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소고

by dschoiword posted Dec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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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왕 히스기야(BC 726-698, 종교개혁자)의 인감이 찍힌 점토 1.27cm/ CBN


박근혜 소고

 

공헌배/ 페이스북 담벼락 (2016.12.10.)

 

제목: 인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목사로서의 소고

    

나는 보잘 것 없는 목사의 한 사람일 뿐이다. 어떤 이는 법률적 판단을 하고, 어떤 이는 정신의학적 판단을 하며, 어떤 이는 끈질기게 추적하여 진실을 밝히는 임무를 맡는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소임들을 감당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훌륭할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필요한 직책들이다. 

 

그러면 나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 사실 별 볼일 없는 내가 어쩌다 목사가 됐고, 짧은 식견에 그래도 신학 책들을 몇 권 읽었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발성하게 된다. 양해 바란다.

 

어제 오후에 탄핵이 가결됐다. 어디에선가는 환호성을, 어디에선가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누군가는 ‘탄핵기념’이라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 결과가 반가운 듯 여기는 사람들이 있더라!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의견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달리 생각한다. 이 사태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어떠해야할까?

 

만일 내가 소망교회의 당회장 목사라면 나는 이명박 장로를 치리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힘이 없어 이명박 장로를 이기지 못한다면 그 교회에서 쫓겨날 확률이 높다. 아니, 쫓겨나는 정도가 아니라 생매장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 목사로서 끝장 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래도 내가 만일 소망교회의 당회장 목사라면 나는 이명박 장로를 치리하려고 할 듯하다. 그게 목사로서의 직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 한국 장로파 교회의 전통대로라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연히 장로 면직 및 출교 깜이다.

 

일제시대의 교회 규례대로 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작은 과실로도 장로면직이었다. 하물며 대통령으로서 드러난 과실이 그정도였다면 그는 이미 장로직이 박탈됨은 물론 교인의 자격도 박탁될 듯하다. 일제시대의 한국장로파(칼뱅파)의 관례대로 하면 그렇게 된다. 물론 일반인들에게는 좀 더 관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직까지 맡은 사람이라면 그 잣대도 달라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좀 다르다. 그녀는 교적이 불확실하다. 어쩌면 교인이 아니다. 그래서 치리할 수가 없다.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도해야 한다.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그녀에게도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 한국개신교회의 사례 몇 가지를 소개 한다:

 

세례를 받고자 원했던 사람 가운데 이전에 동학도였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어떤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관헌들이 뒤를 쫓고 있었는데 자신을 숨겨줄 것을 바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로 피신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그는 진실로 회개하고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게 되었다. 그가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지도자에게 물으니 그의 대답은, “가서 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받아들이기에는 무척 힘든 충고였으나 그는 자수하러 가서 결국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무척 행복해 보였기에 간수들은 놀라고 말았다. 사형선고를 받고도 이렇게 평화와 기쁨이 가득한 사람은 처음 보았던 것이다. 몇몇 다른 수인들도 그를 통해 회개하게 되었다(L. H. Underwood/ 이만열 옮김, <언더우드: 한국에 온 첫 선교사> (서울: 기독교문사, 1990), 170-171).

 

그는 사악한 마음을 갖고 악마를 숭배했으나 지금 그의 마음은 완전히 바뀌었다. 회개가 무엇이냐고 묻자 “자신의 행동을 고치고 새로운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대답했다.(중략) “당신은 첩을 두면 안 된다는 것을 압니까?” “네.”(중략) 그는 자신의 죄가 용서 받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이 변화되었으며,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고 탐욕을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께서 명하신 것을 행하기가 어렵지 않았다.(중략)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이번 시험 문답에서 보통 들을 수 있는 질문과 답변 중 몇 가지 예를 든 것이다. 그들의 변화된 생활은 그것을 아는 신앙의 지도자가 그들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증명되었다(Lillias H. Underwood,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or Life in Korea, 신복룡, 최수근 역주 <상투의 나라> (서울: 집문당, 1999), 229-232.).

 

언더우드는 곧 문답을 거쳐 세례를 받겠다고 요청하는 사람이 백 명이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마을로 내려갔는데,(중략) 찬송가를 부르며 언더우드를 맞이하였다.(중략) 그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서 진실로 변화된 삶의 모습을 보았다(L. H. Underwood/ 이만열 옮김, <언더우드: 한국에 온 첫 선교사>, (서울: 기독교문사, 1990), 169).

 

우리는 다음 주일에 세례식을 거행하게 될 것인데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신실해 보입니다.(중략) 며칠 전, 우리는 세 사람을 문답했었는데 그 사람들은 아주 대답을 잘했고,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와 구원에 대한 진리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중략) 그들 중에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면 이 나라와 왕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 해도 관계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도 “내가 내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하는 것 때문에 국왕이 내 머리를 베어버린다 해도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을 보면 그들은 세례를 받는 것으로 인해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을 듣고서 세례 베풀어 줄 것을 요청받을 때, 거절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H. G. Underwood/ 김인수 옮김,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1885-1916)>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2), 89).

