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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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아르메니아교회당

 

아르메니아교회는 지금도 아람어를 사용한다

 

예루살렘의 아르메니아교회는 지금도 고대  아람어로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를 드린다. 아람어( Aramaic)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국어였다. 제자들과 예루살렘교회 신자들이 사용한 당시의 국제어였다. 주전 600년부터 주후 600년까지 고대 오리엔트 지방의 국제어였다. 구약성경 다니엘, 에스라 그리고 유대인의 탈무드는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아람'은 현 다마스커스 중심의 시리아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아람어는 페르시아 제국의 국제 공용어였다. 페르시아는 자신들이 정복한 23개의 속국에 아람어를 공용어, 일상어로 사용하게 했다. 페르시아는 바벨론을 삼켰다. 기원전 6세기에 바벨론에 잡혀간 유대인 포로들은 아람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주민들은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주전 6세기 경 다수의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다수의 유대인들이 포로되는 것이 두려워 이집트와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 이주한 탓으로 히브리어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아람어가 일상어로 자리 잡았다. 국제정치와 국가 세력의 변화와 함께  코이네 그리스어가 국제어 역할을 하고, 아람어 사용은 서서히 약화되었다. '코이네'는 '보통' 또는 '보통어'를 뜻한다.

 

구약성경 열왕기서 하권은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나아만은 한센 씨 병에 걸려 죽게될 상황에서 이스라엘에서 붙잡혀 와서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여종 소녀에게서 선지자 엘리사의 명성을 듣게 되었다. 그 시종을 선지자에게 보내어 살 길을 문의한다. 왕의 허락을 받고 금은보화를 잔뜩 싣고서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의 집 문 앞에 당도한다. 얼굴도 내밀지 않는 당대 최강국 군대장관에 대한 선지자의 푸대접, 사환을 통해 "요단강에 몸을 일곱법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전갈받고,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고 그의 피부가 어린아이의 살 같이 깨끗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있다(왕하 5:9-14). 선지자, 사환, 나아만, 시종은 아람어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선지자 엘리사가가 다마스커스에 갔을 때, 아람왕 벤하닷이 병들어 심각한 상태였다. 왕은 저명한 하나님의 사람이 그곳에 당도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신하 하사엘을 보내 자기가 걸린 병이 죽을병인지아닌지 알아오게 했다. 하사엘은 다마스커스의 모든 좋은 물품들을 예물을 가지고 그를 찾아갔다. 낙타 40마리의 등에 실을 만큼의 많은 예물들을 가지고 갔다.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왕이 "정녕 죽으리라"(왕하 8:10)고  말씀했지만, 엘리사는 "왕이 정녕 나으리라"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들은 아람어로 의사소통을 했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날에 성령이 충만하여 설교를 했다. 운집한 3천 명 이상의 예루살렘 성 주민들, 유대인 디아스포라 그리고 유대교에 가입한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갈릴리 지방 액센트가 섞인 아람어로 설교했을 것이다. 예수님과 사도들과 120명의 신도들은 아람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예루살렘 아르메니아교회는 지금도 예수님 당시에 사용되던 고대 아람어를 사용한다. 아람어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린다. 일상 생활에서는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예배 때만 고대 아람어를 사용한다. 아람어를 읽고 쓰고 노래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아람어 문장인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라고 말하면 환하게 알아듣고 방끗 웃는 표정을 짓는다.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아르메니아인 기독교인들은 고대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현대인들이다.

 

아르메니아는 한때 중동 북부의 광범위한 지역을 지배한 나라이다.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오랫동안 아람어를 사용해 왔다. 현재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남한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자그마한 국토를 소유하고 있다. 흑해 동편 아제르바이젠 서편, 조지아와 터키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자주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노아방주가 멈추어 선 것으로 알려진 아라라트산의 원주민들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산을 터기에 빼앗겼다.

