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빙크와 급진적 개혁파
급진적 개혁파(Radical Reformed)를 위한 바빙크 다시 읽기
<새물결플러스>에 게재된 글을 옮김
2016년 7월 7일
글_ 이승용
변혁을 위한 서론
개혁파 신학의 변혁Transformation은 가능할까? 개혁주의 전통을 만난 이후로 줄곧 따라다니는 고민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특정 “ism”(~주의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것의 난점과 비판의 지점을 알지만, 지금까지 필자를 형성한 커다란 정체성 중 하나는 여전히 “개혁주의자”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말따라 개혁주의는 몸살을 앓고 있다. 어떤 지점에서는, 적어도 내가 경험하는 인식세계에서는 그래왔다. 사회문화적 인상비평이나 오해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에서 계보학적으로 형성된 개혁주의 문화, 개혁주의 교회는 문제를 일으켜왔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복음주의’라는 용어 못지않게 ‘개혁파, 개혁주의, 개혁신학, 개혁신앙’이라는 용어도 정의하는 결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으므로, 개혁파 신학의 변혁을 말한다던지 개혁주의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거대한 주장 자체를 지금 여기서 논증할 수는 없다. 이번 세미나의 목적은 광활한 개혁파 신학전통 자체를 재전유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파 신학을 전유한 '지금 여기에서'의 신학문화를 변혁해 보려는 것이다. 개인의 전제로 국한된 문제라 할지라도-그렇지 않다는 걸 아래에서 간단히 밝히겠다-개혁파 신학전통은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전유되어야 한다.
개혁파 신학이란 16세기 종교개혁 당대 초기 개혁자들의 소중한 유산을 이어받으며, 이후에 형성된 신학체계와 신앙고백, 교회정치를 계승하는 전통을 말한다. 초기에 개혁파는 로마가톨릭, 루터파, 재세례파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개혁파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적이면서 가장 성경적인 입장을 추구하며 중세의 토마스, 초기의 아우구스티누스 시대를 통과하여 신약교회의 사도적 고백까지 연결되는 기획을 추구한다.
성경적-균형적-종합적 특징을 갖는 개혁파 신학은 17-18세기 정통주의 시대의 화려한 유산을 거쳐 다양한 교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하지만 동시에 18세기 중엽 근대철학과 이신론의 물결에 휩쓸려 정통주의 시대가 급격히 막을 내리면서 개혁파 전통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도 막을 내린다). 이후 개혁파 신학은 크게 대륙 개혁파와 청교도 개혁파로 나뉘지만 비교적 소수로 유지해왔다.
한국의 개혁파 신학 소개 과정
그렇다면 개혁파 전통은 어떻게 한국에 소개되었을까? 한국 기독교는 개혁주의 전통과는 강조점이 다른 북미 복음주의 전통의 세례를 받았다.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는 상호 교차하는 지점이 있지만 차이 또한 존재한다. 간단히 말해 개혁주의는 예정론에 근거한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을 강조한다면, 복음주의는 개인의 회심-과 사회개혁-에 근거한 영혼구원을 강조한다.
복음주의 전통과 함께 20세기 중엽 박형룡, 박윤선과 같은 신학자들을 통해 대륙 개혁파 신학, 특히 바빙크의 신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이후 이근삼, 차영배, 서철원, 최홍석, 유해무와 같은 신학자들이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하면서 네덜란드 개혁파 신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문제는 박형룡, 박윤선이 자유주의-근본주의 대립이 가장 격렬했을 당시 미국으로부터 개혁파 신학을 소개받았다는 점에 있다. 20세기 초엽 당시 미국은 구프린스턴 신학 이후로 프린스턴 장로교 신학교의 자유주의화에 큰 문제를 느끼며, 그레샴 메이첸, 코넬리우스 반 틸 등의 신학자들이 프린스턴으로부터 이탈하여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한 이후였다. 미국 내에 불어 닥친 근본주의-자유주의 간의 대립은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지나친 양극화를 초래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는 지금도 보수정통신학의 마지막 보루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에 소개된 개혁파 신학은 칼 바르트 신학에 대한 강력한 적대감을 지니고 있었다. 코넬리우스 반 틸은 자연신학에 대립적인 바르트의 그리스도로 인한 계시관에 비판적이었는데 박윤선은 그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바르트야말로 바빙크가 평생에 걸쳐 비판적으로 씨름했던 근대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신학자라는 점을 망각한 채 오래토록 보수 신학계에서 바르트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으로 공격받은 건 아이러니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바빙크 신학의 핵심적인 방법론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채 “세계적인 3대 칼빈주의자”(아브라함 카이퍼, 벤자민 워필드와 함께)라는 슬로건 아래에서만 바빙크가 소비된 지점이 있다. 이러한 개혁파 신학이 한국의 유교적-율법주의적인 교회문화와 만나면서 근본주의화Fundamental 되었다고 보인다. 하지만 개혁주의와 근본주의가 연결된 지점을 잘라내고 보다 근본적인Radical 개혁주의를 상상할 수는 없을까?
