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무역선

by dschoiword posted Dec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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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무역선

 

국가연합(UN)은 매년 3월 25일을 국제 노예제도와 대서양 노예무역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로 정하여 행사를 하고 있다. 위 그림은 노예 무역선의 비인간적인 환경을 묘사한다. 사람을 짐짝처럼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비인간적인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매우 충격적이다. 1996년 로드 브라운(Rod Brown) 작품으로유화물감으로 그린 것이다미국과 영국에서 전시된 바 있다. 그림 이름은 지옥’(Sheol)이다제목은 그림이랑 잘 어울린다.

 

브라운은 30년 넘게 아프리카-아메리카인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는 예술가다아프리카인 노예들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작가 줄리어스 레스터(Julius Lester)가 브라운의 전시작품들 중 몇몇을 뽑아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 <자유의 길>(낮은산 출판사)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노예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흑해 북안에서 지중해 세계에 수출되었다. 흑해 북안의 그리스 식민지와 남러시아 여러 지역의 경제활동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고전시대의 지중해 세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교역을 통해 남러시아와 그리스는 문화적·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경로를 거쳐 수입된 노예들은 노동력으로도 활용되었고 전투 용병으로도 활용되었다.

 

로마 시대에 들어와서도 대토지소유제를 운영하려고 대량의 노예를 수입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슬라브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 로마의 노예 공급지였다. 이슬람 사회는 이슬람교도를 노예로 삼지 못했기 때문에 10~11세기에 걸쳐 볼가강 중류 연안, 그리고 시베리아 지방까지 가서 노예를 모집했다. 주로 이란 북서부의 니샤부르가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근대의 노예무역은 신세계가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신세계에서 플랜테이션 농업이 대규모로 경영되면서 아프리카 서해안을 중심으로 흑인노예들을 대량 수입하게 되었다. 15세기 이후 아프리카 서해안에 거점을 마련한 포르투갈은 이곳 원주민인 흑인을 노예로 썼다.

 

이어서 16세기에 들어와 포르투갈령의 브라질과 서인도제도에서 사탕 플랜테이션이 개설되면서 흑인노예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16세기의 노예무역은 포르투갈인이 주도했으나 17세기 후반에는 과달루프와 마르테니크의 두 섬이 사탕생산의 중심이 되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상인도 노예무역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의  상인들은 런던, 브리스틀, 리버풀 등지를 중심으로 노예무역을 행하여 연간 10% 이상의 이익을 올렸다.

 

소화기, 유리 등의 장식품, 면포 등을 싣고 리버풀, 루앙, 보르도 등의 항구를 떠나 아프리카 서안을 향해 떠나는 수백 톤 급의 노예무역선은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직접 노예사냥을 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베닝 왕국이나 다호메 왕국 등 연안의 흑인국 사이에서 싣고 간 상품을 노예와 맞바꾸어 신세계로 향했다. 아프리카로부터 신세계로 향하는 항로는 '중간 항로'라고 했는데 통상 5주간의 항해였다. 노예는 1톤 당 4명 이상씩 과적이 되어 위생상태가 불량했으며 병사자와 자살자가 속출했다. 신세계에 도착해서도 현지 기후에 적응하는 데 3~4년이 걸렸으며 그중 사망률이 30% 이상이었다고 한다.

 

노예무역선은 신세계에서 노예를 돈을 주고 팔거나 사탕·면화 등의 식민지 생산물과 맞바꾸어 유럽으로 돌아갔는데 그 효과는 3각 무역이라고 할 수 있다. 리버풀의 예를 들면 노예무역을 통하여 면포를 수출하고 면화를 수입하는 결과가 되어, 곧 원료를 수입하여 완제품을 수출하는 형태로, 이 도시의 배후지인 맨체스터 주위에는 면공업이 엄청나게 촉진되었다. 서구의 여러 나라가 아프리카로부터 신세계에 운반해 간 노예의 수는 최저 1,500만 명에서 최대 4,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같은 노예무역도 자유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산업혁명 이후에는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점차 사라졌다.

 

"주님 안에서 노예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주님께 속한 자유입니다.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고전 7:22-23).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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