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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 과연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세계교회협의회(WCC)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매특허 낸 듯이 사용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회적 활동, 윤리적 실천, 이상사회 건설 등 비종말론적이고 세상적인 무엇으로 이해한다. 지난 해 부산에서 선포된 WCC의 새로운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2012)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상적 세상 만들기 활동을 똑 같은 것으로 여긴다. 한국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하나님 나라 개념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듯 하다.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죽음의 독이 한국교회에 깊숙이 침투했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설교자들의 메시지, 신학자들의 대화, 교회일치운동 선언문, 기독언론 보도문 등에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하는 최대의 가치이다. 그러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마다 이해가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


아래의 글은 필자가 신학 초년생 때 쓴 것이다. 당시의 한국교회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천당으로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미래에 도래할 신국으로 인식하는 것이 지배적이엇다. 이 글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체적을 조망하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enjoy)하는” 삶(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 제1)의 중요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추구하는 것과 다른 개념의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면서도, 현재성을 강조한다.


(원제: 천국이란 무엇인가?)


기독교는 천국(하나님의 나라) 운동이다. 천국은 기독신자의 소망이며 현실이다. 성경 전체에 깔려있는 주제이다. 특히 신약성경에 나타난 우리 주님의 사역과 메시지의 중심 주제는 천국이었다. 이 천국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은 기독교 안에서 늘 있어왔다. 근래에 서구신학계는 이 문제를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시키고 있다.

 

우리 한국 기독인들은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죽은 다음에 가는 저 세상으로 이해해 버리는 데 커다란 문제가 있다. 한국 기독교는 수세기 동안 토착화된 샤머니즘과 불교, 유교, 도교 등 이방 종교 영향권 안에서 성장하면서, 특히 윤회사상을 가진 불교의 열반, 극락 관념 등의 영향으로, 천국을 마치 저 세상으로, 그것도 행위에 대한 인과응보와 관계되는 다음 세상으로만 인식하여 다른 종교가 말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이 이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신비적 경향이 강한 교회들과 세대주의자들은 지나친 종말론을 앞세워 타계주의 또는 염세주의적 신앙에 빠진다. 현실을 저주, 무시하고, 오직 내세 또는 저 천국만 바라는 나머지 현실에 주어진 책임과 축복을 도외시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글은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중심으로, 성경이 천국을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1. 천국 이해에 대한 역사적 고찰

 

천국(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를 더 잘 하기 위해서는 천국관의 역사적 고찰이 매우 필요하나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어거스틴은 그의 신국에서 하나님의 나라 개념을 잘 표현했으나 완전하다고 볼 수 없다. 슈바이처, 리츨 등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천국의 미래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너무 현재성만을 강조한다. 천국을 사회적, 윤리적, 비종말론적인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비롯된 그릇된 종파들은 지상천국의 실현을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신학자 칼 바르트는 천국을 비역사적, 비시간적, 찰나적인 것으로 본다. 도드는 실현된 종말론에 기초를 두고 해석한다. 오스카 쿨만은 변증법적 시간의 긴장관계로 설명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성경에 충실하지 않은 점이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으면서도 이 보다는 인간의 사변적 철학적 사상을 딛고 서서 그 위에 하나님 말씀을 끌어 들인다. 여기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태도는 비평적 취급이 빈약한 상태이고, 종말론적 사상이 농후하여 천국(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소홀히 취급하고 있는 형편이다.

 

2.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신국, Kingdom of God)라는 용어는 마태복음에 4, 마가복음에 4, 누가복음에 32, 요한복음에 2, 사도행전에 6, 바울서신에 8, 요한계시록에 1번 나타난다. 하늘나라(천국, Kingdom of Heaven)는 마태복음에 33, 요한복음에 1, 히브리서에 11번 나타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이란 말을 직접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습관을 따라, 마태는 하늘나라(천국)라고 하였다. 이 두 표현은 결국 같다. 그리스도의 나라도 동일한 의미이다.

