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도 낮은 여인의 지혜
인기 없는 레아는 이렇게 살았다
최광희 목사
현대 사회에서 인기는 돈이고 권력이다. 노래를 불러도, 제품을 만들어도, 요리를 해도 인기를 끌어야 한다. 정치인이 인기가 있으면 그 사람의 국정 능력과 상관없이 표를 받고 권력을 누린다. 목사가 설교를 해도 일단 사람들이 좋아해야 계속 설교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한 부분도 있고 복잡, 미묘한 부분도 있다. 또 노력하면 좋아지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노력해도 효과가 미미한 부분도 있다. 외모나 성격, 말솜씨와 각종 재주를 타고난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기가 죽기도 한다. 이런 간격은 한 집안의 형제나 자매 사이에서도 나타날 수가 있다.
레아와 라헬은 같은 아버지 밑에 태어난 딸이다. 라헬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레아에게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라헬이 태어난 후에 점점 동생이 인기를 독차지했다. 라헬은 성격도 활달해서 남자들이 주로 하는 양치기 노릇도 곧잘 했다. 라헬은 성격이 활달하고 여성스러운 매력조차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라헬이 외모와 성격과 능력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수록 레아는 상대적으로 더욱 위축되었다.
레아는 시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다(창 29:17). 시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히브리어 단어 ‘라크’는 ‘부드러운, 연한, 온화한, 약한’ 등의 여러 뜻이 있는데 이 중에 어떤 의미가 레아에게 적당한가? 여러 번역은 서로 해석이 다르다. 시력이 약하다(개역), 눈에 총기가 없다(현대어)는 번역부터 눈이 곱다(쉬운성경), 눈매가 부드러웠다(공동번역) 번역까지 다양하다. 또 어떤 학자는 눈이 약하다는 말을 바른 시각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서 욕심이 많았다고도 설명한다.
이처럼 레아의 눈이 약하다(라크)는 말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양해서 어느 하나만 주장하기가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레아와 라헬의 그런 차이 때문에 야곱은 레아보라 라헬을 더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보면 레아의 눈이 약하다는 말은 레아의 장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야곱이 어느 정도로 라헬을 좋아했느냐 하는 것은 야곱이 라헬과 결혼하고 싶어서 라반 집에서 일을 할 때 7년을 수일처럼 여겼다는 것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던 어느 날 레아에게 기회가 왔다. 아버지 라반은 일 잘하는 야곱을 더 오래 붙잡아 놓기 위해서 라헬과 결혼하는 날에 레아는 몰래 신방(新房)에 넣어주고 7년 뒤에 라헬을 야곱에게 결혼시켜 줌으로 추가로 7년을 더 일하도록 꾀를 내었다. 아버지의 음흉한 계략의 도구로 발탁되었지만 인기가 없던 레아에게는 나쁘지 않는 기회였다. 비록 비정상적인 방법이었지만 어쨌든 레아는 야곱과 결혼한 첫째 부인이 되었다. 야곱이 말년에 열두 아들들을 불러 모으고 유언을 할 때는 레아가 낳은 첫째 아들 르우벤을 향해 야곱이 ‘너는 내 정력의 시작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사기 결혼으로 시작한 레아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였을까? 레아와 신방을 차린 7년 만에 동생 라헬과 또 결혼한 야곱, 그가 레아에게는 남편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만 이행했을 뿐 모든 사랑은 라헬에게 주었을 것이다. 레아는 극상의 사랑을 받지 못한 여인이다. 인기 없는 여인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한 레아를 하나님까지도 버리신 것은 아니었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안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라고 말한다(창 29:31).
레아는 야곱의 아들을 낳기 시작하더니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까지 네 아들을 연속해서 낳았다. 반면에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한 라헬은 아들이건 딸이건 아예 임신조차 되지 않았다.
고대 사회에서 불임 여성은 신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간주된 것을 생각하면 레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았다. 그 후에 레아는 잇사갈과 스불론이라는 두 아들을 더 낳고 디나라는 딸까지 하나 낳았으니 네 여인이 야곱에게 낳아준 12남 1녀 중에 과반수가 레아의 열매였다. 또 고대에는 하녀가 낳은 자녀도 주인의 자녀로 간주되었는데 레아의 하녀 실바가 낳은 갓과 아셀까지 계산하면 레아 대 라헬의 아들 낳기 경기는 8:4이다. 완승이라 할 수 있다.
레아가 낳은 아들 중에 유다는 왕의 지파가 되었고 레위는 제사장 지파가 되었으니 자식들도 레아의 자식들이 라헬의 자식들 보다 훨씬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라헬의 아들 요셉은 두 지파의 축복을 받았으나 요셉의 후손 에브라임 지파는 맨날 기득권만 주장하면서 거들먹거리다가 이스라엘의 내전이나 일으키는 말썽꾸러기로 전락했고(삿 8:1 12:1) 사사 입다에게 아주 혼쭐이 나기까지 했다. 이처럼 인기가 없고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레아는 후손까지 생각해봐도 결코 불행한 여자로 끝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레아는 사후에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과 리브가가 들어간 조상들의 무덤에 묻혔지만(창 49:31) 라헬은 조상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것은 레아가 정실(正室) 부인의 지위를 누린 가장 결정적인 증거이다. 이처럼 레아의 인생을 하마터면 불행하고 좌절할 뻔 했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꿋꿋하게 함으로 서러움도 다 씻고 인정받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런 레아는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인기가 없나요? 성격이나 외모나 재주가 남보다 못해서 살맛이 없나요? 그래도 살다보면 기회가 올 거예요. 무엇이라도 잘 하는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젤 중요한 것은 무능하고 인기가 없으면 하나님을 더 찾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리는 결과가 생길 거예요. 욕심을 버리고 그냥 꿋꿋하게 살다보면 마지막에 ‘내 인생도 괜찮은 인생이었네’ 하고 말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절대로 좌절은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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