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국가지배 저항사

by reformanda posted May 3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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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서울


교회의 국가지배 저항사

 

1. 장로교 언약도


'교회의 바벨론 포로 시대'는 로마교회의 교황청이 1309년부터 1376년까지 프랑스 아비뇽에 머물렀던 73년 동안 세속 권력의 꼭두각시 역할을 한 시기를 일컫는다. 교회가 프랑스 왕권에 굴복한 것을 고대 유대인의 바빌론 포로시기에 빗대는 표현이다. 이 시기의 일곱 명의 교황들은 이족의 땅에 머물며 국왕의 괴뢰(傀儡) 역할을 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교황권과 로마교회의 비성경적 미신적 교리 반박하며 쓴 글 가운데 하나가 교회의 바벨론 포로”(De captivitate Babylonica Ecclesiae, 1520)이다. 교황제국 이상을 가진 교황청권려과 정치적 종교적 절대권을 추구하는 교황주의에 의해 교회의 자유가 박탈당하고, 성찬과 세례가 왜곡되고 포로상태인 것을 일컬어 교회의 바벨론 포로라고 명명했다. 루터는 교황청을 베벨론 왕국에, 신도들을 포로에 비교했다.

 

교회의 바벨론 포로됨을 거부하고 독자성을 확보하려고 투쟁한 사람들이 많았다. 투쟁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순교했다. 스코틀랜드장로교회 언약파 신자들은 1638년경부터 교회의 바벨론 포로 거부 운동을 펼쳤다. 스코틀랜드의 국왕이 1638년에 왕권신수설 곧 “짐은 국가의 머리이고, 교회의 머리이다하고 선포하자 16382281,200명의 성도들이 에딘버러 그레이프라이어스(Greyfriars) 교회당 앞뜰에 모여 육필 신앙고백문에 서명을 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공포하고 교회와 신앙에 관한한 국왕의 머리됨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내용의 언약문, 고백문이었다국가권련의 교회 간섭에 저항한 이들은 성경만이 신학과 신앙과 삶의 유일한 표준이라고 천명했다. 상당수 목사들, 일부 하원의원, 귀족, 남작, 공민, 평민, 장관 등이 생명을 걸고 저항했다.

 

교회의 바벨론 포로 거부운동에 가담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언약파 구성원 약 18,000명은 처참한 형태로 순교했다. 목이 잘리거나 배가 갈라지고, 굶어죽고, 동사했다. 지붕 없는 감옥에 갇혀 추위와, 굶주림으로 모두 순교했다. 순교자들의 시체는 에딘버러대학교의 해부학교실로 보내져서 해부학 자료로 사용되었다. 이 때 로마가톨릭교회와 영국국교회(성공회)는 장로교 언약파 신도들을 박해하는 데 가담했다.

 

2. 신사참배거부운동


한국에서도 교회의 바벨론 포로 거부운동을 펼치다가 옥고를 치르고 수난을 당하고 순교한 크리스천들이 있다. 한국장로교회가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약 6년 동안 일제의 국가권력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솔선수범 배교 행위를 할 시기였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은 국가가 강요하고 교회가 솔선수범하는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펼쳤다. 국가와 기존 교회에 대한 저항운동, 정치운동, 신앙운동을 펼쳤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의 동력(動力) 한상동 목사, 이기선 목사, 채정민 목사 등은 당대의 교회의 바벨론 포로 거부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다가 약 6년 동안 옥고를 겪었다. 순수 교회 재건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가담한 상당수 신도들이 순교하거나 옥살이를 했다. 만주지역의 신사참배거부운동은 '장로교인 언약'이라는 신앙고백문서를 만들어 발표했다.


신사참배거부운동에 가담하지 않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도 있었다. 평양 산정현교회의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거부운동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순교했다.

 

3. 서울 사랑의교회


대한민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젊은 시민들은 전통적 교회를 마치 교황 중심의 권력형 집단에 빗대어 비아냥거리곤 했다. 과잉 민주화 시대가 낳은 병폐의 진목 면이다. 민주화운동은 점차 권력화 양상을 띠어 교회를 바벨론 같은 이념에 종속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점차 낭만적 사회주의로 가울어졌다. 사회주의는 교회를 통제, 장악, 지배하고 포로로 삼는 정치 이데올로기이다. 종교 성직자 납세, 차별금지법, 동성애자 인권보호 등의 채널을 통해 교회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서울 사랑의교회의 담임목사직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중세기 교회의 바벨론 포로 시대를 연상하게 했다. 신도들이 국가 개입을 요청한 사건이다.


사랑의교회의 분쟁은 퇴임한 전임 목사 옥한흠이 2012년경 후임 담임 목사 오정현을 추방하려고 논문표절 건을 조사하게 한 데서 시작되었다. 오정현의 위임 목사 자격 시비로 이어지고, 세속 법정 송사로 비화되었다. 민주화라는 세속적인 시대흐름에 가담한 '신도들'이 성경이 명백하게 금하는 기독인 간의 송사(고전 6:1-8)를 거듭했다.

 

법원은 1, 2, 3심을 거쳐, 사랑의교회 담임 목사 자격 사건을 심리했고, 오정현 목사에게 해당 교단의 목사 자격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오정현은 대법원 판결 전에 교단의 목사 자격요건을 갖추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국가가 교회의 고유한 직임 건에 개입하고 판단한 전례를 남겼다. 교회의 머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을 무색하게 했다. 중세 교회의 바벨론 포로 시대와 다르지 않은 사건을 연출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대법원의 대법관이 예장 고신 소속 장로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세속적인 국가법의 집행자로 소임을 수행했을 뿐이다.

 

사랑의교회 신도 일부가 교회라는 치리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개 교회의 담임 목사 권한을 국가의 법조기관이 가타부타 판단하게 할 목적으로 세상 법정에 송사를 함은 그 어떤 이유, 논리, 변명, 구실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예장 합동이 교회법에 따라 정당하게 처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송사는 성경 고린도전서 6장의 가르침에 정면 위배된다. 교회의 머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며, 국가가 교회의 머리라는 신앙고백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바벨론 포로 상황을 자초했고,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제고했고, 기독교의 신인도를 저하시켰다. 매우 불행한 한국교회사적 전례를 남겼다.

 

3. 총신대학교와 관선임시이사회


최근 총신대학교의 이사회(관선임시이사회)는 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윤리학을 가르치는 이상원 교수에 대한 해임을 결정했다. 징계위원회의 결의를 받아 공식 통보했다. 이 건은 사소한 행정 사안 같아 보이지만, 교회가 국가의 지배 아래 있는 바벨론 포로 상태에 있는, 교회사에 기록될 심대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총신대학교의 바벨론 포로 사태는 다음 글 "총신대학교의 바벨론 포로 시대"에서 상론한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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