헤르만 바빙크의 생애
반 틸을 통해 소개받은 신학의 방법과 달리,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는 개혁파 신학을 전개함에 있어서 시종일관 포용적이다. 바빙크가 살던 19세기 말은 근대철학의 정점을 찍던 시대였다. 당시 네덜란드의 국가교회로부터 이탈한 소수 분리측 개혁교회의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난 헤르만 바빙크는, 평생에 걸쳐 근대철학과 자유주의 신학과 상대해야 했다. 다행히도 아브라함 카이퍼로부터 칼빈주의 신학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된 시기에 바빙크는 여러 동료 신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대 근대철학과 자유주의 비평학의 산실이었던 국립 레이든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곳에서 탁월한 자유주의 신학교수들로부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신학 방법론을 배우게 된다. 이후 짧은 목회기간을 뒤로하고 교단신학교인 캄펜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개혁교의학>을 저술하며 분리측과 애통측 개혁교회의 연합을 위해 교회정치에 뛰어들었으나 큰 상처만 받기에 이른다. 시간이 흐른 뒤 아브라함 카이퍼가 설립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 카이퍼의 후계자로 신학 교수가 되면서 평생을 강의와 저술 작업에 힘쓰면서 구약학, 윤리학, 교의학, 철학 등 다양한 분과에 매진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바빙크 신학 급진적으로 읽기: R.A.D.I.C.A.L
R: Reappropriation, 재전유
앞서 잠시 살펴본대로, 한국의 개혁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다른 진영을 향한 적대적이고 근본주의적인 태도와 방법론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새로운 길이란 이전에 존재하지 않는 길을 개척하는 방식이 아니라, 훌륭한 전통을 현 시대에 걸맞게 재전유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재전유Re-appropriation란 “한 기호가 놓여 있는 맥락을 변경함으로써 그 기호를 다른 기호로 작용하게 하거나 혹은 다른 의미를 갖게 하는 행위를 수반”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신학에 적용해 보면, 지금까지 흘러온 바빙크 신학의 계보학적 맥락의 장단을 고려하여 놓친 지점을 찾아내고, 새로운 맥락을 설정함으로서 개혁파 신학을 복구시키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종교개혁 전통에 충실한 개혁파 신학의 핵심 경구 중 하나인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 안에 이미 내재된 길일 것이다. 개혁파 신학은 오직 전체성경의 원리를 숙고하여 개혁파 신학을 넘어서야 한다.
A: Academic(philosophical), 학문적(철학적)
바빙크는 역사적으로는 헤겔을, 윤리(철학)적으로는 칸트를, 심리(신학)적으로는 슐라이어마허를 상대해야 했다. 당대 최고 학자들의 이론이라는 장 안으로 들어가 합리적인 논쟁을 펼쳤다. 개혁파 신학은 신앙주의Fideism로 함몰될 수 없다. 믿음과 고백, 신앙의 영역은 존재하며 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바빙크는 학문의 원리로서의 개혁파 신학이라는 근대적 작업에도 몰두한 신학자였다. 바빙크 신학의 서론prolegomenon은 당대의 철학적 원리를 반영하여 신학을 전개한다. 바빙크가 레이든 대학에서 근대철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위대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개혁교회와 개혁신앙 내에 여타 다른 신학전통이나 세속사상에 대한 적대감과 분리성을 드러내는 것을 본다. 바빙크는 그러한 개혁주의자들에게 학문의 광장 한복판으로 들어갈 것을 권한다.
D: Doxology, 송영적
바빙크의 신학은 모든 부분에서 삼위 하나님을 향한다. 그는 철저히 이성적인 방법론을 추구했지만 신학이 관념적이거나 사변적인 자리에 머물러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신학은 삼위 하나님께 경배를 올려 드릴 때에만 합당한 자리에 있는 것이다. 계몽주의 이후 학문의 세분화로 인해 신학의 통합적인 측면과 송영적인 측면은 약화되고 학문분과 내에서의 체계로서 자리하게 된다. 그러나 바빙크에게 있어 신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은 예배에 있다. 신학은 송영이다.
