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카이퍼의 문화철학에 관한 소고
정일권
본고는 고신대학 신학과 4년 때(1990년대 초반?)에 작성한 것이다. 화란개혁주의에 심취했을 때 기독교 세계관과 문화관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던 화란의 신학자이자 정치가(당시 화란의 수상),교육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은총론과 문화철학에 대한 논의를 번역, 요약해 본 것이다. 독창성 보다는 화란신학 텍스트를 읽고, 번역했다는데 그 의의를 둔 논문이다. 이후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은총론이 가지는 낙관성과 낭만성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이게 되었지만, 근본적인 의의에 있어서는 별로 의심하지 않는다. 또 재세례파와 메노나이트에 대한 평가도 이후에 조금 변경되었지만, 신학공부의 여정을 보여주기 위해 수정 없이 그대로 소개한다. 그리고 하이퍼텍스트로 옮기는 과정에서 각주를 정확하게 변환시키지 못해 아래에 미주처럼 옮겨놓았다
서론
개신교 전래 100주년이 되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교회 특히 개혁주의적 입장을 표방하는 신학과 교회 안에 기독교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다.기독교 정치관, 학문관,예술관에 관한 다수의 책들도 소개되고 있다. 본인도 대학 1학년 때부터 기독교적 문화변혁에 지대한 관심을 줄곧 가져왔기에 이런 새로운 움직임들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런 운동을 본인은 복음의 전체성의 회복운동이라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다. 본인은 한국교회가 그 동안 복음의 전체성과 우주 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부분적인 복음과 파편적인 신앙을 어느 정도 견지해 왔다고 본다.즉 예를 들면,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개인 영혼의 구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사회, 문화, 역사를 포함한 전(全)세계의 복음적 회복과 변혁을 간과했고, 복음화의 문제에 있어서도 개인영혼에게 전하는 전통적인 복음전도에만 관심을 제한시켜 전(全)피조세계의 종말론적인 회복과 재생이 복음화의 완성임을 보지못했다. 이런 부분적 제한성은 거의 모든 신앙의 영역에걸쳐 형성되어 있다고 보인다. 이미 많은 신학자와 신앙선배들에 의해 각성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교인들은 '대중적 기독교(Popular christianity)'를 '성경적 기독교(Biblical christianity)'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신학도로서 본인은 '교회를 위한 신학'은 다름 아닌 '교회를 지도하고 변혁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자유주의 신학의 신앙 파괴적인 영향에 너무 질려, 아예 신학 없는 신앙인으로 자처하고 마치 '신학자혐오증'혹은 '신학불신증'에 걸려 있는 듯한 인상을 버리지 못하게 하고 있는 실정인 것 같다. 신앙인은 누구나 신학자이어야 한다. 신학없는 신앙은 존재할 수 없다.전(全)포괄적인 신학체계 없는 파편적 신앙은 언제나 이교적일 수 있는 위험성이 다분하다. 본인은 교회일선에서 나름대로 가르치고 대화하면서 이 같은 점을 참으로 많이 느꼈다.
한국교회 특히 보수교회는 약 100주년을 맞이해서 대단위의 '거듭나기'와 '신앙적 궤도수정'이 필요하다. 복음의 우주성에 대한 신앙적 확신을 천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불어넣어야 하겠다. 이원론적 삶을 과감히 청산하고 이 땅의 모든 삶의 영역과 사회, 교육, 예술,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기독교적 문화와 삶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음을 목청 높여 외쳐야 한다. 어제는 조국의 광복절이었다. 한국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적 신앙을 회복해야함을 절실히 느낀다. 조국은 '복음을 수출하는 나라'로 들떠 자랑하기 이전에 '복음을 이 땅 구석구석 심어서 심화시키는' 일에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상당 부분 문민정부의 획기적인 개혁의 개혁주체가 아니라 개혁객체가 되고 있음이 참으로 안타깝다.문민정부의 '개혁'은 개혁주의의 '개혁'을 앞서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인은 이제 대학 4년 과정을 마감하면서,그 동안 자주 읽어왔던 화란 개혁주의의 선구자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학과 세계관이 참으로 한국교회의 올바른 개혁과 변혁에 지도지침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가 열정어린 신학으로 깨웠던 19세기 말 화란의 시대상황은 오늘 한국의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유사한 점이 많다고 본인은 본다. 그가 가장 비판했던 당시 교회의 비성경적, 재세례파적, 세계도피적, 이원론적 세계관과 신앙이 오늘 한국교회 속에서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카이퍼가 이런 세계방관자적인 태도의 처방약으로 일반은총론 중심의 기독교 문화관 확립과 기독교 문화 변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외쳤듯이- 물론,그의일반은총론은 후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주요공격대상과 논쟁잇슈이기도 했지만, 본인은 그의 일반은총론이 개혁주의적 신학을 떠났다고 보지는 않는다- ,본인도 한국교회의 개혁에 그의 신학과 세계관의 영향은 필수적이라고까지 본다. 그 동안 그에 관해 어느 정도의 책이 소개되긴 했지만, 화란어라는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실정이었다. 이는 그의 대작 일반은총(Gemeene Gratie)이 아직 영역도 되지 않았음을 볼 때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을 주제로 한 많은 책에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업적을 많이 언급하곤 있지만, 정작 그의 신학과 세계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소개한 책은 별로 없다. 본인은 그 동안 준비한 화란어 공부를 통해 그의 대작들을 직접 연구하고 정리해서 작게는 학교와 교단에 크게는 한국교회에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물론, 제한된 시간과 실력으로 그의 방대한 저술들을 일일히 요약, 소개할 순 없었다. 다만 Dr S.J.Ridderbos의 {De theologische cultuurbeschouwing van Abraham Kuyper(아브라함 카이퍼의 신학적 문화관)}이 카이퍼의 방대한 저술의 일목요연한 정리에 큰 도움을 주어 감히 시작했다.{아브라함 카이퍼의 문화철학에 관한 소고}는 작년논문 {아브라함 카이퍼의 세계관의 교회사적 평가}보다는 심도 있게 그의 문화철학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비록 짧은 번역실력이지만, 그의 신학과 세계관의 소개가 절실히 요청됨을 명분 삼아 감히 이 소논문을 작성하는 바, 부디 한국교회 '개혁'에 일조가 되었으면 한다.
1.문화철학의 교회사적 조망
1) 카이퍼 이전 시대의 문화철학
S.J.Ridderbos는 카이퍼 이전 시대의 로마 카톨릭, 루터, 칼빈, 인문주의, 재세례파의 문화관을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바른 평가라 생각된다. 먼저 로마 카톨릭 문화관의 특징은 첫째,낙관적이다.왜냐하면, 죄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고 자연(natuur)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연에 대(對)한 초자연(nastier tegenover bovennatuur)의 구분에서 볼 수 있는 계층적 성격이 특징이다. 로마 카톨릭 문화관의 계층적 특성에서 다음의 특징들도 생겼다.세째,문화는 하나님의 섭리로 영원한 복락상태로 이끌려 올려질 날이 오면 종말을 맞이한다고 생각하기에 종말론적 특성을 가진다.네째,자연적 질서인 문화는 초자연적 질서인 교회에 의해 성결케 되어야만 한다고 믿기에, 교권적 특성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금욕(cultuuronthouding)이 문화적 참여(cultuuraanvarding)보다 천국을 향한 더 안전한 길이라고 믿기에, 금욕적 특성을 지닌다. 루터의 문화관은 첫째, 죄의 심각성을 인정한 동시에 타락한 세계의 문화적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않았기에 현실적 특성을 지닌다. 둘째, 루터의 은총관은 구체적이고 영적인 삶을 문화영역에서의 하나님섬김위에 두지 않았기에 적극적인(positief) 특성을 지닌다.세째,루터는 문화에 대한 교회의 통제적 통치에 대해 경고했기에 반교권적 성격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루터의 죄론은 현재적 세계의 완전한 구원에의 갈망을 암시하고 있기에,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다. 칼빈의 문화관의 많은 부분은 루터와 유사하다. 루터와 같이, 칼빈도 로마카톨릭보다 죄의 심각성을 강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락한 세계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아름다운 선(善)을 부인하지는 않았다.칼빈도 모든 삶의 영역에서의 하나님께 대한 기독인의 소명을 강조했고, 로마 카톨릭의 교권주의도 신랄하게 비판했다.칼빈 또한 죄된 옛 세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미래의 삶을 갈망했다.그러나 루터보다 칼빈의 문화관이 더 적극적인 것은 그의 일반 은총(algemeene genade)에 대한 가르침 때문이다.
그 문화관은 종말론적 성격을 지니는데, 이는 그의 대작 {기독교 강요} 3권에서 "현재적 삶의 경시"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 만,칼빈이 기독인은 현재적 삶으로부터 도피해야 한다고 부추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같은 3권에서 동시에 일반은총에 관해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루터와 같이 칼빈도 교회의 문화에 대한 통제적 통치를 반대하면서 교회/국가의 관계 문제에 있어서 '영역주권(souvereiniteit in eigen kring)'적 견해를 제시하여 로마 카톨릭의 교권주의적 문화관에 대항했다고 Bavinck는 그의 교의학에서 주장했다. 결 적으로 칼빈은 문화관에 있어서도 진정한 개혁자였다. 특히 그의 일반 은총에 관한 가르침은 로마 카톨릭의 오도된 자연/은총의 계층적, 이원론적 문화관에 대항한 성경적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종교개혁당시의 인문주의(Humanisme)의 문화관은 첫째, 하나님의 은총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자연이라는 실체 속에서도 풍요로운 문화적 활동을 위한 충분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믿기에, 자연주의적 특성을 가진다. 둘째, 인문주의는 문화를 어떠한 초월적 목적에도 종속시키지 않으며 절대화된 문화(verabsoluterde cultuur)에 최고의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재주의적-낙관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가능성의 이용에 강조를 두기 때문에 적극적 문화관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재세례파의 문화관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문화를 은총에 대(對)하여(cultual tegenover de genade)위치시킴으로 이원론적 성격을 지닌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적 왕국이 출현해 문화를 포함한 옛 창조세계 전체는 없어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천년왕국주의적( (chiliastisch) 특성을 지닌다.마지막으로,재세례파는 혁명주의적 혹은 금욕주의적 경향을 지니기에 문화적 사명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즉 그들의 문화관은 부정적 성격을 지닌다.
