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않는 마음의 여유
이규태의 <한국인의 의식구조>는 한국 사람들은 식사 시에 “빨리, 더 빨리 먹어야 미덕”으로 여겨왔다고 지적한다. 한국인은 천천히 먹는 아이들을 다그쳐 식사를 빨리 끝내게 했다. 그 짧은 식사 시간마저 단축하고자 세계에서 유례없는 국물이나 숭늉 같은 액체에다 밥을 말아 빨리 목구멍으로 내려 보내는 “스피드 식사패턴”을 선호하고 이 관습을 오래 동안 유지해 왔다.
어느 취업 포털 사이트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조사했다. 놀랍게도”빨리 빨리”를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식당 등 가게 전화번호 중에 8282가 유독 많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앞 차가 출발할 때까지 참아주는 시간, 즉 빵빵 경적을 울릴 때까지의 시간을 조사했더니 한국인은 1초였다. 독일인은 7.8초 이태리인은 4.3초였다. 걷는 속도도 한국인은 1분에 90-120보 영국인은 40-60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보면 한국인은 역시 급히 서두르는 성향이 강한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이 시대에 다만 한국인만이 빨리 서두르며 사는 것일까? 오늘날 대다수 현대인들은 알게 모르게 서두르는 삶을 살고 있다. 초스피드 시대에 운전도 과속, 식사도 패스트푸드, 인터넷도 초고속, 성공도 빨리...를 지향하고 있다. 심지어 교회도 급성장하는 것이 하나의 우상이 되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샴푸 중의 하나는 샴푸와 컨디셔너를 함께 섞은 것이다. 두 번 따로 씻는 것보다 한 번에 씻는 것이 만사를 서두르는 현대인들에게 더 ‘어필’했기 때문이다. 도미노 피자의 사업성공 비결도 아무리 늦어도 “30분 이내”라는 배달 원칙 때문이었다고 한다.
빨리 서둘러 일을 처리하는 것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느릿느릿한 행동은 답답해 보이고 일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은 경우, 서두름은 우리에게 염려, 스트레스, 좌절, 실망을 야기한다. 서두르다 보면 인생도 대충대충 피상적으로 살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속담에 ‘서두르면(Hurry) 염려가 생기고(Worry) 죽는다(Bury)’는 말이 있다. 이른바, Hurry-Worry-Bury 공식이다.
일반적으로 서두르는 사람은 시간이 부족하고 아깝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서두르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성취하고 얻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멀타이 태스킹”(Multi-Tasking)의 효율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운전하면서 샌드위치 먹고, 커피 마시며, 화장하고, 전화, 문자 메시지, 라디오 청취 등을 동시에 하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아무리 바쁜 세상 속에서도 서두르지 않고 정규적인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깊은 사색과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여유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생각의 깊이는 서두르지 않을 때에라야 가능하다. 현대인들은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정보의 홍수에 파묻혀 있다. 그러다 보니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한 지식 습득과 사색이 많이 결여돼 있는 편이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깊은 사색과 기도의 시간을 가졌던 정치가였다. 그의 전기를 쓴 데이빗 도날드에 의하면 링컨은 어려서부터 읽을 책을 구할 수 없어서 거저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성장했다. 그는 성경책과 이솝의 우화 책을 애독했고 그것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이와 같이 깊이 있는 좋은 독서와 사색은 그로 하여금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게티즈버그 연설을 할 수 있게 했고 노예제도 폐지와 같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했다.
어느 듯 우리는 7월 말로 접어드는 여름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사람들은 바쁘게 살며 달려오다가 무더운 여름철을 맞이하여 걸음을 잠시 멈추고 휴가 바캉스를 갖는 시즌이다. 서두름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고 여가를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참 좋은 것이다. 그럴 때 창조적인 사색을 할 수 있고 인생을 좀 더 큰 안목으로 내다 볼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가라고 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여가라는 단어를 “스콜라”(Schola)로 표현했다. 여기서 학교(School)라는 말이 나왔다. 신기하지 않은가? 서로 무슨 관계가 있길 래 여가를 학교로 표현했을까? 보통 우리가 학교라고 하면,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여 수업에 참석하고 선생님이 내어주는 많은 과제물들을 땀 흘려 완성하여 제출하는 것을 연상한다.
그러나 고대 희랍인들에게 학교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학교는 “배우는 자유”(Freedom to Learn)를 의미했다.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자들만이 학교에서 “배우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 자유를 가진 자들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기 인생과 세상에 대해 사색하고 큰 안목으로 볼 수 있는 여가를 가짐이 가능했었다. 그래서 여가를 학교로 표현한 것이다.
반면에 희랍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주 90시간 이상 밤낮 일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므로 “배울 수 있는 자유와 여가”를 가질 수 없었다. 그렇게 살다보면, “배우는 자유와 여가”를 가지는 자들이 갖는 안목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가와 여유”는 인류 문명 발달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여가와 여유의 시간을 갖고 인생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사색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과 인류사회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역설했던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영적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수시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막 1:35).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조용한 곳에 와서 잠시 쉬어라”(막 6:31)고 당부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는 것도 서둘러서 급히 속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자화는 성급히 “돌을 떡으로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말씀으로 인격을 다져가야 비로소 온전한 제자화가 가능하다.
서두르는 병을 고치고 여유를 갖는 연습이 필요하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속도를 덜 내는 바깥 차선에서 운전해 보라. 차 경적을 자제하라. 음식도 최소한 15번 씹고 삼켜라. 쇼핑할 때 일부러 긴 줄에 서서 기다려 보라.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한 시간을 갖고 사색하고 기도하라. 하나님은 24시간 7일 일하면 우리가 지치고 병나기 때문에 안식일을 주셨다. 주일날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영혼의 안식을 얻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홍해 앞에서 서두르며 공포에 질려 원망 불평하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가만히 서서”는 곧 서두르지 않고 깊은 영적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바라보라는 뜻이다. 조용히 말씀의 큐티(QT)를 가지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홍해 앞에서 서두르던 이스라엘 백성들뿐만이 아니라, 21세기 초 스피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을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황현조 목사(IRUS 교수, 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World Gospel Times, (22 Jul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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