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강해

by reformanda posted Mar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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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리문답강해


윌리암슨 저, 최덕성 역, <소요리문답강해>(1978)를 읽고/ 정태홍 박사


소요리문답강해: 한국 개혁신앙의 뿌리


나의 스승 최덕성 교수가 대학생 시절에 영서를 한글로 번역한 윌리암슨의 소요리문답강해(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초판 1978)는 한국교회의 정통신앙과 개혁교회의 교리체계 형성에 매우 크게 이바지했다. 기독교 교리강해서 또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소요리문답 강해의 고전이라 할 만큼 유명하다. 1978년에 초판이 발행되고 2016년에 17쇄 발행 보급되었다. 그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해 준다. 한국교회로 하여금 성경과 교리에 충실한 개혁신앙의 정통성을 수호하도록 기여한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가치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

 

저자 윌리암슨(G. I. Williamson)은 미국정통장로교회 출신으로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에 있는 망그리개혁교회의 목사이며, 자신이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엮어 출간했다. 나는 소요리문답강해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윌리암슨의 신앙과 인격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 교리라는 말을 들을 때 너무나 어색해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마치 고리타분하고 논쟁적인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는 윌리암슨을 통해 그런 왜곡되고 오해된 시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가 있다. 윌리암슨은 책 서문에서 자신의 교수법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업 전에 학생들이 각 과를 주의 깊게 읽고, 질문들의 답을 기록하도록 하였으며, 그 후에 그 해답들을 수업 시간에 발표하고 토론하게 했다. 그 답이 틀렸거나 불충분할 때에도 정답을 즉시로 말해 주지 않고 다른 학생들로 하여금 평가, 비판해 주도록 하여 정답을 본인이 말하도록 시도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교리의 함축된 문제를 생각해 내고 배우게 했으며, 수업 시간의 토론을 거쳐 진리와 비진리, 적절함과 불충분함을 예리하게 식별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윌리암슨의 이런 모습들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진지하며 얼마나 친절하게 학생들을 가르쳤는지 알 수 있다. 교리를 가르치는 교수의 인격이 따뜻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오히려 교리를 버린 이 세대가 훨씬 덜 인격적 방식으로 변질되었다.

 

윌리암슨은 머리말에서 성경에 하나의 교리적 체계가 있음을 확신하면서, 그 체계를 가르치려고 했다고 강조한다. 기독교 교리 전체의 진수를 역사적 기독교 곧 정통신학의 관점으로 풀어냈다. 그런 까닭에 윌리암슨의 소요리문답강해는 조직신학 전체의 핵심 내용을 집대성한 책이라 할 수 있다.

 

1부는 32과로 구성되어 있다. 번역서에 있는 각 장의 제목은 원문에 없으며, 역자가 달았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 성경, 성경의 가장 요긴한 교훈, 하나님, 삼위일체, 예정, 창조, 인간, 섭리, 생명언약, 죄와 타락, 원죄, 인간의 본성, 죄의 결과와 비참, 은혜언약과 선택, 구속사, 성육신, 그리스도의 세 직분, 선지자직, 제사장직, 왕직,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구원의 순서, 효력 있는 부르심, 회개, 칭의, 양자삼음, 성화, 이생에서의 유익, 죽음, 부활과 심판으로 진행된다.

 

2부는 32과로 구성되어 있다. 율법, 십계명, 1계명의 요구, 1계명에서 금하는 것, 그리고 제10계명까지의 요구와 금하는 것을 다룬다. 죄와 보응, 은혜의 방편, 성령님의 구원 사역, 성례, 세례, 성찬, 기도, 주기도문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부터 나라권세영광이 영원히, 아멘까지를 여러 장에 걸쳐 해설한다.

 

부록은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도표들을 담고 있다. 교리와 상호 관련이 있는 문제를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교사가 언제든지 토론의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책의 끝부분에 원본 책에는 없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대교리문답을 담고 있다. 역자가 대교리문답을 한국교회 안에 대중화시키려고 함께 수록하여 출간했다고 한다.

