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동성애는 하나님의 형상됨을 가로막는가?
하나님 형상’이란 말을 ‘있는 모습 그대로’ 혹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덕담처럼 쓰는데 잘 알고 써야 한다. 호모, ‘호모’란 말은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게이, 레즈비언 등 모든 유형의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였으나, 요즘은 그런 식으로 잘 쓰지 않는다. 남성 동성애자는 ‘게이’, 여성 동성애자는 ‘레즈비언’이라 부른다.
이것은 서유럽에서 게이나 레즈비언 당사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유서 깊은 행위로 특화하기 위해 들여온 조어들이다.
‘게이’(gay)는 ‘쾌활하고 명랑한’이란 뜻의 프렌치 말 ‘gai’에서 들여왔고, 여성 동성애자들은 그리스 동부 한 섬의 지명인 레스보스(Λέσβος)에서 자신들을 지칭하는 ‘레즈비언(lesbian)’이란 말을 차용했다. 고대 레스보스는 여성 동성애가 많았던 지역이다. 자신들의 행위를 유서 깊은 역사로 규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양자의 행위를 일컬어 여전히 호모섹슈얼(Homosexual)이라 통칭하고 있으며 의미상 그른 것도 아니다. 본래 호모라는 말은 라틴어 Homin-을 어간으로 하는 ‘Homo’, ‘Hominis’, ‘Homini’… 변화 중에서 주격 단수로서의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호모 에렉투스(직립하는 인간), 호모 하빌리스(도구 쓰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사회적인 인간), 호모 심볼리쿠스(상징적 인간) 등의 학명들이 여기서 나왔다. 여기서의 호모는 남자인가 여자인가.(성의 구별 없이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호모섹스에서의 ‘호모’란 말은 ‘비슷한’이란 뜻의 형용사 호모이오스(ὅμοιος)에서 유래한 말다. 이 어근의 말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그 ‘모양대로 만드셨다(ὁμοίωσις)’는 대목에도 나온다(창 1:26).
한편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 할 때의 호모(Homo, 오모)는 라틴어 우무스(humus, 후무스)에서 파생된 말이다. 영어의 어근 30%를 차지하는 프랑스어 옴므(homme)의 유래이기도 하다. 이 호/오모 또는 옴므의 유래인 후/우무스는 ‘땅’을 말한다.
히브리어로 ‘아담’(אדם)인 사람이 ‘적토’(붉은 흙)를 의미하는 ‘아다마’(אדמה)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오모(사람)가 우무스(땅)에서 유래하였다는 이들 어휘의 이행에 나타난 유사는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땅의 토양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을 표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기질에서 유기질로의 이행에 덧붙여 이 ‘오모(Homo, 사람)’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형상에서 비롯된 ‘호모(ὅμοιος/ 닮은)’라는 통찰은 우리 인간 본성의 또 다른 단면인 정신성을 표지한다고 하겠다.
이 때의 ‘닮은’(호모)이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상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건을 닮음으로써 그 ‘닮은 형상’으로의 지향성을 띠는 셈이다. 인간은 경건해지고 싶어한다. 그 유래를 이것 말고는 밝힐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타고나는 일종의 정신 기제라 할 수 있는 이 경건의 입자가 인간의 욕망으로 전용될 수 있는데 그것이 이른바 Homo-sexual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오모’인 자신과 닮은(호모) 신을 지향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과 ‘닮은’ 오모를 지향함으로 그 본성을 상실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오모’를 성적으로 뒤집는 대신 이념적으로 뒤집는 포이에르바하 같은 경우도 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창조하였다”(Ludwig Andreas von Feuerbach)
경건함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방식으로써, 그것은 오로지 (성적으로) 범해 취하겠다는 욕망을 추인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남성적이면서도, 그 형상에 대한 폭력적 침범 의식을 내재하고 또 집약한다.
이를테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 천사들을 ‘상관하겠다’며 내놓으라며 달려들었다는 이야기는 결코 우연하게 설정된 네러티브가 아니었던 셈이다. 하나님을 범해 그 형상을 빼앗겠다는 모종의 기제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기제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고로 인간이 모방(μίμησις)을 통해 쾌(감)를 느끼는 존재임을 통찰했다. 하나님을 자기와 닮게 만듦으로 흡족해하기도 하지만 자기와 비슷한 생물을 모방할 때 쾌감에 빠지는 것으로 동성애도 이런 ‘유사(호모오시스)’이다. 그래서 동성애는 본질상 우상숭배의 총화인 것이다. (로마서 첫 장에 다룬 이유이다.)
사람은 붉기 때문에 적토에서 나왔다고 표지한 히브리어는 단순 명료하다. 그 명사에는 중성형이 없다. 히브리어는 ‘하나님 형상’을 이렇게 교시한다.
첫 사람을 창조한 하나님은 남성이었다. 하나님(אֱלֹהִ֤ים)이라는 명사는 중성이 아닌 남성이기 때문이다. 첫 사람도 역시 남자(הָֽאָדָם֙)로 만들어졌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라는 말은 ‘쩨렘’, 즉 ‘남성의 이미지대로(בְּצַלְמ֔וֹ)’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명확하게 거기서 분리, 파생된 것이다. 이는 가부장제이거나 여성 비하가 아니라, 그것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 명확한 성을 구별하여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남성성의) 하나님이 (남성인) 자신의 형상 곧 (남성성인)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성인)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성인) 남자와 (여성인) 여자를 창조하셨다(창세기 1:26).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 외의 성, 즉 제3의 성이란 없는 것이며 그로써 ‘아담(אדם, man)’이 되지도 못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문법적 정의 외에 생물학적, 사회적, 심리학적, 법의학적, 개정된 현대적 정의는 다 틀린 것이다.
보충:
사람이란 뜻을 지닌 히브리어 아담(אדם)은 흙/적토라는 뜻을 가진 아마다(אדמה)에서 비롯되었다. 라틴어로 인간을 뜻하는 Homo(오모) 역시 땅이라는 뜻을 가진 우무스(humus)에서 비롯되었다. 둘이서 짰는지는 모르겠다. 언어가 지닌 기호와 상징이다.
이 둘의 유사는 유기질의 기원에 얽힌 세계관을 반영할 것이다. 반면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신의 형상과 그 모양대로 만들었다(ὁμοίωσις 호모오시스) 라는 세계관은 그 정신의 지향성을 반영한다(창1:26). 이때 쓰인 Homo(호모)는 앞서 오모(Human)와는 다른 말이다. 하지만 유기질로서 다르다는 것이지, 닮은꼴을 취하고 싶어 하는 기제로서는 아담에게나 오모에게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고나는 것이다.
왜? 여기서 도덕적 기제가 발생하는 까닭이다. 인간은 착해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또는 언제나 착해지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다. 래서 이 착해지고 싶어하는 신성 기제를 포식 행위로 변용해 쓰는 것이다.
이것을 오늘날에 우리가 동성애 호모섹슈알리티(Homosexuality라 불렀던 것이다. 이것은 해석이 아니라 문자이다. 마치 우무스(땅)에 오모(인간)가 들러붙은 것과도 같은 기제적 소자인 것이다.
시대가 바뀌니까 차별법의 저촉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법이 이제 명시화 되어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 법의학, 그 모든 분과가 변해 넘어갈지는 모르겠으나 문자는 변하지 않는다. 이 문자를 우리가 성경이라 부르며 성경은 건드리지 말고 니들 하고 싶은 걸 하라.
이영진|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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