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義)의 복음, 의인 자긍심

by reformanda posted Apr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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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義)의 복음, 의인 자긍심


"왜 고신교회인가?: 고신교회의 계승과 도전" 11


6.2 의의 복음, 의인 자긍심

 

6.2.1 개혁신학의 두드러진 장점은 이신칭의 중심의 구원론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이다. 이신칭의는 기독교 정통 신앙의 요체(要體, hinge)이다. 고신교회 총회(2018)칭의론에 대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입장이라는 문서를 채택했다. 구원 교리를 위협하는 고신 공동체 안의 일련의 움직임과 시도에 쐐기를 박았다. 기독교의 구원체계와 바울의 가르침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이 재발견하고 고신교회 선배들이 믿어온 이신칭의 진리를 고신교회의 교리적 정체성으로 확고하게 천명했다.

 

6.2.2 고신교회가 이신칭의 주제를 공식화 한 배후에는 신학자 김세윤 박사(풀러신학교 교수, 신약신학, 전 영동교회 협동목사)와 필자 사이의 칭의론 논쟁 그리고 유보적 칭의론 또는 이신행칭의교리에 호감을 가진 고신교회 일부 구성원들의 움직임이 작용했다. 미래교회포럼(대표 박은조 목사)의 칭의론 세미나(2016)의 선전 글귀에는 이신칭의 교리가 기독인들에게 세상에서 방탕한 죄의 삶을 살게 하고, 죄를 지을 면허증 또는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걱정이 넘친다. 고신교회는 행위구원교리의 도전 조짐에 단호히 대응했다. 교회 밖에서 전개된 칭의론 신학충돌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역전시켰다.

 

6.2.3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은 로마가톨릭교회 의화론(義和論)의 짝퉁이다. 프로테스탄트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한 트렌트공의회(1547) 칭의론과 다르지 않다. 김세윤 주장의 요지는 칭의를 받은 자도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으며, 물세례로 얻은 칭의를 신자가 자기 선행으로 완성시켜야 심판대 앞에서 완전한 의를 얻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주장이 진리왜곡과 복음전도를 심각하게 방해함을 인지하고서 문제점을 지적한 글을 지상에 발표했다. 이듬해 트렌트공의회 칭의론과 칼빈의 해독문(解毒文): 김세윤의 칭의론과 관련하여를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학술회와 리포르만다(기독교사상연구원) 학술회에서 발표했다.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이 트렌트공의회의 칭의론과 동일하며, 이를 약분(約分)하면 행위구원임을 증명했다.

 

6.2.4 고신교회의 실제적인 첫 번째 도전 과제는 하나님의 칭의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진리에 대한 확실성이다. 이 교회는 하나님이 주는 믿음으로 칭의를 받은 자는 구원의 반열에 들고, 즉각 하나님의 자녀 신분을 획득한다고 믿는다. 고신교회의 대적인 사탄은 이 교회와 구성원들이 율법에 예속되기를 원한다. 현재 완료형 시제의 의()를 우리가 알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율법을 지키고 행함으로 의를 완성할 수 있다고 유혹하여 계속 좌절 상태에 두려고 한다. 죄를 짓지 않으려 애쓰는 기독인의 노력과 죄를 지을 힘을 주는 사탄의 세력은 직결되어 있다.

 

6.2.5 사탄은 은혜의 선물, 의의 선물 주변에 울타리를 쳐 기독인이 그것에 자긍심을 갖거나 누리는 일을 방해한다. 법정적 의(Juridical Righteousness)와 실천적 의(Practical Righteousness)를 구분하도록 유혹한다. 설령 하나님의 은혜 또는 물세례로 칭의를 받았어도 실천적 의의 완성이 비로소 우리를 구원의 문으로 인도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바울은 인간 자력으로 자기 의를 얻어야 한다거나 의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현대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전면 거부한다. 우리의 신분은 둘 중의 하나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여 의롭게 되었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 이상은 없다. 성경은 믿음이나 물세례로 지위적인 의를 얻고 계명 준수와 선행 곧 실천적 의를 행함으로써 실제적인 의를 얻게 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6.2.6 하나님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 은혜의 선물을 그냥 주셨지 조건을 내걸고 주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벽하게 사랑하신다. 우리가 받은 의는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선물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노력과 공로를 요구하지 않는다. 조건을 요구하는 선물은 진정한 의미의 선물이 아니다. 롤스로이스 최고급 자동차 한 대를 선물하면서 죽을 때까지 매달 100만원 씩 지불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짜 선물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유지하려고 남은 평생 동안 율법을 지키고 선행으로 완성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뿐더러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에는 행위 조건이 없다. “의의 선물”(5:17)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베푸심의 결과이다.

 

6.2.7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과거와 현재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는다. 미래에 짓게 될 지도 모를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법정적 근거가 확보된다.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순간, 영접하는 순간, 고백하는 순간,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깨끗이 씻긴다. 이신칭의는 고신교회의 존재 의의와 직결되어 있다. 이 교회의 선배들이 고백했고 물려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장래의 고신교회가 전수하고 계승해야 할 신조이다.

 

6.2.8 고신교회 구성원들은 예수의 십자가 대속사역을 통해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사람들이다. 예수를 통해 얻은 완벽한 의의 예복을 입고 있다. 우리의 의는 예수께서 살 찢고 피 흘려 산 선물이다. 기독인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자로 서 있고, 마지막 심판대에서 의인으로 통과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지금 고신교회 구성원들이 의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신다.

 

6.2.9 의를 선물로 받은 자가 그 의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죄를 압도하는 하나님의 복음의 위대함에 감동하면, 고신교회가 전통으로 유지해 온 생활의 순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선물로 받은 의에 대한 기독인의 확신은 맹렬하게 죄를 멀리하고 적극적으로 반대하게 한다. 고신교회 일부 구성원들이 이신칭의를 죄를 지을 면허증으로, 면죄부로 이해함은 은혜의 선물, 의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율법주의 사고구조를 유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6.2.10 율법은 행복헌장이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율법을 배우는 노력은 항상 필요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율법이 한 명의 영혼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신칭의 교리는 죄를 짓게 하는 면죄부, 면허증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멀리하게 하는 강력한 힘을 제공한다. 기독인이 하나님의 은혜의 폭과 깊이를 철저히 깨달을수록 죄를 압도하는 자신의 능력이 강화된다. 자신이 의인의 신분이라는 자각이 강하고 분명할수록 죄의 지배에서 벗어날 힘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의에 대하여 자주 설교할수록 죄를 억제하는 능력이 고조된다. 복음-하나님의 사랑-은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더 많이 설교하면 의의 신분을 획득한 기독인의 자존감-자긍심(self-esteem)이 높아진다. 자기의 의인 신분에 대한 자긍심은 기독인을 윤리적 실천, 성화의 삶에 매진하게 한다.


최덕성, "고신교회의 계승과 도전," 제2차 고신포럼 힉술회 발표논문 일부 (2020.2.17. 프레지덴트호텔 서울)


최덕성 박사(현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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