 

윌리암슨의 소요리문답강해는 각 과마다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그림들이 실려 있다. 그림은 독자들로 하여금 각 과에서 말하려고 하는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한 눈에 알아보게 한다. 독자가 소요리문답 제1문을 펼치면, 그림 AB에서 하나님이 중심이 된 그림과 자기가 중심이 된 그림을 볼 수 있다. 또한 매 과에는 질문이 있어서, 요리문답을 얼마나 잘 배웠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다. 질문은 복습과 토론에 적절하다. 요리문답의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만 답할 수 있는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라는 점에서 유용하다.

 

구관이 명관일 경우도 있다. 오래된 책이라는 이유로 간과하는 것은 어리석다. 예를 들어, 1부 제24과에는 우리가 잘 아는 요한계시록 320절을 근거로 성령님의 역할을 설명한다. 윌리암슨에 의하면,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면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신다는 것은 순전히 아르미니우스주의 발상이다. 한국교회가 만일 이 책을 따라 교리를 올바로 가르쳤더라면 그런 방식 곧 우리가 문을 열면 예수님께서 마음에 들어온다는 식으로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교리를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목회자나 성도들은 자신이 말하는 것이 아르미니우스주의 교리라는 사실을 모른다.

 

윌리암슨의 소요리문답강해는 개인적으로나 그룹으로 기독교 교리 또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소요리문답을 처음 공부하려는 분들에게 매우 좋은 책이다. 성도들, 신학생들, 목회자들이 이 책을 공부한다면 역사적인 기독교 곧 개혁신앙의 근본적인 교리를 확실히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입문적 역할을 하는 책이기 때문에, 심오한 신학적 깊이를 원하는 분은 이 책으로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더 자세한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수는 있겠으나, 소요리문답은 신학적 논쟁을 설명하고 해소하는 책이 아니다. 그래서 명확성이 떨어지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1부 제20과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서, 제한속죄를 말할 때에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칼빈주의의 이해 차이를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잘 이해하도록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주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제2부 제2과에서 또 하나의 잘못된 가르침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셨으므로 신자는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는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하기 전이나 후에 반율법주의라고 명확하게 말해 주면 더 좋을 것이다. 이 밖에도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각 항목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설명을 해 주어야 할 것들을 소개할 필요성이 있다.

 

옮긴이 최덕성 박사는 이 책을 번역하던 당시에 고려신학대학(현 고신대학교) 학생이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직전인 1978년에 번역을 완성하여 출간했다. 미국정통장로회 선교사들의 번역 권유를 받아 번역했다. 역자는 어려서부터 교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중학생 때 소요리문답 전체를 암송하는 등 교리에 남다름이 있었다. 미국에서 10연 이상 기독교사상사를 전공하고 고려신학대학원에서 20년 이상 역사신학을 가르쳐 왔다. 현재는 브니엘신학교에서 교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자 최덕성은 옮긴이의 말에서 자신이 한국의 개혁주의 신학의 보루인 고려신학대학에서 수학한 것에 감사하다고 하면서, 이 책은 되도록 쉬운 말로, 그리고 명료하게 번역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왜냐하면 쉽게 가르치는 자가 실력이 있는 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아 있는 영어를 가르쳐 준 잉글리쉬 선교사 부부와 부인 이민주 님과 언약의 아들 최평화 군에 대한 언급으로 마무리한다. 독자들이 이 책 그림들의 주인공 돌이와 함께 교리를 공부해 나가노라면 올바른 진리의 체계와 영감적인 아이디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개혁주의 교회가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하나님이 원하고 기뻐하시는 산 뜻을 지향하는 교회인가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역자는 이 책을 대학생 시절에 번역했고, 출판은 그가 신학대학원 2년을 수학하고 도미한 뒤에 이루어졌다. 옮긴이의 말에서 교리에 관한 매우 중요한 신학적 진술을 하고 있다. 신학생 시절의 최덕성의 신학적 바탕을 엿보게 하는 내용이다. 핵심 부분은 다음과 같다.

