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와 직통계시
원제: 요한 웨슬리 관점에서 신사도운동의 사도직과 계시이해
글쓴이: 임성모 교수-감신대학교
필자는 요한 웨슬리의 관점으로 신사도 운동을 평가하는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현재 신사도 운동의 영향은 한국 감리교회도 비껴가지 않는다. 한국 감리교회 내에서 일부 목회자가 신사도 운동의 영향권 아래 있거나 그 때문에 교회에 분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고, 감리교 밖에서는 신사도 운동의 신학적 근원이 웨슬리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웨슬리의 눈을 빌려 신사도 운동을 평가해 보는 것은 감리교 자체 내의 입장을 한번 정리해 볼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근거 없는 공격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필요한 작업이라고 본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사도 운동에 관해서는 다양한 선행 연구가 있었기에 장황하게 반복하지 않고 요점만 정리한다. 다음으로 그에 대응하는 웨슬리의 관점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신사도 운동과 연결하여 웨슬리에게 쏟아지는 부당한 비판을 비판하겠다.
I. 신사도 운동 이해
신사도 운동 또는 “신사도 개혁운동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은 풀러 신학교 교수였던 피터 와그너 (1930-2016)가 만든 용어이다 (와그너 2000:23; 2007:24). 이 용어는 신약시대 사도의 직임과 초자연적 은사가 현재에 재현되고 있다는 주장을 압축하고 있다 (see 와그너 2000:23, 25, 32). 와그너의 과감한 주장에 따르면, "새로운 사도 개혁 (운동)"은 전통적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목회와 선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16세기 종교 개혁보다 새롭고 (와그너 2000:23),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마치 초대교회 12사도와 같은 위치를 갖는다 (와그너 2000:27).
역사적으로 보면, "독립적인 은사주의 교회," "전통적인 오순절운동"과 "아주사 거리 부흥운동" (1906년)을 통해 나타났던 성령의 역사가 점차 심화되어, 1970년대에 기도 운동으로 1980년대에는 선지자 출현으로 1990년대 들어 사도들의 등장으로 연결되고 드디어 2001년 경부터 “제 2의 사도시대”가 열렸다 (와그너 2007:27, 28). “신사도” 지도자들이 이끄는 교회들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은사들은 “방언,” “치유, 귀신 축출, 영적 전투, 예언, 성령의 역사로 쓰러짐” 등이다 (와그너 2000:29, 32).
와그너는 이처럼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어난 빈야드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성령 은사 운동을 “신사도 운동”이라고 명명함으로써 신학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와그너는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에 대한 이해가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그룹 내의 성령 은사 운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그로 말미암아 미국 교회의 신학과 동향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 교회에 목회적 혼란을 주고 있다. 심지어 금이빨과 금가루 이적 (헤너그라프 2010:25; 박영돈 2014:60, 61; 정이철 2012:55, 57)과 같은 정체불명의 현상이 신사도운동의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금이빨과 금가루 이적은 성령의 은사인가 아닌가? 성령이 원하시면 무엇이든 가능한 것인가? 이것을 판단할 기준은 무엇인가?
필자가 보기에 이 운동은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이 상호 연결된 세 가지 질문을 피해 나갈 수 없다. 첫째, 현재에도 사도직은 계승되는 것인가? 둘째, 지금도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식의 계시가 가능한가? 셋째, 신사도 운동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들이 성령의 은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웨슬리 (1703-1791)에게서 찾아보려 한다. 감리교도인 필자가 목회적 현안에 대한 지혜를 감리교 창시자에게 찾아보려 하는 시도는 자연스럽다. 더구나 웨슬리는 이 문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에 적합한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18세기 영국 감리교 집회 도중에 다양한 영적 현상들이 일어났고, 웨슬리가 그 현상에 대해 분석과 지도를 했다. 복음적 신학자이자 열정적인 현장 목회자였던 웨슬리의 균형 잡힌 은사 이해는 현 한국교회에 문제가 되는 신사도 은사 운동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력을 제시하리라고 본다. 이런 이해를 전제한 채, 필자는 웨슬리의 사도직과 계시에 대한 이해를 간략히 살펴본 후 이 글의 초점을 그의 은사 이해에 맞추려 한다.