 

그래서 그 당시에는 세례 받는 자체부터가 달랐다. 아무나 예수 믿지 못했고, 예수 믿는 것도 허락받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 믿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세례의 과정을 통해 검증받아야 했다. 그러면 그보다 몇 십 년 뒤인 나의 아버지 시대에는 어땠을까? 나의 아버지의 회고를 따르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는 산(山)기도를 많이 다녔고, 부흥집회에 열심을 내던 중, 아버지만이 아는 성령 불체험을 하였다(방언 및 각종 은사체험). 이후 아버지에게는 세상이 완전히 새롭게 보였다. 성령의 빛 아래 철저한 회개생활을 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회개할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착하게 살았다. 아버지는 술, 담배도 하지 않았다. 공자의 후손답게 도덕적으로 살았다. 그러나 성령의 빛이 임하자, 아버지는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먹고, 마시고, 숨을 쉬는 것조차 모두 죄로 여겨졌다. 깨알보다도 더 많은 죄를 짓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10년의 세월동안 눈물로 보내며,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4배로 갚는 회개의 생활을 했으며,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십자가를 보면 기쁨이 치솟았고, 어찌나 반가운지, 교회가 얼마나 좋은 지, 도둑 없는 세상, 대문이 없고, 자물쇠도 없는 세상 같았다. 그런 식으로 기쁜 나날들을 보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은 대략 그랬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땠을까? 어머니의 회고를 따르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목회은퇴 하신 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녀 00이 마을의 가게에서 다른 아이들이 사탕(과자)을 사 먹는데 00은 돈이 없어 그만 주인 몰래 하나를 먹었다(몇 십 원 짜리). 그 말을 듣고, 늦었지만 어머니는 4배의 회개 금(3만원)을 갖고, 동네 가게의 주인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당시의 과자 값을 4배로(대충 계산하여)드렸는데, 가게의 주인은 받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이 그럴 수 있지,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리했겠느냐’면서 기어코 받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난하여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주일 헌금은 주일마다 반드시 아이들 손에 쥐어서 헌금하게 했다.

 

그래서 예수 믿는다는 것은 정직성과 윤리적 성화에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무식해서 신학을 잘 모른다. 그러나 내가 부모에게서 듣고 배운 복음은 대략 이런 종류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예수 믿는 게 대략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니, 나에게는 여간 충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가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방법이다. 예수님은 세금장이 삭개오를 찾으셨다. 내 짧은 지식에 의하면 그 당시의 세금장이들은 친(親)로마파로서,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배척당하던 밉상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예수께서 그 밉상 받던 삭개오의 집을 찾은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제시한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다음과 같이 결단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눅 19:8).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새로운 존재가 됐다. 이걸 신학 용어로 거듭났다고(중생) 했던가? 성경은 이것을 복음(유앙게리온)으로 기록했다(막 1:1 “Arke Tou Euangerriou Iesu Kristou”). 즉 예수를 만난 자는 변한다. 다른 인격으로 변하며, 다른 행위의 실천가가 되며, 다른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다른 소망의 추구자가 된다. 이게 성경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복음(Iesu Kristou)을 박근혜 여사에게도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와 같은 복음은 박근혜 여사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할 수 있다. 물론 믿고 말고는 그들의 선택이겠지만 전할 의무는 있다.

 

과거의 그 사태를 회귀해보자, 박근혜 여사는 아가씨 때, 장로회 신학대학교를 찾아갔다. 그런데 모 교수의 회고를 따르면, 정치바람을 탄 장신대는 그 박근혜 아가씨를 쫓아냈다.

 

다음과 같은 속담이 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사실 그 당시의 사태에서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그녀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물어야지, 그의 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가혹하다. 딸과 아버지는 동일한 인격체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손가락 질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되어, 소견들을 내놓는다. 물론 당연히 박 대통령에게 과실이 있다. 그랬기 때문에 그분 스스로도 사과를 하지 않았겠는가?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나는 글을 올리는가? 신학공부를 조금해보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오늘날의 신학자들은 수 십 년 전과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는 듯 하여, 이 글을 올린다.

 

예수님 시대의 기준으로 하면, 삭개오와 같은 신분의 사람들은 만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만나셨다.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의 입장에서라면, 삭개오와 같은 인간들은 상종 못할 사람들로 분류됐을 듯하다. 삭개오의 비밀을 캐내고, 삭개오의 비리를 폭로하면 아마도 언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잘 했다고 여겼을 듯하다.

