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선언과 역사의식

by reformanda posted Mar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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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과 역사의식:

로마가톨릭교회의 양심선언, 무엇을 말하는가?


최덕성 교수의 <양심선언과 역사의식>(2000)을 읽고/ 강미나 박사


나는 젊은 시절 로마가톨릭교회(천주교) 신자였다. 나이가 들어 기독교(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이다. 일본국학원에서 일본학을 전공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스승 최덕성 박사의 <양심선언과 역사의식>(서울: 본문과 현장사이, 2000)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로마가톨릭교회, 프랑스가톨릭교회, 일본가톨릭교회의 과거사 참회고백과 양심선언 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3 천년기로 진입하는 시점에 출간된 이 책은 교회의 양심선언과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논한다. 이 책은 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바티칸, 프랑스, 일본의 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을 소개하면서 한국천주교회와 한국 개신교의 과거사 청산과 양심선언을 독려한다. 교회가 저지른 범죄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공적인 참회고백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책임이 사라지지 않으며, 참회고백에는 시효가 없다고 한다. 동일한 뿌리를 가진 한국천주교회와 한국기독교가 민족과 사회를 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일념을 담고 있다. 교회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와 범죄를 어떤 관점으로 검토해야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역사의식을 가진 교회의 양심적인 접근방법인가를 논의한다.

 

1장은 로마가톨릭교회는 지난 두 천년기 동안, 교회가 자신이 인류에게 저지른 과오를 공적으로 참회하는 고백성사를 가진 것을 논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하고, ‘용서의 날을 정하고, ‘교회의 아들딸들이 행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미사를 가진 것을 논한다. 교황이 용서의 날 미사(The day of Pardon Mass)’에서 고백한 죄는 대략 다섯 가지다.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신의 이름을 내세운 신대륙에서의 학살, 히틀러와 무솔리니에 동조, 반유태주의, 여성에 대한 억압, 인종 차별 등이다. 유형별로 분류하면 진리를 추구하는 명목으로 저지른 죄, 그리스도인들의 단결을 해친 죄, 유대인을 박해한 죄, 이교도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업신여긴 죄, 타 인종과 여성을 학대하고 차별한 죄 등이다.

 

2장은 로마가톨릭교회의 특별한 참회고백문인 기억과 화해: 교회의 과거의 과오들(Memory and Reconciliation: The Church and the Faults of the Past, 2000)”을 소개하며 분석한다. 교회는 어제와 오늘의 교회의 자녀들의 은사와 공적과 과오를 모두 책임지는 독특한 주체이다. 과거 잘못에 대한 사죄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역사적 판단과 신학적 판단, 윤리적 분별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속적 혁신을 증진시키고, 자비의 하나님과 진리를 증언하고, 오늘날의 죄악들을 극복하도록 돕는데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3장은 교회의 참회고백의 본질에 대한 기억의 정화,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 아래서 상론한다. 기억의 정화는 교회의 발전과 미래를 향한 성공적인 행보의 첫걸음이며 화해의 길을 여는 데 기여한다. 기억을 정화하려면 몇 가지 선결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참회고백은 왜 해야 하는가? 누가 해야 하는가? 역사적 판단과 신학적 판단의 올바른 조화를 통해 주구하려는 목표는 무엇인가? 어떻게 이것을 결정할 수 있는가? 누구에게 참회를 할 것인가? 도덕적 함의들은 무엇인가? 교회생활과 사회에 대해 기치가 될 효과는 무엇인가?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는 데 필요한 전제들은 무엇인가?

 

4장은 침묵의 죄를 참회하나이다라는 제목 아래서 프랑스가톨릭교회의 참회선언을 다룬다. 프랑스교회는 제2차 대전 당시 자국의 친 나치 비시정권이 반 유태인법을 제정하고 유태인들을 강제로 추방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7주년이 되는 1997930일 비시정권은 반유대인 정책에 침묵 내지 동조한 과거를 반성하는 선언문 발표했다. ‘2차 세계대전과 유태인에 대한 참회선언’(Declaration de Repentance)은 유태교 측에 '용서'를 간청한 내용이다.

