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헬라어로 가르친 적이 있는가?
예수는 갈릴리 출신이다. 모국어는 아람어였다. 예수와 요셉과 마리아는 아람어를 사용했다. 제자들도 아람어를 사용했다.오늘날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람어로 예배를 드린다. 고대 아람어 방언으로 기도, 찬송, 설교를 한다.
예수와 제자들은 갈릴리, 특히 디베랴 지역 억양의 아람어로 말했을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가 세 번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자 곁에 섰던 유대인들이 그에게 "네 말소리가 진실로 그와 같은 도당임을 표명한다"(마 26:73)고 했다. 오순절 날 성령강림 현장에 모여든 예루살렘 주민, 유대인 디아스포라, 이방인 개종자들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설교를 듣고 “이 말하는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행 2:7)라고 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토착어 또는 공용어(lingua franca)는 아람어였다. 신약성경은 헬라어(Greek, 그리스어, 희랍어)로 기록되었다. 신약성경의 예수 이야기는 아람어 용어들을 동원한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하나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달라다쿰(소녀야 일어나라), 아바(아버지), 바(아들), 게헨나(지옥), 게바(베드로), 파스카(유월절), 랍비(선생), 사탄(사탄) , 사바타(안식일), 사타(말), 라가(미련한 놈), 보아너게(우뢰의 아들), 맘몬(제물), 바알(바알 신) 등이다.
그 무렵, 아람어를 제치고 헬라어가 지중해 지역의 정치적 지위 향상과 더불어 서서히 공용어로 부상하고 있었다. 라틴어는로마의 군대 안에서만 사용되고 있었다 히브리어는 사어(死語)였다. 유대교 랍비들 사이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주로 문자 해독 목적이었다. 예수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익숙했다(눅 4:16-20). 자주 ‘랍비’라고 불렸다. 이는 그가 히브리어 성경을 해독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히브리어로 간단한 회화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예수께서 자라고 활동한 갈릴리는 헬라 문화권에 둘러 싸여 있었다. 이 무렵, 팔레스타인에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상호작용하고 있었다. 일반 대중도 헬라어로 메모를 하거나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데 필요한 초보적인 수준의 약간의 헬라어를 실무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전 1세기에 지중해는 ‘그리스의 바다’로 일컬어지고 있었다. 갈릴리 동편 지역 열 성읍 데가볼리는 교통요충지였다. 요르단 패스(Jordan Pass)는 지중해 지역 무역, 통행, 교류의 중심지였다. 그곳은 '이방인의 갈릴리'(마 4:15)라고 불려졌다. 헬라적 사고와 관습에 익숙했다. 예수는 그 지역에 인접한 저지대 갈릴리의 나사렛, 나인, 가나, 가버나움에서 주로 활동했다. 예수는 헬라 문화를 큰 폭으로 수용하고 있던 그 지역의 언어적 문화적 특성에 영항을 받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예수께서 헬라어로 대화를 하거나 가르친 적이 있는가? 오늘날의 목사 후보생들은 신학교에 입학하여 배우는 헬라어는 코이네 헬라어(Koine Greek)이다. 애틱 헬라어(Attic Greek)는 고대 도시 아테네의 시인과 철학자들이 사용했다. 그리스의 대중은 코이네 헬라어를 사용했다. 코이네는 ‘보통’이라는 뜻이다. 예수는 코이네 헬라어를 알고 있었는가?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복음서의 아람어 표현들이 헬라어로 번역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되었음은 예수께서 헬라어를 어느 정도 사용했음을 전제로 한다. 과연 예수께서는 헬라어를 어느 정도로 구사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과 나눈 대화, 그의 활동 정황, 여러 가지 장면 등을 가지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막 15:2)와 대화를 했다. 빌라도는 헬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로마제국 관리였다. 먼 거리에 파송 받은 현인(賢人)이었다. 신중한 법정 대화인데도 성경은 통역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히브리어 라틴어 아람어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성경은 예수와 빌라도의 대화만이 아니라 유대 지도자들과 군중과 대화, 예수와 백부장과의 대화, 예수와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대화를 기록한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속도를 고려하면 통역자의 개입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께서 헬라어를 구사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본문은 헬라인 수로보니게 여인과 대화(막 7:25-30)이다. 예수님이 두로 지역으로 여행 할 때 악령의 괴롭힘을 받는 딸이 있는 헬라인 여자는 예수께 도움을 간청한다. 그는 이방인(막 7:26)이었다. 두로의 토착어는 셈족어이지만, 오랫동안 헬라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이 때도 통역자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이 본문에는 헬라어 개(κυνάριον, 강아지)가 등장한다.