 

아르메니아가 강대국이던 시절, 다수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이주했다. 현재의 예루살렘의 인구 6분의 1은 아르메니아인들이다. 4천 명이 살고 있다. 이들 중 3천 명이 예루살렘 성 안에 살고 있다. 성안 주민들은 아람어로 예배하는 기독교인들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성경의 역사에 직결된 민족이다.

 

 

예루살렘 성은 유대인, 기독교인, 모슬렘, 그리고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4분의 1씩 차지하고 있다. 성 안의 아르메니아인들은 매주 종교적이다. 이들은 아직도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로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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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야고보기념교회당 (예루살렘 아르메니아인 구역, 제자 야고보와 예루살렘교회 감독 예수의 동생 야고보 기념교회당, 십자군 시대 건축물)

 

 

아르메니아교회 사제들은 성묘교회에서 자주 정교회 풍의 예배 의식을 행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시고 부활한 곳에 세워진  곳에 세워진 성묘교회를 관리해 왔다. 비록 쇠락한 나라, 힘없는 민족이지만 예루살렘에 자신들의 종교와 이름과 종족을 남김으로써 민족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를 수단으로 하나의 민족 정체성을 유지한다.

 

예루살렘 아르메니아교회는 성 안에 있는 성야고보교회를 중심으로 뭉쳐 있다. 수백 년이 넘은 때 묻은 돌담과 낮은 아치의 좁을 골목에 들어서면 양 날개에 나뭇잎이 달린 아르메니아 십자가를 걸어 둔 가계들 사이에 외부 장식이 없는 아르메니아교회당이 나타난다. 어느 방문자는 교회 대기길 벽에 붙은 이민족이 이 교회를 부수고 십자가를 불사를지라도 그 칼에 살아남은 단 한 명의 아르메니아인이라도 있다면 교회를 위해 첫 삽을 뜰 것이다라는 문구를 보았다고 한다. 이 결연한 신앙고백은 아르메니아 민족이 겪어온 종교적, 역사적 수난을 암시한다.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아르메니아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를 직접 들을 수 있다. 교회당 안 제단의 정면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와 베드로와 사도들의 초상이 있다. 단성론자들 가운데는 예수의 죽음 자체를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예수가 신이므로 육체적 죽음을 겪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인지 아르메니아교회당 안의 십자가에는 예수의 모습이 없다. 그 대신 생명을 상징하는 나무 잎 문양이 있다.

   

사도 바돌로매와 다대오가 아르메니아에 복음을 전했다고 전해진다. 아르메니아교회는 이 믿음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교회를 사도 교회라는 이름을 붙인다. 기독교는 일찍 아르메니아 국교로 자리 잡았다. 성 그레고리우스가 아르사키드 왕 티리다테스 3세를 개종시킨 301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천명했다.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아르메니아교회는 시리아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성경, 전례, 의식 용어를 전수받았다. 그러다가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리아에 있는 모 교회로부터 독립했다. 아르메니아교회는 시리아 문자를 빌려 써 오다가 성인 메스포프가 아르메니아 문자를 만들고 여러 차례 성경을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한 5세기경에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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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콥트교회당 일부

 

 

아르메니아,  시리아, 레바논의  대부분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단성론을 지지한다. 이집트의 콥트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었다고 본다. 칼케돈공의회(451)는 예수 그리스도가 두 본성 곧 참 하나님 참 사람이며, 신성과 인성이 섞이거나 변화되거나 나누어지거나 분리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한편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나뉘어 존재하므로 실상 그리스도는 두 인격을 가졌다고 주장한 네스토리우스주의를 반대한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신학적으로 단순한 수사 에우티케스의 견해를 부분적으로 반대한 것이었다.

 

아르메니아계 드빈공의회(506)는 칼케돈공의회 결정을 반대했다. 그리스도가 다만 한 가지 본성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오직 하나의 본성만 존재한다고 믿는다인성은 신성에 흡수되었다고 본다. 페르시아 지배를 받아오던 지역인 시라아, 레바논, 팔레스타인의 교회들과 이집트 콥트교회는 정통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단성론을 신앙한다.