 

저자는 교회가 원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양심, 공의, 질서, 진실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의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참회고백은 반드시 해야 한다. 과거사 참회에는 시효가 없다. 교회의 참회고백은 사회에 막심한 영향을 미친다. 과거 프랑크 왕국 안에서 이루어진 피비린내 나는 알비젠시안(Albigensians), 위그노(Huguenots), 왈도파(Waldesians) 사람들에 대한 대 학살,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의 덫과 올무로 잡아 죽인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악행들, 십자군이 죽인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의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 동로마제국 기독교인들이 흘린 피 등에 대한 석고대죄는 해결되지 않은 참회과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5장은 일본가톨릭교회가 일제치하에서 저지른 죄에 대한 참회고백을 전쟁협조의 죄를 참회합니다라는 주제 아래서 소개한다. 복음 진리를 오도하고 제1계명과 제2계명을 범하는 우상숭배를 주저하지 않은 과거사를 참회했다. 일본개신교도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의 죄 곧 신사참배의 죄를 참회했다. 일본의 개신교나 로마가톨릭교회는 외국종교, 서양종교로 간주되고 있다. 이 풍토에서 교회는 일본 시민권을 얻고 토착화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기독교 본래의 신앙을 변절시켰고, 사무라이 기독교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일본기독교는 국가의 하청 기관이었다. ‘국가가 있고 교회가 있다’. ‘천황은 신성함으로 침범하지 못한다.’, ‘한 알의 밀은 나라를 위해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사상이 체질화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은 신앙적인 차원에서만 아니라 천황제와 신도주의 그리고 신사참배가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는 일본과의 국제관계에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황청과 일본가톨릭교회는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참회하지 않는다. 우상숭배와 신사참배에 대한 교황청과 일본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 양심선언은 미결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한다.

 

6장은 한국천주교회의 우상숭배와 민족배신 사건을 논한다. 먼저 한국기독교(개신교)가 겪은 신사참배 문제로 인한 고통을 소개한다. 힌국교회는 일본 민족주의의 시녀로 변했고, 우상숭배를 솔선수범하면서 백귀난행을 일삼았다. 이런 일이 무려 7-8년간 계속되었다. 신사참배는 일본 민족주의 제의(祭儀)이다. 그것에 참배하는 것 자체가 곧 민족배신행위이다. 신사참배는 한국천주교회의 신앙과 민족의 혼을 앗아갔다.

 

그 무렵, 한국천주교회는 일제와 갈등을 겪지 않았다. 그만큼 친일적이고 반민족적인 집단으로 존재했다. 한국천주교회는 교황청의 훈령에 따라 신사참배를 시행했다. 황국의 영원무궁을 비는 미사, 궁성요배, 신사참배, 비상시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 전장에 나가 생명을 희생한 병사들의 영혼을 위한 미사를 가졌다. 황군무운장구 기원성제, 전승기원미사, 매일 아침저녁의 황실과 황군장병을 위한 기도에 열성을 다했다.

 

저자는 교황을 향하여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우상숭배를 행하게 하고 양심에 고통을 주었던 과거사에 대한 고백성사를 요구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정치 원리와 신학에 따르면 특정 국가나 지역의 교회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책도 궁극적으로 교황에게 있다. 일제치하에서 저지른 한국천주교회의 죄는 교회의 자녀들만이 저지른 것이 아니다. 교황이 칙서(Sacred Congregation of Propaganda Fide, 1936. 5. 25.)에 따라 죄를 범한 것이다. 저자는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의식의 수준이 바티칸, 프랑스, 일본의 가톨릭교회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철저한 참회고백을 할 때 교회는 비로소 불순한 전통을 단절시키고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사회를 향한 양심의 교사로, 역사의식을 가진 신앙공동체로 발돋움할 수 있다(p.81)고 한다.

 

7장은 한국천주교회의 친일행각을 다룬다. 일제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아명 안흥칠)의 살인은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당방위였는데도 일제 법정을 그를 죄인으로 다스렸다. 한국천주교회의 주교 뮈텔(한국명 민덕효)은 살인자가 천주교인일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죄인 취급해 왔다. 1994년 김수환 추기경은 안중근의 살인범 죄명을 면한다고 선언했다.

 

저자는 사면을 받아야 할 책임자가 도리어 사면을 선언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고 한다. 안중근에 대한 살인죄 사면선언은 한국천주교회의 삐뚤어진 역사인식과 교권주의적 발상이 낳은 해프닝이다. 어거스틴의 정당한 전쟁이론(군인이 자국안전위해 무력 사용하는 것은 정당행위)을 수용하면서도 의병군 참모총장 안중근의 정당방위 행위(의병군 참모중장으로 계획·실행)를 살인행위로 단정하는 모순을 보였다고 한다. 한국천주교회는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안중근을 살인범으로 간주했던 잘못을 시인하고 통절히 참회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것은 신앙고백적, 민족사적인 중요성을 가진 사안이라고 한다.