예수님은 헬라어 사용 지역인 두로, 시돈, 데가볼리를 방문했다. 그의 방문은 관광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유다는 헬라어로 서신을 기록했다. 제자들의 헬라어 실력이 상당했음을 시사한다. 기원전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 팔레스타인 지식인들 사이에 헬라어가 상당히 사용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에는 헬라어 사용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예루살렘교회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사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교회 봉사자로 임명된 일곱 사람은 헬라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행 6:5). 그들 중 마지막 인물 니골라는 유대교에 가입한 헬라인 안디옥 사람이었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정경으로 수용하는 외경 제2 마카베오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이 헬라어로 쓴 작품이다. 유디스는 아람어로 기록되었지만 헬라어 단편 사본들도 많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 성경, 유대역사 전문가 요세프스의 글도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요세프스가 자신이 헬라어에 무지하다고 고백한 것은 겸허함의 수사적 표현으로 보인다. 고백과 대조적으로 그의 헬라어 수준은 고급이었다.
예수께서 헬라어로도 말을 하고 가르쳤음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근거들이 많다. 갈릴리 지역의 동전, 비문, 죽은 자의 묘지명 등에서 헬라어의 사용은 당시 갈릴리가 얼마나 헬라 문화권에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동전을 주조한 대표적인 통치자는 예수 시대 갈릴리를 다스린 헤롯 안티파스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들이 쓴 헬라 문헌들도 상당히 많다. 상거래 내역 문서, 영수증, 계약서, 결혼서약문, 기타 사상적 단편 문헌도 있다.
신약신학자 스탠리 포터 박사는 “예수께서 헬라어로 가르친 적이 있는가?”(Stanley Porter, “Did Jesus Ever Teach In Greek?” Tyndale Bulletin 44, no. 1 [1993]: 199-235)라는 논문에서 이러한 요점들을 열거, 설명하고 기타 여러 가지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위 질문에 “예”라고 답하다. 포터는 코이네 헬라어 전문가이다. 미국인이다. 아래와 같은 근거들을 덧붙인다.
가버나움의 세금 징수원 마태(마 9:9; 눅 5:27-28) 또는 레위 (마 2:13-14)는 헤롯 안티파스에게 속한 공무원이다. 예수의 제자 시몬 베드로, 안드레, 제임스, 요한 등은 갈릴리 바다에서 일을 했던 어부들이었다. 잡은 생선을 헬라어 사용자들에게 판매했을 것이다. 시장 수준의 헬라어를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갈릴리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헬라어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담은 서사적, 문학적 증거들이 있다. 헬라어는 디아스포라에서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도 사용되었다. 많은 종교 문헌들을 포함하여 분명히 유태인 문학에도 나타난다. 이것은 예수 시대에,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 상당수가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헬라어로 쓴 파피루스 문서 파편들이 많다. 유대사막 파피루스에는 상업 거래, 신탁 메모, 결혼 계약, 철학적-문학적 텍스트 조각 등 많은 인공물이 있다. 유대인 청중들을 위해 팔레스타인에서 헬라어로 작곡이 이루어 진 증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서는 3장 5절에서 헬라어 이름을 사용하여 세 개의 악기 곧 수금, 거문고의 일종인 3현금, 피리를 언급한다.
갈릴리 지역 비문에는 헬라어가 널리 사용되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텍스트들이 많다. 회당이 기원 2세기에 번성하여 건축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을 무렵에 만들어진 묘비명에는 헬라어가 나타난다. 예루살렘에도 나타난다. 알려진 바로는 지중해 지역 고대 유대인 비문이나 묘지명 중 68퍼센트가 헬라어로 새겨져 있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헬라어로 말을 하고 가르치기도 했는가? 구스타프 달만이 밝힌대로 예수와 제자들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히브리어를 조금 알았고, 헬라어로 약간 말을 할 수 있었고, 아람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가르쳤을 것이라고 한 말이 설득력이 있다. 포터는 위 여러 가지 근거들을 토대로 예수께서 초보적인 헬라어로 말을 하고 가르치실 수 있었다고 하는 주장을 지지한다. 고고학적 증거들과 함께 고대 팔레스타인에서의 헬라어 사용에 관한 알려진 증거, 갈릴리 북부의 국제적 헬라문화의 특성, 동전, 파피루스, 문학 작가, 비문 및 장례 텍스트를 포함한 서사 및 문학적 증거들을 제시한다. 이 증거들은 복음서들의 기록과 일치한다고 한다.
우리의 논의는 예수께서 헬라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가르치기도 한 것이 확실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21세기 신학도들이 배우는 코이네 헬라어 초보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임 없다. 예수는 히브리어 성경을 해독했고, 헬라어로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었고, 아람어로 가르쳤다. 순회 사역에서 여러 차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헬라어 방언으로 가르쳤을 것이 분명하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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