카이퍼 당시의 문화관의 전형적인 형태는 인본주의였다. 16세기의 본래적인문주의(humanisme)는 세속화의 과정(seculariseeringsproces)동안 그 사상적 열매를 맺기 시작했고 프랑스 대혁명에는 가장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19세기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카이퍼 당시에 독일에서의 인본주의는 관념론 철학의 형태로, 화란에서는 강력한 자유주의(Liberalisme)의 형태로 등장했다. 카이퍼 당시의 화란의 자유주의는 인본주의 문화관의 자연주의적, 내재주의적 -낙관주의적, 적극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자유주의는 '중립성(neutraliteit)'이란 미명아래 국가, 사회, 학문, 학교에서의 탈기독교화,세속화에 동조하고 있었다. 신학적 자유주의적 경향의 인본주의뿐 아니라 카이퍼로부터 '문화도피적 경건 (cultuurschuwe vroomheid)'이라 비난받았던 재세례파적 문화관도 유행하고 있었다. 카이퍼는 칼빈전통에서 진정한 기독교적 문화관을 발견했으며, 당시 잠자고 있던 개혁주의를 깨워서 19세기 말의 진보한 인간 정신세계와 접촉을 시도하게끔 노력했다. 카이퍼는 칼빈주의적 문화관과 종교개혁적 원리로 정치영역을 변혁하고자시도했지만 완성하지 못했던 위대한 선구자 Groen van Prinsterer의 업적을 계승하여 화란 칼빈주의의 19세기적 부흥을일으켰다. 이런 19세기의 화란의 세속주의적, 인본주의적, 낙관주의적 시대정신(Zeitgeist)의 소용돌이 속에서 화란개혁교회는 어떠한 방어나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교회와 기도실안에만 안주하고 있었다.카이퍼는 개혁 주의적 전통의 화란교회가 근대문화속에서 문화의 변혁자,창조자가 되지 못하고 세속문화의 추종자로 낙오하게 된 원인을 비성경적이고 제세례파적인 이원론적 세계관속에서 발견하고,이 이원론적 세계관의 방어책을 개혁주의의 선구자 칼빈의 일반은총적 교리에서 찾게 되었던 것이다."나는 여러가지 신학과 사상의 숲을 방황하다가 칼빈주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그는 16세기 종교개혁시대의 칼빈주의(혹은 개혁주의)의 문화적 생동력을 19세기에 부활시키고자 온갖 정열을 다 쏟았던 것이다.
서론에서 언급했지만, 본인은 카이퍼 당시의 문화관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한국교회의 현실과 나름대로 비교해 보았다. 한국교회의 이원론적 신앙은 먼저 한국 민족적 상황에서의 무교적,샤마니즘적 그리고 크게는 동양철학적 영향과 신학적으로는 미국 근본주의적 신학의 재세례파적인 이원론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본인은 본다. 개 주의는 모든 문화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통치의 우주 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바, 이는 미국 근본주의(Fundmentalism)의 문화 도피적 태도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또 한국교회에는 성/속의 이원론뿐 아니라 신학/신앙의 이원론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본인이 속한 고신 교단의 경우, 평신도들의 신앙은 상당부분 신학적으로 근본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고신대학과 대학원의 신학은 화란개혁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물론, 이 구분은 본인 나름대로의 구분이고 또 학문적 일반화는 어렵겠지만, 교회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구분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 신학/신앙의 이원적 분리현상의 해결을 위해서는 개혁주의적인 철저한 교회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개혁주의 신학도와 신학자들의 땀과 기도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카이퍼가 당시 화란교회를 16세기 칼빈주의의 19세기 부흥으로 깨우고자 했듯이, 선교 2세기를 접어드는 한국교회를 '영원한 개혁'을 표방하는 개혁주의, 특히 화란개혁주의 선구자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학의 비판적 수용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어야 하겠다
2. 문화의 기초
A.일반 은총
1)일반 은총의 기초
카이퍼의 위대한 저서{일반은총(Gemeene Gratie)}에서 제시하는 일반 은총의 성경적 근거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일반 은총은 죄의 일반적인 억제(algemeene tempering der zonde)작용이다. 카이퍼는 이 정의를 창세기 2,3,7,8,9,20장, 요한복음 1장, 로마서 1,2장 성경주석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7) 둘째, 일반은총은 저주의 일반적인 억제이다.(창세기 2,3,6,8,9장; 시편 93편, 로마서 1,2장) 셋째, 일반은총의 죄(罪)의 억제력은 노아 홍수이후에 더 강화되었다.(창세기 8,9장) 넷째, 일반은총은 영원하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작용되어진다.(요한복음 1장).마지막으로, 일반은총의 죄와 저주의 억제는 창조세계에 새로운 어떤 것을 추가시키는 활동이 아니라, 타락이전의 본래적인 창조능력의 항구성 속에(in bestendiging der oorspronkelijke scheppings-krachten) 존재한다.(요한복음 1장, 로마서 1장) 성경주석적 근거들과 아울러 카이퍼는 교회 신앙 고백적 근거들도 제시하고 있다. 그는 Dordt신앙고백서 3장,4장과 신앙고백 14개조를 제시하고 있다. 신앙고백 14개조는 "인류는 죄악되고, 왜곡되고, 부패한 본성가운데서도 놀랄만한 재능들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잃어버렸지만 보존하는 은총으로 유지된 조그만 잔류물이다.인간 타락이후에도 일종의 자연의 빛(eenig licht der nature)이 아직도 남아있어 하나님과 자연의 물질에 관한 일종의 지식과 정직과 부정직, 선(善)과 악(惡)의 구분능력과 함께 덕(德)을 지향하고자 하는 노력 등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 자연의 빛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 또 구원의 지식 없이는 자연의 빛을 통해서도 자연적이고 시민적인 삶도 올바르게 영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앙고백은 "타락한 인간에게는 아직도 '원초적 영광의 확실한 잔류물(zekereoverblijfselen)'과 '확실한 자연의 빛(zeker licht der nastier)'이 남아있다"고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경험적 근거를 살펴보자. 전적 타락교리와 인간세계 속에 잔존하고 있는 일종의 선(善)을 보여주는 역사적 경험사이에 존재하는 듯한 모순을 칼빈주의는 타락한 인간세계 안에 선(善)을 작용시키시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적 사역에서 해결하고자 한다.카이퍼는 경험적 근거로 우상숭배를 들고 있다. 즉 우상숭배도 곧 일반은총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논하고 있다."모든 우상숭배(afgoderij)는 예배와 경배의 필요성을 증거한다. 동물은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못하기에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 지옥의 저주받은 자들도 영원하신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기에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사탄만이 동행하기에, 사탄만을 숭배한다...만약 죄가 통제되지 않았다면, 인류는 즉각적으로 전체적이고 최종적인 혼란과 동물화(verdierlijking)에 빠졌을 것이며 그 때엔 더 이상 우상숭배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즉 경험세계속에서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 일반 은총의 개념
(1)일반은총의 작용 - 카이퍼는일반은총의 본질을 '죄와 죄의 결과들의 통제(stuiting van de zonde en van har gevolgen)'로 정의한다. 일반은총의 통제작용은 원칙적으로 특별은총에 속한 중생(wedergeboorte)과 구분된다."중생은 악(惡)으로부터 선(善)을, 불의(不義)로부터 정의(正義)을,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이끌어낸다. 중생은 인간영혼의 뿌리에 존재하는 죽음의 암세포를 수술하여, 영원하고 새로운 생명세포를 이식시키는 능력이다. 일반은총은 죄를 통제하기는 하지만, 뿌리째 뽑아내지는않는다. 그것은 결합시키고, 유지시키고, 통제하는 능력(inbindende,ophoudende,belemmernde kracht)이다." 특 은총은 인간의 마음속에 역사 하는 내적인 변화력(innerlijke veranderde kracht)인데 반하여 일반은총은 '시민적인 선(善)(burgerlijk goed)'을 가능케 하는 외적인 고삐(uiterlijken teugel)이다. 전자가 영원한 삶을 약속하는 반면에, 후자는 임시적(tijdelike) 의미만을 지닌다. 죄의 억제작용은 일반은총의 '영속적 작용(constante werking)'의 한 부분이다. 일반은총의 영속적 작용은 "일반은총의 통제작용이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어 이방의 날까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시간과 모든 민족에게 처음 상태 그대로 정확히 유지됨을 말한다." 일 은총의 영속적 작용은 인간 삶의 유지(instandhouding)와 통치(bestiering)작용이다. 영속적 작용과 아울러 일반은총은 '진보적 작용 (progressievewerk Ing)'을 한다. 진보적 작용이란간 삶과 세계전체의 삶이 진보의 과정을 밟도록 유도하여 점차 좀 더 폭넓고 풍요롭게세계잠재력이 발전, 진보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사역이다. 영속적 작용과 진보적 작용의 차이는 전자는 죄의 억제작용을 하며, 이 억제작용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후자의 인간 삶의 진보적, 능동적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차이에 대해 카이퍼는 이렇게 적고 있다."일반은총의 영속적 작용의 경우 하나님은 인간과 상관없이 단독적으로 사역하시지만, 진보적 작용의 경우 인간을 그의 사역의 '도구와 동역자'로 삼으신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동역 없이 죄를 통제하신다. 그러나, 인간문명의 발전과 진보는 인간의 노력, 투쟁, 발명, 협력활동 그리고 독창성의 결과물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반은총의 작용에서 언급되어야 할 내용은 '차별적 작용(onderscheidenede werking)'에 관한것이다. 비록 일반은총은 '보편적(algemeen)'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시공간에 따라 차별적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노아홍수이후는 홍수전보다, 셈의 경우보다는 야벳의 경우에 일반은총은 더 강력하게 작용했다. 카이퍼는 '일반은총은 하나의 역사(historie)를 가진다'고 말했다.
