 은혜의 방편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주권적인 은혜를 바라고 전인을 외적으로 하나님께 집중시키는 것을 말한다. 마치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사하면서 예수님을 향하여 애원하였듯이 말이다. 그의 애소는 예비적 은혜로 준비된 바디매오의 마음의 애소였다.

 

 

그래서 조엘 비키는 그의 회심 준비론의 책의 제목을 <은혜에 의하여 은혜를 위해 준비되는 : 죄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방식에 대한 청교도들의 발견>(Prepared by Grace, for Grace : The Puritans on God’s Ordinary Way of Leading Sinners to Christ)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회심 준비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참된 회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의 소산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

 

 

여섯째, 어거스틴이나 칼빈도 회심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면서도 그 회심에 이르는 영적 과정이 있음을 인지하였다. 그리고 그에 합당하게 목양적으로 대응할 방안을 강구하였다.

 

어느 목사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교회를 섬긴다 하자. (1) 복음의 소명에 충실하되, 회중들 중에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하나도 없기를 바라서 항상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바라고 늘 기도에 힘쓰고 회중도 그렇게 하게 가르친다.

 

 

(2) 회중에게 각종 예배에 회중 모두가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3) 성경대로 설교하지만 사도 바울 같이 자기의 설교의 웅변술에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의 나타남으로만 은혜가 임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4) 설교 내용은 율법과 계명의 요구를 증거하지만 그에 순응할 인간의 책임과, 그렇지 못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가공함을 늘 깨우친다.

 

 

(5) 아울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와 그 대속의 은혜 안에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의 충분성과 완전성을 광포한다.

 

 

(6) 그 말씀들이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자를 깨우시고 회심하게 하여 구원신앙에 이르게 하시는 성령의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도구가 되게 하시기를 아버지께 간구하지만 설교 전이나 설교하면서나 설교 후에 간절하게 기도한다.

 

 

(7)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살피며 그에 맞게 적용하고 호소하고 위로할 말씀을 위하여 성경을 늘 연구한다.

 

 

(8) 그 모든 자기의 사역 전체의 일이 자기의 공력이나 노력의 열매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소산임을 알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회중도 그리하게 하게한다.

 

 

(9) 자기의 원하는 대로 회심의 열매가 회중에게서 보이지 않는다고 절대 절망은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맡긴다고 하자.

 

바로 그런 목사가 청교도들이 말하는 회심 준비론을 알든 모르든, ‘청교도들과 같이 회심 준비론의 관점대로 성경에 걸맞게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충실한 목사일 것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회심 준비론회심을 위하여 자신을 준비하는 율법주의로 착각하지 말고 오직 복음의 은혜의 영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더 알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의 방식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종의 교리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회심 준비론의 관점을 가진 청교도 설교자들은 신약에 나타난 사도의 본을 중시하여 율법주의도덕폐기론-무율법주의를 다 배격하였다. 아울러 자기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의지하여 각 사람을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기를힘썼고(고후 11:2),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세우는 일에 매진하였다(1:25-29).

 

 

그래서 윌리암 쉐드(William Shedd, 1820-1894)는 그의 저작,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에게 하는 설교들 - 사망의 잠 깨워 거듭나게 하는 말씀>(The Sermons to the Natural Man)에서 회심 준비론적관점에서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들에게 율법 아래 있는 죄인들의 가공할 실상을 제시하며 복음 신앙의 절박성을 호소한다. 필자는 윌리엄 세드(William Shedd)의 이 책을 번역했다. 사망의 잠 깨워 거듭나게 하는 말씀이라는 제하로 청교도신앙사에서 발간했다. 많은 독자들이 읽고 있다.

 

 

이런 말씀 사역을 통하여 자신의 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을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사모하면서 말이다. 이런 교회의 강단과 회중의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터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평안하고 든든한 교회로 서는 은혜를 주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찬미하는 바이다. 아멘.

 

서문 강 (중심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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