 

아르메니아교회는 단성론을 고백하는 이집트와 콥트교회와 시리아의 야고보파교회와 교제를 지속해 왔다. 조지아교회는 7세기에 아르메니아교회에서 분리되었다.

 

아르메니아교회의 주교들로 구성된 교회회의가 아르메니아교회의 행정을 주도해 오고 있다. 수사 키라코스가 1441년에 가톨리코스로 선출되었다. '모든 아르메니아인들의 가톨리코스'라는 칭호를 지닌 총대주교들의 오랜 역사가 시작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두 명의 가톨리코스가 등장했다. 한 명은 에크미아드진에 관구를 두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레바논 안틸리아스에 관구를 두고 있다. 두 명의 가톨리코스는 종종 정치적인 갈등을 겪으며, 관계가 나빠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아르메니아 전체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되는 사람은 에크미아드진에 있는 가톨리코스이다. 시스에 있는 가톨리코스는 행정적으로는 독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에크미아드진 가톨리코스에게 충성을 바친다.

 

콘스탄티노플과 예루살렘에 있는 두 명의 아르메니아교회 총대주교들은 비교적 뒤늦게 생겼으며, 에크미아드진에 있는 가톨리코스의 수위권을 인정한다.

 

아르메니아사도교회는 단성론을 제외한 동방 정교회의 신조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통적인 아르메니아 교회의 의식을 그대로 유지한다. 다수의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교회를 아르메니아의 민족 동일성의 수호자로 본다. 아르메니아 기독교와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는 결속되어 있다.

 

단성론자라는 용어는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 참 사람이 아니라 신성만을 가졌고, 그 안에 인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신학자들, 교회그룹, 집단들의 기독인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안티옥의 세베루스(d. 538)는 이 용어가 자기모순을 안고 있다고 하여 거부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단성론자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친밀하게 연합되어 있음을 강조한다고 말하며, 이 점에서 정통교리를 벗어났다고 본다.

 

근대에 이르러 단성론을 지지하는 콥트교회, 시리아교회, 아르메니아교회도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프로테스탄트교회가 고백하는 양성론에 호의적이며 부분적으로는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르메니아정교회의 공식 입장은 인성과 신성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루살렘에서 동방정교회를 대표하는 그룹은 아르메니아교회이다.

 

아르메니아교회는 이단인가? 아르메니아교회, 시리아교회, 레바논교회, 팔레스타인교회, 이집트 콥트교회가 역사적으로 고백하고 지지해 온 단성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성을 가졌음을 부정한다. 단성론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풍스런 교회당에서 열리는 종교행사에 참석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예루살렘에서 아르메니아교회를 쉽게 이단이라 단정하고 정죄하는 가벼움은 목숨을 걸고 자기들의 기독교 신앙의 정절을 지켜온 이 종족의 설 자리가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예루살렘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사업에 능수능란하다. 2의 유대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 종족은 뛰어난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손에 바이올린을 들지 않은 아르메니아인이 있다면 반드시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다는 말이 이를 증명한다.

 

오스만제국 정부는 1915년에 이스탄불에 살던 소수계 아르메니아 출신 시인 다니엘 바루안을 포함한 200명의 지식인들을 체포하고 살해했다. 대부분 아르메니아 출신 기독교인들이었다. 러시아 제국과 내통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나머지 아르메니아인들은 시리아 사막으로 추방되었다. 3년에 걸친 학살과 배고픔으로 죽은 아르메니아인은 약 150만 명으로 추정된다. 터키는 이 대학살, 종족 학살을 아직도 부정하고 있다.

 

영화 “프라미스”(The Promise, 2017)는 1차 세계대전 동안 터키에서 벌어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다루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비견되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인류의 비극을 다룬다. 아르메니아인은 가해자의 사과한 마디 없는 비극의 역사를 지닌 민족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8백 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의 살고 있다. 절반이 아르메니아 땅 밖에서 흩어져 산다. 흩어져도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아라라트 산을 향하여 절을 하며 빼앗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고 있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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