(2) 일반은총의 기원 - 일반은총의 가장 가까운 기원은 창조(schepping) 혹은 자연이다."일반 은총은 자연을 지나가 버리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항상 자연으로부터 나와 죄와 부패의 억제작용을 한다. 일반은총의 출발점은 원래의 창조된 세계 안에 있으며 잠재된 자연의 능력을 발전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일반은총은 초자연적(bovennatuurlijk)이 아니라 자연적(naturrlijk)이다. 즉 일반은총은 새로운 어떤 것을 자연의 영역에 추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일반은총의 행위적 성격으로 볼 때엔 초자연적이며 직접적인 하나님의 간섭인 것이다."특별은총은 자연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특별은총인 그리스도의십자가는 '반자연적 (tegennatuurlijk)' 이다." 카 퍼는 '재창조(herschepping)'에 대해 강조했지,'이차적 창조(bijschepping)나 '후속창조(naschepping),'둘째 창조 (tweede schepping)'에 대해서 주장한 것은 아니다."재창조는 새로운 요소의 첨가(inbrengen van een nieuw element)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재창조는 왜곡된 현(現) 존재질서를 바르게 새로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은총과 자연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존재한다. 그리스도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현(現)세계를 대체하기 위하여 현(現)세계를 포기하시지는 않는다. 중생(wedergeboorte)도 현재의 나의 본질 속이나 옆에 두 번째의 새로운 본질을 새로이 창조,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적인 계획과 섭리를 따라 다시 살 수 있도록 하는 현(現)인간 존재의 '재창조 (omschepping, hershcepping)'이다. 결론적으로 특별은총은 초자연적인 동시에 자연적이며 전적으로 새로운 것인 동시에 옛 질서의 회복이다."
일반은총의 가장 깊은 기원은 하나님의 뜻, 즉 그의 예정(praedesinatie)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기에 일반은총은 가능하다. 그러므로 가장 깊은 차원의 일반은총의 기원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lankmoedigheid)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제 삼위 하나님중 어느 분이 일반은총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가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와 일반은총과의 관계를 살피고자 한다."그리스도는 창조중보자(scheppingsmiddelaarschap)이시다. 만물이 말씀으로부터(niet uit het Woord)가 아니라 말씀을 통하여(door het Woord) 창조되었다. 창조사역은 성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door den Zoon) 성부 하나님으로부터(uit den Vader) 성취되었다. 만물의 생성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만물의 존재는 성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Het ontstaan is uit God den Vader en het zoo bestaan door den Zoon)" 일반은총은 창조
의 중보자(Middelaar der schepping) 즉 영원한 말씀에 의해 작용된다. 골로새서 1:15-17은 창조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서 일반은총의 근원도 되심을 명백히 증거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와 왕일 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의 왕이시기도 하다. 땅의 왕들은 그들의 통치권을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았을 뿐이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통치권을 부여하셨다.(마 28:18,11:27; 요 17:2,3:35) 그의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며 모든 무릎이 그의 앞에 꿇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왕중의 왕이시다. 십자가 구속이전의 시온의 왕이었던 그리스도는 그의 십자가 구속사역의 대가로 이제는 전(全) 창조세계의 집권자로 임명되셨다.
카이퍼는 그의 책 {Pro Rege}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의 전(全) 세계적 범위에 대해 강조하였다. 그리스도는 자연세계, 역사세계 그리고 가정의 왕이시다. 그 에베소서 5:23을 인용하면서 중보자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이후, 삼위 하나님의 상위왕권(Opperkoningschap)과 인간의 하위왕권(Onderkoningschap)사이의 그리스도의 왕권을 강조했다. 그 스도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통치권은 사회, 정치, 민족, 학문 그리고 예술에까지 적용된다. 특별은총은 영원하신 말씀(het eeuwige Woord)과 관계하는 일반은총과는 달리 성육신 하신 말씀(het vleeschworde Woords)과 관계한다. 즉 특별은총은 성육신 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에게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일치는 바로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진다. 카이퍼는 그리스도의 왕권을 아예 무시하는 감리교적 경향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오직 그리스도인에게만 제한시켜 전(全) 피조세계에 미치는 우주적 의미를 제한시키는 개혁파적 성향도 비판한다. 카 퍼의 주장대로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의 왕일 뿐만 아니라 전(全) 우주의 왕이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항상 그의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시지만 그리스도의 영화로워지심과 그의 재림사이의 중간기동안만은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한 간접적 통치를 하고 계신다. 일반은총의 기원을 정리해 보자. 카이퍼는 명백히 일반은총은 '구속중보자(Verlossings-middelaar)'그리스도가 아니라, '창조중보자(Scheppingsmiddelaar)' 그리스도에 의해 작용된다고 말한다. 일반은총은 성자 그리스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성부 하나님과 성령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은 아니다. 카이퍼는 분명히 일반은총은 성부하나님으로부터(uit den Vader) 나온다고 말한다. 또 일반은총은 만물을 운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고유한 사역에도 포함되는 것이다.
(3)일반은총의 목적과 특별은총과의 관계 - 만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생성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일반은총의 최고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일반은총의 목적을 카이퍼는 두 가지로 제시한다. 즉 일반은총의 두 가지 목적은 '창조세계의 (잠재)능력의 계발(ontwikkeling der scheppings -krachten)'과 '특별은총의 준비(plaatsbereiding voor de particuliere genade)'이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관계 즉 공통점과 차이점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두 은총의 기능을 비교해보면, 첫째, 일반은총은 죄의 억제기능을 하며, 특별은총은 세계의 재생기능을 한다. 둘째, 일반은총은 특별은총과 같이 구속적이지는 않다. 셋째, 일반은총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지만, 특별은총은 택한 자에게만 적용된다. 다음으로 기원에 관해 비교해보면, 첫째, 두 은총 모두 직접적 기원을 본다면 초자연적(bovenbatuurlijk)이며 두 은총 모두 '원래적 창조세계(oorspronkelijke schepping)'안에서 작용하기에 자연적(natuurlijk)이다. 둘째, 두 은총 모두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그 심층기원을 둔다. 셋째, 일반은총은 창조중보자에 의해, 특별은총은 구속중보자에 의해 작용된다고 카이퍼는 구분하여 논하지만, 이 점에선 일관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두 은총의 목적을 비교해 보면, 첫째, 두 은총 모두하나님의 영광에 최고목적을 둔다. 둘째, 일반은총의 실제적 목적이 원(原)창조세계의 계발과 개현 그리고 특별은총을 위한 준비이라면 특별은총의 목적은 택함 받은 자들의 구원이다.
두 은총의 비교에서 흥미로운 것은, 카이퍼가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사이에 존재하는 네가지 영역을 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1) 특별은총의 영향이 전무한 일반은총의 영역 2)특별은총만이 작용하는 제도화된 교회영역 3)특별은총의 빛이 등장하는 일반은총의 영역 4)일반은총의 선물들이 사용되는 특별은총의 영역, 이 네가지 영역을 말한다. 즉 일반은총의영역과 특별은총의 영역이 뚜렷이 구분되는 동시에 두 영역은 공유영역을 소유하고 있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은 모두 하나뿐인 창조세계속에서 작용한다. 카이퍼는 두 은총의 기능의 구분(onderscheiden)은 주장할 따름이지, 엄격한 분리(scheiding)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는 그가 두 은총사이에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상위의 일치점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는 바이다.
(4) 일반은총의 개념에 관한 종합 정리 - 우리는 카이퍼의 일반은총의 개념정리를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일반은총의 작용은 첫째, 죄와 죄의 결과들을 통제, 억제하는 것이다.(영속적 작용) 둘째, 일반은총은 인간과 세계로 하여금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발전을 가능케 한다.(진보적 작용) 셋째, 일반은총은 구속적이지(zaligmakend) 않다. 넷째, 주관적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의 섭리(voorzienigheid)는 일반은총에 근거한다. 다섯째, 기독인은 불신자와 함께 일반은총을 입는다. 여섯째, 그러나 일반은총은 차별적으로(onderscheidenlijk) 작용한다. 일곱째, 일반은총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성품 즉 '오래 참으심(lankmoedigheid)'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선물이다. 여덟째, 일반은총의 오용은 은총적 성격을 상실케 한다. 마지막으로, 일반은총의 작용으로 볼 때에, 자연/은총의 대립은 오히려 창조(schepping)/재창조(herschepping)의 대립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일반은총의 기원은 첫째, 창조(schepping)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일반은총은 '자연적(natuurlijk)'이다. 둘째, 일반은총은 자동적으로(automatisch)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으로 작용하므로, '초자연적(bovennatuurlijk)'이다. 셋째, 일반은총의 가장 깊은 기원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다. 넷째, 일반은총의 '형식적 존재(vormelijk bestaan)'의 기원은 창조중보자(Scheppingsmiddelaar) 그리스도에 근거한다. 일반은총의 목적을 정리해 보자. 일반은총의 가장 주된 목적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 이 주목적아래 다음 하급목적 둘이 존재한다. 첫째, 창조의 개현(de ontplooiing der schepping),둘째, 특별은총을 위한 자리준비(plaatsbereiding)이다. 마지막으로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의 관계를 살펴본다. 첫째,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긴 하지만, 기능과 작용면에서 볼 때상당히 다르다. 둘째, 두 은총의 기원과 목적도 상당하게 다르다.