II. 웨슬리의 사도직 이해
사도 (使徒, apostle, ἀπόστολος)는 ‘보내진 자’ (“the one who is sent”)라는 의미를 갖는다 (Shuler 1996:44). 사도는 예수님께 선택되어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12제자를 가리키거나, 최소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그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까지만 한정 된다 (Marshall 1988:40).
그러므로 사도전승 (사도계승, apostolic succession)이란 말이 사도의 연속성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사도는 초대 교회에 한정되고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교회 지도자를 사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최초의 증인 (“original witnesses")이었다는 점에서 잘못된 적용이다 (Marshall 198:40).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교황을 12 사도 중의 한명인 베드로의 후계자로 간주하는 방식으로 사도전승을 주장하고 있으나 (see Fahey 1991:50),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교황의 수위성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see Calvin 1960:1102; Kerr 1966:137), 초대교회 사도들과의 직제 (office)에 관한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Hefner 1984:230).
다만 현재 교회 신앙과 실천이 사도들의 예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도적 (apostolic)이란 말을 쓰는 것은 가능하고 또 교회는 사도적이어야만 한다 (Marshall 1988:40; Pannenberg 1998:402, 403). 이런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위르겐 몰트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계속해서 그리고 온전하게 선포하는 복음적 전승”이 사도전승이라고 주장한다 (Moltmann 1977:359). 감독이 안수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사도전승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이어받는 것이 사도전승이다 (Griffiss 2007:62).
요한 웨슬리가 속해 있던 영국 국교회 (성공회)는 종교개혁 사상, 특히 칼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González 1987:193, 195). 따라서 영국 국교회가 소중히 생각한 것은 교회가 복음을 가지고 있느냐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있느냐의 문제였다. 복음과 그리스도가 사역과 성례에 타당성을 주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Avis 2002:222). 목사 안수에 대해서, 웨슬리는 처음에 감독에게 안수 받지 않는 경우를 반대 했지만, 점차로 신축적인 태도를 가졌다 (Campbell 1991:90-92).
웨슬리의 깨달음에 의하면 감독에게 안수 받는다고 해서 기계적으로 탁월한 목회자가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목회자의 여부는 어느 감독에게 안수 받았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많은 이를 [하나님의] 의”로 인도하느냐에 달려 있다 (Lawson 1963:82, 83). 즉 목회자에게 중요한 것은 족보가 아니고, 그 마음과 실천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느냐다. 알버트 아우틀러 (Albert C. Outler)는 결국 웨슬리가 중시하는 것은 사도적 사람이 아니고 사도적 가르침이라고 본다 (Outler 1964:307). 사도전승이란 안수를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의 지속성을 의미한다.
가톨릭교회는 현대적 이슈와 왕성한 대화를 시도했던 제 2 바티칸 공의회 (1962-1964) 이후에도 가톨릭 교인들이 개신교회에서 성례를 받는 것을 공식적인 문서를 통해 금지하고 있다. 개신교회의 사도전승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Dulles 1978:161, 162). 그러나 루터교 종교 개혁자들에 의하면 가톨릭교회를 개혁한 교회는 새로운 교회가 아니고 진정한 의미에서 가톨릭 (보편적) 교회이다 (푈만 2000:384). 웨슬리의 이해도 같은 논리선상에 있다. 웨슬리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진정한 교회는 순수한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어야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런 점에서 가톨릭교회에 포함되지 못한다. 거기에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지도 “바르게 집행되는” 성례전도 없기 때문이다 (Outler 1964:313).