 

천국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면, 우선 나라’(Kingdom)의 의미를 살펴봐야 하겠다. 나라는 본래 한 왕이 그 권위를 시행하는 영역(a realm)이. 요즈음의 영연방(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이 그 예이다. 그러므로 왕으로 원수를 삼은 국가 또는 왕국 또는 지배(dominion),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는 첫째로 왕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백성과 신하 각료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의를 가지고는 성경이 말하는 천국의 올바른 개념에 도달할 수 없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나라에 대한 일차적 의미는 왕에 의하여 실행되는 신분, 권위, 주권(sovereignty), 그 주권이 권위를 행사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그 영역에 속한 백성이나 각료는 이차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시편 103:19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한다. 시편 145:11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능력(Power)이다. 다니엘 2:37, 5:26은 왕의 통치를 의미한다. 마태복음 10:15, 누가복음 16:11, 12하나님 나라는 그의 왕직, 그의 통치, 그의 권위를 말한다. 마태복음 6:33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그의 지배를 구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시되어질 영역이 없는 지배는 없다. 성경은 천국을 현재 들어갈 영역으로 묘사한다. 마가복음 9:47과 같은 구절은 미래의 천국을 말한다. 이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만 경험할 수 있는 영생과 동일한 측면의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10:23, 14:25, 7:21).

 

이상의 설명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a. 성경의 어떤 구절은 천국을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적 지배(reign, dominion)을 의미한다.

 

b. 성경의 어떤 구절은 하나님의 복의 지배를 체험하려고 지금 들어갈 수 있는 영역(realm)을 의미한다.

 

c. 성경의 어떤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 임하는 미래의 한 영역(a future realm)을 의미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통치나 지배 영역의 상태는 어떠한가? 다시 말하면 천국을 무엇인가? 성경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간결한 정의를 내리고 있지 않다. 다만 그 나라에 들어오라는 초청과 요구만 있을 뿐이다. 다음과 같이 집약하여 생각할 수 있다.

 

a. 한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은 그 나라의 법률을 받아들이고 지켜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b. 그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각자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c. 그 나라에 대한 이 개념은 어떻게 그 나라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가를 설명해 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사람은 누구나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의 완성은 아직도 미래에 속하며 여전히 인간의 기도와 인간의 목표이다. 천국은 인간의 노력으로 임하게 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무엇이 아니다.

 

d. 천국은 예수님과 더불어 임했고 또 와야 했다. 그가 오시기 전의 시간과 오신 이후의 시간은 달랐다. 예수님은 그의 능력을 통해 천국이 임했음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다. 천국은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뤄진 상태 속에 실현될 것이다(6:10).

 

3. 미래의 천국

 

천국은 하나님의 뜻의 실현과 동반되는 축복을 누리는 권계(權界) 또는 영역이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현세에서 완성된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신자의 부활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와 궁극적 실현은 역사 건너편에 있는 새롭고 바른 질서가 존재하는 곳이다(20, 21, 22). 그곳은 이 세상과는 다른 오는 세상”(12:32)이다. 현세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세계이다(1:4, 2:1-2, 5:19-27, 고후 4:3-4).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나타나고 구원의 완성과 복의 전개는 내세에 속한다.

 

그러면 영생이 도래할 세상에 속하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 비로소 천국이 시작된다면 우리는 그때까지 구원도 영생도 얻을 수 없단 말인가?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미래의 천국은 근본적으로 역사의 건너편에 장소성을 가지고 임할 하나님의 영원하고 완전한 통치이 영역이다.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곳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벌써 임했으며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때에 구원과 영생도 이미 주어졌음을 가르친다(2: 1-9).

 

4. 도래한 천국

 

완전하고 영원한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장차 영광 중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 구절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에 올 뿐만 아니라 현재에 와 있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체험할 수 있고 그 나라의 생활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6: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라고 한다. 현세에서 우리가 내세의 능력을 맛본다고 하였다. 맛보는 것은 약속보다 나으며, 현실이며, 경험이다.

