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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2 10:16

신사임당의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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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등극

 

대한민국 최고액 지폐 오만 원 권을 접할 때마다 나는 과연 '신사임당'이 대한민국 최고액 지폐의 주인공으로 적합한 인물인가 하는 의문이 앞선다. 아들 하나 잘 키웠다는 이유로 한 나라 최고액 지폐의 주인공 등극'시키는 것은 석연치 않다.

 

신사임당이라고도 불리는 사임당 신 씨는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이며 정치가인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의 어머니이다. 신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申仁善)이라고 전해진다. 사임당 신 씨(師任堂 申 氏, 1504~1551)로 통한다. 사임당은 그녀가 사용하는 별채를 지칭하는 당호(堂號)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에 사임당 신 씨를 오만 원 권 지폐의 주인공으로 전격 도안했다. 한국은행은 신 씨가 자식을 잘 키웠으며, 그림, 서예, 시에 재주가 있었다는 것 등을 선발 까닭으로 꼽았다. 성리학에 소양이 있었으며, 십자수와 옷감 제작에 능했고, 문장, 고전, 역사에 대한 지식도 있었다고 했다. 당시 한국은행 책임자는 사임당 신 씨를 주인공으로 선정한 이유를 밝히면서대한민국의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효과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어느 백과사전의 기록은 사임당 신 씨가 이 씨 종친 가정의 며느리이며, 특히 위대한 영웅 이순신의 먼 친척 며느리라고 지적한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라는 기록을 빠뜨리지 않는다.

 

신 씨는 조선시대의 부덕(婦德)의 상징이었다. 현모양처 타입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자식을 잘 키워 명성 있는 유생 정치가로 입신하게 했다는 게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 남편 이원수는 주막 집 여성 권 씨와 불륜을 저질렀고 이로 말미암아 사임당 신 씨와 가정 불화를 겪었다고 알려진다.

 

우리의 의문은 신 씨가 대한민국 최고액 지폐의 주인공으로 도안될 정도로 국가 건립이나 민족사나 정신사 측면에서 독특하게 이바지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적, 교육적, 문화적 기여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신 씨는 조선시대의 평범한 가정주부, 아줌마이다. 신 씨는 양반 부잣집에서 금수저로 태어났다. 그 당시의 조선 양반가는 노비들을 노동과 인권을 착취한 집단이다. 조선 인구의 절반이 노비였던 시절이다. 양반의 주 경제 기반은 토지와 노예였다. 신 씨 가정도 여러 명의 노예, 노비들을 거느리고 살았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신 씨는 도망 간 노비를 잡아와 고문하고 윽박지르는 양반 가정의 금수저 딸로 '곱게' 자랐다. 신 씨에 대한 정보들은 이 사실을 기록하지 않는다. 역사를 성인열전(hagiography) 식으로 기록한다.

 

신 씨는 생전 험한 일 하지 않고 살았다.  그것은 노예들 덕분이었다. 사경을 넘어본 적도 없다. 온실 같은 양반 댁에서 태어나 곱게 곱게 자랐다. 나이가 들어 양반 댁에 시집을 갔고, 이이를 낳아 키웠다. 바람을 피는 남편과 갈등을 겪느라 다소 고생한 것으로 보인다.

 

신 씨는 위대한 여인이 아니다. 모범적인 여인도 아니다. 재산을 바쳐 가난한 자들의 허기를 메어주었다든지, 전염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들을 살렸다든지,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든지, 전선에서 장렬히 전사한 아들을 키운 어머니라는 등의 훈담을 가진 여인이 아니다. 조선의 평범한 아주머니이다. 아무리 보아도 신 씨는 우리나라 최고액 지폐의 주인공으로 등단 할 만큼 존경스런 인물이 아니다

 

냉철하게 물어보자. 도대체 그녀가 우리 민족사에 기여한 특별한 것이 무엇인가? 금 수저 집 딸로 태어나 금 수저 지니고 태어난 아들을 금 수저 지닌 자 답게 교육시킨 그것이 우리나라 국민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인가? 그 시대의 양반 댁 자녀나 부인은 그림서예시를 쓰는 능력, 약간의 유학 곧 성리학에 대한 소망, 십자수와 옷감 제작 능력, 문장고전역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갖춘 여인은 허다할 것이다. 이것들은 역시 조선 시대의 정치적 구조악과 노예 제도 덕분에 가능해 진 것들이다. 

 

정부가 2007년에 신 씨를 최고액 지폐의 주인공으로 도안할 때 대한민국 여성계가 반발했다. “헌법의 성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까닭이었다. 당시 신 씨는 김구 선생과 함께 주인공으로 거론되었다.