지금까지 논의를 신사도 운동의 사도직 재현 주장에 적용해 보자. 신사도 운동 주창자들이 초대교회 사도들의 신앙과 실천을 이어받는다고 하지 않고 사도직 자체가 재현된다고 주장하는 한, 그들은 전혀 종교개혁자 그리고 웨슬리의 사상에 맞닿아 있지 않다. 자신들을 사도로 부르는 어떤 성경적/신학적 근거도 없거니와 자신들을 사도로 호칭한다고 해서 권위나 지도력이 자동적으로 강화되는 것도 아니다.
Ⅲ. 웨슬리의 계시 이해
계시란 감추어져있던 것이 드러남을 뜻한다 (Pinnock 1988:585). 기독교 신학에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질적인 차이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있다해도 희미할 뿐이고), 하나님이 스스로를 드러내셔야만 비로소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고 본다 (see Barth 1928:198). 인간과 소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세 가지 방식, 즉 예수 그리스도, 성경, 그리고 설교를 통해 말씀 하신다 (Morgan 2010:54-58).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성서는 정경화 작업이 끝난 이후 더 이상 사사로이 추가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더 이상의 예언적 또는 사도적 대변인은 없다. 이러한 특별한 은사와 능력을 가진 이들은 이미 사라졌다” (Lightner 1991:22).
이제 신자는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 뜻을 분별하고 성령께서 인간의 부족한 이해력을 돕는다 (Erickson 1985:246-247).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데 영적 거인들이 남긴 서적들을 참고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성경을 대체할 수 없다.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노력은 이미 성경이 충분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다는 점에 무의미하고, 자신의 상상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시키기 쉽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이와 같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정통적인 계시/성경 이해를 배경으로 한 채 웨슬리의 관점에 대해 논구해 보자. 웨슬리에게 있어, 계시란 “하나님이 신적 메시지를 소통”하시는 것이다 (Jones 1995:18).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고 (Jones 1995:19), 영감으로 기록되었기에 (Thorsen 1990:131), 어떤 오류도 없는 (Avis 2014:302), 정경이다 (Whaling 1981:147). 따라서 성경은 “권위를 침범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Wesley 1987:220), 신앙과 실천에 있어서 유일한 권위이다 (Jones 1995:17). 웨슬리는 자칭 ‘한 책의 사람’ (homo unius libri)으로서 모든 감리교인들이 자기처럼 되길 바랬다 (Jones 1995, 31). 본인이 크고 작은 모든 일에서 성경을 따르듯이 (김영선 2002:37), 감리교인들이 성경적 기독교인 (Scriptural Christian)으로 살기를 소원했다. 감리교 부흥 운동의 목적은 땅위에 “성경적 기독교” ("biblical Christianity")를 세우는 것이었다 (Cannon 1946: 20).
웨슬리는 이처럼 종교개혁의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강령에 철저했지만, 스탠리 J. 그렌츠는 그 후예들 가운데 자유주의자들은 성경보다 이성이나 경험을 더 중시 한다고 비판한다 (그렌츠 2013:132, 133). 필자가 보기에 현대에 와서 이런 경향이 심화되는 것은 웨슬리 사변형 ("the Wesleyan quadrilateral")란 용어를 만들어낸 아우틀러의 책임이 크다. 그는 웨슬리에게 신앙과 신학함에는 4가지 요소-성경, 전통, 이성, 경험-가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아우틀러가 성경의 우선성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웨슬리 사변형이라는 용어는 사람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그 뒤 신학적 훈련이 미숙한 이들과 자유주의 경향의 학자들은 마치 그 용어가 웨슬리 자신의 용어이거나, 또는 웨슬리의 입장을 정확히 대변하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왜곡해 왔다. 계속적으로 혼란이 야기되는 것에 대해 아우틀러는 애초 그 용어는 하나의 은유적 (“metaphor”) 표현이었을 따름이라며, 자기 의도와 다르게 웨슬리를 오해하도록 했다고 후회하는 마음 (“regrettable”)을 전한다 (Outler 1985:11,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캅 (John B. Cobb, Jr.)은 웨슬리 4변형에서 어느 한 요소가 다른 요소들에 비해 더 권위를 가질 수 없고 4요소는 다 그 나름대로 “결정적” (decisive)이라고 주장한다 (Cobb 1993:62). 즉 성경, 전통, 이성, 경험 4요소가 공히 같은 무게의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캅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웨슬리의 뜻인 듯이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필자는 지금까지 자유주의자들과 아우틀러의 영향으로 웨슬리 성경관에 오해가 있어왔음을 밝혔다. 웨슬리에게는 성경이 궁극적인 권위다. 전통, 이성, 경험 등은 성경을 해석하는 보조 수단일 뿐이다 (김진두 2009:25). 그리고 그것들도 성경에 의해 판단을 받고 지도되어야 한다 (see Campbell 1999:39).
