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과 최덕성의 칭의론 충돌 사건

by reformanda posted Feb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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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박사(왼편)과 최덕성 박사

 

김세윤과 최덕성의 칭의론 충돌 사건

 

순수한 물이나 정화된 물에 극소량의 오염물을 첨가하면 순수성과 정화수다운 가치를 잃게 된다. 도금 처리한 금은 금처럼 보이지만 완전한 금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다. 죄성이 가득한 인간은 여기에 화학조미료를 첨가하여 순수성을 망가뜨려 놓는다. 진리의 말씀을 뒤틀어 변개하는 행위는 자신을 마귀의 속삭임에 노출 시키는 수법이다. 이런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약신학자 김세윤 교수(풀러신학교)는 여러 해 전 <칭의와 성화>(서울: 두란노, 2013)를 출간하여 기독교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른바 유보적 칭의론을 발표했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칭의론 곧 이신칭의 진리에 결함이 있다고 한다. 김세윤은 그리스도의 통치 곧 하나님 나라의 틀 안에서 의의 열매와 관련시켜 소개한다. 그는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김세윤 주장의 핵심은 예수 믿는 기독인이라도 윤리와 순종이라는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유보적 칭의론 구도에는 성령의 성도 견인 진리가 들어설 곳이 없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기독인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거나 헛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나아가 로마가톨릭주의 구원론-칭의론에 빠지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김세윤은 약 500년 전 마르틴 루터가 가졌던 의문을 떠올린다. “기독인이 어느 정도로 의의 열매를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김세윤에 따르면 믿음만으로는 의롭다는 칭함을 받지 못한다. 믿음과 함께 의의 열매를 맺어야 의롭다고 칭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 종교개혁자들이 로마가톨릭교회에 저항하면서 외친 오직 믿음(sola fide)’오직 은혜(sola gratia)’는 쓰레기이다. 김세윤은 자신이 주장하는 새로운 칭의론이 종교개혁을 완성할 복음이라고 한다.

 

최덕성 교수(브니엘신학교 총장)는 김세윤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한다. 16세기 종교개혁신학자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의 현해와 불일치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며, 복음전도 활동에 심대한 장애를 가져온다고 한다. 그는 김세윤의 칭의론을 유보적 칭의론으로 명명한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은 우리의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라고 한다. 칭의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또 미래의 죄들을 용서받는 법적 근거라고 한다.

 

최덕성은 이러한 요지를 담은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 유감이라는 글을 <리포르만다>(2015.10.21.)<크리스천투데이>(2015.10.23)에 발표했다. 그리고 김세윤 칭의론의 연원(淵源)을 추정하는 논문을 완성하여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2016.10.1., 총신대35차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이 학술논문의 제목은 “트렌트공의회 칭의론과 칼빈의 해독문(解毒文) :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과 관련하여이다. 이 글과 논문은 당시 한국 신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김세윤과 최덕성의 칭의론 신학충돌은 2010년에 한국에서 발생한 중요한 신학적교회사적 사건이다

 

나는 브니엘신학교 신학원에서 최덕성 교수에게 구원론을 사사하면서, ’칭의사상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구원론 개요를 간파한 지금에 이르러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을 돌아보면 그의 접근방법은 흡사 이단들의 전유물인 물타기 수법과 같다. 순금 아닌 도금된 장식품이며, 생수나 정화수의 가치를 상실한 오염된 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은 명백히 이신칭의 진리를 제시한다.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은 이 진리를 거부한다. 그의 주장은 (1) 현대 교회 안에 열매가 많지 않다는 현실에서 출발하고, (2) 구원받은 자의 구원 탈락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예수 믿는 기독인이라도 윤리와 순종이라는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믿음만으로는 의롭다 칭함을 받지 못하고 믿음과 함께 의의 열매를 맺어야 의롭다고 칭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최덕성이 한국복음주의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트렌트공의회 칭의론과 칼빈의 해독문(解毒文): 김세윤의 칭의론과 관련하여 논지는 김세윤의 칭의론이 로마가톨릭교회가 현재도 교리로 공식 천명하는 트렌트공의회(1547)의 '의화론'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천주교 칭의론의 짝퉁이라는 것이다.

 

트렌트공의회는 루터와 루터파의 이신칭의를 정죄하고, 프로테스탄트들을 이단자로 간주하여 파문하려 회집됐다. ‘칭의와 성화를 동일시하거나 동의어로 보고, 물세례를 칭의의 도구인(道具因)으로 본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주입된 의가 수평적 차원에서 계속 의화(義化)’된다고 본다. 하나님의 의가 인간 안에 주입되고 내재하는 능력으로 점진적 과정을 거쳐 완성을 향하여 진행된다고 하는 일종의 행위구원론을 천명했다.

 

최덕성은 위 논문에서 10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형식으로 김세윤의 주장을 반박한다. (1) 칭의는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의 결과인가? (2) ‘세례성사는 칭의의 수단인가? (3) 칭의를 인간의 준비가 필요한가? (4) 칭의는 성화에 포함되는가? (5) 행함 있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가? (6) 칭의는 윤리실천으로 완성되는가? (7)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한가? (8) 칭의가 계명준수, 윤리실천으로 성취되는가? (9) 인내가 우리를 칭의의 완성으로 인도하는가? (10) 고해성사가 상실한 칭의를 회복시키는가? 이 질문들은 새 관점학파의 관점과 김세윤의 칭의론이 지닌 구조적 특징을 보여준다.

 

최덕성은 존 칼빈이 당대 교회가 요구하던 질문에 정확한 답을 제공한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가 요구하고 알고싶어 하는 김세윤 칭의론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최덕성의 주장의 근거는 대체로 두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며 칭의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칭의가 단번에 이뤄지지 않고 선언적이지 않다는 주장은 하나님이 전능한 분이 아니며 불안전한 존재라는 결론에 이른다.