 

그리스도는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하려고 오셨다(1:4). 로마서 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한다. 이 악한 세대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이 세대를 본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내적 변화를 체험해야 가능하다. 이는 악한 세대로 들어오는 오고 있는 세대의 능력의 결과이며, 능력 그 자체이다. 이 두 가지 세대가 겹쳐 함께 존재함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 구원과 교회를 이해할 수 있는 근본 도리이다.

 

이 세대는 오는 세대를 포함하고 있다. 두 줄이 겹쳐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이 악한 세대 가운데서도 우리는 천국의 현재적 측면을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신학자 헤르만 리덜보스(H. Ridderbos)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a.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15). 예수님의 이 말씀 가운데 나오는 때가 찼다는 말은 그 나라가 완성 단계에 들어간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 세례요한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했으나 주님은 때가 찼다고 하였다(4:18,19, 61장 참고).

 

b.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노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1:12). 이 말씀은 천국,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 곧 현재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요한은 지금 다가오는 미래적 측면의 천국 입구에 서서 우리를 옛 시대에서 새 시대로 인도하고 있다. 요한은 사치와 안위를 거부하고 금욕적 생활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혼인집을 찾아갔고,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었다. 그의 반대자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비난할 정도로 먹고 마셨다. 금식에 대한 태도도 유태인과 같지 않았다(9:14-17). 예수님과 함께 새 시대가 도래했다.

 

c.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 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16:16). 이 말씀에 따르면, 천국은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임했으며(과거), 오늘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임하고 있다(현재).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의 활동들에서 천국,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음을 볼 수 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 11:21). 여기의 임하였다는 완료형이다. 사탄의 통치가 깨어지는 위대한 순간이 도래함과 동시에 천국 도래의 시작을 말하고 있다(4:13, 12:43-45, 8:29, 1:24, 5:7, 4:34, 8:28-31, 10:18, 19 등 참조하라).

 

그리스도의 이적들은 그 나라의 권세와 그 나라의 현재적 임함을 증거한다(4:23, 11:12, 15, 13:6). 특히 죽은 자를 살리신 이적은 그 나라의 구원이 최고 절정에 달했음을 말해준다.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 메시지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것은 미래에 도래할 천국 뿐 아니라 더욱 이미 임하여 존재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와 산상보훈의 교훈들은 천국과 천국 백성들의 새로운 지침이다. 이것들을 미래적인 무엇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 비유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크게 강조한다.

 

천국,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우리가 미래의 어느 날 완전히 주어질 구원을 현재에 이미 소유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을 받은 사람들이 기뻐해야 할 선물이다(12:32, 21:43, 10:12, 25:34). 기독신자의 구원은 미래에 이뤄질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라고 함은 기독인이 현재 구원을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5:24)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신학자 박윤선 교수는 위 성경본문을 신자가 현세에서 부터 영생을 소유했다는 뜻이다라고 주석한다. 요한복음 5:24사망에서 생으로 옮겼느니라옮겼다3인칭 단수 완료형으로 기술되어 있다. 옮겨져서 지금 영생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표현되었다. 이 점에 유의하자.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1)라는 가르침의 너희 안에 있다”(in the midst of you, among you), 무리들 가운데 있는 예수님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일 수 있다. 무리들 가운데 있는 예수님 자신의 오심은 곧 천국, 하나님 나라의 도래(coming)라는 뜻이다.

 

맺음말

 

성경이 말하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신자가 죽어서 가는 저 세상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천국은 임했고,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임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 심판과 함께 완전하고 영원한 천국은 임할 것이다. 천국은 3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근본적으로 역사의 저쪽에 있으며 장소성이 있는 미래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현세에서 그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맛보고 체험하며 승리하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에게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더욱 중요하다.

 

현재의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오고 있는 세대의 능력이 이 악한 세대에 들어와 겹쳐져 있는 상태이다. 천국은 예수님의 임재와 동시에 시작되었다. 지금도 예수가 구원자라고 하는 복음을 믿는 자는 즉시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옮겨진다. 그 백성이 되어 버린다. 천국은 임하였다. 그러나 그 완성은 미래에 속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창조하고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서 역사하며 확장된다. (이 때의 교회는 가시적인 교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천국은 이 세상이 보기에는 매우 미미하고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그 나라는 강력한 권력으로 임하지 않는다. 복음전도와 자기희생과 봉사를 통해 임한다.