이런 이해를 가지고 신사도 운동에서 직접 계시를 받는다느니 직접 음성을 듣는다든지 하는 주장을 점검해 보자. 와그너는 그의 책 『Dominion』에서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사도적인 귀”를 가지고 있는 자신도 “성령의 음성”을 “여러 차례” 들었다고 주장한다 (와그너 2007:29, 41). 즉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주로 이단들이 성경을 대체하는 교리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교주의 권위 강화를 위해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듣는다는 소위 직통계시를 주장하는데 신사도 운동도 비슷한 유혹에 빠져 있다.
웨슬리는 그런 직통 계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상상에서 나온다 (see Wesley 1952:91). 감리교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직통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는다. 웨슬리에게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길은 성경을 읽는 길 뿐이다 (이후정 2001:107).
Ⅳ. 웨슬리의 성령 은사 이해
교회 역사의 시각에서 보면, 신사도 운동은 새로운 사도 개혁 운동이라는 근사한 포장을 하고 나타났지만, 사실상 오순절 운동의 변주곡에 불과하다. 그것이 강조하는 성령세례와 성령의 은사 (방언/축사/치유 등) 위에 온갖 의심스러운 현상들 (몸을 떨음, 동물소리, 쓰러짐, 금이빨, 최면술, 웃음, 입신, 의식 변성 등)을 보탠 것이다 (해너그라프 2010).
필자는 이런 현상들이 과연 성령과 연결된 현상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시각을 제시하기 위해 웨슬리의 성령론과 그의 은사에 대한 이해를 분석해 보려 한다. 웨슬리의 성령 이해는 근본적으로 종교개혁자들과 같은 노선을 취하고 있다. 루터의 성령론은 주로 말씀과 성령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성령은 신자가 말씀을 깨닫게 한다 (Lohse 1986:52). 성령의 도움 가운데 말씀은 신자를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 (Varkey 2011:42). 문제는 사람이 악하기에 말씀대로 살 수 없다. 따라서 말씀이 신자에게 심판으로 다가온다. 오직 성령이 말씀을 실천할 수 있게 한다. 즉 신자는 성령 안에서 말씀이 요구하는 대로 살 수 있게 된다 (Lull 1989:88, 89).
칼빈은 좀 더 조직적이다. 성령은 삼위 하나님의 제 삼위로서, 신자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사랑의 띠 (“bond")이다. 또한 신자를 성화 (”sanctification")로 이끈다 (Calvin 1960:537, 538).
웨슬리에게 성령은 하나님이다. 단순히 하나님의 힘이 아니고 하나님과 본체시다. 이 점에서 웨슬리의 성령론은 삼위일체적이다 (see Collins 2007:145; Maddox 1994:129; Starkey 1962:27). 성령이 말씀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루터와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고 (see Wheeler 2007:192), 그리스도에게도 인도한다는 구속론적인 관점에서 칼빈과 다를 바 없다 (see Collins 2007:121).
웨슬리 성령론의 특징은 신자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성화 과정에서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먼저, 성령과 구원의 확신의 관계를 논구해 보자. 오랜 내면적 갈등을 거친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열린 모라비안 모임에서 (1738. 5. 24), 누군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 주석을 읽는 것을 들으며 마음이 뜨거워졌고 그리스도만이 구원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Wesley 1979:43). 이것에 대해 박창훈은 “열정을 일으키고 확신을 일으키는 성령을 체험”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박창훈 2010:173).