 

최덕성은 칭의를 어린이의 출생에 비유하여 말한다. 어린이는 성숙 과정을 거친 뒤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게 아니다. 출생하면서 이미 완전한 사람이다. 칭의도 이와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

 

최덕성에 따르면 전통적 구원론-칭의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그 시점에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와 연합된다. 죄 용서받음과 더불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다. 그때 기독인은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관계에 진입하고, 천국 시민이 된다. 예수 믿는 자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록에 기록된다. 인간은 자신의 의와 선한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를 구원자로 믿을 때 곧 구원의 여러 가지가 주어질 때 천국 시민권도 받는다.

 

나는 최덕성의 김세윤에 대한 반박이 과거의 칼빈이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반박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김세윤과 최덕성의 칭의론 논쟁은 역사가 돌고 도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해 아래 새것은 없음을 느끼게 한다. 역사의 뒤안길을 보면 항상 진리 주변에 이단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진리를 왜곡시키고 사실을 호도하고 교회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다.

 

김세윤의 논리는 그럴듯하게 보여 성경적 지식과 신학 정보가 부족한 성도들에게는 흔들릴 법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이단들이 자주 사용하는 물타기 수법이다. 오늘날에도 이단은 교회 주변에서 판을 치고 있다.

 

김세윤은 유수한 논문으로 주목받던 신학자이다. 그러나 그의 칭의론 발언은 신학계에서 물의를 일으켰고 호불호의 결과를 유출시켰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의 학문적 외침 곧 칭의론은 이단의 물타기 수법과 같아서 무지한 성도들을 유혹한다.

 

최덕성에 따르면, 칭의와 성화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칭의를 받은 자 곧 하나님 나라의 시민은 자기가 속한 나라의 법을 준행한다. 천국 백성의 열매를 맺는다. 칭의는 장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믿을 때 발생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칭의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미래의 죄들을 용서받을 법적 근거이다.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는 그리스도에게 전가되고 그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된다. 그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구원이라는 은혜의 선물이 주어진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선물이다(2:1-10).

 

그리스도를 믿고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 곧 하나님의 나라에 진입한 자는 현재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우리의 하나님 나라 시민 신분은 바뀌지 않는다. 성령 하나님은 성도의 견인 사역을 중단하지 않으신다. 나무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진정한 기독인은 열매를 맺는다. 칭의와 성화는 분리되지 않는다. 분리되지 않지만, 구분된다. 칭의는 하나님의 선언적, 법적, 단회적 사건이다. 반복되는 과정이 아니다. 칭의의 조건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뿐이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음을 뜻한다.

 

성화는 전 생애에 걸쳐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리스도께서 의롭다고 칭한 자를 동시에 성화로 인도하신다. 칭의는 성화의 출발이다. 칭의와 성화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됨으로 주어지는 이중적인 은혜이다. ‘성화 없는 칭의칭의 없는 성화는 불가능하다. 진정한 칭의를 얻는 자는 필연적으로 성화를 수반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자는 동시에 반드시 거룩해진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성화의 열매를 맺는다. 성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기독인은 믿음과 구원이 확실한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칭의는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동시에 현재적 사건이다.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우리에게 선고하실 판결이 현재의 우리에게 앞당겨 왔다. 구원은 근본적으로 미래에 속한 것이지만, 그 미래의 하나님의 선언이 우리의 현재 속으로 침투하여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당당히 외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오늘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이르리라”(16:31).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은 오늘날의 교회가 윤리실천이 부실하다는 동기에서 출발한다. 이에 대하여 최덕성은 오늘날의 교회의 윤리적 결함은 칭의 교리가 옳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 진리와 전통적 칭의론을 확실하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한다. 우리를 구원한 의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가시킨 것이지, 우리가 맺은 의의 열매의 결과가 아니며,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은, 율법 준수와 행위 때문이 아님을 우리는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다수 교회들과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김세윤과 최덕성의 칭의론 충돌 사건에서 최덕성에게 손을 들어준 듯하다. 예장 고신교단은 "칭의론에 대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입장"을 채택하여 공식화 했다. 고신교단 안에 김세윤의 사상을 수용하고 진리를 변개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김세윤은 근래에 칭의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크게 수정한 것으로 알져지고 있다. 그럼에도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은 한국교회의 언저리에 여전히 맴돌고 서성거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교회 안에서 2010년 대에 이루어진 김세윤과 최덕성의 칭의론 충돌 사건은 중요한 교회사적 사건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다루어진 매우 중요한 교리, 신학, 진리 논쟁이었다. 나는 브니엘신학교 신학원에서 최덕성의 구원론 강의를 받은 뒤 칭의‘ 사상을 새롭게 정립했고,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발견한 성경적 이신칭의 진리가 옳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교회사적 사건으로 한국교회가 바울 사도가 명료하게 말하는 이신칭의 진리의 소중함을 재발견한 것으로 생각된다.

 

구원론 수강을 마치면서 나의 신앙고백을 이처럼 읊조려 본다. “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 나는 오늘 숨을 거두어도 그리스도의 품 안에서 눈을 뜰 것을 확신한다. 나는 성령 하나님이 나의 믿음을 심판 날까지 굳건하게 지켜 주실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내게 구원을 선물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한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박정아 (브니엘신학교 신학원 1학년)

 

편집자 주: 브니엘신학교 신학원 목회학 석사(Master of Divinity) 과정의 <구원론> 과제로 제출한 '학술 에세이'이다. 하나의 명료한 주장-논지를 가지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을 차례 차례 제시한다. 최덕성 교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신학수업, 비평적 사고훈련, 학술 에세이 쓰기, 목사후보생 교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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