8장은 성직자들의 역사의식을 다루고, 감리교회의 감독 정춘수 목사가 로마가톨릭교회로 개종한 사건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정춘수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대표 중 한 사람이었다. ‘과거사 청산목적 곧 독립운동을 참회할 목적으로 황민화 활동에 앞장섰다. 조선감리교 제4대 감독으로 피선되어 황민화 운동의 선봉장이 되었다. 교회당을 팔아 일제에 갖다 바치고 교회당 종까지 바쳤다. 한국감리교회는 정춘수를 따라 배교, 친일활동, 반민족 행위를 했다. 정춘수는 광복 후 자신에 대한 안팎의 강력한 비난과 반발로 감리교에 더 이상 머무는 것이 어렵게 되자 일대변신을 감행했다. 194910월 주교 노기남을 찾아가 개종을 희망했다. 한국천주교는 명동성당에서 정춘수의 이른바 귀정식 곧 개종식을 성대히 가졌다. 정춘순의 변신은 감독다운 변신도 아니고, 신앙인다운 회심도 아니고, 참회자다운 자숙도 아니었음에도 한국천주교회는 정객답고 거물급다운 떠들썩한 기회주의적 변신을 환영했다.

 

9장은 "크리스천들의 장단 맞추기라는 제목 아래서 광복 후의 한국의 기독교(개신교) 성도들의 모습을 논한다. 광복이 되자 사회참여를 빌미로 친미 반공주의를 내세워 애국자로 변신한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았다. 친일 전력을 가진 지도자들은 자숙이나 공적인 참회고백이 없이 일제 대와 다름없이 교권을 쥐고 영향력을 지속하고 있었다. 교회의 위세가 커짐에 따라 그들의 교권적 권위와 영향력도 커졌다.

 

한국천주교회는 이 흐름에 발맞추어 반민족행위처벌법안이 나오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p.113). 이 입장 표명은 그 동안의 자신의 모습이나 행태를 볼 때 되려 뜬금없는 태도였다. 한국천주교회는 시대의 시끄러운 요구에 한번쯤 장단을 맞춰보려고 했다. 반면, 개신교 친일파 인사들은 교권을 쥐고 교회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민족과 민중의 비난을 받던 자들이 교회 안에서는 오히려 그 계급적 지위와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교회는 가난한 자, 억눌린 자들의 교회가 아니라 지배자, 유산계급자들의 교회로 자리 잡아 갔다. 일제치하에서 영광을 누렸던 대학, 신학교도 여전히 영광을 누리기는 한국천주교회도 마찬가지였다(p.116).

 

저자는 이 대목에서 독일교회 지도자들이 발표한 스튜트가르트 죄책선언(1945)을 소개한다. 독일교회는 크리스천들이 나치의 침략에 동원되어 주변의 여러 형제들에게 고통을 준 것에 대해서 통절히 사과하고 용서를 청했다. 교회가 범한 죄악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회개할 용기와 의지가 없었다. 참회 요청 목소리를 우물에 독 뿌리기식 모함, 폄하, 축출로 짓눌렀다. 교회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갈등은 배도, 친일자, 민족 반역자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 이후로 친일파 전통은 태백산맥처럼 뚜렷하게 한국기독교의 한 맥을 형성하고 있다(p.121).

 

10장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을 문화적응주의인가. 타협주의와 관련시켜 논의한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조상제사와 신사참배를 허용한 까닭을 논하고 그 원인을 찾는다. 일제통치 기간의 한국천주교회는 친일적이었다. 천주교 신자들의 저항이 없지 않았으나 극도로 미미했다. 한국천주교회의 친일행각은 적응주의라는 선교 원리의 결과다. 교황청은 사무라이형 일본가톨릭교회의 권고를 따라 신사참배를 종교 행사가 아니라고 해석했다. 교황청이 극동 아시아에서 가장 어려운 선교 문제 중 하나인 조상제사, 공자숭배, 신사참배를 허용한 것은 순응의 원리’, 곧 적응주의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천주교회가 일제시대에 우상숭배를 하고 백귀난행을 저지른 배후에는 교황청이 자리 잡고 있었다(p.133). 한국천주교가 문화의 차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조상제사, 조상숭배를 허용하고, 계명을 어기는 방향으로 나갔다. 현실적, 정치적 이득을 목적으로 복음적, 성경적 진리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적용주의 원리에 충실했다.


