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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 과연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세계교회협의회(WCC)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매특허 낸 듯이 사용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회적 활동, 윤리적 실천, 이상사회 건설 등 비종말론적이고 세상적인 무엇으로 이해한다. 지난 해 부산에서 선포된 WCC의 새로운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2012)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상적 세상 만들기 활동을 똑 같은 것으로 여긴다. 한국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하나님 나라 개념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듯 하다.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죽음의 독이 한국교회에 깊숙이 침투했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설교자들의 메시지, 신학자들의 대화, 교회일치운동 선언문, 기독언론 보도문 등에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하는 최대의 가치이다. 그러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마다 이해가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
아래의 글은 필자가 신학 초년생 때 쓴 것이다. 당시의 한국교회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천당’ 으로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미래에 도래할 신국으로 인식하는 것이 지배적이엇다. 이 글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체적을 조망하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enjoy)하는” 삶(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 제1)의 중요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추구하는 것과 다른 개념의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면서도, 현재성을 강조한다.
(원제: 천국이란 무엇인가?)
기독교는 천국(하나님의 나라) 운동이다. 천국은 기독신자의 소망이며 현실이다. 성경 전체에 깔려있는 주제이다. 특히 신약성경에 나타난 우리 주님의 사역과 메시지의 중심 주제는 천국이었다. 이 천국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은 기독교 안에서 늘 있어왔다. 근래에 서구신학계는 이 문제를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시키고 있다.
우리 한국 기독인들은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죽은 다음에 가는 ‘저 세상’으로 이해해 버리는 데 커다란 문제가 있다. 한국 기독교는 수세기 동안 토착화된 샤머니즘과 불교, 유교, 도교 등 이방 종교 영향권 안에서 성장하면서, 특히 윤회사상을 가진 불교의 열반, 극락 관념 등의 영향으로, 천국을 마치 ‘저 세상’으로, 그것도 행위에 대한 인과응보와 관계되는 다음 세상으로만 인식하여 다른 종교가 말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이 이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신비적 경향이 강한 교회들과 세대주의자들은 지나친 종말론을 앞세워 타계주의 또는 염세주의적 신앙에 빠진다. 현실을 저주, 무시하고, 오직 내세 또는 ‘저 천국’만 바라는 나머지 현실에 주어진 책임과 축복을 도외시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글은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중심으로, 성경이 천국을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1. 천국 이해에 대한 역사적 고찰
천국(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를 더 잘 하기 위해서는 천국관의 역사적 고찰이 매우 필요하나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어거스틴은 그의 신국에서 하나님의 나라 개념을 잘 표현했으나 완전하다고 볼 수 없다. 슈바이처, 리츨 등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천국의 미래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너무 현재성만을 강조한다. 천국을 사회적, 윤리적, 비종말론적인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비롯된 그릇된 종파들은 지상천국의 실현을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신학자 칼 바르트는 천국을 비역사적, 비시간적, 찰나적인 것으로 본다. 도드는 실현된 종말론에 기초를 두고 해석한다. 오스카 쿨만은 변증법적 시간의 긴장관계로 설명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성경에 충실하지 않은 점이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으면서도 이 보다는 인간의 사변적 철학적 사상을 딛고 서서 그 위에 하나님 말씀을 끌어 들인다. 여기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태도는 비평적 취급이 빈약한 상태이고, 종말론적 사상이 농후하여 천국(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소홀히 취급하고 있는 형편이다.
2.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신국, Kingdom of God)라는 용어는 마태복음에 4번, 마가복음에 4번, 누가복음에 32번, 요한복음에 2번, 사도행전에 6번, 바울서신에 8번, 요한계시록에 1번 나타난다. 하늘나라(천국, Kingdom of Heaven)는 마태복음에 33번, 요한복음에 1번, 히브리서에 11번 나타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이란 말을 직접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습관을 따라, 마태는 하늘나라(천국)라고 하였다. 이 두 표현은 결국 같다. 그리스도의 나라도 동일한 의미이다.
천국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면, 우선 ‘나라’(Kingdom)의 의미를 살펴봐야 하겠다. 나라는 본래 한 왕이 그 권위를 시행하는 영역(a realm)이다. 요즈음의 영연방(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이 그 예이다. 그러므로 “왕으로 원수를 삼은 국가 또는 왕국 또는 지배(dominion),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는 첫째로 왕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백성과 신하 각료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의를 가지고는 성경이 말하는 ‘천국’의 올바른 개념에 도달할 수 없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나라에 대한 일차적 의미는 왕에 의하여 실행되는 신분, 권위, 주권(sovereignty), 그 주권이 권위를 행사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그 영역에 속한 백성이나 각료는 이차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시편 103:19의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한다. 시편 145:11의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능력(Power)이다. 다니엘 2:37, 5:26은 왕의 통치를 의미한다. 마태복음 10:15, 누가복음 16:11, 12의 ‘하나님 나라’는 그의 왕직, 그의 통치, 그의 권위를 말한다. 마태복음 6:33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그의 지배를 구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시되어질 영역이 없는 지배는 없다. 성경은 천국을 현재 들어갈 영역으로 묘사한다. 마가복음 9:47과 같은 구절은 미래의 천국을 말한다. 이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만 경험할 수 있는 영생과 동일한 측면의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막 10:23, 14:25, 마 7:21).