3) 일반 은총과 문화주체
우리는 이제 일반은총과 특별은총, 이 두 은총과 문화주체와 문화객체의 문제를 다룬다. 문제의 핵심은 타락이후에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작용으로 문화주체와 문화객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일반은총과 문화주체를 다룰 경우 문화주체인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본성에 어떤 본질적인 변화가 있었으며, 일반은총의 작용으로 또 어떤 반작용이 있어, 현대인에게까지 연결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먼저, 타락과 일반은총이 인간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자. 카이퍼는 '창조된 신(神)지식(ingeschapen Godskennis)'의 3 가지 요소를 말한다. 첫째는 가시적 자연세계이다. 둘째는 도덕적 삶이다. 셋째는 '에덴동산전승(paradijsoverlevering)'인데, 이는 인류가 타락했지만, 에덴동산에서의 인류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자손들에게 물려준 세계기원과 천지창조, 인간의 기원, 타락의 기원 등에 관한 원초적인 지식정보로서 비록 부분적으로 희미하게 되었지만, 세대를 통해 '전승(overlevering)'의 형태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 '전승'의 존재는 성경의인물가운데, 아브라함의 부모나 멜기세댁, 니느웨의 사람들, 욥과 같은 이들은 특별계시인 성경의 정보 없이도 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음을 볼 때 증명된다. 카이퍼는 일반은총의 덕택으로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자연적인 하나님의 관한 지식정보'를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파스칼의 말대로 일반은총의 작용으로 철학자들이 발견한 하나님은 특별은총인 성경에 자기 계시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아니었다. 타락으로 둔감해진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능력'을 깨우기 위해선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의 도움이 절대적임을 그는 강조했다.
다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연에 대한 '통치왕권(Koningschap)'을 타락이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알아본다. 성경에 의하면 타락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변화되었다. 인간은 명목상으로는 자연에 대한 '왕'으로 계속 존재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영적인 능력(geestesmacht)'을 상실했다. 오히려 저주받은 자연은 인간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으로부터 '신(神)'으로 숭배 받기까지 했다. 대신 인간은 육체적으로는 날로 무력해져 갔고 그의 영적인 능력도 둔감해져갔던 것이다. 성 프란시스가 비둘기에게 설교를 했다는 것은 카이퍼에 의하면, 원(原)창조세계속에서 모든 인류가 가졌던 자연세계에 대한 영적인 통치력이 회복된 실례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이 죄의심판으로 즉시 '야수'가 되지 않고 인간으로 남아 존재하게 된 것이나 인간에게 내려진 '사형선고(doodvonnis)'가 연기된 것 모두가 하나님의 일반은총때문이었듯이, 일반은총의로 인하여 인류는 아직도 자연에 대한 '왕'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이는 후에 등장할 특별은총으로 인한 자연에 대한 인간통치력의 회복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육체에 미친 타락의 작용과 일반은총의 반작용을 알아본다. 창세기에는 타락이 아담과 하와의 육체에 미친 영향을 대체로 3가지 제시한다. 첫째, 하와는 출산시 육체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 둘째, 아담은 곡식을 수확하여 먹기 위해선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하며, 고된 노동의 육체적 고통을 느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입히신 옷은 단지 수치심을 막기 위한 역할뿐 아니라 연약해진 두 인간의 육체를 자연의 포악해진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역할도 했다. 위 3가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타락은 인간의 영혼기능의 저하뿐 아니라 육체기능의 저하까지 유발시켰다.인간은 이제 영혼의 질병뿐 아니라 육체의 온갖 질병으로부터 시달리기 시작했다. 육체의 쇠약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역사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일반은총의 반작용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일반은총이 없었다면, 인간은 타락으로 즉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은총으로 어느 정도 보존된 인간육체는 믿음을 통한 질병치유와 최종적으로 부활로 완성될 특별은총을 기다리고 있다.
4) 일반 은총과 문화객체
문화의 객체는 지구적 우주(het aardsche kosmos)이다. 우리는 문화객체인 이 땅과 인간사회가 타락이후로 어떤 변화를 거쳤으며 또 일반은총의 작용으로 어떤 반작용이 발생했는지를 알아본다. 타락이후로 이 우주는 저주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는 원(原)창조세계가 카오스상태로 몰락하여 문화의 장(場)으로서 이제는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가 ? 카이퍼는 일반은총을 논함으로 이 물음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죄로 인하여 식물계와 동물계를 포함한 땅의 상태는 중대한 변화를 거치게 되었다. 땅에서 낙원은 이제 사라졌다.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과 뱀사이에 적대감을 존재케 하셨다. 파괴적이고 독성을 가진 동물들은 원(原)창조세계엔 존재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인간과 뱀사이의 적대감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적대감은 더욱 더 번져 동물계의 무서운 변이를 일으켰던 바, 파괴적인 살육욕(moordzucht)이 동물과 동물, 동물과 인간사이에 전체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었다. 즉 연약해진 인간에 대해 강화된 자연의 세력이 맞서게 되었다. 카이퍼는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낸 사실은 땅에 내린 저주를 의미하지만, 땅은 동시에 인간에게 빵을 제공했음으로, 이는 바로 일반은총을 시사하는 것이라 보았다.
노아홍수이후 일반은총은 크게 작용하여 동물계도 '하나님의 법행정(Goddelijke rechtsbedeeling)'아래 예속되기 시작하여 동물들은 인간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또 노아홍수이후로 '조절되고 확고한 사물의 질서(geregelde en vaste orde van zaken)'가 존재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파종과 수확,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영속적으로유지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세계는 보존, 유지되었고 인간세계의 일반은총의 발전으로 인하여 땅의 모습은 점차적으로 풍요롭게 나아가게 되었다.자연의 파괴적인 힘이억제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에 대해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문화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자연세계는 원래의 풍요로움을 잃지 않고 일반은총의 작용으로 모든 자원과 잠재력이 보존되어 인간의 문화활동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은 학문적, 예술적, 기술적, 육체적 능력을 소유하여 이 자연세계의 잠재된 풍요로움을 보다 고차원의발전과 개발과 개현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카이퍼는 문화의 주체와 객체가 인간 개인이 아니라, 유기적 관계를 가지는 집단적 인간 혹은 인간집단(사회, 국가, 가족 등등)임을 강하게 강조했다. 우리는 그가 말한대로 일반은총과 문화객체를 결혼, 가정, 사회, 국가, 민족과 같은 인간집단속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결혼에 대해 살펴보자. 결혼은 에덴낙원에서 이미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다. 그러므로, 결혼은 은총의 영역이 아니라 자연의 영역에 속한다. 그 죄로인하여 신적 제도로서의 결혼은 거룩성을상실하기 시작하여 일부다처제와 같은 변이형태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통치자와 통치 법이라는 일반은총적 수단을 통해 결혼의 완전한 파괴를 막으셨다. 이 점에서 일반은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상이하게 작용했다. 또 카이퍼에 의하면 가정은 일반은총의 산물이 아니라, 원(原) 창조질서(oorspronkelijke scheppingsordinantie)의 일부였다. 그 나 가정도 죄로 인하여 그 본질을 위협받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은총이 이 위협을 방어하고 있다. 이는 불신민족의 가정생활과 전통에서도 발견되는 순수하고 고상한 가정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사회(maatschppij)'도 창조질서였다. 인간에게 심겨진 공동체본능(gemeenschapsdrang)에서 사회가 유래했다. 가장 포괄적인 공동체는 '인류(Menschheid)'라는 공동체이다. 창조질서에근거해서 인류는 피와 영혼의 단일체에 근거해 육체와 정신이 발전해 나가는 강한 결속력을 가진 '유기체(organimse)'로 시작했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인류유기체는 파괴되었고 인류의 통일성도 위협받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상처받고 깨어진 유기체이지만 아직도 하나됨을 보이고 있다. 바 탑 파괴와 언어혼란이후에 새로운 공동체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국가공동체(Staatsverband)' 였다.
