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와 복음주의자들

by dschoiword posted Sep 0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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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WME_2012.jpg

 

사진: 세계교회협의회 세계선교전도위원회

 

세계교회협의회와 복음주의자들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들러리 서는 복음주의자들은 이단자보다 교회에 더 위태롭고 해롭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한 민감성을 갖지 못하게 하고 적을 아군으로 오인하게 하며.... 라는 요지. 최덕성 교수(전 고신대)는 2012년 3월 31일 선교신학연구소(소장 이동주 교수)가 주최하는 선교신학 세미나에서 “세계교회협의회와 복음주의자들”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아래 부분은 발표한 논문의 첫 부분이다. 전문은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2012)에 수록되어 있다.

1. 무지(無知) 탓인가?

복음주의적 목회자로 알려진 조용기 목사, 김장환 목사, 김삼환 목사는 극동방송이 개최한 “한국교회와 WCC 부산총회” 특집 좌담(2012.3.2.)에서 WCC가 종교다원주의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조용기는 WCC를 향하여 용공주의라고 하는 비난은 “보수주의 기독교가 WCC를 공격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이다. 오해이다. […] WCC는 분명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지 않는다. 잘못 전달된 것이다”고 말했다. 김장환은 “WCC가 다원주의를 신봉했다면 나 역시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했다. 김삼환은 “WCC 신학자 중 한 사람이 다원주의를 주장했다 하더라도 전체를 다원주의로 몰면 안 된다. WCC의 신앙고백의 핵심은 예수만이 구원이라는 것이다”1고 했다. WCC가 역사적 기독교와 다르지 않다는 식의 발언이다.

WCC를 주제로 열린 한국기독교학술원(원장 이종성, 2010,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 대강당)의 신학 논의 마당에서 사회자 이종윤 목사(서울교회)는 장시간에 걸쳐 진행된 토론의 논점들을 정리하면서 당일 논문을 발표하고 논평에 가담한 단상(壇上)의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에게 물었다. “WCC는 정말로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는가?” “WCC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주장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전 WCC 중앙위원으로 활약했고 현재는 서울에서 목회를 하는 모 목사는 분명한 목소리로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리고 현 WCC 중앙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모 신학대학교의 어느 교수는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WCC의 신학 정체성에 관심을 가진 300여 명의 기독인들이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WCC 세계선교복음전도위원회의 총무 금주섭 목사(예장 통합)는 한국 기독교방송(CBS)의 어느 기자가 “WCC가 종교다원주의라는 주장도 있다”라고 묻자, “분명히 말씀드리고 지적하고 싶은 것은 WCC는 결코 종교다원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고 했다. “WCC를 종교다원주의 단체로 비판하는 분들이 인용하는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WCC가 개최했던 회의에 참석한 개인적인 신학자의 견해를 인용해 WCC를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것이 결코 WCC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 WCC는 종교 간의 공존과 화해와 치유를 위해서 서로 평화적인 관계를 모색하지 결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종교 간의 대화적 관계와 종교다원주의를 엄격하게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2고 말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한국일 교수(선교학)는 『목회와 신학』 (2010.4.)에 기고한 글에서 WCC가 그 어느 문서에서도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거나 긍정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WCC는 어떤 문서에도 예수의 유일성을 상대화하거나 구원의 길을 다양하게 열어 놓고 있지 않다”3고 단언한다. 복음주의자들이 선교에서 ‘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통적 방식의 ‘증거’만을 선교라 생각하면서 종교 간의 대화를 시도하는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고 그릇 비판하고 있다고 오히려 책망한다.
 
WCC의 스탭, 전 중앙위원, 현 중앙위원, 가맹 교단(장로교 기장, 통합)의 신학자들의 이와 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WCC는 공식문서 “바아르선언문”에서 분명한 어조로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 WCC 전 총무 콘라드 라이저는 이 단체의 종교다원주의와 이와 직결되어 있는 ‘그리스도 중심의 보편주의’(Christocentric Universalism)와, 신학자 칼 라너와 라이문도 파니카가 주창하는 종교다원주의의 상징인 ‘숨겨진 그리스도’(hidden Christ), ‘익명의 그리스도’(anonymous Christ)가 이 단체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는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밝힌다.4 라이저는 이러한 맥락에서 초대 총무를 역임한 비셔트 후프트가 종교다원주의를 넘어 종교혼합주의를 향해 돌진하는 WCC 신학의 성향을 걱정하여 저술한 『다른 이름은 없다』(1963)5를 소개하기도 한다.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는 사실은 1991년의 캔버라총회 뒤 한국교회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려져 왔다. 예컨대, 필자의 『에큐메니칼운동과 다원주의』(2005)는 ‘바아르선언문’(1990)을 분석하고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는 사실을 자세히 소개한다. 아울러 성경적이며 신앙고백적인 교회일치운동 모델을 제시한다. WCC의 역사, 종교다원주의 신학, 자유주의 기독교, 칼빈의 교회일치 사상, 한국교회의 연합일치운동의 빛과 어두움, 미북장로교회의 신학논쟁과 갈등의 역사가 주는 교훈을 소개한다. 교회일치운동의 병폐·위험·장점·유익을 탐색하고 성경적 방향을 제시한다. 본서의 축약본인 『WCC 아이덴티티』(2010)와 『WCC 무엇이 문제인가?』(2010)도 WCC의 종교다원주의 표방을 소개하고 “바아르선언문”(1990) 영문을 부록으로 담고 있다. 

