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알코드와 기독인의 시대분별

by reformanda posted Jan 14,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2222222222221111.jpg

 

큐알코드와 기독인의 시대분별

 

핀란드의 헬싱키 공항에 '코로나 19 탐지견'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 탐지견은 코로나 19 양성 환자의 확진 여부를 10초 안에 찾아내는 게 가능하고 특히 무증상 환자까지 찾아내는 능력을 가져 현재 시범 근무 중이라고 한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정부도 이 탐지견을 투입하고 있다 한다. 탐지견의 코로나 19 탐지 능력은 진단키트 피시알(PCR)보다도 더 탁월하고 정확하다. 탐지견은 일반적으로 후각이 뛰어나기에 마약소지자, 말라리아나 결핵환자를 찾아내는 공항 탐문에서 높은 정확도를 자랑해 왔다. 그러나 탐지 훈련을 받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실용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제 교회 출입구에 코로나 탐지견이 근무할 것 같다.

 

대한민국 보건복지부가 코로나 19에 대응하여 비대면 진료 즉 원격진료의 질을 높이는 전략 가운데 하나로 손목시계형 활동량계를 만성질환자 6만 명에게 나눠주기로 했다고 한다. 활동량계에는 지피에스(GPS)기반 위치측정 장치와 블루투스 통신장치가 달려있다. 스마트폰 모바일의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하여 환자가 이동하며 소모한 칼로리 등의 정보가 건강보험공단으로 전송되고 의료기관에서도 관련된 정보를 열람할 수가 있다.

 

지금은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다중이용 시설에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담긴 큐알 (QR: Quick Response)코드를 찍어야만 출입할 수 있다. 피시(PC), 노래방, 식당 등에도 출입자의 신상을 파악하게 하는 큐알 코드를 요구한다.

 

대한민국 교육부는 학생이 학원 갈 때도 큐알코드를 찍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큐알코드는 정부가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는 수단이다.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이유로 신체에 착용하는 기계 도입도 예상된다.

 

결국 이것은 국가가 개인에 대한 통제강화를 뜻하며 개인 신상정보 파악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중국에서는 외부에 착용하는 기계장치를 인체 내부로 삽입하는 방안까지 연구 중이라고 한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마지막 때를 참으로 실감케 한다.

 

코로나 19의 확산을 이유로 수도권에 소재하는 교회의 정규 예배가 금지가 되었다. 서울과 경기의 교회 내 성가대·기도회·부흥회·구역예배 등 모든 모임에 대해 집합 금지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정규적인 오프라인 예배가 모두 중단된 것이다.

 

집합금지 명령을 위반하면 벌금이 부과되며 구상권이 청구될 수 있다. 참담한 일이다. 대형교회들은 온라인으로 예배의 명맥을 겨우 유지할지라도, 작은 교회나 개척교회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믿음이 약한 신도들은 떨어져 나가고 있다. 중소형 교회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기독교권 안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책임공방이 한창이다. 분열과 다툼이 일어날 여지가 없지 않아 보인다.

 

방역에 소홀한 단체에 대한 집합 금지 명령은 불가피한 것이라 해도, 일부 교회의 사례를 들어서 코로나 19 방역을 철저히 해 온 절대 다수 교회들의 정규 예배까지 중단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린 것은 부당한 조치이다. 이성적 합리성을 떠난 것이다.

 

예배는 기독교와 그리스도의 교회의 생명과도 같다. 예배를 중단하라고 명령 한다면 절박하고 급박한 그리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단지 확진자가 생긴 일부 교회의 사례를 전체 교회로 일반화하여 일괄되게 강력히 제재함은 공평치 못한 행정이다.

 

여기서 우리가 영적으로 분별해야 하는 것은, 이런 식의 교회에 대한 심한 압박 뒤에는 반드시 사탄의 간계 (devil's schemes)가 있다는 사실이이다. 사탄은 교회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고 이번 일은 권력에 좋은 빌미까지 제공하고 있다.

 

특정 교회의 방역소홀이라는 사회적 책임 부재는 탓할 수 있지만, 정치권력이 극소수 교회의 경우를 근거로 기독교의 생명 같은 예배를 중단하라고 함은 그 배후의 영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교회는 대역병 상황을 영적으로 통찰하는 눈이 필요하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가?

 

첫째,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세속 권력에 대한 저항이다. 대역병과 관련하여, 하나님께 올리는 예배를 중단하라고 하는 세속 권력의 명령은 참으로 부당하다. 교회는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예배를 드려 왔다. 예배를 지속하려면 저항이 필요하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6:12-13).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6:10-11).

 

둘째, 정보수집으로 개인을 통제하는 전체주의 풍토에 대한 견제이다. 인간을 물질의 일부로 보고 모든 종교적 윤리적 가치를 해체하려는 문화 마르크스주의와 해체주의 사상도 견제해야 할 대상이다. 사탄은 이러한 사상의 흐름을 이용하여 세상을 소요하게 하고, 국가권력이나 빅텍크(Big Tech)로 일컫는 언론통신매체들이 개인의 자유를 감시, 통제, 억압하고 있거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것들은 교회 해체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셋째, 기독인의 거룩한 삶이다. 대역병은 기독인에게 온전한 회개와 거룩과 순결을 요구한다. 우리의 성결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세상은 말한다. “언제 그 거룩한 한 명 한 명을 만들어, 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겠느냐?” 하나님은 의인 10명만 있으면 악한 소돔과 고모라도 구원하실 수 있다. 예수의 온전한 제자 한 명이 나오면 대역병의 상황을 주님께서 해결하실 것이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 이니라”(8:34)고 하신 말씀대로 기독인 한명 한명이 주님 앞에 나아가 깨끗하고 온전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승만은 일제시대에 배재학당에서 공부를 했다. 하나님은 그 한 명을 통해 기도하는 나라 대한민국을 세우셨다. 코로나 19의 위세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능력에 버금갈 수는 없다.

 

넷째, 회개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의 회복이다. 인류의 조상이 죄를 범하자 자연은 가시와 엉겅키를 냈다. 온전한 예배가 회복되면 땅과 자연이 회복되고 질병은 치료될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우리 안의 거룩한 성전이 회개로 다시 회복될 때,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짓고 허물어진 것을 다시 일으킬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거룩한 한 명 한 사람이 나아올 때 주님은 기다리고 계신다.

 

다섯째, 주님의 지상 명령인 선교이다. 기독인들은 재앙을 만날 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 된다. 함께 더욱 담대히 말씀을 전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전진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약속을 굳게 붙잡는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더욱 용감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다.

 

코로나 19 대역병과 큐알코드 세상은 기독인에게 시대 분별의 안목을 요청한다. 하나님은 대재앙의 시기에 알곡과 가라지를 걸러내고 계신다.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다.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적합지 않다 하셨다. 주님은 승리를 약속하셨고, 그 주님을 모시고 행진하는 군사들은 이 싸움에서 결국 승리할 것이다. 저항과 견제 그리고 회개와 진리전파의 활동에 열성을 다하면 코로나 19의 위협도 사라질 것이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세상 권세의 위협도, 개인의 자유를 짓밟고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통치 세력도 없어질 것이다.

 

신영미 (브니엘신학교 신학원 2학년)

 

편집자 주: 브니엘신학교 신학원 목회학 석사(Master of Divinity) 과정, 최덕성 교수의 <교회론> 과제로 제출한 '학술 에세이'이다. 하나의 명료한 주장-논지를 가지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을 차례 차례 제시한다. 브니엘신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학수업, 비평적 사고훈련, 학술 에세이 쓰기, 목사후보생 교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