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베이커 사전(목사와 돈, 섹스, 명예, 권력)
미국에서, 70- 80년대는 ‘복음주의’(Evangelical), ‘번영의 신학‘, ’TV 부흥전도‘ 등의 최고 번성 시대 및 확장 시대였다.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에 TV는 가장 영향력이 큰 매체였다. 헐리웃 스타보다 더 인기를 누리고 명성을 떨치는 유명 목사들이 등장한 시대였다.
‘Moral Majority'의 제리 파월 목사, ’700 Club'의 팻 로벗슨 목사(그는 상원의원 아들이며, 법과대학 출신), ‘Hour of Power’의 로벗 슐러 목사, 삼박자 축복의 오랄 로벗 목사, Family Worship Center의 지미 스와가트 목사, 그리고 PTL의 짐 베이커 목사등, 등, 기라성같은 유명 목사들이 TV 화면에서 온통 활개치고 다녔다. 이들은 미국 정치 및 대통령선거에도 막강한 영향을 끼쳤으며 각정당 및 정치인들은 이들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쁘기도 했다.
1. 짐 베이커 목사의 등장
이 시기에 좀 특이하게 출세(?)하고, 특이하게 부를 쌓고, 특이하게 명성을 누리고, 특이하게 하나의 왕국을 건설하다가, 그리고 특이하게 망(亡)한,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한것같은,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간, 한 유명한 목사가 있었다. 바로 짐 베이커(본명: James Orson Bakker) 목사다.
그 시절, 짐 베이커와 그의 아내, ‘마스카라’ 눈물의 여왕, 테이미 베이커(Tammy F. Bakker) 부부는 ‘스타‘였다. 그들이 무대 위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모두 환호하고 열광했다. 짐 베이커의 몸짓 하나 하나에 사람들은 울고 웃었다. 그의 특징은 무대위를 뛰어다니며 그는 외쳤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지식이 많고, 교양 높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미쉬간 시골 촌뜨기 짐 베이커를 불러 세워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헌금을 강조할때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정말 사랑하십니다(God loves you. He really does.)" 라고 호소할때 사람들은 아낌없이 10불, 20불, 100불 등 헌금을 기쁘게 베이커에게 보내주었다. 그가 세운 PTL(Praise The Lord) 재단 선교방송은 약 60만 명의 후원자가 있었다. 총 연간 헌금액은 무려 1억 2천만 불이 넘었다.
짐 베이커 부부는 유명해지자, 일반 방송, 잡지는 물론, 당시 가장 유명했던 ‘토크쑈’ 자니 카슨 쇼 같은 유명한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짐 베이커 부부는 당시 가장 효과적으로 TV를 활용하는데 천재적 능력을 나타냈던, 뛰어난 ‘TV 부흥사’(televangelist)였다.
2. 짐 베이커의 성장
짐 베이커는 본래 근본주의적 오순절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그는 한 성경 대학(Bible College)에 입학했다. 베이커는 학교 재학중 당시 유명한 ‘번영의 복음’ 부흥사인 오랄 로벗 목사의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큰 깨달음을 받았다. 그래서 학교를 채 졸업하지도 않고(이것이 짐 베이커의 대학 및 신학공부의 전부였음.), 그의 특이한 목회에 뛰어 들었다. 1964년에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순복음 계통)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사가 된 그는, 당시 유명한 패트 로버트슨 목사의 CBN (Christian Broadcating Network) 방송국에 들어 갔다. 현재는 규모가 큰 방송국이지만 당시에 CBN은 아주 작았었다. 그러나 이 작은 방송국에서 짐 베이커 부부는 ‘커’ 가기 시작했다. 패트 로벗슨의 신임을 얻은 베이커는, 로벗슨에게 ‘자니 카슨 쇼’와 같은 심야대담프로의 신설을 제안했다. 바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유명한 "700 클럽"의 탄생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짐 베이커는 전국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어느날 당시 치유 사역 및 ‘넘어뜨리는’ 기적(?)을 행하던 유명한 캐더린 쿨만 여사가 있었는데 그를 "700 클럽"에 초대했었다. 짐 베이커는 그후 TV를 통해 캐더린 쿨만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짐 베이커의 TV프로그램을 통해 난치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연히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 열광적인 추종자들로부터 선물, 한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베이커 부부는 1972년 로벗슨 목사와 결별하고 스스로의 길에 들어선다.
팻 로벗슨의 CBN과 결별하고 나온 베이커는 노쓰 캐롤라이나로 옮겨, 새로운방송, ‘PTL방송국’을 설립하였다. 이 방송을 통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PTL'(주를 찬양하라,Praise the Lord) 프로가 날개를 달았다. 이후 PTL은 성장을 계속해 나갔다. 각지역에 ‘PTL'지부들이 생겨났다. 내가 S.M.U.에서 공부할 때, 그 학교내에까지 ’PTL' 모임이 매주 정기적으로 모이는 것을 보았다. 미국 전체에 500여 개에 달하는 PTL 방송 지국이 생기고, 케이블 방송 및 인공위성을 통한 방송도 시작했다. 한창 시절 PTL 시청자는 무려 135만명이나 되었었다.