 

여성계는 '남성=국가' '여성=가족'이라는 전통적 성 역할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사임당 신 씨를 기존의 남성중심 사회의 구미에 맞는 여성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현모양처를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여기는 조선시대와 일제식민통치 시대의 여성상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평범한 조선 여인 사임당 신 씨가 대한민국 최고액 지폐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상당히 심각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오늘 현재 까지도 우리 사회를 주름 잡은 조선 시대의 정치권력과 파당 그리고 당쟁, 당파, 붕당의 역사와 직결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정치권력과 편협한 지식구도와 신화화 작업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붕당의 시작은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 임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조 통치기에 동인과 서인이라는 파당이 형성이 되었다. 서인의 당수가 다름 아닌 사임당 신 씨의 아들 율곡 이이였다.

 

명량해전의 영웅 이순신을 괴롭히던 서인은 광해군이 왕으로 등극하자 그를 제거하려고 모의했다. 이 때 동인 세력이 광해군을 옹립하고 지지했다. 동인은 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나뉘었다. 어쨌든 동인은 서인 세력을 배제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그러한 정치 상태에서 1623년에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사태는 역전되었다. 서인 세력이 탁월한 정치감각을 가졌던 임금 광해를 몰아내고 인조를 옹립 집권했다서인 세력은 이때부터 시작하여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집권을 했다. 매국노 이완용은 서인세력의 핵심인물이었다.

 

서인 세력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고, 다시 시파와 벽파로 나뉘었다. 당권을 장악한 서인 세력은 역사 왜곡을 시작했다. 자파의 정통성, 정당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역사를 날조하기도 했다. 정치적 헤게모니를 거머쥔 서인 세력은 자신들의 초대 장수 율곡 이의를 높이고 그의 이야기를 미화했다. 조선이 몰락하고, 대한민국이 세워진 뒤에도 서인세력의 영향은 여러 가지 형태로 막강했다.

 

역사왜곡과 역사미화 또는 신화화란, 예컨대 율곡 이이의 국방강화 목적의 10만 명 양병설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10만 양병설을 부당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율곡 이이가 가장 집중하고 주목했던 것은 백성들의 복지였다. 국가의 재정을 투자하여 백성들이 잘 살도록 하는 등에 관심이 있었다. 국방력 강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서인 세력은 율곡 이이를 서인의 당수다운 큰 인물로 꾸미고, 정통성과 대의명분을 가진 위인으로 높이는 미화 곧 신화화 작업을 했다.

 

서인 세력은 일제시대의 친일파로 이어졌다. 서인 세력의 최초의 당수는 율곡 이이이고 마지막 당수는 이완용이다. 율곡 이이의 정통성은 매국노로 알려진 이완용으로 이어진다. 서인 세력의 연장인 친일파 세력은 광복 후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기반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승만의 자유당과 박정희 시대의 공화당은 서인 세력의 아류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선조에서 시작된 서인 세력은 율곡 이의만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 사임당 신 씨를 미화, 신화화했다. 역사를 서인 세력 중심의 사관으로 엮었고,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 이야기를 학교에서 가르쳤다. 나는 신사임당이 조선의 매우 훌륭한 자랑스런 여인이라고 배웠다. ‘신사임당이라고 하면 '조선 최고의 여인'을 떠올렸다. 우리 시대의 핵생들 가운데 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다.

 

사임당 신 씨는 우리 민족사에 그다지 의미 있는 여인이 아니다. 내 놓을만 한 것이 별로 없다. 노예제도에 기반한  당대의 양반댁 딸이나 부인들이며 누구나 갖출만한 소양을 지녔다.  율곡 이이라는 걸출한 정치꾼 하나를 자식으로  키운 것이 신 씨가 내놓을 만한 것의 전부이다. 정치적 기득권자들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를 아들의 수준으로 평가 절상하여 위대한 조선여성으로 부각시켰다.

 

조선의 평범한 아줌마 신 씨가 최고액 권 화폐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한국의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기득권 후손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의 결과이다선조 때부터 시작되어 이완용친일파자유당을 거쳐 지금도 큰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기득권자들의 터무니없는 역사 왜곡, 사실호도, 기득권 시각 중심의 역사평가, 역사미화 곧 신화화의 결과이다.

 

한국사가들은 서인 세력이 선조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기득권을 놓친 적이 없다고 한다. 21세기에 진입한 현재도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서인-친일파 세력이다. 이 세력의 재력가들과 굵직한 법조인들, 법무법인들이 엄청나게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자기의 조상들의 왜곡된 시각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다.

 

신 씨를 대한민국의 최고액 권의 주인공으로 등극하게 한 배경은 광복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잔존하는 조선의 기득권 세력이다. 그들은 이런 저런 형태로 자신들의 입지를 미화, 신화화 하고 정당화했다. 이러한 흐름과 구도가 조선의 평범한 가정주부 아줌마 신 씨를 대한민국 최고 액 권에 등극시켰다. 유교 풍의 우리 사회는 신 씨가 성리학자이며 정치가인 율곡 이이의 어머니라는 이유를 전면에 앞세워 국민에게 그러한 인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도록 만들어 왔다. 사임당 신 씨 아주머니의 최고액권 '등극'은 하기오그래피(hagiography)의 결과이다.

 

다음 글 "유관순과 김만덕"은 대한민국 최고액 권 지폐의 여성 주인공으로 적합한 인물 5명을 소개한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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