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15세기 고틱 학당
어거스틴의 기호 해석학
최덕성 해석학 강의록 5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은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 풍유적 해석과 문자적-역사적 해석 전통을 동시에 수용하면서 기호 해석학이라는 독자적인 하나의 새로운 종합을 만들어 냈다.
기독교를 괴롭히던 영지주의는 문자적 해석 방법을 따르면서 구약성경의 효용성에 반대했다. 어거스틴은 영지주의 해석을 반대하면서 풍유적 텍스트 독해 방법의 자유를 경험했다.
어거스틴은 고전적 수사학 훈련을 받았다. 학문적 역량은 성경 본문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풍유법이나 영적인 독해가 본문의 의도를 왜곡할 수 있는 위험을 지니고 있음을 금방 알아차리는 감각을 제공했다. 그는 이 위험을 통제할 목적으로 텍스트에 대한 철저한 언어학적 분석의 필요를 강조했다.
어거스틴은 기호학(semiotics)의 아버지이다. 기호학라는 단어는 기호(sign)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semeion)에서 유래했다. 어거스틴의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De Doctrina Christiana)는 조직적인 해석학과 설교의 기술에 관한 글이다. 이 책은 기호의 의사전달 기능을 탐색한다. 기호는 구체적인 실재를 가리킨다. 의미 전달자 역할을 한다.
어거스틴은 성경과 성경이 가리키는 것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거부했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인간의 텍스트이다. 성경 자체를 신으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 기독인 독자들은 성경을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이웃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로 이끄는 기호 책으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우리들의 신행(信行)의 안내서이다. 하나님과 성경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법에 우리 자신을 올바르게 관련짓는 특별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 태도는 다름 아닌 사랑이다.
어거스틴의 해석 관점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 사이의 대립적인 논쟁에 중요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어거스틴의 기호론적 해석 원리는 성경 텍스트를 문학과 역사 텍스트 등과 마찬가지로 기호론 체계 안에서, 기호의 기능을 존중하면서, 그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동시에 사랑이라는 실천적 독해 관점이 필요하다. 올바른 독해 관점의 기초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정경이 제시하는 바가 성경 본문 밖의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기호론적 해석은 미숙한 문자주의와 독단적인 풍유의 위험에서 본문을 해방시킨다. 동시에 신학적 독해 관점을 포용하도록 격려한다. 어거스틴의 기호 해석학은 모든 독자들이 성경을 읽고 스스로 진실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았다.
사랑을 텍스해석의 도대로 삼는 어거스틴의 해석학은 실천 지향적이다. 단순한 사색의 결과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실천적인 통찰에서 얻어진 열매이다. 성경의 가이드에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 텍스트가 절대적으로 무오하다고 믿으면서 무비판적으로 숭배하는 태도인 성경주의(Biblicism)를 배제한다. 성경은 우리를 가이드 할 목적으로 존재한다. 성경 가르침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이 성경 텍스트가 말하는 구원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성경 해석자의 임무에 대한 논의에서 자연적 기호와 만들어진 기호를 구분한다. 연기는 불을 상징하는 기호이다. 기호는 대상을 직접 언급할 수도 있고 상징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해석자에게 알려지지 않거나 모호하게 나타날 수 있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성경을 하나의 통일체이다. 어그스틴에 따르면 성경의 불분명한 구절은 분명한 구절을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독자는 항상 문맥 안에서 기호들을 이해하고, 본문이해에 도움이 되는 모든 지식을 끌어와야 한다. 기호의 모호성은 교회의 지도를 따르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신앙의 규칙은 애매모호한 구절들에 빛을 던져 줄 수 있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 사려 깊게 독자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독자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에 감동되면, 성경 본문의 영적의미를 결코 놓칠 수 없다.
어거스틴은 구약성경 해석에서 전통적인 모형론적 독해 방식에 머물러 있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의 내용은 문자적으로만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한다.
기호 이론에 기초한 기호 풍유적 해석과 문자-역사적 해석 위에 구축되었다. 기호 파악은 안디옥 학파의 사고와 노선과 입장을 같이한다. 문맥보다 영적인 실천에 우선권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일치한다. 어거스틴의 성경해석학은 신약성경에 대한 일관성 있는 신학적 독해 관점을 제공한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신앙의 법칙과 사도적 전통은 책임 있는 성경 독해를 위한 콘텍스트이다. 성경은 공동체의 책임 있는 독해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성경은 매우 탁월한 유용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에 감동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성경 밖의 무엇이 해롭다면 성경에 의해 정죄를 받게 될 것이지만, 유용하다면 성경도 유용하다고 판명될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결정하는 궁극적 기준이다.
어거스틴 해석학의 요점은 그의 사후 수세기 동안 교회에 영향력을 가졌다. 그것은 많은 신학자들과 문학적 텍스트 해석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어거스틴의 해석 이론이 갖고 있는 성경의 역할과 전통의 역할 사이의 조심스런 균형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방교회에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되었다. 성경의 가르침보다 교회의 결정은 절대화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엄격한 구분이 생기고, 로마교회가 서방교회의 수위권을 주장하며, 교회가 세속국가의 지지를 받는 교회-정치 구도에서 성경보다는 교회의 전통이 성경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해석은 텍스트 그 자체에 대한 독해에 기초한다. 어거스틴은 "텍스트에 충실한 독해관점"을 제시했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사후, 교회는 어느 곳에서나, 언제든지, 모든 기독교인들이 믿어왔고, 믿고 있는 신앙을 강조하면서, 엄격한 의미의 보편성(가톨릭성), 고대전통, 교회의 합의를 존중했다. 텍스트보다는 교회가 천명하는 보편적 신앙과 규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거스틴의 균형에서 점차 이탈하여 기독교 정체성에 제도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주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기독교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천명한 종교개혁운동 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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