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우와 신포도: 시기 9
― 시기에 대한 한 편의 묵상 (칠거지악, 2-9)
어느날 여우는 나뭇가지에 잘 익은 포도가 매달려 있는 것을 침을 삼켰다. 포도를 따려고 뛰어올랐으나 손에 닿지 않앗다. “조금 더 높이 오르면 포도를 딸 수 있을 거야” 하고 시도했다. 그러나 포도를 딸 수 없었다. 여우는 털썩 주저 않아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흥 저 포도는 시어 터져서 맛이 없을 거야!“ 이솝의 우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다.
“신 포도”(sour grapes) 유형의 시기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가장 미묘하게 피어나는 감정 가운데 하나다. “저 포도는 틀림없이 시어 터져서 맛이 없을 거야!”
신포도 심리는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시기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자기 자신의 무력함을 견디지 못해 결국 그 열매의 가치를 부정하는 형태의 시기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동경하고, 뛰어남을 보면 배우려 한다. 이 건강한 욕망이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면 사람은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타인의 빛을 깎아내린다. “저 친구가 성공한 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야.” “타인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 게 틀림없어,” “그건 진짜 성공이 아니야.” 그의 논문은 거반 표절한 것이 틀림없어.“
신포도 유형의 시기의 말은 부정으로 위장된 시기심의 발로이다. 손에 닿지 않기에, 맛 볼 수 없기에 타인의 성공 열매의 가치를 낮춰야만 마음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형태의 시기심의 결과이다.
포도 유형의 시기는 욕망의 좌절이 만들어낸 심리의 왜곡이다. 시기는 부러움이 부정으로, 부정이 냉소로, 냉소가 혐오로 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사람은 자신이 욕망하던 대상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며, 내면의 불편한 고백을 숨긴다. 그 말의 이면에는 언제나 “나는 그만큼 닿지 못했다”는 침묵의 고백이 숨어 있다.
신 포도의 심리는 자존심의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마음이 부서지지 않기 위한 즉흥적인 자기보호의 언어다. 사람은 자주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마주할 때, 그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그 의미를 축소함으로써 위안을 얻는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행복을 얕잡아보고, 실패한 예술가는 성공한 예술가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무시당한 이는 사랑받는 사람의 진심을 조롱한다.
신포도 심리를 가진 사람의 안에는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면” 하는 가려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신 포도의 논리는 언제나 자기 파괴적이다. 그러한 논리를 고정시킨 사람은 포도의 신맛을 상상함으로써 결국 세상 전체의 달콤함을 부정한다. 그의 세계에는 더 이상 향긋한 열매가 없다. 남은 것은 오직 맛보지 못한 자의 쓴 웃음뿐이다.
신 포도형 시기심을 가진 사람의 얼굴에는 언제나 두 겹의 표정이 있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 눈빛 속에는 늘 배제된 자의 열기가 깃들어 있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지만 감정은 불안하며, 그의 미소는 정중하지만 그 속에는 조용한 분노가 흐른다.
남의 성취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가장 크게 웃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은 빨리 식는다. 마음이 축하와 냉소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결국 자신을 고립시킨다. 시기는 타인을 향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향한 비난이다. 그는 남의 빛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어둠을 더 짙게 만든다.
신 포도 이야기에는 역설적인 교훈이 있다. 여우가 그 포도를 정말로 맛보았다면, 그 향기를 이토록 오래 기억할 수 있었을까?
때로는 닿지 못한 욕망이 인간을 성장시킨다. 시기는 잘 다루면 열등감의 독을 깨달음의 약으로 바꿀 수 있다. 그 열매가 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보다, “나는 아직 그곳에 닿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인정의 순간, 인간은 남의 포도밭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땅에 씨를 뿌릴 줄 알게 된다. 더 이상 남의 열매를 재보지 않고, 자신의 햇빛 아래서 익어가는 포도를 기다린다. 그때 비로소 그는 깨닫는다. 세상에는 신 포도도 있고 단 포도도 있지만, 그 맛을 결정하는 것은 열매의 높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이다.
시기를 치유하는 길은 눈을 바꾸는 일이다. 타인의 열매를 바라보는 대신, 자신의 포도나무를 돌보는 것이다. 포도는 하루아침에 열리지 않는다. 햇빛, 비, 기다림, 그리고 손의 흙냄새가 함께 익혀낸다.
신 포도형 시기심을 가진 사람이 기억할 것은 자신이 잃은 것이 아니라 아직 익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을 내밀어 포도를 따려 하지 않고, 먼저 자신의 나무를 가꾸기 시작한다. 그때 비로소 그는 깨닫게 된다. 인생의 단맛은 열매의 높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키워낸 마음의 자세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 포도형 시기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작은 여우의 그림자와도 같다. 그 여우는 성공한 친구를 보며 마음이 쓰라릴 때, 누군가의 행복한 웃음을 보며 갑자기 침묵할 때, 조용히 우리 속에서 깨어난다.
신 포도형 시기심을 가진 자는 포도를 따려는 손이 닿지 않으면 그 맛을 부정하려 한다. 그 여우를 다루는 법은 단 하나뿐이다. 포도를 향한 눈을 바꾸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의 경우, 포도를 따지 못하면 그 향기라도 맡는다. 열매를 얻지 못하면 그 포도를 재배하고 키우는 과정을 배운다. 이 때 비로소 시기는 감사로 변하고, 신 포도의 쓴맛은 인생의 단맛으로 바뀐다.
여우가 끝내 하지 못한 마지막 한마디는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저 포도는 아직 덜 익었을 것이야. 나는 익어가는 중이야. 언제가는 손을 뻗칠 수 있리라.” 이 정도의 고백은 시기를 넘어 사랑과 성장으로 나아가는 인간 영혼의 성숙이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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