이상의 설명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a. 성경의 어떤 구절은 천국을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적 지배(reign, dominion)을 의미한다.
b. 성경의 어떤 구절은 하나님의 복의 지배를 체험하려고 지금 들어갈 수 있는 영역(realm)을 의미한다.
c. 성경의 어떤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 임하는 미래의 한 영역(a future realm)을 의미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통치나 지배 영역의 상태는 어떠한가? 다시 말하면 천국을 무엇인가? 성경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간결한 정의를 내리고 있지 않다. 다만 그 나라에 들어오라는 초청과 요구만 있을 뿐이다. 다음과 같이 집약하여 생각할 수 있다.
a. 한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은 그 나라의 법률을 받아들이고 지켜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b. 그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각자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c. 그 나라에 대한 이 개념은 어떻게 그 나라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가를 설명해 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사람은 누구나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의 완성은 아직도 미래에 속하며 여전히 인간의 기도와 인간의 목표이다. 천국은 인간의 노력으로 임하게 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무엇이 아니다.
d. 천국은 예수님과 더불어 임했고 또 와야 했다. 그가 오시기 전의 시간과 오신 이후의 시간은 달랐다. 예수님은 그의 능력을 통해 천국이 임했음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다. 천국은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뤄진 상태 속에 실현될 것이다(마 6:10).
3. 미래의 천국
천국은 하나님의 뜻의 실현과 동반되는 축복을 누리는 권계(權界) 또는 영역이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현세에서 완성된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신자의 부활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와 궁극적 실현은 역사 건너편에 있는 새롭고 바른 질서가 존재하는 곳이다(계 20, 21, 22). 그곳은 “이 세상”과는 다른 “오는 세상”(마 12:32)이다. 현세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세계이다(갈 1:4, 엡 2:1-2, 갈 5:19-27, 고후 4:3-4).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나타나고 구원의 완성과 복의 전개는 내세에 속한다.
그러면 영생이 도래할 세상에 속하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 비로소 천국이 시작된다면 우리는 그때까지 구원도 영생도 얻을 수 없단 말인가?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미래의 천국은 근본적으로 역사의 건너편에 장소성을 가지고 임할 하나님의 영원하고 완전한 통치이 영역이다.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곳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벌써 임했으며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때에 구원과 영생도 이미 주어졌음을 가르친다(엡 2: 1-9).
4. 도래한 천국
완전하고 영원한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장차 영광 중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 구절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에 올 뿐만 아니라 현재에 와 있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체험할 수 있고 그 나라의 생활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6:5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라고 한다. 현세에서 우리가 내세의 능력을 맛본다고 하였다. 맛보는 것은 약속보다 나으며, 현실이며, 경험이다.
그리스도는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하려고 오셨다(갈 1:4). 로마서 12:2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한다. 이 악한 세대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이 세대를 본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내적 변화를 체험해야 가능하다. 이는 악한 세대로 들어오는 오고 있는 세대의 능력의 결과이며, 능력 그 자체이다. 이 두 가지 세대가 겹쳐 함께 존재함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 구원과 교회를 이해할 수 있는 근본 도리이다.
이 세대는 오는 세대를 포함하고 있다. 두 줄이 겹쳐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이 악한 세대 가운데서도 우리는 천국의 현재적 측면을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신학자 헤르만 리덜보스(H. Ridderbos)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a.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예수님의 이 말씀 가운데 나오는 “때가 찼다”는 말은 그 나라가 완성 단계에 들어간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 세례요한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했으나 주님은 “때가 찼다”고 하였다(눅 4:18,19, 사 61장 참고).
b.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노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이 말씀은 천국,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 곧 현재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요한은 지금 다가오는 미래적 측면의 천국 입구에 서서 우리를 옛 시대에서 새 시대로 인도하고 있다. 요한은 사치와 안위를 거부하고 금욕적 생활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혼인집을 찾아갔고,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었다. 그의 반대자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비난할 정도로 먹고 마셨다. 금식에 대한 태도도 유태인과 같지 않았다(마 9:14-17). 예수님과 함께 새 시대가 도래했다.
c.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 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 16:16). 이 말씀에 따르면, 천국은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임했으며(과거), 오늘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임하고 있다(현재).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의 활동들에서 천국,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음을 볼 수 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눅 11:21). 여기의 “임하였다”는 완료형이다. 사탄의 통치가 깨어지는 위대한 순간이 도래함과 동시에 천국 도래의 시작을 말하고 있다(눅 4:13, 마 12:43-45, 8:29, 막 1:24, 5:7, 눅 4:34, 8:28-31, 10:18, 19 등 참조하라).