 

천국은 임했고, 임하고 있고, 임할 것이다. 지금 현재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감사함으로 주님을 위하여 봉사한다. 날마다 기쁨과 희망을 가지며 승리생활을 한다. 타계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저 세상만을 추구하는 생활과 사고방식을 버린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구원과 하나님의 복을 누린다. 주님과 매일 동행하는 삶을 산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를 올린다. 장래의 희망과 함께 성도의 생애와 기쁨을 더 좋아한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글은 다음의 책들에서 도움을 얻었음을 밝혀둔다.


Herman Ridderbos, Coming of the Kingdom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1962).


Eldon G. Ladd, The Gospel of the Kingdom (Grand Rapids: Eerdmans, 1959).


박윤선, <성경주석: 공관복음> (부산: 영음사, 1960).


위 원제: "천국이란 무엇인가?" 최덕성 <高神大學報?>  29 (1977): 37-43.


(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글의 PDF 자료를 찾아내어 전산화한 강호욱 형제께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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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새롬 2014.03.26 22:38

    신학의 기본이자 신앙의 바탕이요 신자의 삶의 목적인 천국, 내세에 대한 소망을 현재적 임재-하나님의 통치 이념으로 설명해주시니 은혜가 됩니다. 한데, WCC 뿐 아니라 보수진영의 신학마저도 무천년주의가 대세였으나 이제 후천년설적 무천년주의로 천국의 현재적 임재에 대한 논리로 인해, 사회주의 복음화로 이어지는 위태로운 지경을 보기도 합니다. 윤리와 도덕적 천국 실현의 논증들은 윤리신학자 니버(Niebuhr) 경우처럼 오늘 한국의 도덕적 타락에 혁신과 반성을 촉구하려는 의도에서 강조되는 기독교윤리 운동가(?)들로 인해, 천국백성이 궁구하고 은혜로 체득할 천국형(?) 사유와 감동에 매말라 가는 것 같습니다. 들어서 행복할 천국론이 모든 이- 혹 불신자들에게도 많이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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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zezy 2014.04.06 00:29

    지당하십니다 . 천국의 현재성은 - 일시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재미동포가, 언젠가 고국 한국으로 귀국할 것임은 물론, 현재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국의 통치와 보호 아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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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choiword 2016.11.08 09:57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데오로고스> (2014. 8. 26)에 실린 글입니다. 누가 쓴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참고할만하다고 생각하여 옮겨 게재합니다.

    1. 서론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은 성경의 중심 사상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뜻하는 나라이며,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복음의 핵심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마태는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마 4:23 중)라고 기록했으며, 마가는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는 기록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선포가 예수님의 주된 사역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예수님도 직접적으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언급하셨다.

    즉,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으로써 하나님께서 하늘과 이 땅을 직접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현재 세상 속에서, 특히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이면서도 궁극적인 소망이 되고 있다.

    2.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의 시작은 구약이다. 조지 래드(George Eldon Ladd)는 하나님 나라의 출발점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그 분의 목적을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을 통해 이루시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곧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것이라는 소망이다. 이와 같은 소망은 하나님 자신이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계시한 구약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존 브라이트(John Bright)는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상은 구약성서의 신적 계시와 신앙의 대망 가운데 깊이 잠재해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한 이러한 대망은 곧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고백에 근거해 하나님은 좀 더 강하고 종말론적인 의미에서의 왕이 될 것이라는 대망 사상이 일어나게 된다. 신정왕국으로 말해지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 사상은 하나님의 통치 사상에 의한 것으로써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장차 올 미래에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신다는 소망이 피력된 것이다. 결국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하는 나라,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을 그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메시아’라는 대망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메시아적 예언은 미래에 참다운 하나님의 왕국이 메시아 중심으로 설립되어질 것을 제시하는데,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는 평화의 통치자로 오시고(사 11:1~9), 그의 왕권은 초자연적이며 신적이고, 영원한 특징을 갖는 것이다(미 5:1~9).