3. 끝없는 욕망과 교만의 정점에서의 처참한 추락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76년에는 참된 크리스쳔들을 위한 위락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른바 ‘헤리티지 USA’를 세웠다. 이것은 디즈니랜드를 본 따서, 호텔과 각종 놀이시설 등이 포함된 대규모 ‘호화’ 위락단지였다. 그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왕국’의 제왕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결국 그의 몰락을 가져오는 단초가 될줄은 그때 몰랐다. 1985년에 ‘헤리티지 US’에는 2,500명이 고용되어 있었고, 2,300 에이커의 땅에 미국 동부 최고의 시설들이 들어섰다.
짐 베이커의 사유재산도 노골적으로 거대해저 갔다. 미친 듯이 재산을 불려갔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130만 불 상당의 저택, 캘리포니아 팜 스프링에 60만불의 개인저택 등 여러채의 부동산을 구입했다. 호화유람선, 롤스로이스 차, 벤츠, 마츠다 스포츠 카등을 비롯한 각종 고급 승용차도 구입했다. 그런데 이 모든 돈은 다 베이커 개인이 아니라 PTL 재단이 지불했다. 이런 잘못된 짓이 오래 갈수는 없었다. 1988년에, 마침내 짐 베이커 부부는 ‘망’(亡)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명성을 얻은자는 반드시 ‘교만’해지게 되고, 그 교만의 정점에서는 대체로 ‘섹스’ 스캔들과 돈문제가 터지게 된다. 그래서 결국 ‘망’하는 길로 추락하게 되는 것이 상례이다.
베이커의 섹스 스캔들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뉴욕에서 짐 베이커를 찾아온 21세의 아리따운 제시카 한이라는 처녀를 성폭행(강간)한것이었다. 동성애 사건도 터졌다.
사건을 무마하려고 베이커는 제시카에게 26만 5천불의 돈을 지불했다. 한데 이 지불금 역시 PTL 재단의 돈으로 지출되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한번 폭로의 봇불이 터지자, 언론을 통한 폭로는 홍수와 폭풍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횡령, 부패 내용이 폭로로 터져 나왔다. 베이커 부부는 결국 ‘천사’에서 ‘악마’로 곤두박칠 치는 신세가 되었다.
드디어 1989년 10월 24일, 짐 베이커는 공금 1억 5천 8백만불 횡령 혐의, 사기 등 24건의 죄목으로 징역 45년 및 벌금형을 선고받고 감옥으로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다.
짐베이커 사건은 미국민들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기독교계에 치유될 수 없는 상 처를 남겼으며, 이후 교회와 성직자의 사회적 신뢰지수를 크게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
| |
|
베이커는 자신의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8년 형으로 감형 받았다. 감옥에서 베이커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 앞에 자기의 죄와 잘못을 정말로 회개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의 ‘번영의 복음’ 목회가 주님의 뜻과는 반대되는것임을 깨달았으며, 자기가 그동안 아주 ‘잘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1994년 짐 베이커는 가석방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이커는 다시 그 스타일의 미니스트리의 재기를 꾀하고 있다. 그는 "내가 잘못했다(I was wrong)"라는 책을 써내기도 하고, TV 에 출연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회개를 강조하며 사람들의 용서 및 성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2003년에 미조리주의 브랜슨(Branson)시에서, 스튜디오를 열고, ‘Jim Bakker Show'를 시작했다. 2008년에는 브랜슨 가까이에 있는 ’Blue Eye'라는곳으로 이전, 약 600에이커의 큰 대지를 개발해서, 새로운 TV 방송 스튜디오, ‘모닝사이드’를 개설했다. 그가 이런 재기를 할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많은 후원자들이 그를 성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짐 베이커의 재기 시도에 대해 경계의 눈으로 보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달라스의 비영리 단체 ‘트리니티 재단’의 올 앤떠니 총재는 “짐베이커같은 자에게 다시 헌금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이해되지 않는다. 제발 사람들이 더 이상 그의 낙시에 낚이지 말기를 바란다.”
일부 그의 ‘눈먼’ 후원자들을 제외하고, 사람들은 더 이상 짐 베이커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 그가 옛날의 화려하던 시대를 그리워하며 다시 재기의 꿈을 꾸며 발버둥처도, 아마도 다시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의 나이 이미 69세다.
그의 신학적 토대와 지향하는 목회의 목표가 잘못되기는 했어도, 짐베이커는 한때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영감을 불러 일으켰던 TV 부흥목사였다. 나도 한때는 그의 TV설교를 흥미있게 시청하기도 했었다.
그 짐베이커 목사를 곤두박질치게 한 요소는 무엇이었던가? 4가지다. (1)욕심, (2)명성, (3) 돈, (4) 섹스 스캔들이다. 이 네가지는 목사를 꺼꾸러트리는 사탄의 무기다. 베이커 목사뿐 아니라. 당시 그와 어깨를 겨루었던 Jimmy Swaggart 목사 등, 명성을 떨치던 많은 목사들이 이 네가지 올무에 걸려 쓰러졌다.
한국의 교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유명한 목사들이 이 네가지 ‘걸림돌’에 걸려 넘어졌던가? 세계 최대교회의 목회자라고 자랑하는 한 유명목사도 결국 이 네가지에 걸려, 명예가 땅에 추락하게 되고, 유죄 판결을 받고, 사람들에게서 지탄을 받는 신세가 되고 있다.
성경용어인 ‘걸림돌’의 하랍어 원어는 ‘skandalizo'(스칸달리조)이다. 영어의 ‘scandal'이 여기에서 왔다. 목사들의 앞길에 보이지 않게 놓여있는 이런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며 경계심을 풀지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내몸을 처서 복종케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후에 도리어 자기가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하노라” (고전 9:27)
당당뉴스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