역사신학자 이형기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WCC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한다는 비판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복음, 삼위일체, 교회론, 구원론 등과 관련하여 언급하면서 “그러나 WCC는 […] 결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와 같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6고 한다. 이형기의 ‘자유주의 신학’ 목록에는 타종교들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어쨌든 이형기는 WCC의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거대담론은 타종교와 불신자들을 결코 구원의 가능성으로부터 배제시키지 않는다. [… WCC] 에큐메니즘은 타종교와 이데올로기들 그리고 모든 불신자들을 결코 구원으로부터 배제시키지 않는다”7고 옳게 지적한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일은 “WCC는 어떤 문서에서도 예수의 유일성을 상대화 하거나 구원의 길을 다양하게 열어 놓고 있지 않다”고 했으나 같은 글에서 이 단체가 공식 문서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특정지역이나 종교, 문화에만 제한하는 것이 불과하다는 결과를 도출한다”8고 옳게 지적한다. 하나님의 구원이 특정종교 곧 기독교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WCC의 공식 입장이라는 뜻이다.
 
WCC 관계자 다수는 이 단체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용공주의 활동을 한 사실을 부정한다. “바아르선언문”은 WCC 세계선교복음전도위원회의 공식 문서이다. 현재도 WCC의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복음주의자로 자처하는 목사들은 무지 또는 영적 시각장애 탓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지만, 에큐메니칼 신학자들과 WCC 중앙위원들은 기만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비켜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는 문서 “바아르선언문”을 작성한 위원회의 총무조차 진실을 부정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종교다원주의는 이단이다’는 대중적 비난이 두려운가? WCC의 신학이 사실대로 알려지면 한국교회의 갈등과 분열을 야기한 책임소재가 드러날 것이 걱정되는가?

영국 속담에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Honesty is the best policy)는 말이 있다. 교회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믿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복음전도 과업 안에는 진리 변호의 과제가 포함되어 있다. 유럽과 북미와 대양주의 주류 교회들처럼 생명력을 상실하지 않으려면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도전에 대처해야 한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기독교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役事)가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을 제한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게 된 하나님을 이웃의 타 종교 신앙인들의 삶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서도 나타나지만 이제 이 제한들은 초극되었고, 구원은 보편적이며, 타종교 신앙인들의 삶과 종교 전통 안에 성령 하나님이 활동한다고 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당위성과 그의 구원 유일성을 부정하는 주장이다.

한국교회는 이단 시비에 열성적이다. 이는 일면 바람직하다. 그러나 WCC 신학의 이단성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는 가르침은 ‘다른 복음’이다. 한국교회가 WCC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다른 복음’에 대해 관용적이며, 대어(大魚)는 걸러내고 피라미만 잡으려는 정치적 태도로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양시쌍비의 신학노선을 지향하면 교회는 사탄의 선교현장으로 둔갑된다. WCC와 일부 한국교단들의 야누스적 태도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고, 자칭 사도라 하되 사실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거짓된 것을 드러내지 않은 죄’(계 2:2 참고)에 해당한다.

WCC가 공식 문서 “바아르선언문”(1990)에서 표방하는 종교다원주의는 ‘WCC 종교 간의 대화국장’ 직을 맡아 십여 년 동안 유급 전임 신학자로 근무한 자들이 정교하게 설계한 신학 주지(主旨)이다. 선언문 최종 본 작성에는 교황청 종교 간 대화국 책임자 미카엘 피츠제랄드 주교(Michael Fitzgerald), 바티칸 레이트란대학교의 교수 피에트로 로싸노 주교(Pietro Rossano), 로마가톨릭 사제출신이며 당시 미국 신시내티의 사비에르대학교의 종교다원주의자 폴 니터(Paul Knitter)가 가담했다. “바아르선언문”의 내용은 니터의 사상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