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 여호와는 같은 신인가? 예일대학교의 신학교수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Miroslav Volf)가 저서 <알라>(2012)에서 서로 다른 이름의 신들은 실상 같은 신이며, 그 대상에 대한 두 종교의 이해가 다를 뿐이라고 한다.
볼프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꾸란의 알라가 존재론적으로는 동일한 예배의 대상이며, 인식론적으로 그 분에 대한 이해가 기독교와 이슬람 간에 다르다는 것이다. 신에 대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이해 곧 인식론적 접근이 서로 다르지만, 존재론적으로 같은 신을 예배한다는 것이다.
볼프는 신들의 이름이 다르다고 말하지 않고 신이라는 대상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다르다고 한다. '이해부동동신설'을 말하는 셈이다. 신에 대하여 존재론적 접근이 아니라 인식론적 접근을 한다. 볼프의 주장은 종교다원주의자들이 말하는 "이명동일신설"(異名同一神說)과 다르지 않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태양 빛은 하나이지만 프리즘을 통과하면 7가지의 다른 색깔로 나타나듯이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문화 민족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등장한다고 본다. 알라와 여호와는 이름이 다를 뿐 동일한 신이라고 본다. 이명동일신설은 자유주의 신학의 아이콘과 같은 발상이다.
이명동일신설은 클레어몬튼신학교의 존 힉 교수(John Hick)가 저서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God has many names, 1989>에서 본격적으로 주장했다. 볼프와 비슷한 논리로 접근했다. 궁극적 실재에 대한 기독교·이슬람·유대교·힌두교의 인식과 이해가 다르지만, 모든 종교는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궁극적 실재를 예배한다고 했다. 모든 종교는 절대 진리와 구원에 이르는 동등한 길이며,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을 가르친다는 이론을 주창했다. 이 사상은 종교다원주의의 기본 이데올로기이다.
볼프의 “이해부동일동일신설”은 힉이 1989년에 주장한 “이명동일신설”의 핵심을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볼프는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믿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신념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볼프의 “이해부동동일신설”과 종교다원주의의 "이명동일신설"이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종교다원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에 역사적 기독교의 문을 활짝 열어 준 셈이다.
볼프는 오순절파 교회 출신이며, 풀러신학교와 튜빙겐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한 복음주의 신학자이다. 적장의 장수보다 적과 내통하는 아군의 졸개 병사 한 명이 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성문을 열어주면 적이 쳐들어와 분탕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볼프는 결과적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상대화와 탈기독교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볼프의 이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힉의 이론을 각색하여 자기 것으로 천명한 것이다.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김경재 박사는 힉의 이론을 각색하여 자기 주장으로 펼친 경우과 비슷하다. 김경재는 저서 <이름 없는 하나님>(1992)에서 "등정로 이론"을 펼친다. 등산길이 다르지만 정상에 오르기는 꼭 같듯이, 신들이 이름이 다르지만 각 종교가 추구하는 대상 곧 신은 같은 분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힉, 김경재, 볼프의 주장은 일제말기에 순천중앙교회를 담임한 박용희 목사의 “이명동일신설”과 똑 같다. 박용희는 나중에 한신대학교(조선신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천조대신이나 여호와 하나님이 이름이 다를 뿐 같은 신이라면서, 신사참배와 일왕숭배라는 우상숭배를 권장했다. 힉이나 김경재가 등장하기 훨씬 전에 박용희가 이명동일신설을 주장하는 것은 특이하다.
천상천하에 존재하는 유일한 참 하나님은 창조자이신 여호와 한 분 뿐이다. 하나님은 편재하신다.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서도 일반은총 차원의 사랑과 자비를 베풀며 세상을 통치하신다. 그러나 그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가 둘을 갈라놓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거치지 않고는 참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구약시대의 유대인은 오실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
무슬림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자연만물에 드러난 보편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본성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 이슬람이 이해하고 있는 알라는 이러한 보편계시의 산물이다.
