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 20] 골방의 침묵을 사랑하라

by reformanda posted Jul 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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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의 침묵을 사랑하라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정하라.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 자주 묵상하라. 혼란스럽게 하는 호기심을 물리치라.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책보다는 영적인 생활에 유익한 글을 더 자주 읽으라. 잡담과 근거 없는 이야기를 삼가라. 새로운 일에 끼어들지 말라. 과거의 일을 말하지 말라.

 

 

이와 같이 하면 값진 묵상을 발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위대한 성인들은 이 원칙을 지켰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하나님과 함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골방을 선택했다.

 

 

아주 오래 전 어느 철학자는 사람들을 만나러 나갈 때마다 이전보다 더 못한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면 우리도 이 철학자와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 때가 많다.

 

 

대화의 양을 줄이는 것보다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더 쉽다. 밖에 나가서 항상 조심하는 것보다 집에 머무는 것이 더 쉽다. 내면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성취하려 하면 군중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 집에서 침묵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으면 사람들 앞에 나서도 편하지 않은 법이다.

 

 

혀를 다스리지 못하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다스릴 수 없다. 복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남을 복종시킬 수 없다.

 

 

평안을 누리고 싶으면 선한 양심을 가져라. 성인들은 이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그 얼굴에서 덕과 은총이 빛을 발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잊는 법이 없었다. 교만하거나 나태하지 않았다.

 

 

반면, 악한 사람은 교만과 무례에 힘입어 마음의 안정을 누린다. 비록 겉모습은 수도자나 거룩한 사람 또는 드러내지 않고 신앙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혼란스럽고 공허하고 불안정한 삶을 산다.

 

 

명성이 높은 사람들도 의심스러워 할 때가 많지만 그 의심 때문에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괜찮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때문에 자주 시험을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인내를 시험받으면 영적인 교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외적인 위안을 추구하지 않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순간적인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되라. 세상에 현혹되지 않는 사람이 되라. 선한 양심을 지니고 좋아하는 것을 모두 포기하는 사람만이 거룩하고 유익한 것을 묵상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철저히 믿게 된다. 그의 영혼은 항상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의 위로를 누릴 수 없다. 하늘에 닿을 수 있는 확실한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은 마음을 쏟아내는 진정한 회개이다. 작은 골방 밖에는 이와 같은 회개가 가능한 곳이 없다. 그곳에서 세상의 소란함을 물리칠 수 있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 지어다44. 세상에 있을 때 자주 잃어버렸던 것을 골방에서 찾을 수 있다. 그곳을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찾고 싶어질 것이다. 골방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곳으로 발걸음을 되돌리기가 어렵다. 은밀한 곳을 충실히 찾으면 그 곳은 가장 막역한 친구가 되어 많은 위로를 가져다준다.

 

 

헌신하는 사람은 침묵과 고요함 속에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경의 감추어진 내용을 깨닫는다. 그곳에서 흘리는 눈물은 깨끗함을 가져다준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잠시 물러나 있는 사람을 가까이하신다. 자신의 영혼을 외면한 채 여러 사람 앞에서 이적을 행하는 것보다 개인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살피는 것이 더 낫다.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 않는 신앙인은 칭찬받을 만하다. 밖으로 나가더라도 다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려거나 잘난 체하지 않는 사람도 역시 칭찬할 만하다

 

 

왜 사람들은 볼 필요가 없는 것을 바라보고 싶어 하는가? 요한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지만요일 217)라고 말한다. 우리는 감각적인 욕망 때문에 방황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 즐거운 마음으로 나갔다가 슬픔을 안고 돌아오기 십상이다. 쾌락을 만끽하며 보낸 밤은 피곤하고 슬픈 아침을 맞이하게 할 뿐이다.

 

 

육체적인 즐거움은 우리를 유혹하고 방황하게 만든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다”(23:31-32).

 

다시 한 번 더 묻는다. 여기에서 못 보는 것을 다른 곳에서 볼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과 모든 것을 바라보라. 모든 것이 이것에서 비롯되었다. 해 아래에서 새 것을 볼 수 있겠는가? 대답할 수 있는가? 어딘가에서 만족스러운 대답이 있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라. 자신의 죄와 부족함을 위해 기도하라. 헛된 사람들이 저지른 헛된 일을 용서하라. 자신의 골방에 들어 가 문을 닫고 예수님과 더불어 대화하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6).

 

 

그분과 함께 그 곳에 머물라. 하늘의 평안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달리 없다. 골방을 떠나지 않으면 쓸데없는 말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밖으로 나서는 것보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게 더 낫다. 새로운 소식을 듣는 것을 좋아하면 당연히 엄청난 혼란을 겪게 마련이다.

 

 

Thomas a Kempis , De Imitatione Christi (14181427), Part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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