이제 인류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도구로서의 국가공동체를 이루면서 거대한 통일체로 보존되어 나가게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국가공동체는 카이퍼에 의하면 원(原)창조질서는 아니었고 죄로 인하여 '무정부적 카오스'상태로 전락할 위험을 방어할 새로운 일반은총적 기관이었다. 국가공동체는 인류 보편적인 현상이었지만, 시. 공간에 따라 다양한 발전정도를 상이하게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면, 민족공동체는 어떠한가 ? 민족공동체는 원(原)창조질서였는가 ? 아니면 일반은총적 기관인가 ? 카이퍼는 이 점에 있어서 그렇게 일관성 있게 답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먼저 그는 민족공동체는 국가공동체와 같이 창조질서에서가 아니라 일반은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창조질서의 다양함을 인정했던 바, 그는 창조질서속에 존재했던 다양한 민족공동체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먼저 원(原)창조질서속에서도 민족공동체의 다양함은 존재했었다.창조질서속에선 가족에서 부족으로 부족에서 민족으로 '유기적(organisch)'으로 분화, 발전되어갔다. 이 발전과정은 타락이후 바벨탑 사건의 언어혼란이후론 '기계적(mechanisch)' 성격을 지니면서 급속도로 분화되어 간 오늘날의 다양한 민족공동체를 이룬 것이다.현재 존재하는 다양한 언어도 원(原)창조세계속에선 단일 언어의 형태였다. 바벨탑 언어혼란 사건은 민족의 '기계적'분화와 발전을 급속도로 진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는 모두 하나님의 일반은총적 사역의 일부였다. 우리는 죄의 파괴적인 영향으로 인류공동체는 파괴되어 절대적 카오스로 전락할 위험을 맞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 결혼, 가정, 사회, 민족공동체는 유지, 보존될 수 있었음을 보았다. 또 우리는 타락이후에 새로운 일반은총적 공동체로서 국가공동체와 통치제도가 등장하게 되어 문화의 객체를 다양하게 했음도 보았다. 즉 인류는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문화주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5)일반은총과 문화행위
문화는 항상 '역사(geschiedenis)'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발전해 간다. 우리는 이제 카이퍼가 역사에 관해 어떻게 보았는지를 살펴본다. 카이퍼는 인류는 일반은총의 도움으로만이 '역사(historie)'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역사는일반은총의 선물이다. 즉 인류는 역사 속에서 창조세계속의 잠재능력을 '개현(開現,ontplooien)'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을 밟고 있다. 일반은총은 죄를 억제하는 동시에 이 개현과정을 성취시키는 작용을 한다. 하나님께서 일반은총을 베풀지 않으셨다면 아담과 하와는 심판을 받아 즉사했을 것이며 인류의 역사와 미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카이퍼에 의하면, 인류의 진정한 '역사'는 '조절되고 확고한 사물의 질서(geregelde en vaste orde van zaken)'가 비로소 존재케 된 노아언약이후로 등장했다. 역사는 동일과정의 무한한 반복이 아니라 점진적 진보과정이다. 역사의 중심 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문화를 일반은총의 도구로 보는 것은 카이퍼 전통의 문화철학의 전형적 특징이다. 창세기 3장의 타
락사건이후에도 인간은 자연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가정, 사회, 학문, 예술분야 등에서의 문화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문화가 일반은총에 존재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활동이외의 모든 문화는 타락전의 창조세계속에 존재했었다. 타락 후에도 이 원(原)문화가 일반은총에 의해 보존, 유지된 것뿐이다. 로마인들은 법률에서, 중국인은 가정생활에서, 그리스인들은 학문과 예술에서 탁월한 업적을 드러내었음을 볼 때, 타락이후로 보존, 유지된 문화는 시. 공간에 따라 매우 다른 발전정도를 드러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류의 문화는 일반은총의 '진보적 작용(progressieve werking)'의 도구였다. 카이퍼는 또 인류발전의 독립적 목적을 '하나님의 형상'과 연관시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교리는 개인 인간보다는 인류전체의 풍요로운 발전과 연관시켜 생각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카이퍼의 '하나님의 형상'교리의 이 사회적 요소는 인간창조때에 하나님은 그의 형상을 따라 인류전체의 고차원의 발전과 진보를 위해 인간의 내적 본성 속에 무한한 잠재력의 씨앗을 심어놓았다는 것을 말한다. 이 인류진보는 오직 인류 전체의 사회적 공동체를 통하여 가능하다. 이런 인류의 발전과정을 통해 인류 속에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의 아름다움과 위엄이 드러나는 것이다. 인류의 문화발전은 이런 독립적 목적이외에 특별은총의 등장을 예비하는 역할도 가진다. 카이퍼는 특별은총 영역인 세계교회의 급속한 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민족과 민족을 엮는 공동체가 필요했다고 보았다. 로 제국이 국제적 통치정부와 국제적인 교통 그리고 국제적인 언어를 통해 인류의 범세계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기에 바울의 복음은 반세기도 채 안되어 로마에서 스페인까지 퍼졌으며 후에 세계는 복음으로 편만하게 되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은 복음전파
와 세계교회확장이라는 특별은총의 작용을 준비해준 일반은총적 공동체였다. 이런 문화의 특별은총을 위한 예비적 역할을 인식했던 카이퍼는 또한 문화가 때로는 복음의 장애물이 되기도 했음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종말에 등장할 죄의 화신 적그리스도는 문화의 옷과 이름을 입고 등장할 것을 말하고 있다. 적그리스도는 문화라는 도구를 오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될 것이다. 즉 물질적 문화가 고도로 발전되어 감에 따라 인류의 정신적, 영적 문화는 쇠퇴해 가며, 하나님께 대한 의존의식이 감소하여 결국에는 문화는 파괴적이고 악마적인 종말에 치닫을 것이다. 카이퍼는 이런 문화의 오용으로 빚어질 저주의 미래를 경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반은총적 선물인 문화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은총과 문화행위에 관해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오직 일반은총을 통해서만이 죄악된 세계 속의 문화행위가 가능하다. 둘째, 문화행위는 일반은총의 진보적 작용의 수단이다.
B.특별은총
1)특별은총과 창조
특별은총의 기원과 최종목적 그리고 특별은총의 현(現)시대에서의 작용에 대해 알아본다. 먼저 특별은총의 기원을 알아보자. 만물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특별은총의 기원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에 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에 의하여 '창조(Schepping)'와 특별은총은 성자 그리스도와 특별한 관계를 지니게 되었다. 그는 영원하신 '창조중보자(Scheppingsmiddelaar)'와 '구속중보자(Verlossingsmiddelar)'이시다. 그리스도안에서 창조와 특별은총은 그 원초적 일치성을 가진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특별은총은 자연적인 동시에 초자연적이다. 특별은총은 새롭게 첨가된 제 3의 세계 속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손상되고 오염된 원(原)창조세계속에 작용하기에 자연적이며 또 특별은총이 죄악된 창조세계속에서 유래된 자연적 산물이 아니라 죄로 파괴된 현(現)세계에 對해 '반립적(antithetisch)'으로 존재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이기에 초자연적 성격을 지닌다. 우리는 특별은총의 기원을 이원론적으로 창조세계너머에서 찾으려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특별은총과 창조는 구분될 따름이지 둘 사이의 본질적 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별은총의 최종목적은 '원(原) 우주의 전체적인 회복(het herstel van den geheelen oorspronkelijken kosmos)'이다. 인간의 영혼뿐 아니라 인간육체도 영화롭게 될 것이다.특별은총의 민족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계 모든 민족이 그의 영원한 거처를 새예루살렘에서 찾고자 몰려올 것이다. 특별은총인 구원의 작용범위는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를 포함한 창조세계의 전(全)영역까지 뻗어나간다.
이제, 현(現)시대에서의 특별은총의 사역에 대해 알아보자.카이퍼는 특별은총의 두 작용 즉 '화해verzoening)'와 '중생(重生,vernieuwing,혹은 재생)'을 구분, 설명한다. 그는 특별은총의 '화해'의 사역을 전(全)우주에 적용시킨다. 그리스도인은 죄사함받아서 하나님과 화해되었다. 죄에 대한 심판이 전(全)창조세계에 걸쳐 이루졌듯이,특별은총의 화해적 작용도 전(全)우주에 이른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카이퍼의 사상에는 이교적 이원론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영혼주의(spiritualise)'처럼 창조세계의 부분인 영혼에게 특별은총의 화해적 사역을 제한시키지 않고 전(全)피조세계에까지 확장,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혹시 이렇게 의문을 제기할 수있다."특별은총은 특별하지 않은가 ? 특별은총은 모든인류가 아니라 택함 받은 자에게만 적용되지 않는가 ? " 카이퍼는 이 질문에 대해 특별은총은 인간개인이 아니라 인류공동체에게 작용함을 강조한다. 이 점은 구약시대에 특별은총을 입었던이스라엘도 어느 개인에게 특별은총이 적용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하나님과의 계약공동체로서 민족공동체 전체가 적용 받았음을 볼 때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이스라엘민족에게 적용되었던 특별은총도 임시적이었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을 위해 존재했고 택함을 받았을 뿐이다.그러므로,카이퍼는 인간 영혼 구원에만 특별은총을 제한시키는 '영혼주의'나'부분적 이원론' 그리고 '특별주의(particularisme)'의 오류를 강하게 지적했다.다음으로 특별은총의 '재생적 작용'은 만물을 역사종말에 가선 원(原)상태로 회복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회복작용은 현(現)시대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 특별은총의 재생작용은 제 1단계로 인간영혼의 중생(wedergeboorte)으로 출발된다. 이 중생을 통해 인간의 내적 본질은 하나님께로 '방향전환'하게 된다. 즉 특별은총의 재생과정은 그 최종적 완성까지는 불가시적 세계에 제한되는 것이다.
