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2016.10.08 08:36

노래하는 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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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백조


“백조는 죽기 전에 노래를 부르는데 이는 나쁜 것이 아니라네. 어떤 이들은 노래조차 부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네.” (Coleridge, Samuel Taylor, 1772-1834 영국의 낭만파 시인 )

어른들은 늘 말씀하였다. 최선을 다해라. 성실하게 살아라. 열심을 내라. 어른의 말이 아니어도 우리는 삶이 결코 녹녹지 않음을 알고 있다. 허리띠 졸라매고 바쁘게 살다 보면 하늘을 쳐다볼 여유조차 없이 지나갈 때가 많다.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가 깃발처럼 나부껴도 아무 생각없이 살아왔다. 사는 게 전쟁 같은 시절에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현역에서 물러난 노년에는 하늘을 쳐다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만큼 애쓰며 살아왔으니 이제 삶을 돌아보며 즐거움을 느낄 여유는 좀 가져도 되지 않을까? 공자는 이런 말을 하였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 삼고 있어도, 즐거움은 그 가운데 있다.” (술어 편 15장) 노년에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가난 가운데서도 즐기자는 뜻이 아니다. 공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즐거움의 원천이 현실 상황 때문에 바뀌지 말라는 뜻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즐기지 말란 법은 없다. 돈 많으면 행복하고 즐겁지만 돈 없으면 불행하고 괴로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인생의 짐을 지고 산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인생의 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재벌은 걱정근심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그도 사람인지라 기분 나쁠 때가 있고, 괴로울 때가 있고, 걱정할 때가 있다. 통장 잔액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기에 감당해야 할 짐이 있고 힘들어 하는 것은 똑같다.

부자라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얼마나 인색하고 잔인한지 모른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보다 훨씬 못되고 악할 수 있는 게 부자다. 그러므로 돈의 여유보다 더 중요한 게 마음의 여유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콩 한 알이라도 나누어 먹을 수 있다. 아무 일 안 하고 이름만 걸어놓고 받는 월급이 400억 원이어도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형제가 형제를 비난하고 욕하게 된다.

노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의 여유만큼이나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길가에 살포시 고개 내밀고 있는 작은 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그 순간 그는 행복하다. 나뭇잎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천천히 걷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그는 행복하다. 가끔 커피숍에 들려서 커피 한 잔을 즐길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하다.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커피, 연갈색 크레마의 부드러움을 한 모금 마실 때 정신을 번쩍 깨우는 각성 효과를 즐길 줄 안다면 그 자체로 즐겁다. 커피숍은 젊은이들만 가는 곳이 아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쳐다보는 노년의 모습은 차라리 아름답다.

네팔에서 트레킹할 때다.  늘 책상에만 앉아있던 내가 하루 8시간씩 걸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발바닥에 불이 나는 것 같아서 더는 걸을 수 없어 길바닥에 드러눕기를 수차례 하였다. 가이드가 빨리 가야 숙소에 도착한다고 재촉해도 땅과 하나가 된 몸은 떨어질 줄 몰랐다. 한번은 길 가에 가느다란 나무로 쪽의자를 만들어 놓고 커피를 파는 가게에서 쉬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털썩 주저 앉은 내 모습은 영락없이 패잔병 같았다. 온 몸은 먼지투성이였다. 그런데 멀리서 노부부가 손을 잡고 마치 산책하듯이 가볍게 걸어오고 있었다.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 노부부 역시 차 한 잔을 시켜놓고 내 옆에 앉았다. 젊은 나도 힘들어 헉헉거리는 이 트래킹 코스를 산책하듯 걷는 노부부가 너무나 놀라워 사연을 물었다. 70이 다 된 노부부는 은퇴하고 남은 생애를 즐기기로 작정하였다. 무언가 쫓기듯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힘이 되는 한에서 여유 있게 걸었다. 가이드도 없이 걷는 노부부는  하루 한 시간 걸을 때도 있고, 두 시간 걸을 때도 있다. 피곤하다 싶으면 어느 곳이든 머물러 쉬면서 자그마한 시골 동네를 구경하였다. 노부부는 걷는 게 목표가 아니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즐기는 것이 목표였다. 그들은 떠나면서 내게 말하였다. “젊은이. 자네도 은퇴 후에 우리처럼 여유를 가지고 즐기며 살아보게.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워.” 난 그 노부부가 더없이 부러웠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했다. “마음이 즐거우면 종일 가도 피곤을 모르지만, 마음이 슬프면 얼마 못 가서 피곤하여 주저앉는다.”

우리는 인생의 결말을 알고 있다. 모두 똑같은 종착점으로 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빨리 달려가고, 어떤 사람은 여유 있게 간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좀 더 여유롭게 가는 것이 훨씬 나을 듯싶다. 특별히 노년의 시기에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지 않으면,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예수님은 공중에서 지저귀는 새를 쳐다보기도 하고 길가에 피어 있는 백합화를 보며 감격하셨다. 시편 저자는 노래하였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 시편 저자는 하늘을 바라보고 힘을 얻었다. 자연은 은혜의 수단이다.

일 년 중 가장 청명하고 맑은 날씨를 보이는 이 가을 가끔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를 가짐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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