    특히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통치와 메시아 대망사상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근거를 형성하고 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선포했다. 평화의 그 날이 오면 모든 인간적인 갈등이나 사회적인 문제가 없고, 악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화와 안전이 미래에 약속됐다고 믿은 것이다. 김회권도 구약성경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절대 선언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죄, 악, 고난, 질병과 죽음, 전쟁 패배와 포로살이로부터의 구출과 해방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복음은 우주의 통치자인 하나님의 왕적 칙령으로써 하나님 없는 상황이 종식되며, 하나님의 생명 통치가 작동할 것이라는 선포였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와 같은 묵시와 예언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성취됐다. 마태는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고 기록했다.

    하지만 신약성경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언제, 어떤 모양으로 임하는지에 대해 매우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도 다양한 사역과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약성경에서 하나님 나라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특정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다.

    특히 로마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며 하나님 나라를 현재 각자가 경험할 수 있는 영적 실체로까지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여되는 유업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영적 상태이면서도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 때 얻을 수 있는 것으로써 ‘이미’라는 현재성과 ‘아직’이라는 미래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 래드는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 실체이면서(마 12:28), 미래적 축복(고전 15:50), 다시 태어난 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요 3:3) 영적인 내적 축복이면서(롬 14:17) 또한 이 세상 나라의 통치(계 11:15)와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람들이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현재적 영역이면서 나중에 들어갈 수 있는 미래적 영역(마 8:11), 믿는 자에게 상속되는 미래적 축복의 나라이면서(눅 12:32), 현재에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나라(막 10:15)라고 강조한다.

    3. 하나님 나라의 어원적 의미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다양성과 풍요로움은 하나님 나라를 섣불리 규정하고, 해석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어원적으로 해석할 경우에는 그 의미는 보다 명확해진다.

    구약성경에서 히브리어로 기록된 하나님 나라는 ‘말쿠트’(malkeuth)다. 약 200회 정도 나타나는데,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인간 왕에게 적용될 경우, 주로 ‘통치’, ‘지배’, ‘왕권’ 등과 같은 추상적, 역동적 의미로 사용됐다. 하지만 지극히 부차적으로 왕이 통치하는 공간적 영역, 지역, 영토의 의미로도 쓰였다.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바실레이아’(basileia)’라로 표현한다. 히브리어인 ‘말쿠트’와 동일하게 추상적, 역동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즉, 하나님 나라를 지칭하는 구약의 ‘말쿠트’와 신약의 ‘바실레이아’가 갖고 있는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 또는 ‘주권’과 ‘왕권’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는 항상 통치, 다스림 또는 주권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는 구약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사상이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만물의 주인이시다. 눈에 보이는 세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인이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 모든 민족도 복종해야 하는 만민의 주인이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만 주인이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에도 주인이신 것이다.

    구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구약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나타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를 통해 당신의 열방을 드러내려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거역하고 하나님이 끊임없이 이들을 돌이키시려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북 이스라엘, 남 유다에 이른다. 이러한 심판과 바빌론 포로상황에서 이스라엘은 ‘그 선지자’, 또는 ‘다윗의 자손’, ‘여호와의 종’을 간절히 기다린다. 바로 ‘주의 날’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부르시며 악인들과 악한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의인들과 그의 나라를 회복하실 것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서 깨어졌던 만물이 회복될 것을 약속하신다. 구약은 이렇게 메시아를 대망하며 마무리된다.

    그리고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신약은 예수님이 바로 구약의 이러한 대망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졌음을 선언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지 끊임없이 가르치셨다. 복음서는 단지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도래시킨 메시아가 어떻게, 그리고 왜 죽으시고, 부활하셨는지에 대한 증언임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았다고 반복적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사복음서는 거의 ‘하나님 나라’로 표기하고 일부는 ‘천국’으로 표시하고 있다.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로 기록됐고, 마태복음에서는 네 곳(12:28, 19:24, 21:31, 43)을 제외하고 ‘천국’이라고 기록됐다.

