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19일, 이재명 대통령은 여순사건 제77주기 추념사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기 때문"에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또한 "부당한 명령에 맞선 결과는 참혹했다"며 "다시는 국가폭력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대통령의 메시지는 '반란'이라는 법적·역사적 용어 대신 "부당한 명령 거부"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던" 군인의 도덕적 고뇌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사건의 발단을 '반란'이 아닌 '윤리적 저항'으로 규정하는 강력한 '도덕적 서사화' 전략이다. 이 서사 속에서 비극의 책임은 오직 '국가 폭력'에 귀속되며, 반란의 법적 책임성은 의도적으로 축소된다.
이처럼 '반쪽의 진실'에 기반한 편향된 서사 구축은,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배덕만 교수와 같은 비평적 신학자들이 꾸준히 제기해 온 주장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오늘날 현 정부의 공식 서사로 자리 잡게 된 이 '선택적 기억'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왜 문제인지 밝히기 위해 2021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 게재된 배덕만의 칼럼 「여순사건을 다시 생각한다」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배덕만은 해당 칼럼에서, "정부는 자신의 방침과 전략에 따라 여순사건의 실체를 자의적으로 해석... 그 결과... 역사적 진실이 왜곡"되었다고 비판한다. 그가 문제 삼는 '왜곡'이란 사건을 '반란'으로만 규정하는 것이다. 그는 "여순사건을 일부 남로당 소속 군인의 반란으로 규정·한정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라 주장하며, "‘봉기’나 ‘항쟁’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는 반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나, '동족상잔 거부'라는 '윤리적 동기'를 부각함으로써 반란의 '불법성'을 '저항의 정당성'이라는 서사 아래로 의도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시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배덕만과 현 정부의 역사 인식은 일치한다.
그러나 이 서사는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이유로 인하여 '균형 잡힌 진실'이 될 수는 없다.
첫째, 이 서사는 2019년 3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2015모2229)이 확증한 '이중적 진실'을 편향적으로 취사선택한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사건의 발단을 "국군 제14연대의 반란으로 촉발된 사건"으로 명시함과 동시에, 진압 과정의 '절차 위법'과 '국가폭력'을 인정한 것이다. 즉, 법원은 '반란'과 '불법 진압' 모두를 사실로 인정한 '이중적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배덕만과 현 정부의 서사는 '국가폭력'의 측면만 극대화하고, '군사반란'이라는 법적·사실적 발단은 '부당한 명령에 대한 저항'이라는 도덕적 평가 뒤로 숨긴다.
둘째, 폭력의 성격 규명에서 심각한 혼동을 일으킨다. 법치국가와 성경적 국가관(로마서 13장)의 견지에서, 여순사건의 비극은 '이중적 불법'에 있다. 우선 반란군의 불법성(원천적 불법)이다. 14연대 반란군은 애초에 폭력이나 사법(심판) 권한을 행사할 자격 자체가 없는 집단이다. 합법 정부의 지휘체계를 붕괴시키고 상관을 살해한 이들의 행위는 국가 권력의 '찬탈(usurpation)'임이 분명하다.
이들이 '인민재판'을 열었든 아니든, 그 행위 자체가 '원천적 불법'이므로 이들의 모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 다음은 국가(진압군)의 불법성(절차적 불법)이다. 국가는 반란을 진압할 합법적 권한(칼)을 가졌으나, 2019년 대법원이 판시했듯,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민간인을 학살함으로써 스스로 '불법적 국가폭력'을 자행했다. 배덕만과 현 정부의 서사는 국가의 '절차적 불법'만을 극대화하면서, 반란의 '원천적 불법'은 '윤리적 저항'으로 미화한다. 이는 한쪽의 불법을 단죄하기 위해 다른 쪽의 불법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논리적 편향이다.
셋째, 이 편향된 서사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과 충돌한다. 배덕만은 "반란군이 종교적인 이유로 기독교인들을 차별적으로 처형하지 않았으며"라고 주장한다. 이는 손양원 목사 아들들의 순교를 '신앙적'이 아닌 '정치적' 희생으로 축소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손동인·손동신 형제는 순천사범학교 기독학생회 회장으로서 "친미파 예수쟁이"로 지목되어 처형당했다. 당시 반란군이 '친미·반공 인사' 및 '종교세력'을 '반동분자'로 규정했음을 고려할 때, 그들의 신앙은 처형의 명분과 분리될 수 없다. 배덕만의 주장은 반란군의 이념적 폭력성을 축소하려는 서사에 복무한다.
결론적으로, "정부가... 실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조작했다"는 배덕만의 비판은, 역설적으로 '국가폭력' 프레임에 갇힌 그 자신에게로 되돌아간다. 그 역시 '국가폭력'이라는 서사를 강조하기 위해 '반란'이라는 법적·역사적 사실을 자의적으로 축소·해석했다. 여순사건의 진정한 비극은 "질서를 거부한 반란"과 "적법절차를 잃은 국가폭력"이라는 '이중적 비극'에 있다. 이 균형을 잃은 편향된 서사가 정부의 공식 서사가 되는 현실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진짜 비극이다.
김요셉 목사 (페이스북 글, 202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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