필자가 보기에 올더스게이트에서 마음이 뜨거워진 것은 객관적인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께서 내적 확신을 주어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확립시킨 사건이다. 이것은 성경과 성령의 관계에 대한 웨슬리의 근본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범례적인 예다.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한 성경 읽기는 메마른 지식축적으로 그치기 쉽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나가기 쉽지 않다. 역으로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고 성령을 따르는 것은 근거 없는 감정주의로 빠지기 쉽다.
웨슬리에 의하면 성령은 신자를 성경에 증언되어 있는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신 객관적인 구원, 그리고 그 사실이 기록된 성경에 대하여 확신하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see Wesley 1984:272). 인간의 주관적 노력과 추구에 선행하는 성령이 인간의 내면에 역사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깨닫게 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도록 돕는다. 인간은 그 부르심과 깨달음에 상응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웨슬리는 전자를 성령의 증거 (“the witness of the Spirit”), 후자를 “우리 영의 증거”(”the testimony of our own spirit")라고 불렀다 (Wesley 1984:274, 275, 312). 웨슬리의 이 주장에 대해 유의할 점은 첫째, 성령이 구원의 확신을 준다는 것을 주관주의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구원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이므로 하나님이 깨우치신다. 둘째, 성령이 구원의 확신을 주신다는 주장을 성령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웨슬리의 주장은 성경에 기록된 객관적 약속에 대해 성령이 깨우침을 준다는 것이다.
웨슬리의 성령론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성화에 대한 강조이다. 성화는 구원의 여부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지만 구원받는 신자가 필연적으로 맺는 열매다. 이미 구원은 확보되었기에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는 즉, 구원 받은 뒤에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태도 (반율법주의, “antinomianism")를 웨슬리는 바람직한 기독교인의 삶에 치명적이라고 보았다 (Heizenrater 1995:106, 107). 신자는 하나님의 은총에 응답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화/성결의 삶을 목표로 삼아 추구해야 한다 (이후정 2001: 139).
성화는 점진적이고 즉각적인 것이 합해져 있고 (Lindström 1980:134), 그것의 목표는 기독자의 완전 (”Christian perfection") 또는 온전한 성화 ("entire sanctification")이다 (Campbell 1999:61). 이 목표는 완전주의 (perfectionism)적 소산이거나 실제로 무흠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이상주의 (idealism)가 아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이 지상에서 죄 없이 완벽한 상태에 이를 수는 없다 (Wesley 1952: 45).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신자의 “마음과 삶을 다스려서 그들의 마음/언어/행동 모든 부분에 퍼져있는” 상태이다 (Wesley 1952:46). 이런 성화의 과정은 인간의 본성이나 수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성령의 사역에 의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Starkey 1962:61). 반복하자면, 신자가 칭의 (justification)에서 성화 (sanctification)로, 더 나아가 영화 (glorification)로 나아가는 “구원의 길 (순서, 과정)” (ordo salutis)을 걷는 순간순간 성령의 도우심은 필수적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웨슬리 성령론의 핵심, 즉 신자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고 성화로 이끄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으로 웨슬리의 성령 은사 이해를 알아보자.
웨슬리 당시 계몽주의 등의 영향으로 신이 세상에 개입한다는 생각은 전혀 인기가 없었다. 따라서 신비한 경험/계시/기적 등을 언급하거나 고백하면 열광주의자 (“enthusiasts")라는 공격을 받고 무시를 당했다 (Rack 1989:276). 이처럼 이신론이 주도하는 시대사조에도 불구하고 웨슬리는 과감하게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성령의 역사로 사람들이 변화한다고 선포했다. 이런 주장과 실천 때문에 웨슬리는 열광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Heizenrater 1995:224; see Runyon 1998:61).