 

잘못을 덮어주자는 뜻이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 더군다나 공직자의 죄질은 무겁게 다루어야 한다. 이는 사법부에서 결정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목사는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검사와 같이, 군중과 같이, 판사와 같이 돌을 던져야 하겠는가? 돌을 던지는 일은 목사가 아니어도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신학자들은 무얼 해야 하겠는가? 나는 신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긴 한데, 빅또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 1. (종달새 꼬제뜨)를 보니, 신학적인 주제가 적지 않게 다루어지더라, 영화 <레미제라블>과는 달리, 이 책의 원작은 마치 신학 책인가?라고 할 만큼 신학적으로 여겨지더라, 사람들은 인문학 고전으로 생각하던데, 왜 무식한 내게는 이게 신학 책으로 보였을까?

  

이 책에는 ‘장발장’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죄수이기도 했고, 신분 높은 사람이기도 했다. 동일한 인물이지만 상당한 역할 상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발장을 분노하게 했던 요인은 뭐였고, 장발장을 변화시킨 요인은 뭐였는가?

 

사실 사회는 장발장에게 빵을 훔친 죄 값을 치르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장발장은 빵 훔친 댓가를 충분할 정도로 치렀다. 그러나 그 사회의 법은 장발장을 교화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장발장으로 하여금 더 큰 분노를 낳게 했다. 장발장을 변화 시킨 힘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수십 년 전의 장신대는 어떤 신학적 해석을 했는가? 박정희 대통령이 잘했다는 게 아니다. 장신대가 신학교로서 일반 사회의 법대나 일반대의 정치학과와는 어떤 다른 기준을 갖고 있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신학자들에게서 적지 않은 의견들을 들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도대체 저 훌륭하신 신학자 분들이 가진 신학적 해석의 기준이 무엇인가? 왜 저분들의 발성들은 신문 사설이나 검찰이나 기자나 정치가들이 말하는 것들과 동일한 발성처럼 들리는가? 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변화(회개)시키지 않으셨는가? 바로 이것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달랐던 점 아니었는가?

 

물론 변화되지 않고, 끝까지 악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치리했다. 신약성경에도 ‘출교’가 나온다. 그러나 회개하고 변화될 영혼에 대해서는 전도할 수 있어야 한다. 치리하다가 힘에 밀려, 쫓겨나고, 매장되어 목사 면직이 되더라도 그게 목사에게 주어진 임무가 아니겠는가? 나는 정의롭게 치리할 수 있는 목사를 훌륭한 목사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나는 꼴통이라서, 교인 수 늘인 목사보다도 말썽 일으킨 교인을 치리한 목사를 더 높게 여기고, 존중하는 사람이다. 설령 그 교인이 장로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제시대의 전통을 따를 때에는 장로도 목사의 치리에 순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당연히 그 목사는 정의로워야 하며, 존경스러울 만한 도덕적이고, 복음적인 순결성이 있어야 한다. 일제시대에는 목사들이 실지로 그랬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영혼이 있다면 그 가련한 영혼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어야 한다. 목사에게는 그 복음을 전할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목사와 신학자들에게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은 것 아닐까? 다시 말해 수십 년 전에 놓쳐버린 기회를 다시 주고 싶은 것 아닐까? 그 당시의 신학자들은 전도에 실패하여, 최 아무개에게로 한 영혼을 빼앗겼다. 영적 스킬이 부족하여, 그녀의 상처를 헤아리지 못하여, 최 아무개에게로 넘겨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이 일을 반복하고 싶은가? 여전히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은 수 십 년 전의 성공하지 못한 그 미숙한 방식의 스킬로 그녀를 대하고 싶은가!

 

대남 공비 중에 김신조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김신조에게 시집가겠다고 한, 남한의 한 여성이 있었다. 사람들은 제정신 아니라고 했을 듯하다. 그리고 결혼 후, 그 부부는 교회를 나갔다. 오늘날의 김신조는 달리 평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의 김신조는 교회를 통해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한다.

 

어차피 죄과 사실들이 입증된다면 대통령은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 의견이 그게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 용서하란 말도 아니고, 과실을 가볍게 여기라는 뜻도 아니다. 성경은 인간 존재의 고독함과 인간 존재자들의 변화(회개)를 가르치지 않는가?

 

우리는 현재 복음의 그 능력을 신뢰할 수 없단 말인가? 그래서 법학적 의견으로 말하고, 언론의 의견으로 말하며, 정치학적 견해로 답해야 하겠는가?

 

더러 복음 전한다고 가기는 했는데, 영적 스킬이 부족하여 최 아무개에게 도둑맞을 만큼 어설퍼야 하겠는가? 좀 더 야무지고, 똑똑하며, 뛰어난 영성가가 정말 우리 주변에는 없단 말인가? 마치 엘리야나 나단이나 이사야와 같은 영성가들이 없단 말인가?

 

아니, 무엇보다도 그를 예수님 앞으로 안내할 전도자가 없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