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교회의 국왕예배
세계 최장수 재위 기록을 지닌 태국 국왕이 2016년 10월 13일에 서거했다. 향년 88세. 푸미폰 아둔야뎃. 1946년 6월 9일부터 70년 126일 간 왕위를 유지해 왔다. 국왕은 입헌군주제 국가의 수장임에도 태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를 극복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고, 국민의 진심어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태국 총리는 정부가 내년 연말까지, 1년 넘게 서거한 국왕을 위한 애도 기간을 가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태국 관광성은 관광객들에게 왕실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요구하고, 국민들에게는 검은 색이나 회색 옷을 입고, 즐거움을 절제하라고 했다. 태국은 불교 국가이다. 이 점을 고려해도, 태국정부의 조치는 서거한 국왕이 어느 정도로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가를 말해준다. 영국 국왕에 견주어 볼 때, 태국 국왕은 국가의 수장다운 실질적인 정치력을 발휘했다. 인권을 탄압하고 인간 생명을 유린하는 방법으로 통치권을 세습하는 우리의 가까운 어느 나라의 왕조와 통치자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태국 국왕이 무려 70여년의 긴 세월 동안 권력을 쥘 수 있었던 것은 '힘'이 아닌 '민심' 덕이었다고 한다. 국왕은 국민들을 진심으로 보살폈다. 정치적인 또는 과시적인 동기가 없지 않았을 테지만, 사랑과 존경을 받을 만했다. 최초로 첩이 없는 국왕으로 살았다. 생활은 검소했다. 교육, 의료, 노동 등 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적극적이었다. 정국이 불안할 때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사안들을 부드럽게 원만하게 해결했다. 태국은 쿠데타로 유명하다. 그 태국이 지금까지 조용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국왕 덕분이다.
서거한 국왕은 '태국의 아버지'로 평가를 받는다. 태국 정부는 국왕 생일인 12월 5일을 '아버지의 날'로 지정했다. 국왕은 소외된 농촌 지역에 발전소와 저수지 등을 건설 개발을 했다.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물소를 빌려주는 물소은행을 설립했다. 농업 기술 발전을 위해서 연구소를 만드는 등 3천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왕실 의료단으로 하여금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오지까지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돌보게 했다.
1973년, 태국 학생들이 민주화 시위를 하자 정권을 쥔 군부가 학생들을 무력으로 깔아뭉개려고 했다. 국왕은 궁전을 학생들에게 개방하여 피신하게 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친 서민 정책들을 펼쳤고, 봉사와 희생 자세로 살았다.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국왕
국왕을 잃은 태국은 온 나라가 침통한 분위기라고 한다. 상점가에는 국왕의 초상화가 걸리고, 국민들은 슬픔과 동시에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관광업이 크게 위축된 상태라고 한다. 태국은 돈 보다 국왕에 대한 존경을 선택했다.
독보적인 지도자가 사라진 공간에, 권력을 잡으려는 군부와 탁신 가문의 후계 권력 싸움이 커질 것이 예상되고 있다. 왕세자는 철없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해 온 탓으로 국민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국왕은 아들 한 명과 딸 두명을 남겼다. 아들은 문란한 사생활로 유명하다. 에이즈 감염자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C형 간염에 걸렸다는 말도 있다. 국왕인 아버지도 아들을 싫어할 정도였다고 한다. 국민이 대다수가 과연 왕세자가 아버지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지 의문스러워 한다고 한다.
태국에는 진보계 태국기독교단와 복음주의계 태국복음교단이 있다. 태국의 진보계 교단은 세계교회협의회(WCC)에 가담하며,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한다. 진보계 선교사들은 불교 사찰 부근에 교회당을 짓지 말고, 불교 신자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선교사가 할 일은 자국민 불교 신자들이 할 수 없는 영역 곧 돈으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짓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 등, 소위 '하나님의 선교'이다.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며, 그 위대한 분의 구원이 기독교에 제한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 에큐메니칼 신학을 표방한다. 이 주제는 최덕성, <에큐메니칼운동과 다원주의>(2004)가 상론한다.
태국의 진보계 개신교단 교회는 예배시간에 태국국왕을 향하여 일제말기의 동방요배와 같은 것을 한다고 한다. 교회의 국왕예배는 명백한 우상숭배이다. 태국 국왕이 신으로 숭앙될 정도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를 교회가 신을 섬기듯 예배시간에 예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고선재 목사(태국 현지 선교사)는 이 점을 지적하는 글을 페이스북 담벼락에 남겼다. 기독교 복음전도와 선교 차원에서 태국국왕의 서거 소식과 국민들의 정서를 소개하면서 그리고 기독인들이 이 때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지 소개하면서 교회의 국왕예배 곧 우상숭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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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짜끄리왕조 9대왕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서거했다. 국왕이 태국 백성들의 마음에 차지하는 공간은 생각보다 크다. 그러하기에 왕의 서거는 백성들의 마음 한 구석에 채울 수 없는 큰 빈 공간을 만들었다. 나라로서나 백성으로서나 큰 상실임엔 틀림없다.
필자 또한 개인적으로 그 왕을 한 ‘인간’으로서 존경해 왔다. 유일하게 첩이 없었던 왕이었다.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과 헌신이 지극했다. 기근이 심할 때 함께 금식하며 백성들과 고통을 나누었고 비가 오자 기뻐하며 식사를 시작했다는 감격적인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탁신이 불교를 국교로 정하는 법안을 제출했을 때 마지막 재가에서 왕이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기각했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할 마땅히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왕이었다. 한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태국의 대부분의 백성들에게 왕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다. 이것이 문제다. 백성들에게는 단순한 왕이 아니라 거의 신으로 섬겨진 왕이었다. 백성들의 마음에는 살아 있는 신이며 부처였다. 우리는 태국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삶 속에서 이 사실을 듣고 보아서 잘 안다. 모든 극장에서 영화상영 전에 상영되는 국왕 찬가 때는 관람자 모두가 일어서야 한다. 영상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로우앵글로 찍었고, 관람자가 우러러 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태국의 진보계 기독교단인 태국기독교단에 속한 교회는 예수님과 왕의 사진을 강단 좌우에 나란히 매달아 모시는 것도 모자라, 아버지의 날 곧 왕의 생일날에는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에 왕의 사진을 들고 교회에 들어기 먼저 절하는 예식을 치르고 나서 예배를 시작한다. 직접 목도한 바로는 단순한 존경의 표시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기에는 초라한 그리고 명백한 우상숭배다. 마치 일제시대 예배 전에 동방요배를 먼저 한 것처럼 말이다.
태국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왕가소식을 전한다. 대외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경제자립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하는 수천가지 로얄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불교와 왕권을 교묘히 엮어 연출하는, 신앙심을 이용한 세뇌 활동, 좋게 말해서 선전이다. 이것의 교육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것이 통하는 이유가 있다. 필자 개인의 생각이지만, 태국인에게 치명적으로 취약한 분야 곧 ‘세계역사교육의 부재’이다. 이러한 현상을 가져온 우물 안 개구리 정책 곧 우민정책이다.
그동안 태국의 백성들의 마음에 많은 공간을 차지했던 왕이 서거했으니, 그 만큼 백성들의 허무감도 심할 것이다. 맹목적인 신앙, 미신적인 신앙으로 - 절대로 돌아가지 않으실 것으로 믿었다는 어느 시민의 인터뷰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 숭앙받는 그 분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나는 기도한다. 태국 국민의 그 허무감이 영적인 갈망으로 바뀌기를 기도한다. 그 마음의 공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이 땅의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으며, 오직 구원자 예수만이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상실감이 오히려 선교의 기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선생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