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 브니엘고등학교 교훈
고등학교 때 나를 잡아준 것은 성경시간, 수업시간 분위기는 안 좋았지만 “뻥이데이” 하면서 성경에 빠져… 이규현 목사 등과 종교부원 돼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격문에 가까운 이 내용은 내 모교인 브니엘고등학교의 교훈이다. ‘성실 근면 미래’ 이러면 될 것을 왜 이리도 길게 뽑아야 했는지. 학창시절 당시 부산의 명문고는 경남고와 부산고였다. 사람들이 나더러 “어느 학교에 다니냐”고 물으면 ‘브고’에 다닌다고 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았다. 부산고의 ‘부고’가 아니라 브니엘의 ‘브고’라고 말한 건데, 사람들은 ‘부고’로 들었다.
모교의 학습 환경은 열악했고 노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학교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폭력서클 ‘노터치’도 있었다. 학교에 다니기 싫었다. 틈만 나면 학교를 벗어날 핑계를 찾았다. 집이 가깝다고 이 학교를 선택한 내 잘못이었다. 재수해서라도 학교를 옮기고 싶었다. 수업이 재미있을 리 있겠는가. 방황은 계속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당시 ‘우드스탁’이라 하는 고고클럽을 자주 들락거렸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음악과 막걸리가 잠시 위안이었다.
그때 학교에서 ‘중생회’라는 집회가 열렸다. 학생들은 땡볕의 운동장에 모였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말씀을 전하는 강사의 쉰 목소리는 마치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로 들렸다. 무작정 울었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보고 싶었다. 울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고개를 치켜들었다. 운동장에 나부끼는 플래카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유 본 어게인(Are you born again)?” 강사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일어서라고 했다. 엉겁결에 일어섰다. 그때부터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시작된 것 같다.
학교에서 제일 재밌는 시간은 ‘성경 수업’이었다. 성경 교사인 이정삼 목사님은 교과서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속으로는 ‘저거 뻥이데이’ 하면서도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고전을 이야기했다가 동화를 끄집어내는 등 종횡무진이었다. 결론은 항상 심금을 울렸다. “느그 이래 살믄 안된데이.” 그 시간만큼은 ‘노터치’ 아이들도 숨을 죽여 들었다. 은혜를 받아 눈물 흘리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나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3일을 금식했다. 하나님의 얼굴(브니엘)이 아니라 금식으로 노랗게 된 내 얼굴만 보였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의 지목으로 종교부원이 됐다.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이 지금의 이규현(수영로교회) 김형준(동안교회) 조정대(평화교회) 목사와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선교사인 이순복 목사다. 이규현 목사는 지금도 친구의 일이라면 열심히 도와준다.
그 인연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된다. 이정삼 목사님은 나에게 종종 연락을 주신다. 내가 힘들 때면 어김없이 편지를 쓰셔서 마음을 위로해주신다. 한결같이 ‘송 목사님’이라 부른다. 호칭이 가슴을 찌른다. 나도 모르게 벌거숭이가 되어 운다. 이번에는 내가 그분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른다. “목사님~ 오래오래 사셔야 됩니더.”길고 긴 브니엘의 교훈은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안 것은 한참 뒤였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출처] - 국민일보 2019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