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부산 국제시장과 대청동
패스 코리아
미국에선 지금 '패스 코리아'(Pass Korea)가 광범위하게, 설득력 있게 확산되고 있단다. ‘한국에서 손을 떼라’, '한국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군 철수, 한미 우방관계 또는 동맹관계 중단과 청산, 미국 방위선 후퇴와 재설정 등을 뜻한다.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시점에 방한한 어느 미국인 지식인이 전해 준 소식이다.
'패스 코리아'(Pass Korea)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 아니다. 후자는 한반도를 둘러 싼 국제 정세에서 한국이 소외된 채 논의가 이루어지는 현상 또는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이 한반도 안보 현안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한국 건너뛰기'를 일컫는다.
나는 1969년 대한민국 군복무 시절에 주한 미군의 철수를 주장한 적이 있다. 미국은 영원한 나라가 아니다. 우방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대한민국이 미국을 영원히 의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북이 조속히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대책 없는 상태에서 미군의 즉각 철수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오해를 받으면서 주한미국철수를 언급한 때로부터 약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외세에 의지하고 있다. 끌려가는 형국이다. 차기 대통령이 미국에 당당히 맞서면 국제 정세와 국가 비상 사태가 호전될까? 그 반대이다. 상당히 큰 나라들도 동맹관계 안에서 생존한다. 지구상에 독자적으로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뿐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주장했을 때 한국정부는 '핵공갈'이라고 했다. 국민들은 핵 무기를 가졌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북한 대표가 서울에선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했을 때도 여전히 '핵공갈' 쯤으로 여겼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직도 북한이 '핵공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계가 북한의 핵 무기 보유를 기정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민족은 이데올로기보다 더 중요하다.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우리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남북통일은 당사자들의 몫이다.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이다. 자칫 잘못된 선택을 하면 시리아와 같이 불행한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이권을 노리는 강대국 틈새에서 한반대륙은 초토화 되고, 난민 행열, 보트 피플이 줄을 잇고, 애곡 소리가 창궐할 수도 있다.
나의 맏형은 한국전쟁 전사자다. 맏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자랐다. 나는 전쟁 불안증과 더불어 살아 온 세대이다. 놀이조차 전쟁놀이를 했다. 젊은 사람들은 전쟁 전후 세대의 나라 걱정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쟁 공포증, 전쟁 피곤증을 견뎌낸 자들이 일구어낸 자유민주주의 체제 국가에 살면서, 민족사 이래 최대의 풍요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친다. 자국 이익을 최고의 우선 가치로 앞세운다. 부동산 재벌의 ‘패스 코리아’ 발상이 우리에게 가져올 결과는 무시무시하다. 당장 1천만 기독인들의 자유와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마지막 초침소리가 울리는 듯 공포감이 엄습한다. 대통령 투표장으로 나서는 나의 마음은 참으로 착찹하다.
20170507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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