그리스도의 이적들은 그 나라의 권세와 그 나라의 현재적 임함을 증거한다(마 4:23, 11:12, 15, 13:6). 특히 죽은 자를 살리신 이적은 그 나라의 구원이 최고 절정에 달했음을 말해준다.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 메시지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것은 미래에 도래할 천국 뿐 아니라 더욱 이미 임하여 존재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와 산상보훈의 교훈들은 천국과 천국 백성들의 새로운 지침이다. 이것들을 미래적인 무엇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 비유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크게 강조한다.
천국,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우리가 미래의 어느 날 완전히 주어질 구원을 현재에 이미 소유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을 받은 사람들이 기뻐해야 할 선물이다(눅 12:32, 마 21:43, 막 10:12, 마 25:34). 기독신자의 구원은 미래에 이뤄질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라고 함은 기독인이 현재 구원을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요 5:24)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신학자 박윤선 교수는 위 성경본문을 “신자가 현세에서 부터 영생을 소유했다는 뜻이다”라고 주석한다. 요한복음 5:24의 “사망에서 생으로 옮겼느니라”의 “옮겼다”는 3인칭 단수 완료형으로 기술되어 있다. 옮겨져서 지금 영생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표현되었다. 이 점에 유의하자.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라는 가르침의 “너희 안에 있다”(in the midst of you, among you)는, 무리들 가운데 있는 예수님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일 수 있다. 무리들 가운데 있는 예수님 자신의 오심은 곧 천국, 하나님 나라의 도래(coming)라는 뜻이다.
맺음말
성경이 말하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신자가 죽어서 가는 ‘저 세상’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천국은 임했고,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임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 심판과 함께 완전하고 영원한 천국은 임할 것이다. 천국은 3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근본적으로 역사의 저쪽에 있으며 장소성이 있는 미래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현세에서 그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맛보고 체험하며 승리하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에게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더욱 중요하다.
현재의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오고 있는 세대의 능력이 이 악한 세대에 들어와 겹쳐져 있는 상태이다. 천국은 예수님의 임재와 동시에 시작되었다. 지금도 예수가 구원자라고 하는 복음을 믿는 자는 즉시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옮겨진다. 그 백성이 되어 버린다. 천국은 임하였다. 그러나 그 완성은 미래에 속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창조하고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서 역사하며 확장된다. (이 때의 ‘교회’는 가시적인 교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천국은 이 세상이 보기에는 매우 미미하고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그 나라는 강력한 권력으로 임하지 않는다. 복음전도와 자기희생과 봉사를 통해 임한다.
천국은 임했고, 임하고 있고, 임할 것이다. 지금 현재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감사함으로 주님을 위하여 봉사한다. 날마다 기쁨과 희망을 가지며 승리생활을 한다. 타계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저 세상’만을 추구하는 생활과 사고방식을 버린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구원과 하나님의 복을 누린다. 주님과 매일 동행하는 삶을 산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를 올린다. 장래의 희망과 함께 ‘성도의 생애와 기쁨’을 더 좋아한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글은 다음의 책들에서 도움을 얻었음을 밝혀둔다.
Herman Ridderbos, Coming of the Kingdom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1962).
Eldon G. Ladd, The Gospel of the Kingdom (Grand Rapids: Eerdmans, 1959).
박윤선, <성경주석: 공관복음> (부산: 영음사, 1960).
위 원제: "천국이란 무엇인가?" 최덕성 <高神大學報?> 29 (1977): 37-43.
(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글의 PDF 자료를 찾아내어 전산화한 강호욱 형제께 감사를 표한다).
신학의 기본이자 신앙의 바탕이요 신자의 삶의 목적인 천국, 내세에 대한 소망을 현재적 임재-하나님의 통치 이념으로 설명해주시니 은혜가 됩니다. 한데, WCC 뿐 아니라 보수진영의 신학마저도 무천년주의가 대세였으나 이제 후천년설적 무천년주의로 천국의 현재적 임재에 대한 논리로 인해, 사회주의 복음화로 이어지는 위태로운 지경을 보기도 합니다. 윤리와 도덕적 천국 실현의 논증들은 윤리신학자 니버(Niebuhr) 경우처럼 오늘 한국의 도덕적 타락에 혁신과 반성을 촉구하려는 의도에서 강조되는 기독교윤리 운동가(?)들로 인해, 천국백성이 궁구하고 은혜로 체득할 천국형(?) 사유와 감동에 매말라 가는 것 같습니다. 들어서 행복할 천국론이 모든 이- 혹 불신자들에게도 많이 전달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