2) 문화에 대한 특별 은총의 직접적 의미
(1) 문화주체적 측면에서의 고찰 - 인간은 성령의 사역으로 인한 중생을 통해 급진적이고도 본질적인 변화를 입는다. 카이퍼는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함을 말한다. 즉 중생 받은 자와 중생 받지 못한 자이다. 중생은 인류를 두 종류로 분리시키고 심지어 인간의 인식과 의식까지도 두 종류로 분리시킨다. 중생은 인간의 '종교적-윤리적 성향(regligieus-ethische gesteldhied)'를 잠재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변화시킨다. 자연인(naturelike mensch)은 도달할 수 없는 '참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de ware Godskennis)'은 오직 인간 영혼의 중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간은 중생을 통해 '하나님의 법(Gods wet)'을 이해, 인식할 수 있게 되며 시민적 선(善)뿐만 아니라 영적이고 구원에 이르는 선(善)도 행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카이퍼가 중생의 신비의 능력을 강조했다고 해서 '완전주의(Perfectionisme)'의 위험에 빠진 것으로 생각할 순 없다. 그는 세계 속의 죄가 중생의 순간에 급진적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잠재적이고 점진적 변화과정을 통해 퇴치되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중생한 자는 '원칙적인(principieel)' 측면에서 변화 받았지, 그 순간에 중생이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별은총은 인간의 종교적-윤리적 성향의 근원적 변화를 일으킬 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왕권(koningschap)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타락이전에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창조세계를 다스릴 왕권을 위임받았지만 타락이후로 잃어버릴 위험에 빠졌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반은총의 덕택으로 왕권은 명맥을유지하게 되었다. 이 인간의 왕권에 대하여 특별은총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카이퍼는 이를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한 기적들'에서 발견한다. 구약시대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행한 기적들은 바로 잃어버린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권의 회복현상이었고 타락으로 인한 저주의 퇴치행위였다.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기적이 등장했다.카이퍼는 여기서 매우 색다른 주장을 편다. 즉 그리스도의 기적은 '신성의 계시(openbaring van Zijn Godhied)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적 행위(daden van Zijn menschelijke nastier)'로 보는 것이다. " 라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타락전의 원(原)인간의 모습 혹은 타락후의 재생되고 회복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각종 기적들은 '에덴동산에서의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치력(paradijsmacht van den mensch over de nastier)'이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증거 하는 동시에 그 통치력이 최고절정에 이르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복한 것은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왕(de mensch-Koning uit het paradijs)'의 통치권과 통치력이었다." 이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기적의 능력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신다. 이 기적의 능력은 결코 마술적인 능력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실제적이고도 초자연적 능력이다. 제자들이 받고 행한 기적의 능력은 '영혼의 능력'이었다. 이 자연을 통치하는 영혼의 능력은 에덴동산에서 우리 인간의 내적 본성 속에 심겨졌지만, 타락으로 둔화되었고, 이제는 믿음을 통해 원상 회복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능력을 무엇보다도 심판과 저주의 결과물들을 제거하시고 치유하시는 데 사용하셨다. 모든 질병과 고통을 고치셨고 사탄을 몰아내셨다. 이 모든 것은 '믿음의 능력(geloofsmacht)'으로 말미암았다. 믿음의 능력의 영적인 성격은 예수께서 모든 인간질병과 고통의 심층적 기원은 영적 존재인 사탄의 공작에 있으며 이 사탄을 몰아낼 때에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 가르친 데서 잘 알 수 있다. 카이퍼는 이 믿음의 능력과 기적의 능력을 사도시대에만 제한하지는 않았다. 그는 후대 그리스도인들도 기도를 통해 기적의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제자들이 믿음이 약했을 때에는 기적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듯이 후대 그리스도인들도 무조건적으로 기적의 능력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주체에 미치는 특별은총의 영향 중 특히 학문주체에 미치는 중생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카이퍼는 성령을 통해 내적 조명을 받은 자만이 사물의 전체성, 진실성 그리고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중생이라는 특별은총만이 인간학문을 고차원으로 이끌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중생과 아울러 학문에 미치는 성경의 영향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성경은 구원에의 길을 제시할 뿐 아니라 중대한 세계문제와 신비들에 대한 해답도 제공한다. 세계의 기원, 세계역사과정의 의미, 세계의 종말에 관한 정보는 초자연적인 성경만이 제시할 수 있다. 우주의 신비와 사물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중생과정과 성경의 도움은 필수적이며 절대적이다. 중생한 자만이 '우주의 고차원적이고 종합적인 지식(hoogere,synthetische kennis van den kosmos)'을 소유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들만이 '고등학문(hoogere wetenschap)'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리도께서는 우리에게 '감추어진 것들'을 계시하신다. 인간은 가시적 세계에 대해선 쉽게 관찰, 연구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깊은 지식세계인 불 가시적인 영계에 대해선 중생하지 못한 자는 인식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진리의 파편을 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 자체가 진리이시기에 그 분 안에서는 사물의 실체와 실체에 대한 인식이 정확히 일치한다. 그 분 안에 모든 지식과 지혜의 부요함이 존재하기에 가시적 세계와 불 가시적 세계를 모두 연구할 수 있는 진정한 학문은 '그리스도의 학문'의 토대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특별은총이 중생한 자의 학문적 능력과 문화적 능력을 강화시켰다고 해서, 중생하지 못한 자의 문화적 능력이 열등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인식적-예술적 영역에서는 불신자가 신자보다 월등한 능력을 보인다고 카이퍼는 말한다. 최 의 기술적 문화는 아벨이 아니라 가인이 쌓은 성(城)에서 발견된다. 셋의 후예들에게서가 아니라 카인, 야발, 유발, 두발가인과 같은 불신자의 후예들에게서 금속공예, 악기 등의 문화적 발명이 이루어졌다. 또 모세는 당시 세계최고문명을 소유한 이집트의 문학과 지혜를 배웠다. 예루살렘성전의 건축을 위해서는 두로의 히람의 건축술을 도움받았다. 카이퍼는 일반은총의 '도덕적-종교적 작용(zedelijk-godsdienstige werking)'과 '인식적-예술적작용 (verstandelijk-artischewerking)'을 구분하여, 전자는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 후자는 불신자들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정리를 해 보면, 첫째, 특별은총은 문화주체인 인간의종교적-윤리적 성향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킨다. 둘째, 사도시대 이후로 인간은 자연에 대한통치권을 회복 받았다. 셋째, 특별은총은 인간의 '기술적 능력(technische vermogens)'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넷째, 그러나 특별은총은 결혼, 가정, 사회, 국가, 학문, 예술영역에서의 문화적 능력을 강화시키며 고상하게 변화시킨다. 다섯째, 불신자들은인식적-예술적 영역에서 신자들보다 더 큰 문화적 업적과 능력을 보인다.
(2) 문화 객체적 측면에서의 고찰 - 카이퍼는 원(原)창조질서속에 존재했던 결혼, 가정, 사회 그리고 인류공동체는 일반은총에 의해 절대적 카오스상태로 전락할 위험에서 보호받고 또 특별은총도 그 구조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고 본다. 즉 종말에 가서도 이들 공동체들은 보존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원(原)창조질서속에선 존재하지 않았지만 일반은총으로 새로이 도입된 국가공동체와 통치제도 그리고 현(現) 시대에 존재하는 민족공동체와 언어의 다양성은 특별은총에 의해 소멸될 것이라고 본다. 즉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로마황제들은 무기와 폭력으로 세계통일의 야망을 실현하고자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하지만,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는 성령의 능력과 비폭력적 사랑의 무기로 이 땅의 완전하고도 공의로운 유일의 세계왕국을 건설함으로 세계통일을 이룰 것이다. 요한계시록 11:15절과 에베소서 1:19-23은 세계의 모든 왕들과 통치자들이 세계유일의 왕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무릎꿇고 경배할 것이 예언되어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중간과정으로 새로이 도입되었던 다양한 국가, 통치제도, 민족,언어는원(原) 창조질서로 되돌아가서 수많은 인간정부가 아니라 유일의 '그리스도의 통치(christocratie)로, 단일민족,단일언어로 회복될 것이다. 바벨탑 사건이후로 줄곧 이어져 온 분리과정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통일과정으로 반전되었다. 하지만 이 통일과정은 시작되었을 뿐이지 완성되지는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통일을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3) 문화행위적 측면에서의 고찰 - 이제 우리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기독교적 문화'에 대해 알아본다. 카이퍼가 기독교 문화를 논하면서 항상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 문화는 결코 현(現)문화에 첨가된 제 3의 '새로운 창조물(nieuwe schepping)'이 아니라, 옛 에덴문화의 원(原)목적과 순수성을 회복한 문화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간략하게 다양한 문화영역에서의 기독교적 문화에 대해 살펴보자. '기독교적 결혼(christelijk huwelijk)'은 원래의 '에덴동산에서의 결혼(paradijshuwelijk)'을 회복한 것인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신 것과 같이 부부는 서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엡5:25) 새로운 특별은총적 요소가 도입된 것이다.'기독교적 가정(christelijk huisgezin)'은 하나의 작은 '가정교회(familiekerk)'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가정에서의 하나님경외(Godsvereering in het gezin)'이라는 에덴에서의 가정의 의미를 회복한 것이다.'기독교적 교육(christelijke opvoeding)'은 '기독교적 세계관(christelijkewereldsbeschowuing)'을 후세대에게 전수하는 과정이며 자녀들의 의식 깊은 곳까지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이시며 그리스도께서 그의 전(全)삶의 존재영역을 통치하시도록 순종할 것을 가르치는 하나의 '의식교육(opvoeding van het bewustzijn)'이다.'기독교적 사회(christelijke maatschappij)'는 광의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이는 크리스챤은 언제나 소수공동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사회는 매춘행위, 폭주행위와 같은 사회풍습적 악(惡)과 아울러 사회구조 악에서 비롯된 각종 병폐와 모순을 제거하여 기독교적 가치와 세계관이 사회 구조화된 사회이다.크리스챤은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사회 속에서도 실현할 신앙적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망각하지 말아야한다.'기독교 국가(christelijke staat)'는 카이퍼에 의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할 수 없다. 국가는 역사 속에서 항상 존재하는 불신자와 신자 모두를 포함한 국민 전체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정치영역에서의 크리스챤의 참여와 영향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카이퍼 자신은 '기독교적 국가법(christelijk staatsrecht)'와 ' 기독교적 정치학(christelijke staatkunde)'의 학문적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기독교적 정치학과 법학은 성경을 지도지침으로 삼는다. 그러나 성경이 법학적 개체법규들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 속에 적용할 수 있는'원리들(beginselen)'을 제공할 뿐이다.