웨슬리는 그러한 비판에 대해 먼저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첫째, 초대교회 은사 가운데 방언, 통역, 예언, 기적 행함 같은 특이한 ("extraordinary") 은사는 사도 시대에 행해졌지만, 지금은 나타나지 않는다. 웨슬리 본인과 감리교인들에게 나타나는 은사는 특이하지 않은 은사 ("ordinary gifts")이다 (Starkey 1962:74, 76). 웨슬리는 이런 인식을 가지고 특이한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멀리했다 (Rack 1989:276).
둘째, 자신은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 한다 (Rack 1989:276). 모든 영을 다 믿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시험을 해야 한다. 특이한 은사들이라는 것은 인간 상상력의 소산일 수 있기에,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성경을 통해서 검증해야 한다 (Wesley 1952:91; Gunter 1989:127; Maddox 1994; 136). 단적으로 말하자면 성경과 성령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며 갈등하지 않는다 (Thorsen 1990:130).
셋째,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가 같이 나타나야 한다 (Heizenrater 1995:228). 인격적인 변화를 뜻하는 성령의 열매 없는 성령의 은사는 합리적인 의심을 가져온다. 랜디 매닥스 (Randy L. Maddox)에 따르면, 웨슬리는 성령의 은사보다 성령의 열매에 더 관심이 많았다 (Maddox 1994:136).
웨슬리는 하나님 뜻이라는 확신을 가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뜻을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했지만,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심사숙고를 거듭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생각을 하고 토론하고 시간을 가지고 문제되는 현상을 지켜보았다. 집회에 특이한 현상들이 나타났을 때 웨슬리가 접근하는 방식이 그러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쓰러지는 현상은 감리교 운동 초창기 여러 사람들이 함께 기도했을 때 (1739년. 박창훈 2010:173; 박용규 2014:263), 웨슬리가 단독으로 집회를 했을 때, 그리고 조지 휘필드가 집회를 했을 때 나타났다 (Kürschner 2000). 웨슬리는 이런 현상을 예의 주시하고 분별하는 과정을 밟았고, 결국 그것을 “사탄의 책략”이나 “악마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해너그라프 2001:329, 330).
이런 현상은 주로 브리스톨 지방에서 나타났다. 이런 특이성에 착안한 연구에 따르면, 브리스톨 지방은 프랑스에서 망명 온 소위 “프랑스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었다. 그들이 집회하면서 쓰러지곤 했는데, 그들의 뒤를 잇는 퀘이커교도들과 셰이커 교도들 (shakers)도 같은 현상을 보였다. 웨슬리 집회에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소리를 지르던 현상은 바로 그런 이들이 주도하거나 영향을 받은 흔적이다 (see Kürschner 2000; Jacob 1996:116; Purinton 2004:395; 해너그라프 2001;330). 물론 미국 감리교 초창기 집회에서도 사람들이 회개할 때 그런 현상들이 나타났기에 (해너그라프 2001:325), 브리스톨 지방에 나타났던 특이한 현상과 연결해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브리스톨 현상과 관계된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쓰러지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은 특이한 경우들은 좀 더 예리한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Ⅴ. 웨슬리 비판에 대한 비판
교파 간의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서 보수 장로교 측의 감리교 비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상대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연구 없이 빈약한 지식을 가지고 공격하는 이들이 문제다. 약방의 감초 같이 쓰이는 비판은 감리교는 알미니안주의라는 것이다. 이 비판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른 기회에 변증할 기회를 가지려 한다. 현재의 글에서는 장로교 측 인사들의 신사도 운동과 관계된 글에서 발견한 감리교 비판에 국한시켜보자.
