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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역사를 통제할 권한을 가지는가?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과거를 경험한 사람들의 것인가? 역사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역사가들의 것인가? 아니면 국민을 대표하여 법률을 제정하는 국가의 것인가? 국가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관한 사실과 해석을 법률로 규정하고, 그에 반대하는 주장을 형사처벌할 권한을 가지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인정 여부에 관한 논쟁이 아니다. 역사학의 본질과 학문의 자유,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권력의 한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ㄴ
역사서술론(historiography)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그 사건에 관한 역사적 서술을 구별한다. 과거의 사건은 이미 일어났으며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그 사건에 관한 인간의 이해와 해석은 새로운 사료의 발견과 연구 방법의 발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역사가는 사료를 검토하고 증언을 비교하며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한다. 서로 다른 해석이 충돌하면 증거와 논증을 통해 그 타당성을 검증한다. 역사학은 과거에 관한 모든 주장을 동등하게 인정하는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비판과 검증을 통해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는 학문이다.
여기에서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해석의 구별이 중요하다. 역사적 사실은 증거로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사실의 원인과 의미에 관한 해석은 연구자의 관점과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사실과 그것에 대한 해석을 완전히 분리할 수도 없다. 역사가는 어떤 사실을 선택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과거를 서로 다르게 서술한다. 따라서 역사학의 객관성은 국가가 하나의 해석을 확정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사료의 공개, 연구 방법의 투명성, 학문적 비판과 자유로운 논쟁에서 나온다.
오늘날 일부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한다. 이를 일반적으로 역사부인죄(historical denial laws)라고 부른다. 이러한 법률은 국가가 역사적 기억을 보호하거나 특정한 역사적 범죄의 부인을 금지하는 이른바 기억법(memory laws)의 한 유형이다.
독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독일 형법 제130조는 나치 정권의 집단학살을 공개적으로 부인하거나 정당화하고, 일정한 요건 아래 그 범죄를 축소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도 홀로코스트를 포함한 특정한 반인도적 범죄의 부인을 처벌하는 법률을 시행한다. 이러한 법률은 나치즘과 반유대주의의 부활을 막고 집단학살 희생자들의 존엄성을 보호하려는 역사적 경험에서 등장했다.
나는 독일의 이러한 입법을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치의 유대인 약 600만 명 집단학살은 방대한 문서와 증언, 물적 증거, 전후 재판과 국제적인 역사 연구를 거쳐 확립한 역사적 사실이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 부인 운동이 만만치 않다. 이 운동은 국수주의자들의 정신병같은 운동이다. 단순한 학문적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반유대주의와 나치즘의 정당화를 위한 정치적 운동과 깊이 연결되어 왔다. 독일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주의가 자신을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원칙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독일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모든 나라의 역사 논쟁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나치의 집단학살을 부인하는 정치적 선동과 특정한 역사적 사건의 경위, 책임, 성격을 둘러싼 학문적 논쟁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사실의 확립 정도와 부인 행위의 목적, 사회적 위험, 표현의 맥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부인죄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나라의 역사 관련 형사처벌법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유럽에서도 국가의 역사 통제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어 왔다.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2012년 법률이 인정한 집단학살의 부인을 처벌하려는 입법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스페인 헌법재판소 역시 2007년 집단학살의 단순한 부인을 처벌하는 규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결들은 역사적 범죄의 심각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국가의 형벌권에 헌법적 한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도 2011년 일반논평 제34호에서 역사적 사실에 관한 견해의 표현을 처벌하는 법률이 ‘표현의 자유’와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사건에 관한 잘못된 해석이나 부정확한 견해를 일반적으로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폭력과 증오를 선동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표현에는 법적 제한이 가능하다. 그러나 역사적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과 그 주장을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판단은 동일하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5·18민주화운동 관련 특별법은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국가폭력과 시민들의 희생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국가기관의 조사와 법원의 판단, 피해자들의 증언과 역사 연구는 그 사건의 실상을 밝히는 데 한 몫을 감당했다. 그 역사적 성과를 존중하는 것과 관련 사건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를 형사처벌하는 법률의 정당성을 검토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나는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역사적 연구와 해석을 원칙적으로 열린 학문의 공간에 맡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발생 경위와 책임, 정치적 배경, 역사적 의미에 관한 논쟁은 역사가들이 사료와 증거를 바탕으로 수행할 과제다.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기존의 설명을 보완하거나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이미 확립한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는 일과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 서술을 비판할 자유를 인정하는 일은 양립할 수 있다.
나는 물론 학문의 자유가 악의적인 허위사실의 유포나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과 역사적 사건에 관한 일반적인 연구·비판의 자유는 신중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사건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특별한 형사처벌 규정을 마련할 때에는 기존의 명예훼손법이나 민사적 구제수단으로 대응할 수 없는 구체적인 위험이 무엇인지 먼저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의 성격이다. 민주국가의 정부와 의회는 국민의 위임을 받아 공적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나 민주적 대표성이 역사적 진실에 관한 최종적인 인식 권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국회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지만 다수결로 과거의 사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다수결 결의로 정해지는 역사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가 아니다. 법원은 법적 분쟁을 해결하려고 사실을 판단하지만, 그 판결이 역사학의 모든 질문에 최종적인 답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법적 판단과 역사학적 탐구는 목적과 방법에서 서로 구별된다. 대부분의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5.18 사건에 대한 대한민국 국가의 의회와 법원이 역사를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오류를 전제하고 있다.
국가는 사료를 보존하고 공개하며, 독립적인 역사 연구를 지원할 수 있다.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국가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국가가 역사 해석의 최종 심판자 역할까지 맡는다면 학문의 독립성은 위축될 위험이 있다. 오늘의 다수파가 확정한 역사 해석을 내일의 다른 다수파가 변경할 수도 있다. 역사학이 정치권력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결론을 바꾸어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자유로운 학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역사서술론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 객관성은 논쟁의 종결이 아니라 검증 가능성에 기초한다. 훌륭한 역사가는 자신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까지 진지하게 검토한다. 학문적 권위는 국가의 승인이나 형벌의 위협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료에 대한 충실성, 논증의 설득력, 동료 연구자들의 비판을 견디는 학문적 성실성에서 나온다.
역사적 진실은 상대주의의 이름으로 훼손할 수 없으며,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독점할 수도 없다. 명백한 역사적 허위 주장은 엄격한 증거와 논증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 주장을 처벌하려는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만큼 중대한 이유가 있는지 입증할 책임을 진다.
나는 국가가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존중한다. 그러나 국가가 역사를 소유하거나 역사적 진실의 최종 판정자일 수는 없다. 역사가의 책무는 국가가 원하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가의 의무는 증거가 가리키는 과거를 정직하게 탐구하는 것이다. 때로 그 진실은 국가의 영광을 드러내지만, 때로는 국가의 과오와 부끄러운 과거를 밝힌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모든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할 자유를 보호할 때 더욱 성숙해진다.
국가는 역사를 보호할 수 있지만 역사를 소유할 수는 없다. 국가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일을 도울 수 있지만 그 진실을 독점할 수는 없다. 역사에 대한 존중은 국가가 하나의 역사관을 법률로 강제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과거를 자유롭게 탐구하고, 기존의 해석에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증거 앞에서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는 데 있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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