 

소교리문답은 영국의 개혁주의 장로교회의 전성기에 열렸던 웨스트민스터 회의(16431649)에서 경건하고 박식한 121명의 신학자(목사)와 장로 30(상원 의원 10, 하원 의원 20)이 모여 기도하면서 성경 말씀에 따라 만든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을 더욱 빨리, 쉽게 배우도록 만든 신앙 고백과 교리를 포함하는 문답 형식의 교육 도구이다. []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교리를 등한시하는 경향일 짙어가고 있다. 영국교회가 이 아름답고 장엄한 교리(신앙고백요리문답)를 체계화했으나 그들 후손들이 점차 신앙고백을 등하시하고 소홀히 여기며 인간 철학사상의 이론에 편승한 결과 현대주주의의 첨단은 걷게 된 것이다. 철학이나 학문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교회가 처음부터 받았고 표방하는 이 교리적 기초 위에서 멀어져 갈 때, 한국교회의 미래는 암담한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 주변에 스며든 신비주의와 초심리학의 요소, 인간 사색의 산물인 철학에 편승한 현대신학의 엄청난 위험들이 얼마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가!

 

최덕성이 이 책을 번역할 때(1975-1978), 그가 느낀 시대의 분위기는 교리를 등한시했다. 이미 교회 안에는 신비주의와 초심리학, 기복주의, 현대신학이 들어와서 교회를 위협하는 지경이었다. 교리를 소홀히 한 현대교회는 놀랍게도 설교에 집중하기보다 프로그램이 교회를 끌어가고 있다. 설교의 수준이 높아지기 보다는 격하되었다. 목회자는 성도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고 소리치지만 오늘날 성도들은 설교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역자가 이 책을 번역한 동기에 대한 글은 그의 젊은 시절의 교리 이해를 반영한다. 자기 시대적 흐름을 꿰뚫어 보며 교리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아래와 같다.

 

우리는 가끔 성경 말씀만 믿으면 되지, 신조나 교리는 왜 필요한가?”라고 말하는 교리의 무용성을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들은 교리가 교회의 분규를 조장하고, 교회 연합을 방해하며, 지식 발전을 제한하며 양심의 자유를 가로막는다고 매우 강력하게 말한다. 그들은 연합이라는 이름하에 현대의 교회 운동은 모든 종교의 교리를 초월하여 각 교회들이 가진 교리의 특이성을 모두 아름다운 유산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상당히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독버섯 같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신앙 고백이나 교리가 없이 각인의 생각대로 가르치고 믿는 것은 오히려 분파를 조장하며 편견의 본질을 지닌 인간 이성으로 참된 진리를 판가름하려는 오만함이다. 동일한 성경 66권을 가지고 교회와 단체들 중에는 얼마나 그릇된 의견의 차이를 보여 주고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언어적, 주석적, 조직적, 역사적, 실천적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하는 올바른 성경 해석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순수한 신앙에 대한 공적인 증거와 순수한 말씀 중심 교회의 일치성과 단일성을 보전하며, 신앙의 순수성을 보전하고, 비진리와 이단의 확장을 배격하기 위해, 그리고 정통적 교회 내의 진리로 인정되어 온 바를 우리와 우리 후대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이 교리 문답과 신앙 고백을 필요로 한다.

 

내가 아무리 목청껏 소리를 높인다고 해도 성경에 근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우리의 신앙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 속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믿음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 만들어진 개혁신앙의 여러 신앙고백서들 근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 문답은 양심의 자유를 가로막거나 지식 발전을 제한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갖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에 대해 종속적이며 상대적이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무엇이 발견될 때, 주저 없이 이것을 고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성경의 충족성에 배치되지 않으며, 성경 가르침의 중추적인 역할을 밝힐 뿐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그 가치와 의의를 갖는 것은 그것이 성경에서 나왔다는데 있다. 이 속에 성경에서 유래되지 않은 것들이 있을 수 없다. 성경이 이의 원천이요 표준이다.