보편적, 자연적 신 지식은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시각장애자처럼 되었다. 왜곡되어 있으며, 편파적이다. 보편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복음을 알려 주지 못한다. 참 하나님과의 인격적·구원적 관계로 이끌 수 없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없는 자들이 믿는 하나님도 궁극적으로 창조자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다. 신에 대한 같음과 다름을 혼동하는 오류에 빠진다. 같은 신에 대한 인간들의 이해가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섬기는 신이라는 대상 자체가 같지 않음은 죄 곧 영적 암매(唵昧)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 없이는 참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간이 참 하나님을 이해하거나 예배할 수 없다.
볼프와 종교다원주의자들에게 묻고 싶다. 알라와 여호와가 같은 신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아프리카의 토속종교들과 아시아인들이 믿는 신들, 한국인들의 하늘님이나 일본인들의 가미가 창조주 하나님인가?
미국의 정성욱 교수(덴버신학교)는 <크리스천투데이>(2016.1.25.)에 기고한 글에서, 세 가지 점에서 볼프의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첫째,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모순된다. 성경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세 위격이 영원한 한 분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는 뜻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동일한 신적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상호 내주를 통한 완전한 페리코레시스(perichorresis)적 연합 (communion)을 이루고 계신다. 그리고 삼위일체는 영원한 사랑의 교제와 교통 가운데 존재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 자체가 코이노니아(koinonia, 교통)이다. 아버지도 아들도 성령도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세 분의 하나님들'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한 분 하나님'이 계신다. 이것이 기독교 신관의 근본 진리이다.
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볼 때, 꾸란의 알라와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완전히 다르다. 성경의 하나님은 삼인격적(tripersonal) 존재인 반면, 꾸란의 알라는 단일인격적(monad/unipersonal) 존재이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모든 다른 종교의 신들을 뚜렷하게 구별해 주는, 기독교의 절대적 독특성이다. 이 점을 부인하면서 기독교인임을 자처한다면, 그것은 자기 모순일 뿐이다.
둘째, 성경의 하나님은 기독론적으로 정의되는 분이다(Christologically defined God).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신약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이란 말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들 중에서도 아버지를 지칭하는 데 집중되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자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동일시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로 가진 분이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신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언하시는 분이 참 하나님이시다. 그렇지만 꾸란은 "알라에게 아들이 있다고 하는 자는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의적인 신성 모독이며 거짓이기 때문이다“(꾸란 18:4-6)라고 선언한다. 상식과 합리적 추론을 존중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성경의 하나님과 꾸란의 알라는 같지 않다.
셋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Kurios)이며 구세주라고 선포한다.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은 초기 예수 운동의 핵심 신앙고백이었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격으로서 사람의 본성을 취하여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확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예배하며 경배한다.
정성욱은 그러나 무슬림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꾸란의 예수(이싸)는 결코 알라가 될 수 없다고 함을 지적한다. 꾸란이 묘사하는 예수는 단지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를 위해 성육한 하나님도, 죄인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주도 아니다. 꾸란은 마리아의 아들을 메시아로 믿거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을 불신앙으로 정죄한다(꾸란 5:17). 예수가 알라라는 주장은 이슬람의 근원을 무너뜨리는 발상이다.
볼프는 이 사실들을 몰랐을까? 볼프는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꾸란의 알라가 존재론적으로는 동일한 예배의 대상이지만, 인식론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 이해가 다르다는 것이다. 신에 대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이해가 서로 다르지만, 존재론적으로 같은 신을 예배한다고 말한다.