이제 마지막으로,'기독교적 학문(christelijke wetenscahp)'에 대해 알아보자. 카이퍼는 학문과정중에서 개체사물의 관찰, 평가와 같은 '저등한 영역(lagere terrein)'에서는 특별은총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다양한 신학들(godgeleerdheid),정 과학(geestelijke wetenschap),그리고 자연과학의 철학적 견해(혹은 과학철학)와 같은 '고등학문(hoogere wetenschap)'영역에서의 자연인(natuurliken mensch)과 그리스도인사이의 차이는 상당한 것으로 보아 '중생의 학문)혹은 기독교적 학문'과 '비중생 학문'으로 구분되는 '두 종류의 학문(tweeerlei soort wetenschap)'을 주장했다. 카 퍼는 무게측정, 거리측정 등의 일차적, 기초적, 경험적, 원시적 관찰(primitieve waarneming)을 주로 하는 수자연과학의 영역에선 특별은총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기에, 두 학문사이에 공동의 결론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영역의 경우 경험되고 관찰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여 일반적인 원리와 철학적인 견해를 뽑아내려고 시도하는 자연과학의 '고등영역'에선 두 학문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고 보았다
.3) 문화에 대한 특별 은총의 간접적 의미
카이퍼는 문화에 대한 특별은총의 간접적 의미를 한마디로 요약한다. 즉 '보편적인 인간 문화(aldermen-menschelijke cultual)'는 일반은총의 영역에 미치는 특별은총의 간접적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별은총의 영향 없이 일반은총만으로 존재하는 문화영역도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특수민족과 특정시.공간에 제한된다는 것이다.'보편적 문화(algemeene cultual)'는 특별은총의 영향이 없이 그 출발이 이루어졌다. 즉 인류 보편적 문화는 특별은총이 시작되기 이전 바벨론,이집트,그리이스,로마에서 꽃을 피웠다. 그러나 이들 문화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특별은총이 시작된 이후에 복음의 토양에서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全)인류를 포괄하는 전(全)세계적 보편문화의 꽃이 피게 된 것이다. 그러면,여기서 학문영역에서의 특별은총의 간접적 영향을 실례로 들어보자.카이퍼는 "인류학문의 최대번성지는 복음의땅이었다" 단언한다. 물론, 그가 이방세계의 학문적 업적을 간과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학문발전이 인류 보편적 성격을 지니게 되고 전(全)세계의 문명을 지배하게 된 곳은 복음이 뿌리내린 곳이었다. 그는 골고다로부터 흘러나온 세계인류문명의 큰 흐름을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신 '인류정신의 해방(vrijmaking van den menschelijken geest)'에서 발견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고대학문 세계를 예속하고 있었던 '민족적 굴레'로부터 인간지성을 해방시켜 학문이 인류 보편적 성격을 지니게 하실 수 있었다. 또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지성를 '미신의 사슬(kluisters van het bijgeloof)'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었다. 고대인들은 '숨겨진 세계(wereld der verborgenheden)'에 대해 막연히 의식하고 있었지만, 정확히 인식할 수 없었기에 온갖 미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감추어진 세계'의 신비를 진리의 빛으로 밝혀주셨기에 인류는 이제 더 이상 미신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성령의 폭풍은 그동안 인류정신세계를 뒤덮고 있던 사탄의 먹구름을 몰아내었다.이제 인간지성은 사탄의 비진리로부터 해방되었고, 성령은 이후로 세계의 '시대의 영(靈)(혹은시대정신, Zeitgeist)'으로 인류정신세계를 진리로 지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옛 지배자 사탄의 지도를 받은 인류정신세계와 새 지배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정신세계가 구분되어 존재하게 된 것이다. 복음의 빛이 고대세계의 온갖 비진리와 미신의 어둠을 정복한 이래로 인류정신은 고도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던 바, 이는 특히 자연의 신비를 캐고 그 지식으로 자연을 통치할 수 있게 한 자연과학의 발전이 바로 복음의 영향아래 이루어졌음을 볼 때 잘 알 수 있게 된다.카이퍼는 자연과학을 통한 인간의 자연에 대한 통치의 회복은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행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을 행하게 되리라는 말씀(요14:12)의 성취로 보았다. 예 께서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이 자연까지 다스릴 수 있는 기적과 큰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카이퍼는 이 말씀은 기독교회의 '믿음으로' 인류정신이 해방된 후에야 비로소 자연과학의 발전이 가능하게 되어 인류는 다시 자연을 지배할 수 있게 된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3.문화의 전망
1)문화의 시간적 미래
카이퍼는 인간의 종교적-윤리적 성향이 큰 역할을 감당하는 인류의 '고등문화(hoogere cultual)' 혹은 '내면적 문화(inwendige cultual)'의 미래에 대해선 비관적인 동시에 자연에 대한 인간통치의 고도발전으로 등장하는 '저등문화(lagere cultual)' 혹은 '외형적 문화 (uitwendige cultual)'의 미래에 대해선 낙관적이다. 그는 이 두 문화는 서로 상호연관성을 가져 내면적 문화의 쇠퇴는 곧 외형적 문화의 번창을 야기시키고 동시에 외형적 문화의 고도발전은 내면적 문화의 피폐와 고갈을 불러일으킨다고 보았다. 자 에 대한 인간통치력의 증가로 이룩된 고도의 물질문명은 인류의 하나님께 대한 '의존감정(afhankelijkheidsgevoel)'의 약화를 야기시키고 이는 인류의 종교적 관심과 필요의식을 저하시킬 것이며 역사종말에 가서는 '죄의 화신(Vleeswording der zonde)' 적그리스도의 통치아래 반신적(反神的) 문화에 이를 것이다. 즉 물질문명의 고도발전은 곧 죄의 증가를 야기할 것이다.카이퍼는 계시록 18장의 '권력 집중화된 거대한 세계정부 (wereldmacht)'의 상징인 바벨론의 몰락으로 이 종말현상을 설명한다.10-13절에 의하면 바벨론은 멸망시 동물적이고 야만적인 문화가 아니라 인류문명이 절정을 이룬 최고물질문명의 도시로 묘사된다. 그러면, 문화의 이런 종말적 현상은 언제 발생하는가 ? 성경은 종말의 긴박성과 아울러 완만성을 동시에 증거 한다. 먼저, 예수께서는 먼저 자기의 재림이전에 장구한역사적 과정이 선행되어야 함을 말씀하셨다. 카이퍼는 예수의재림이전에 존재할 '역사의 오랜 연장(langen duur der geschiedenis)'을 예수께서 반복해서 말씀하셨던 '세계의 완성(voleinding der wereld)'으로 풀이한다. 여기서 '세계의 완성'은 단순한 역사종말을 의미하지 않고,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겨자씨 비유''누룩 비유'에서 나타나듯이, {발아 -성장,-성숙 -추수}의 '완만하고도 오랜 과정'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사이에 존재해야만 하는 '창조세계의 (잠재)능력(scheppingskrachten)'의 완전한 발전과 개현을 위해서 장구한 역사의 흐름은 필요할 뿐 아니라, 죄의 세력이 그리스도의 재림이전에 적그리스도에 이르러서 최고절정에 도달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역사의 장구한 흐름 뒤에 역사종말이 있다할찌라도,예수재림으로 말미암는 종말은 결코 자연적, 역사 내적, 점진적인 역사발전과정의 성숙으로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종말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초자연적이고 급진적인 돌발현상에 의해 이루어진다.
2)문화의 영원한 미래
현(現)문화적 업적은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소멸되는가 ? 아니면 보존될 것인가 ? 카이퍼의 결론은 인류의 공동체적 문화발전은 '보존적 의미(blijvende beteekenis)'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는 요한계시록 21장에 두 번 기록된 구절, 즉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영광스러운 문화적 업적)을 가지고 그리로(새 예루살렘) 들어오리라....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를 논거로 이를 주장한다. 바울도 초대기독교회를 향해 '모든 것이 너희것이다'라고 말했다.이는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민족의 문화적 영광과 업적을 향유하게 되리라는 의미다.마태복음 5장의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도 이를 두고 한 것이었다.여기서 '땅'은 농토와 같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문화세계와 그 업적들을 총괄하는 성경적 대명사인 것이다. 카이퍼에 의하면,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하나님 나라에서도 보존되는데,이는 '잠재된 생명의 씨앗(schuilende levenskiem)' 혹은 '사물의 근원적 의미(grondbeteekenis der dingen)'만 보존되어 그 보존된 생명의 씨앗이 발아,성장하여 하나님 나라에서의 완전하고도 고차원의 문화적 발전이 새로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즉 비유하자면 문화적 업적이라는 씨앗은 동면형태로 존재하다가 하나님 나라의 봄이 되어서는 다시 발아, 개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세계의 겨울과 영원세계의 봄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질적인 변화가 존재 하게 될 것이다. 역사종말은 세계의 멸절(vernieting)이 아니라 세계변혁 혹은 세계영화(verheerlijking)의 형태로 등장할 것이다.요약하자면 현(現)문화적 업적의 형태(vorm)는 새로운 형태로 영화될 것이지만, 문화업적의 본질(wezen)은 보존된다는 것이다.