    결국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대망했던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임했으며, 현재 하나님의 통치가 그의 백성들을 통해 이루어지심을 통해 자라가고 있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적 또는 어원적 의미는 ‘왕 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통치, 주권’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는 하나님이 영원한 왕이시며 만물을 다스린다는 단순한 추상적 개념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역동적 개념이기도 하며, 단순히 영역으로 제한할 수도 없다.

    결국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주권적인 나라,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자라면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복을 누리는 곳, 마지막 날 예수님의 재림 후에 들어가게 되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4.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가 모두 104번 사용되고 있는데, 거의 전폭적으로 예수 자신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다. 그렇다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이었을까.

    예수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즉 아직 기다려야 하는 미래적인 나라인 것이 반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한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가 요단강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종이라는 소명을 받은 후 고향 땅에 돌아가 제일 먼저 한 것이 “그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막 1:14~15, 마 4:17)는 선포였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예수의 선언은 하나님의 나라의 임박한 도래에 대한 기대나 준비를 위한 선언이 아니라 선포하는 예수 자신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도착했다는 선언이며, 지금 예수 안에서 도착한 그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단의 요청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예수는 유대교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지 물었다(눅 17:20). 그때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답변하시며 당대 유대인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의 때와 장소에 관한 두 가지 사상-하나님의 나라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속해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관찰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나라라는 사상-에 동의하지 않음을 지적하셨다.

    물론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정의의 구현 및 윤리를 표방하는 등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포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라고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주적이며, 전 세계적이며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수는 자신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속적인 나라가 아니며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이미 도래했음을 선언하시기도 하셨다(“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눅 11:20).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에 의해 주도되는 인간 중심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중심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위로부터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며(마 5:2), 구하는 자의 것이며(마 6:33), 어린아이처럼 겸손히 받드는 자의 것이며(마 18:3, 19:14, 막 10:14, 눅 18:17), 거듭난 자의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요 3:5). 그러나 미래에 완성될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야 하며(마 5:10), 서기관보다 더 나은 의를 가져야 하며(마 5:10),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고 선언하셨다(마 7:21).

    결국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중심의 나라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그 분의 왕권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중심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5. 하나님 나라와 교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맡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말씀하셨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6~18).

    특히 예수님께서는 ‘에클레시아(ekklesia)’, 곧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규정하셨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공동체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내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줘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에 기초해 있다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신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불가분의 관계는 ‘하나님 나라가 교회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있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통해 확장된다. 따라서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 할 수 있다. 존 스토트(John R. W. Stott)에 따르면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올바로 일치시키려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증표로, 하나님 나라의 봉사자로, 하나님 나라의 ‘선 경험’이 돼야 한다.

    양용의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제자들의 현재적 삶은 그 자체로서 최종적인 목표가 아니라 장차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경성된 삶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지극히 강조하시면서도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도 매우 확고하게 드러내 보이셨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기대를 한 순간도 소홀히 하거나 잊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완전한 그 때의 도래를 늘 기다리며 하나님의 통치에 더욱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실존하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면서 예수님의 재림 이후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할 때까지 성령의 역사에 힘입어 다양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6. 교회의 궁극적 사명

