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말라야의 소금덩이
모르는 자의 복, 비워진 자의 노래
오랜 시간 나는 가르치고 설명하고 지도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책장에 쌓인 수만 권의 책은 지식의 견고한 성벽이었고, 명료한 언어와 논리는 내가 세상에 빛을 줄 수 있다는 근사한 착각을 선물했다. 지식이 깊어질수록 신앙의 언어도 단단해졌지만, 정작 내 영혼의 폭은 그만큼 넓어지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을 아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법’만을 익혀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상승의 유혹’ 속에 산다. 나는 학문적 성취와 사역의 헌신으로 나를 치장했다. 그러나 화려한 비단옷 같은 지식은 남들의 눈을 잠시 즐겁게 했을지 모르나, 정작 겨울처럼 시린 내 영혼의 고독을 덮어주지는 못했다. 기독교 사상사를 줄줄 읊으면서도 내 마음의 미세한 떨림에는 무감각했고, 사람들을 섬기면서도 그들이 내 기대만큼 성숙하지 않을 때면 서늘한 메마름이 찾아왔다.
나의 헌신이 씁쓸한 피로로 돌아왔을 때, 전도자는 내게 말한다. “책을 만드는 것은 끝이 없고, 공부는 몸을 복되게 할 뿐이다."(전 12:12). 전도자는 거창한 고속도로가 아닌 일상의 좁은 길을 걸으라고 권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얼마나 많은 신학적 정답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오늘 나를 경외함으로 그 하루를 건너왔느냐는 단순한 질문이었다.
계시(啓示)의 빛이 없는 지식은 가을바람에 흩어지는 마른 잎과 같다. 그것은 조각난 거울처럼 빛을 왜곡시켜 우리를 ‘나’라는 좁은 감옥에 가둘 뿐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지식의 교만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그분의 임재 앞에 앉는다. 내가 아는 것들을 비워낼 때, 비로소 하늘의 계시가 내 앎의 파편들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으로 바꾼다.
계시 지식은 나를 증명하는 무기가 아니라, 내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이며, 삶의 길을 밝히는 은은한 등불이다. 시편의 시인이 노래했듯,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말씀으로 채워질 때 우리 영혼은 소생한다. 그것은 꿀보다 달고 순금보다 귀하며, 우리 인생의 긴 여정을 즐거운 노래로 바꾸어 놓는다.
평생 학문의 길을 걸어왔고 중량감 있는 저서들을 남겼지만, 지금의 나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 은밀한 우월감도, 나를 세우려 했던 모든 시도도 내려놓는다. 대신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는 초대를 받아들인다. 이 비움의 자리에서 비로소 참된 배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아는 것은 이전보다 적어진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의 태도는 이전보다 조금 더 진실하다. 지혜로워 보이는 사람보다 정직한 사람으로, 많이 아는 사람보다 낮아질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분 앞에 내 모름을 숨기지 않고 가져가는 이 정직한 호흡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영적 여정은 충분하다.
최덕성 고백명상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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