4.카이퍼 문화철학의 평가와 결론
화란 개혁주의 신학자 Haitjema는 카이퍼의 신칼빈주의(Neo-calvinisme)를 16세기 칼빈의 칼빈주의노선에서 이탈하여 '반칼빈주의적(anti-calvinistische)'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그 나,신칼빈주의는 칼빈주의노선을 이탈한 것이 아니라, 16세기 칼빈의 신학적 세계관의 심화되고 확장된 형태일 뿐이다.인간의 전적부패와 타락의 전세계성만을 신앙고백하는 개혁주의 교회는 재세례파적인 세계도피의 오류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었다.카이퍼는 죄와 타락의 심각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일반은총적 사역을 강조함으로 이 위험을 극복하려고 시도했다.그리고 카이퍼는 문화영역에서의 특별은총의 직접적,간접적 영향을 주장함으로,당시 화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문화의 '중립성(neutraliteit)'주장을 반박한 동시에 기독교 복음의 우주적 적용가능성을 외쳤던 것이다.그러나,혹자가 우려하듯이 카이퍼의 문화철학이 당시 과학기술적 진보에 편승한 시대정신이었던 자유주의 신학의 문화낙관주의나 사회주의의 오류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외형적이고 물질적 문화의 진보를 인정하긴 했지만, 종교적-윤리적인 내면적 정신문화는 그에 따라 쇠퇴해 갈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또 그가 기독교인의 적극적이고도 진취적인 문화적 참여를 독려했다고 해서 그 참여과정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본주의적 세속화에의 동화라는 위험을 간과한 것도 아니었다.본고에서는 지면관계상 생략했지만,그는 개혁주의전통을 따라 그리스도인의 문화적 참여와 소명의 수평적,수직적 한계와 문화의 종말론적 한계를 인정했다. 후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카이퍼는 일반은총을 과대평가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카이퍼는 일반은총의 존재를 확인했을 뿐이었다.그리고 그는 원(原)창조질서의 완전한 회복은 일반은총이 아니라 특별은총에 근거한다고 주장했기에 일반은총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또 그의 '일반은총의 영역'과 '특별은총의 영역'의 분리는 이원론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평가되었지만, 카이퍼 자신은 엄밀한 의미의 분리가 아니라 영역구분을 했을 뿐이며 또 두 영역은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주장했다.
아브라함 카이퍼,그는 화란의 수상,교육자,신학자,법학자,목사,설교자로 참으로 열정의 삶을 살고 갔다. 그의 옆에는 항상 시계가 있었다고 한다.그의 전(全)생애의 순간 순간을 절약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몸바치겠다는 의도였으리라. 그의 열정어린 고백을 들어본다. "이 땅위에, 이 국가안에, 이 문화속에, 이 가정안에, 그리스도께서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하지 않는 공간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 " 그는 열정과 땀의 기독교적 행동가였다.하지만 그는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기독교 세계관적 사상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본고로 마감하면서, 한국교회에 그와 같은 적극적인 기독교적 행동가들과 기독교 세계관으로 잘 무장된 기독 지성인들이 이 땅을 복음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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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kouwer,G.C, Karl Barth, J.H.KoK.N.V., Kampen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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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iper,H, Calvin on Common grace, Eerdmans,Philadelphia,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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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amsma,L. Abraham Kuyper als kerkhisoricus, J.H.Kok,Kampen,1945
Ridderbos,S.J. De theologische cultuurbeschouwing van Abraham Kuyper, J.H.KoK N.V.Kampen,1947
Troeltsh,Eernst, Die Soziallehre der christlichen kirchen und Gruppen, Tbingen,1919
각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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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J.Ridderbos는 그의 책제목을 {De theologische cultuurbeschouwing van Abraham Kuyper(아브라함 카이퍼의 신
학적 문화관)을 사용했다. 본인은 카이퍼 문화관(cultuurbeschouwing)의 포괄성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문화
철학'으로 번역하여 사용한다.. S.J.Ridderbos, De theologische cultuurbeschouwing van Abraham Kuyper, J.H.KoK N.V.Kampen,1947.pp.12-23.
2. H.Kuiper, Calvin on Common grace, 1928, p. 233. 칼빈이 비록 '일반은총'이란 용어를 전문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일반은총적 가르침을 부인 할 수는 없다.. '영역주권(souvereiniteit in eigen kring)'는 카이퍼의 전문용어였고, 그의 책이름이기도 했다. 즉 칼빈의 영역주권적 사상을 카이퍼는 전문적으로 체계화했다고 볼 수 있다.
3. 15, 6세기의 Humanisme은 인문주의로, 그 후 세속화의 과정을 밟은 후 등장한 Humanisme는 인본주의로 구분, 번역한다.
4. 고신대학원 류 해무 교수는 Gemeene Gratie를 '일반은총'으로 번역하는 것은 일본번역의 영향이 크다고 보아 '일반 은혜'로 번역함이 더 옳다고 본다. 하지만, 본인은 일반은총과 일반은혜의 엄밀한 구분보다는 통용되고 있는 용어가 무난할 것이라 생각되어 일반은총으로 그대로 사용한다. 용어에 관한 정확한 이해에 대해선 보다 진전된 연구가 필 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카이퍼 자신도 {일반은총(Gemeene Gratie)}와 {특별은총(Particuliere Genade)}로 Gratie와 Genade를 구분, 사용하지만, 본고에서는 구분을 하지 않았음도 밝힌다.카이퍼 자신은 그의 저서에서 상당히 방대하게 성경본문을 인용, 주석하면서 일반은총론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본고는 지면관계상 성경적 근거에 대해서는 간단한 명제적 문장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성경주석학적 근거는 다음 장, 일반은총의 개념에서 부분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일반은총론의 성경주석학적 근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의 저서 {일반은총론(Gemeene Gratie)}을 직접 참고하면 될 것이다. 창 2,3장 주석은 제 1권 p.94,95,212,213,228,229,219-221,249-252를,창 7장 주석은 제 1권 288-290,제 2권 507-511을, 시편 93편과 요한복음 1장 주석은 제1권 498,499,399,404-408,로마서 1,2장 주석은 제 1권409,413-416,제2권 63-67,17-22 등을 참고하라.그리고 본고에서는 Gemeene Gratie를 G.G로 축약한다.
5. 카이퍼는 이 사실을 그의 '일반은총론'에서 언급한다.Ⅱ.p.15,16,247.또 {거룩한 신학백과사전(Encyclopaedie der heilige Godgeleerdheid)}에서 언급한다.Ⅱ.p.228,229.. H.Kuyer, Het Calvinimse,pp.107-109. G.G.Ⅰ.p.11,pp.252-254;Ⅱ.pp.7-14,p.87..Kuyper,G.G.Ⅰ.PP.412-414..Ibid.,Ⅰ.p.246,222;Ⅱ.p.506.
6. Ibid.,p.25,26,94; Ⅱ.p.277,326,679;Ⅲ.p.45. 카이퍼는 'algemeene genade'와 'gemeene gratie'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지만, 전자는 특별은총(particuliere genade)와의 혼돈을 일으킬 염려가 있기에 후자를 선호한다. 두 용어사이의 차이에 대해선 그의 저서 {일반은총론} Ⅰ.p.8,9와 Ⅲ.p.147를 참조하라..Kuyper,G.G.Ⅱ.p.604. .Ibid.,p.605.. Ibid.,p.606.
7. Kuper,G.G.Ⅰ.p.255.
8. Ibid.,p.443.
9. Kuyper,G.G.Ⅰ.p,414; Ⅱ.p.2,8,67; Ⅲ.p.107,108,109,331..Kuyper,G.G.Ⅰ.p.166; Ⅱ.p.218.. P.R.Ⅱ.p.356,357.본고에서는 P.R로 축약한다.. Kuyper,G.G.Ⅰ.p.395; Ⅱ.p.652.. Kuyper,Pro Rege.Ⅰ.p.45;Ⅱ.p.428,430; Ⅲ.p.313,316.
10. 세계민족문화의 다양성 속에 깔려있는 어느 정도의 일치성(언어의 공동기원, 민족의 기원 등등)은 바로 이 에덴동산에서의 '원형문화(prtotype-culture)'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즉 하나님의 일반은총적 역사로 타락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비록 원형의 정보와는 차이가 있지만 인류에게는 아직도 '낙원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고 있다. Kuyper,G.G.Ⅰ.p.238,239.
11. Ibid.,p.340.여기서 카이퍼의 자연의 영역/은총의 영역으로 구분을 중세 로마 카톨릭의 이원론적 자연/은총의 분리와 동일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Ibid.,Ⅲ.p.295;Kuyper,Encyclopaedie der heilige Godgeleerdheid,Ⅲ.p.323.
12.Ibid.,p.421.
13.Kuyper,P.R.Ⅲ.p.230,231,235.
14.Ibid.,Ⅲ.p.228,229,256,257; Kuyper,G.G.Ⅲ.p.122. 카이퍼는 '국가공동체(Staatsverband)'이외에 'Overheid(본인은 통치자 혹은 통치집단이라고 번역한다)'를 구분, 설명하고 있지만, 본인은 둘 다 비슷한 의미인 것 같아 국가공동체를 언급함으로 족하다고 본다.
15. 혹자는 카이퍼가 19세기에 풍미했던 '낙관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문화적 낙관론으로 빠질 수 있는 '일반은총론'을 제시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결코 죄의 파괴적인 심각성에 대해 결코 소홀하지 않았고 인본주의적 문화낙관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화관을 제시했다
16. 그는 반혁명당(Antirevolutionaire Partij) 이란 기독교 정당을 창설했고 화란의 수상을 역임하기도 핶다.기독교 정치관을 소개하는 그의 글로는, [Antirevolutiona ire Staatkunde ],J.H.KoK,Kampen,1916.과 [Het social vraagstuk en de christel ijk religie ],J.H.Kok,kampen,1918)이 있다. 그의 정치관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정 치관에 관한 책으로는 화란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의 I.A.Diepenhro st교수가 쓴 [Historisch-critische bijdrage tot de leer van den christe lijken Staat ],N.V.Noord-Hollandsche uitgevers Maatschappij,Amsterdam,1967을 보라.
17. 여기서 화란어 'godgeleerdheid'는 문맥상 '기독교 신학'이라기보다는 모든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신학을 지칭함으로 본인은 이해하여 '다양한 신학들'로 번역한다.. Kuyper,Encyclopaedia der heilige Godgeleerdheid,pp.101,115,116 ; Het calvinisme,p.122,123 ; Souvereiniteit in eigen kring,pp.29-33..카이퍼는 4개의 문화그룹을 구분하여 어떻게 특별은총이 인류문화발전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설명했다.{아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