정성욱은 볼프의 주장이 네 가지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한다. (1) 논리학적 차원의 문제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 이해와 인식은 단순히 다름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양 종교의 신 이해는 서로 양립되거나 조화될 수 없을 정도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논리학의 기본 원칙인 모순율에 따르면, "A는 B인 동시에 B가 아닐 수는 없다" 또는 "A는 비(非) A가 아니다" 따라서 "예수는 신이다"라고 하는 기독교의 진리 주장은 "예수는 신이 아니다"라는 이슬람의 진리 주장과 양립될 수 없다. 둘 중 하나가 진리이거나 둘 다 거짓일 수는 있어도, 둘 다 진리일 수는 없다. (2) 진리론적 차원의 문제다. 특히 진리대응론(correspondence theory of the truth)에 의하면, 대상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인식이 대상과 일치할 때만 진리 주장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신에 대해, 기독교의 관념 또는 인식이 옳으냐 아니면 이슬람의 관념과 인식이 옳으냐는 반드시 양자택일의 문제이지 양립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서로 모순되는 인식과 관념이 둘 다 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3) 기독교의 예배관과 관련된 문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은 사람이 정할 수 없다. 도리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정하신다. 성경에 의하면 예배는 본질적으로 삼위일체적 행위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through Jesus Christ) 성령 안에서(in the Holy Spirit) 아버지께로(to the Father) 나아가는 행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정당한 예배일 수는 없다. 볼프는 무슬림들이 우상숭배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볼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무슬림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신을 자기들이 만들어 낸 방식을 따라 예배하고 있다. 성경은 이러한 경우를 우상숭배라고 일컫고 정죄한다.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에 선교적 접촉점이 있다. 양 종교가 초월적 유일신을 인정하며,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다. 인간의 죄를 지적하며, 죄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고, 죄와 심판에서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이 무슬림에게 전도할 때, 기독교와 이슬람의 유사점 또는 접촉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유익하다. 이 접촉점은 대화의 마당 역할을 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사용할 수 있다. 기독인과 무슬림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일에 협력할 수 있다. 평화를 진작시키고, 이웃을 사랑하며, 약자들을 보호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일에 협력할 수 있다.
볼프는 자신이 자란 크로아티아와 1990년대의 유고연방이 경험한 종교간 갈등의 비극 그리고 현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미국의 2001년 9·11테러 사건을 경험하면서, 기독교와 무슬림 간의 대화를 위한 접촉점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명동일신설과 다르지 않은 이해부동일동일신설을 주창하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볼프는 '정치신학'을 빙자하여 교회를 혼란케 하는 종교다원주의를 부추긴다. 볼프의 접근방법은 기독교를 공략하기 위해 타끼야(거짓말을 허용하는 교리)를 활용한 이슬람의 선교전략을 떠올린다. 기독교인들을 혼동에 빠지게 함으로 이슬람에 대한 경계를 무너뜨리려 한다.
기독교의 모세오경과 이슬람의 모세오경이 같은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타끼야 전략이다. 꾸란에 있다고 주장하는 모세오경은 십계명이 없으며, 레위기가 빠져 있다. 단지 모세오경에 있는 성경 몇 구절을 인용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알라는 무함마드가 속했던 꾸라이시족이 섬기던 종족신인 달신(Moon god)의 이름이다. 달신의 딸들은 알라트, 웃짜, 마나트 였다. 이슬람 모스크 첨탑에 부착되어있는 초생달과 이슬람국가의 국기마다 그려져 있는 초생달로 나타나 있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인 반면에 이슬람의 상징은 초생달이다. 그런데도 알라와 여호와 하나님이 같은 신이라는 말인가?
진정 종교간 대화와 평화공존을 위한 제언을 할 용기가 있다면, 볼프는 이슬람교의 가르침이 무엇이며, 왜 저들은 그런 행동을 하는가를 지적하고 꾸짖어야 했다.
종교다원주의는 적그리스도 사상이다. 이명동일신론자는 이단자이다. 한국교회는 공격의 폭을 서서히 좁혀오는 사탄적인 신학사조를 분별하는 인식능력이 필요하다. 탈기독교적인 사상에 개방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자유주의 신학자들보다 더 무섭고, 자유주의 신학이 무신론 사상보다 더 위협적임을 기억해 두 필요가 있다. 이른바 복음주의 신학자 볼프는 역사적 기독교, 교회를 허물고 종교다원주의를 향하여 문을 활짝 열어주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 파수군의 경성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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