 

칼빈주의라고도 불리는 개혁주의는 바울, 어거스틴, 칼빈을 통해 전수받은 역사적 신앙이며, 성경이 가라는 데까지 가고, 멈추라는 곳에서 멈추고 돌아서라는 곳에서 돌아서는 신학이다. 이것은 철저히 성경 말씀에 토대하며, 생명을 주는 운동이며, 적극적인 신앙, 긍정적안 사색, 그리고 사람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학이며, 인간의 전적 무능력을 깨닫고 성견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높이는 생동력 있는 신학이며타협 없이 진리를 증거 하려는 역사적 보편성, 세계성을 띤 신학이며, 닫힌 신학이 아니라 열린 신학이며, 신앙과 신학의 분리를 배격하는 신학이다.

 

우리는 한국 교회가 하나가 될 것을 원한다. 말씀에로의 일치가 없는 외적인 모양만의 연합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과 기초 위에서만이 참된 일치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교리 문답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고, 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있을 것을 확신한다.

 

역자 최덕성은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마치고 현재는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 과정 목사후보생들에게 교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역자는 흥미롭게도 2018년 초에, 신학저널 <리포르만다>에 교리의 중요성에 대한 예수께서는 교리를 설파했다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최덕성 자신의 신학적 신념을 교리에 대한 이해를 소개하는 글이다. 그 글에 주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성경공부에만 매진하고 교리 공부를 소홀히 하면 위험할 수 있다. 성경공부와 성경적 교리공부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르다. 성경은 인간의 마음에 새겨 주려는 목적이 분명한 진리 곧 교리들을 담고 있다. 우리는 그 교리를 알아야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사명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거쳐 구원하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구원 진리 곧 교리는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안내자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29:29).

 

성경은 세계사 책이 아니다.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역사 기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일의 목적과 계획을 드러내는 데 도움 주는 특정 사실들을 골라서 기록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0-31).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21:25).  성경은 하나님의 실존 증거들을 제시하는 신학 서적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은 많지만 그 가운데서 주목할 것은 구원(salvation), 대속(redemption) 사역이다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도하는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교리들, 기독인의 행복헌장인 계명, 법도, 율례를 담고 있다. 기독교 교리는 성경 가르침의 핵심이다. 성경에 담긴 진리의 요체다. 기독교 교리는 곧 진리이다.(최덕성, “예수께서는 교리를 설파했다,” 리포르만다, 2018.05.28.).

 

최덕성에 의하면, 성경과 교리를 공부하는 것은 하나님 목적과 계획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하나로 체계화 한 것이 기독교 교리이다. 교리가 성경보다 앞서지 않으나 교리를 벗어나 성경을 가르치면 지나간 역사에 있었던 오류와 잘못을 다시 범하게 된다. 교리무용론을 주장하는 반지성주의는 오히려 신비주의 영성으로 도약한다.

 

최덕성은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다시 강조한다. “왜 교리를 공부하고, 교리를 설교해야 하는가? 성경이 교리를 말하고 있다. 성경은 여러 모로 교리를 설교하고 가르칠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교리 형태로 주어졌다성경은 다양한 문학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든 내용에는 교리 곧 진리가 담겨 있다고 한다.

 

최덕성은 우리가 교리를 공부하고 설교해야 하는 이유를 성경이 교리를 설교하고 가르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교리적인 형태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주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의 핵심을 체계화한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현대교회는 교리적 체계화에 수고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너무 적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교리를 교회에 적용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을 위해 새로운 인식과 접근을 가지고 다가서야 할 것이다.

 

오늘의 나는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의 나의 신앙도 우연히 주어지지 않았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또한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성경적 신앙을 위해 피 흘린 대가를 통해 주어진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와 우리가 이만한 신앙의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우리의 스승 최덕성 교수가 윌리암슨의 소요리문답강해를 번역함으로써 한국교회에 보급되어진 교리지식이 덕분이기도 하다. 역사신학자 최덕성 교수가 젊은 시절에 수고하여 번역한 이 책은 한국교회의 교리 체계 형성과 대중화에 이바지했고, 한국교회로 하여금 개혁신앙에 뿌리를 내리며 자라게 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정태홍 박사 (계명대학교 철학박사, 조직신학, 가조제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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