정이철은 교계에 신사도 운동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근거 없는 감리교 비판으로 인해 그 빛을 잃고 있다. 정이철에 따르면 “아주사 부흥 운동의 핵심인 성령세례와 방언에 대한 이론을 가장 먼저 주창한 사람은 존 웨슬리 (감리교회의 창시자, 성도의 완전을 위한 성령의 두 번째 은총 사상)와 미국에서 일어난 성결운동 (The Holiness Movement)에 헌신된 설교자 찰스 펄햄 (Charles Fox Parham) 목사였다” (정이철 2012:13). 웨슬리에 국한시켜 보자면, 첫째, 웨슬리는 아주사 부흥 운동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령 세례 때 방언을 받는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 더구나 웨슬리가 이해하기에 방언 자체는 특이한 은사에 속하므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 웨슬리의 “두 번째 은총 사상”은 성도의 완전과 관련되지 않는다. 성화의 더 진전된 단계를 의미할 뿐이다.
웨슬리 후예들이 웨슬리를 변형시켜 자신들의 신학을 만든 것이 웨슬리 책임일 수 없다. 루터와 칼빈 후예들에게 혹 antinomian 경향이 있다고 해서, 루터나 칼빈에게 성화 사상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하면 어리석은 것과 마찬가지다. 신사도 운동의 책임이 웨슬리에게 있다고 주장하거나 연결고리가 있다는 듯이 슬쩍 암시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태도다. 이 같은 실수는 해석의 차이라기보다는 기본적인 지식 확보에 실패한 예다. 어떤 신학이나 교파도 완전할 수는 없으므로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은 서로를 가다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근거 없는 비판을 하는 것은 논자의 지적 치열성에 대한 회의를 안겨주고 공동의 적 앞에서 자중지란을 일으킬 뿐이다.
정이철 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심창섭도 이 문제에 관해서 자유롭지 않다. 웨슬리 성화론을 와그너가 인용한다고 말하면서 그런 성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심창섭 2017: 36-38). 마치 웨슬리가 완전주의적 성화를 말한 듯이 전제한 다음 그런 성화가 어디 있느냐고 비판한다. 이것은 허깨비를 만들어 놓고 공격하는 식이다. 웨슬리 자신이 이미 그런 성화는 없다고 말했다.
Ⅵ. 결론
필자는 이 글에서 신사도 운동이 한국 교회 내에 신학적/목회적 혼란을 주는 현상에 대해 주시하면서 웨슬리 관점에서 그 운동의 주장을 분석했다. 은사와 결부된 영적 현상이 교회에 주는 부담이 가중되는 시점에서, 비슷한 현상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던 웨슬리를 이해하는 것은 관련 논의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령은 구속사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3위다. 성령은 신자에게 그리스도가 완성한 객관적 구원에 대한 내적 확신을 주실 뿐 아니라, 죄와 싸우며 살도록 성화의 길로 인도하신다. 성령은 신자를 성화로 이끌기에 성령의 은사가 성령의 열매와 더불어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다. 특이한 은사 현상은 반드시 성경의 눈에 비추어서 판단해야 한다. 예언과 사적 계시와 같은 것은 이미 온전하고 완전하게 정경화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통해 점검되어야 한다. 성경의 저자인 하나님이 자신과 배치되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실 것이고, 사람들의 주장은 그들의 개인적인 상상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큰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계선을 넘으면 단호하게 대처했다. 성경적인 믿음, 초대 교부들의 사상,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에 기초하는 공통분모를 가지면서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을 경우만 에큐메니칼 정신을 발휘했지, 반성경적인 가르침과 실천에까지 포용성을 발휘하지는 않았다. 신사도 운동은 사도를 참칭하고 사적 계시 운운하고 금이빨/금가루라는 정체불명의 은사를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명백히 반성경적이고 반종교개혁적이고 반웨슬리적이다. 주님의 정원에 독버섯이 자라고 있다.
*신사도 운동하는 분들께 간곡히 충고한다. 예수 그리스도만한 은혜가 어디 있는가? 복음만한 능력이 어디 있는가? 성경만한 계시가 어디 있는가? 구원만한 기적이 어디 있는가? 제발 한눈팔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복음과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깊이 이해하라. 목회는 그것만으로 넘치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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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모 박사 / 감리교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 옥스퍼드대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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