    교회,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공동체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 비록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는 완전한 축복의 상태로 실현되어지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서 역사하고 있으며, 악과의 무서운 싸움 속에서 보증되어지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투쟁을 감당하는 기구인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됐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세상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게 됐다. 사단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강요하고, 그 지은 죄의 결과로 죽음을 가져다줬다(롬 6:23). 결국 하나님 나라는 인간에게 창조자이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가장 큰 이유이다. 죄인들로 하여금 사단의 나라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도록 불러내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막 2:17). ‘회개’와 ‘믿음’으로 죄인인 인생이 사단의 나라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라고 선포하셨고, 친히 십자가에서 그 길을 여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을 왕으로 섬기는 삶의 방식, 곧 타락한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았던 삶의 모습을 회개하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즉, 피조물로서의 인생이 가진 궁핍함에서 창조주의 부요함으로 들어가며, 인생의 유한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고통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부요함으로 이루어진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교회, 즉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며, 앞으로 임하시게 될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과 환경,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시켜야 하는 청지기의 사명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제대로 누리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마 6:33)는 말씀에 기초해 하나님의 법을 찾고 따라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하나님은 항상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항상 존재하시고 항생 행동하실 것이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존재하고 항상 존재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에 산다는 것은 결국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삶을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다.

    김형국은 “교회는 단지 수동적으로 하나님을 수용하고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살아내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세상 사람들의 빛이 되고(마 5:14~16, 엡 5:8~9, 빌 2:15, 골 1:12, 살전 5:5), 우리 가운데 있는 소망에 대해 질문하게 만드는 적극적인 사명을 갖고 있다(벧전 3:15)”고 강조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온전한 회심을 이루어야 한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다는 값싼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총체적인 복음, 하나님 나라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섬기는 사역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 나라답게 하기 위해 교회에 소속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며 그 분을 닮아갈 것인지 고민하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살아내야 한다.

    7. 결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주권적인 나라,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에게 주어진 나라다. 그 나라는 이미 임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최종적으로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를 갈망해야 한다. 그 때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 속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백성공동체이며 하나님 나라의 표지인 교회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공동체로서 예수님의 삶을 뒤따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교회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소개할 수 있는 힘과 능력, 촉매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속에 들어왔다고 선언해야 한다. 교회는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현재적이면서도 종말론적인 공동체다. 예수님의 부활부터 고대하는 재림, 곧 종말 사이에 위치한 이 마지막 때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끌어야 한다.

    교회는 이미 설립된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증거자로서 곧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것에 대한 증거자로서 세상 속에 보내어졌다. 따라서 교회는 이미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의 확실한 승리와 성취된 승리를 믿고, 아직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

    특히 인간사회가 이미 세워놓은 모든 장벽들을 초월하는 신앙공동체를 세상 앞에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그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공동체의 흔적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교회는 지체를 넘어서서 세상 속에 선행과 형제사랑을 확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 복음을 교회 안에 담아둘 수 없는 것처럼 그 아가페(사랑)를 더 이상 교회 안에 가두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기 위해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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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라이트는 크리스천인가? 톰 라이트(N. T. Wright)는 바울에 대한 새 관점학파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정통 신학자들은 라이트의 신학은 심각한 질문을 제기한다고 본다. 라이트는 크리스천인가? 그의 칭의론은 '복음'인가 아니면 '다른 복음'인가? 미국 ...
    Date2016.10.31 Bydschoiword Reply0 Views13125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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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유보적 칭의론과 지옥 공포심

    유보적 칭의론과 지옥 공포심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근본 목적은 율법주의자들이나 계몽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사람을 위협하여 선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물론 개혁주의자들도 선을 독려하고 악을 제어하는 '율법의 제3용도(tertius usus legis)...
    Date2016.10.25 Bydschoiword Reply0 Views1565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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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월터스토프, 동성결혼은 정의에 부합한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월터스토프, 동성결혼은 정의에 부합한다 미국 기독개혁교단(CRC: Christian Reformed Church) 구성원인 기독교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 박사가 최근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나섰다. 동성애자들의 “위...
    Date2016.10.23 Bydschoiword Reply0 Views4565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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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새 관점학파와 유대인 장학금

        크리스터 스탠달 박사(하버드대학교)   새 관점학파와 유대인 장학금   바울과 관련하여 20세기 후반에 신약신학계에 등장한 이른바 '새 관점'은 크리스터 스탠달 박사(Krister Stendahl, 1921-2008)가 쓴 “사도 바울 그리고 서방의 자기 성찰적 양심"...
    Date2016.10.19 Bydschoiword Reply0 Views5857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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