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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 교수 논문발표(2011.5.28. 성서대학교): 주제 - WCC의 성경관


세계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칼 성경관’


최덕성 교수(전 고신대)는 제22차 한국복음주의 조직신학회(2011.5.28. 한국성서대학교)에서 ‘세계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이라는 제목의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고백과 상반되는 이러한 요소와 특징들로 구성된 WCC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은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관과 성경해석 방법, 신정통주의 성경관, 급진주의 신학 사상을 엮어 짠 것으로, 성경을 역사서와 문학서와 동일하게 여기며, ‘의심의 해석학’ 원리에 따라, ‘상호존중의 원칙’으로 해석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명백하게 가르치는 진리도 의심하고, 상대화 하게 하며, 로마가톨릭교회를 포함한 교회들의 ‘일치를 위한 일치’를 모색한 나머지 ‘오직 성경’이라는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정박지(碇泊地)를 희생시키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세계 개신교 인구 절반 정도로 추정되는, 복음주의 교회들을 배제하거나 그 교회들과의 일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논한다. 합산(合算)의 방법으로 접근하다가 감산(減算)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입증한다.

아래의 글은 위 논문에 대한 비평적인 건의를 받아들여 다듬어 실은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 제10장의 맺음말이다. WCC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의 골자이다. 역사적 기독교의 성경관과 무엇이 어느 정도로 다른가를 간명하게 알아보게 한다.



맺음말: WCC, 개신교 신앙의 정박지를 떠나다

 

I

‘에큐메니칼 성경관’의 특징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정통주의 성경관과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관과 급진주의 사상으로 엮어져 있다. 신정통주의 성경관이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성경을 역사서와 문학작품과 같은 방법으로 취급하는 것은 자유주의 신학과 급진주의 성경관의 특징이다.

(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성경은 절대적인 진리의 말씀도 아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지 않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산물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것을 증언하는 수단이다. 성령의 영향력 아래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복음이 된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부여한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책이다.

(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수단이다. 그것을 읽는 독자의 실존적 체험이 계시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적인 에큐메니칼 성경해석이야말로 성경을 계시화 하는 작업이다.

(4) 성경은 무오(無誤)한 말씀이 아니다. 성경은 문학서,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오류 있는 인간의 책일 뿐이다. 상대적인 권위를 가질 뿐이다. 성경은 성령 하나님에 의해 영감된 말씀도 아니다. 영감된 말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은 현대인의 삶의 이야기들의 의미를 가늠하게 해 주는 척도인 ‘영감된 증언’(inspired testimony)을 담고 있을 뿐이다.

(5) 성경은 전통의 산물이다. 성경의 본문들은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의 일부이다. 따라서 진리는 ‘해석학적 에큐메니칼 수렴’을 거쳐야 하고, 정합성의 해석학과 의심의 해석학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6) 성경의 권위는 성경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에 달려있지 않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그것에 권위를 부여하기에, 성경이 교회의 신앙문서이기 때문에, 성경이 독자와 하나님의 말씀과 만남의 도구이기에 권위를 가진다. 성경 그 자체는 부수적인 권위만을 가진다.

(7) 성경은 신앙과 생활의 최종적인 규범이 아니며 표준이 아니다. 성경은 기독신자에게 부과된 신행(信行)의 규범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답도 아니며, 신행의 표준도 아니다. 독자의 특별한 경험-체험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성경은 기초적인 규범과 시금석이 된다.

(8) 자기의 성경관과 성경해석을 고집하면 다양한 형태로 역사하는 성령의 진리를 짐짓 상실할 수 있다. 기독교 공동체의 통일성과 다양성은 모두 다 성령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러므로 “다른 교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교회는 다른 교회들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진리를 상실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9) ‘오직 성경’ 원리에 연연하고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며 성경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세계 교회 일치의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성경이 가르치는 분명한 진리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모든 역사적인 교회들의 전통과 성경해석을 용인,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10) 기독교 신앙은 성경을 통해 전달되는 것만이 아니라 구전, 전승, 전통, 성전을 통해 전수되었고, 지금도 되고 있다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그 전통론은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되지 않는다.

