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하면서도 마음을 열어 둔다

by reformanda posted Jan 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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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하면서도 마음을 열어 둔다

 

 

나는 나를 지키려고 선을 긋는다. 관계 속에서 무작정 가까워지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감정은 쉽게 소모된다. 어떤 사람들은 관계를 이용한다. 친절을 베풀면 그것을 이용하여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그래서 나는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가 없는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를 둔다. 그 거리는 방어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해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존중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배움의 자리에서는 이 방식이 늘 옳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워 왔다. 배움은 나를 지키는 일이라기보다는 나를 상대방에게 내어주는 활동에 더 가깝다. 이미 알고 있는 생각만 반복하고, 이미 동의한 말만 되새기면 나는 안전해지지만 성숙해지지는 않는다. 생각은 굳어지고, 마음은 점점 좁아진다.

 

 

나를 확장하려면, 내가 마음을 열고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한다. 누군가에게 나를 열어야 한다. 나와 같지 않은 생각, 쉽게 이해되지 않는 질문, 불편한 언어와의 만남을 통과해야 한다. 그 만남은 언제나 긴장을 동반하지만, 바로 그 긴장 속에서 생각은 익고, 신앙은 얕은 확신을 벗어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그 사람이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서 있을지라도, 그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를 귀 기울여 듣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조금씩 분별하게 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을 경계하며 만난다. 그는 나에게 편안한 동반자는 아니다.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하고, 질문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신학자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나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서게 만들기도 한다.

 

 

불트만은 묻는다. 과학과 합리성의 언어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그는 추상적인 교리와 개념만으로는, 인간은 실제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나의 삶을 흔드는 사건으로 다가와야 한다고 한다.

 

 

나는 불트만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경계한다. 분명한 것은, 그 질문이 나를 안락한 신앙의 언어에서 끌어내어, 말씀 앞에 서게 하는 사실이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설명이 아니라 만남을 거쳐 이해된다는 말은, 내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신앙의 감각을 일깨운다.

 

 

신앙은 결국, 내가 무언가를 해내는 능력이 아니라, 나의 모든 방어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붙드는 일임을 나는 다시 배운다. 하나님이 나의 실존 속으로 들어오시는 경험, 그것이 신앙이다. 그 만남 속에서 나는 자유를 경험한다. 이 자유는 세상이 말하는 자유와 전혀 다른 종류이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유를 약속한다. 선택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 그러나 그 자유는 종종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불트만이 말한 공허한 자유라는 표현이, 나의 일상을 정확히 짚어낸다.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어지는 자유다. 성령의 법 안에서 경험하는, 방향을 가진 자유다.

 

 

나는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찾는다. 멀리 계신 전능자가 아니라, 나의 현재를 해석해 주시는 하나님, 내 삶의 맥락 속으로 들어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찾는다. 신앙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불트만은 나에게 여전히 불편한 친구다. 나는 그의 모든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유주의 신학의 여러 전제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에게 높은 벽을 쌓고 바람조차 통과하지 못하게 완전히 차단한다면, 나는 나 자신과만 대화하는 고립 속에 머물 수 밖에 없다. 배움은 언제나 타자와의 만남을 필요로 한다.

 

 

나는 불트만을 경계하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그를 만난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동시에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나를 확장하기 위해, 나를 열어둔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단순한 확신이 아니라, 더 깊은 신뢰를 배운다.

 

 

배움의 영역에서 ''를 확장하려면 ''에게 ''를 개방해야 한다. 내가 배우고 이해하고 동의하는 기존의 사실만을 답습하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은 어느 정도 나와 같지 않고 또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사상과 만남을 거쳐 무르익고, 성숙을 향해 나아간다.

 

 

신앙은 모든 질문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질문 속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 불편한 대화를 거쳐 배워 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경계하며 열어 놓는다. 그리고 그 긴장 속에서, 지금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린다.

 

 

 루돌프 불트만은 20세기에 영향력을 발휘한 독일인 신학자다. 그는 당대의 철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과학 실증주의의 세계관 가운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적실한 형태의 신앙과 말씀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교리적이고 추상적인 형태의 사상을 통해서는 실제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한다. ‘지금 현재 여기에서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쳐서만 나의 실존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최덕성 고백명상,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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