I: hIstorical, 역사적, 공교회적
신학은 역사를 통과해야 한다. 역사적적으로 새로운 신학 이론은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존중할 때에야 지혜로운 신학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바빙크는 신학의 모든 주제마다 과거 거인들의 어깨를 빌린다. 성경의 저자들, 사도들, 교부들, 서방-동방 지도자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칼뱅, 정통주의 신학자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바빙크의 신학 방법론은 역사적인 발생적-종합적 방법론이었다. 바빙크의 방법론으로부터 ‘통합적 신학’의 탁월한 모델을 볼 수 있다. 개혁파 신학이 진정 성경적-통합적 신학이라면 최첨단 학문의 이론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탁상공론이 아닌, 시대정신을 꿰뚫는 사상을 철저히 연구함으로 개혁파 신학의 변증과 고백이 가능하다.
C: Catholicity, 보편적 신학, 교회를 위한 신학
바빙크는 개혁파 신학이 우주적 공교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속에서 신학을 추구한다. 개혁파 신학은 16세기 개혁자들로부터 시작된 전통이 아니라 성경적 공교회가 존재한 모든 역사와 연결된 보편적 신학을 향한다. 예정론이 칼뱅으로부터, 이신칭의가 루터로부터 발견된 것도 아니다. 역사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보편 교회는 뿌리내리고 존재해왔다. 바빙크로부터 오직 성경으로부터 개혁된(혹은 개혁하는) ‘보편적 개혁파Catholic Reformed’를 발견할 수 있다. 개혁파 전통은 태동부터 보편교회를 주장했다.
A: Revelation, 계시 의존적
바빙크의 신학은 계시 의존적이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신학을 출발한다. 우리는 바빙크에게서 특별 계시Special Revelation와 일반 계시General Revelation의 균형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일반 계시의 차원에서 보편적 경험과 종교에 기반한 논증을 강조한다. 바빙크는 세상 모든 만물 중 하나님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신칼빈주의Neo-Calvinism’ 전통의 주창자답게 개혁파 신학의 렌즈를 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시키도록 돕는다. 칸트의 용어를 빌려, 소위 개혁파 신학이 전체 세계를 바라보는 ‘세계관’으로 확장시킬 수 있게 된 점도 바빙크의 신학이 한몫을 차지했다. 바빙크는 세상 모든 지식과 경험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계시 의존적 신학을 추구했다.
L: Humble, 포용적인
바빙크는 겸손한 개혁파 신학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시종일관 차분하게 최신의 과학적, 심리학적, 사회문화적 발견을 포용한다. 바빙크는 아무리 도전적인 이론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우선 거부할 필요가 없음을 계속 강조한다. 신학이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신학이라면 그 모든 피조물인 이론을 설명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빙크는 로마 가톨릭, 자유주의 신학 뿐 아니라 이슬람과 같은 타종교에도 포용적이고 다원적인 자세를 취한다. 고집불통, 전통주의자, 유아독존 식의 꼬리표가 따라붙는 일부 개혁주의 진영과는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Radical Reformed를 향하여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가해자 진영에는 제국주의에 물든 대륙 개혁파가 존재했다. 그러한 개혁파의 과오를 극복한 것은 다름 아닌 남아공의 토착화된 ‘개혁파 신학’이었다. 개혁파 신학은 오로지 개혁파 신학으로부터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제임스 스미스는 탈근대 시대야말로 고대 정통주의 신학의 길로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며 급진 정통주의 전통과 신칼빈주의 전통의 연대를 주장했다. 그보다 일찍히 리처드 마우는 칼빈주의가 어떻게 현 시대에 적합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우리는 지금 여기의 상황에서 어떻게 개혁파 신학의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Radical이라는 말은 뿌리로 돌아간다는, 즉 ‘근본적’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 래디컬 바빙크 혹은 래디컬 개혁파는 다른 뜻이 아니다. 종교개혁을 촉발시킬 수 있었던 사상의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 시작하자는 요청에 다름 아니다. 개혁파 신학은, 가장 개혁파 다울 때에야 비로소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헤르만 바빙크, 존 볼트, <개혁파 교의학>
론 글리슨, <헤르만 바빙크 평전>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제임스 스미스, <급진 정통주의 신학>
제임스 스미스,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
리처드 마우, <아브라함 카이퍼>
리처드 마우, <칼빈주의, 라스베가스 공항을 가다>
토드 빌링스, <그리스도와의 연합>
고든 스파이크만, <개혁주의 신학>
마이클 호튼, <개혁주의 조직신학>
우병훈, <예정과 언약으로 읽는 그리스도의 구원>
박재은, <칭의, 균형 있게 이해하기>
한병수,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 서론>
이동영, <바빙크를 만나다> (새물결 아카데미 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