II

WCC가 2006년에 작성한 “교회의 본질과 사명”(The Nature and Mission of the Church)은 이 단체의 성경관에 변화가 없음을 보여준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 중심을 두고 있고, 그것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신적(神的)인 말씀은 성경을 수단으로 하여 증언되고 들려지고, 그 말씀은 교회의 설교와 증거와 행동 안에서 들려지고 선포되어진다고 한다. 이 문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이 아니다.

WCC의 신학과 성경관의 배후에는 역사적 기독교가 유지해 온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형태—패러다임이 작용하고 있다. 진리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절대적이지 않고 보편적이지도 않다. 성경이 진리를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는 1세기 지중해 연안의 세계관과 진리관을 반영한다고 지탄한다. WCC의 상대주의 진리관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보면 각 종교, 종파의 진리와 문화의 이데올로기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것들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인정해 주고 상호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진리가 참 진리라면 진리의 특성상 그것은 절대적이며 배타적일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주어진 진리라면 그것은 절대적인 것일 수 있지 않은가? 정통신학은 특별계시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무오한 진리라고 믿는다. 계시는 초자연적이며, 초역사적이며, 인간이해의 범주를 넘어선다. 진리는 절대적이며 고정되어 있고 불변하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교리들은 비평적으로 분석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WCC는 이러한 전통적 성경관을 거부한다.

WCC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은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 급진주의 신학의 성경관을 엮어 짠 것으로, 로마가톨릭교회와 가시적 교회일치의 방법을 모색하고, 모든 형태의 역사적 교회들을 포용하는 단일화에 몰두한 나머지 종교개혁신학에 충실한 복음주의 개신교회들과 일치할 수 있는 신앙의 정박지를 떠나고 말았다. 개신교회들의 협의체로 출범한 이 단체는 ‘일치를 위한 일치’를 추구한 결과로 ‘오직 성경’ 원리에 충실한 교회들, ‘인간들의 전통’을 계시로 인정하지 않는 복음주의와 개혁신학을 고백하는 개신교회들과 일치할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상호존중이라는 합산의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배타적인 감산의 결과를 낳았다. ‘멧돌 잡으러 갔다가 집돌 잃은 격’이 되었다.

에큐메니칼 성경관에는 개신교회의 성경해석의 기초인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신학 원리가 설 자리가 없다.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진리들도 ‘의심의 해석학’의 대상이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결과적으로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와 그것에 토대한 성경적 진리탐구와 그리스도 구원 유일주의 신앙을 모호하게 만든다. 성경의 권위를 성경 자체의 신적 성질, 교리의 유효성, 문체의 장엄성, 모든 부분의 일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경 전체의 목적, 인간 구원의 유일한 방법을 보여주는 충분한 발견, 여러 가지 비교할 수 없는 탁월성, 전체적 완전성 등에서 찾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며, 무오하지도 않으며, 특별계시의 말씀도 아니라고 본다.

에큐메니칼 성경관과 성경해석학이 다양한 개신교회들과 정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가시적 교회일치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도한 목표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통론’을 영리하게 고안하고 상호존중의 해석학을 강조함에도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회에 대한 교리의 일부 측면에 관한 몇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과 해설’(2007)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종래의 교회관을 바꾸지 않았으며, 바꿀 의도도 없었다고 천명했다. 로마는 그리스도가 준 ‘온전한 일치’를 이미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참 교회가 아닌 ‘개신교 신앙공동체들’이 로마의 교황좌 아래로 귀정(歸正)하는 것만이 진정한 일치의 길이라고 본다. 로마는 ‘한 양떼 한 목자’라는 중세기 원칙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 성경에 기초를 둔 진리 안에서의 일치도, 일치를 위한 일치를 추구하는 합산이나 감산의 방법도, 포용주의 에큐메니즘도 배격한다.

에큐메니칼 성경관은 이 단체 산하 기구들의 신학 작업과 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상황신학, 흑인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의 연구를 돕고, 타종교와의 대화 위원회의 방향을 제시했고, 성령 하나님의 구원하는 역사가 타종교에도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게 하고, 타종교인과의 ‘대화’에서 참 진리를 찾고자 하는 종교대화주의를 고무시킨 것으로 보인다. 양두구육과 같은 에큐메니칼 성경관을 하나의 말마디로 ‘성경불신주의’라 일컬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WCC의 성경관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마음을 넓혀 포용해야 하는 기독교 신앙의 주변적인 것인가, 아니면 배격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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