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오기 전에, 마음이 먼저 눕는 나라에서

by reformanda posted Jan 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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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오기 전에, 마음이 먼저 눕는 나라에서

양심을 잃어버린 법정을 바라보며 드리는 탄식

 

요즘 나는 태풍이 불기도 전에 풀이 먼저 눕는다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바람을 견디기 위해 미리 몸을 낮추는 풀의 모습은 자연의 지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장면이 사람의 세계, 특히 법과 정의의 자리에서 반복될 때,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깊은 슬픔이 된다. 아직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는데, 아직 폭풍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생존이 아니라 양심의 포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우리 나라의 사법부를 생각하며 마음이 무겁다. 판결 하나, 문장 하나가 개인의 삶을 넘어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너무 많은 판단과 너무 중요한 사건의 판결이 이미 어딘가를 향해 기울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분명한 말을 하기 전부터, 가능성과 분위기만으로 먼저 몸을 낮추는 태도는 법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의 선택이며, 신앙의 방향에 대한 고백이다.

정의는 언제나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법의 권위는 그 정의를 하나님에게서 잠시 위임받아 섬길 때에만 권위와 의미를 유지한다. 판결이 진실보다 안전을, 양심보다 계산을 먼저 고려할 때, 그 자리는 더 이상 정의의 자리라 부르기 어렵다. 그 순간 법은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힘을 해석해 주는 기술이 된다. 불의한 권력이 더 악한 권력 행사를 하도록 돕는 도우미로 전락한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제도의 문제를 넘어, 영혼의 문제라고 느낀다.

 

성경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단지 개인의 경건을 가리키는 문장이 아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보이는 힘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서서 결정을 내리는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권력의 그림자에 따라 움직이는 판단은 믿음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온다. 그 두려움은 겉으로는 중립과 합법의 언어를 입고 있지만, 깊은 곳에서는 양심을 마비시킨다.

 

법관의 한 번의 선택과 판단은 한 사람의 인생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도덕적 방향을 설정한다. 그래서 판사직과 판결은 늘 무겁다. 그런데 그 무게가 진실에서 나오지 않고, 눈치와 계산에서 나올 때, 법은 스스로의 존엄을 갉아먹는다. 법의 문장이 불의를 가리는 장막이 될 때, 국민은 법을 신뢰하지 못하고, 공동체는 보이지 않게 무너진다.

나는 태풍 앞에서 풀의 역할을 하는 법정의 이 현실 앞에서, 분노보다 깊은 탄식을 먼저 느낀다. 왜냐하면 이것은 몇몇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강요하지 않아도 먼저 눕는 마음, 불의 앞에서 침묵과 중립을 지혜로 착각하는 문화, 살아남고 출세하는 것이 옳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온 시간들이 이 장면을 만들어 왔을지도 모른다.

 

이때 교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교회는 어느 편의 권력을 지지하는 곳이 아니라, 권력조차 하나님 앞에 서야 함을 기억하게 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신앙은 세상의 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기술이 아니라, 그 힘을 넘어서는 기준이 있음을 증언하는 용기다. 교회가 침묵할수록, 중립을 지킬수록, 우로나 좌로나 기울어지지 않을수록, 양심은 더 빠르게 드러눕는다.

 

진정으로 태풍이 불어도 꺾이지 않는 것은, 풀의 유연함이 아니라 마음의 뿌리다. 제도는 바꿀 수 있지만, 양심이 회복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사법부의 회복은 새로운 법률이나 구조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 부끄러움은 약함이 아니라, 정의의 첫 걸음이다.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기에 이런 심연의 탄식을 멈출 수 없다. 아직 바람이 완전히 불어오지 않았을 때, 뇌성번개와 폭우가 쏟아지지 않은 시점에,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권력보다 진실을, 안전보다 양심을 택하는 사람들이 법의 자리에 다시 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아직도 조용히 일하고 계심을 믿어 보려 한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역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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