11장은 한국 개신교회가 일제말기에 저지른 백귀난행을 다룬다. 양심선언을 촉구한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의 만연과 뒤집힌 윤리체계가 빚어내는 온갖 병든 현상들의 원인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많은 문제점 중의 하나가 아니라 모든 불행의 근원이며 뿌리다. 우리 사회의 원죄이며 사회적 불행과 악의 첫 단추. 교회가 양심을 지키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돌들로 소리를 지르게 하신다. 한국사회와 한국기독교(개신교)는 닮은꼴이다. 사회는 민족정기를 회복할 기회를 놓쳤고, 교회는 신앙의 정기를 회복할 기회를 놓쳤다. 반민족행위처벌특별위원회의 해체사건과 교회의 출옥성도들 제거 사건은 모두 다수파의 불법적인 행위로 인한 것이며, 뒤집힌 가치관, 잘못된 방향설정, 그리고 오늘의 사회적, 교회적 병폐와 혼란을 야기한 첫 단추라는 점에서 일치한다(p.139).

 

저자는 한국기독교의 혈관 속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왜색의 불순물과 친일파 전통을 단절시키는 것이 교회의 본질에 충실한 결단이라고 한다. 더렵혀진 양심을 기경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일은 새 시대에 찾아올 새로운 우상숭배와 더불어 싸워야 할 한국기독교의 최우선적 과제(p.145). 과거사를 조속히 공적으로 청산하고,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다운 거룩성, 일치성, 사도성, 보편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는 민족적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라고 한다.


12장은 양심선언과 역사의식이 왜 중요한가?”를 다룬다. 한국 사회가 광복과 더불어 친일파를 척결하고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불순한 전통을 단절했더라면 새 조국 건설 과정에서 친일파 문제로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고통스런 혼란과 무질서를 그토록 심하게 겪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학가를 가득히 메운 최루탄 연기와 화염병도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부조리와 부패가 극성을 부리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교회만이라도 과거사 청산, 참회고백을 제대로 했더라면 사회를 지도하는 양심의 교사다운 권위를 가질 수 있었다. 산 위의 등경처럼 어둠을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에 실패함으로써 선지자가 없는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현실은 극도로 암담해졌다고 한다(p.157).

 

저자는 한국 개신교와 한국천주교가 이제라도 과거사를 범교단적으로 온전히 참회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남북을 갈라놓은 휴전선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죄를 용서받고 통일을 앞당기게 한다. 조상들이 저지른 죄와 공동체의 매도, 백귀난행, 우상숭배, 민족배신, 반인도적 행악을 진심으로 회개하면,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수치를 면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p.161).

 

부록은 저자가 각고의 노력으로 수집한 참회고백문들을 한글로 번역하여 싣고 있다. (1) “기억화 화해: 교회의 과거의 범죄(로마가톨릭교회),” (2) “2차 세계대전과 유태인에 대한 참회선언(프랑스가톨릭교회),” (3) “평화를 위한 결의: 전후 50년에 즈음하여(일본가톨릭교회),” (4)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전후 50년을 맞이하여(일본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 등이다. 모두 역사적이며 신앙고백적이며 서지학적인 높은 가치를 담은 문서들이다.

 

이 책은 번쩍이는 저자의 역사신학적인 혜안과 통찰을 매 장마다 담고 있다. 3천년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저자가 로마가톨릭교회, 한국천주교회, 한국 개신교에 주는 두드러진 메시지들은 다음과 같다.

 

1. 역사와 진리에 대한 교회의 책임과 의무에 대하여 가해자와 피해자는 시공간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을 포기할 수 없다. 나라마다 각 개인마다 교회마다 과거사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일부는 은폐하려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을 외면한 채 철면피와 같은 면모를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교회는 자신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비로소 바른 관계, 바람직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2. 한국천주교회는 일제시대에 우상숭배 집단이며 반민족단체로 존재했다. 당시의 주교 뮈텔(한국명 민덕효)의 밀고의 대가로 명동성당 앞 진고개 도로를 개통하기까지 했는데도 한국천주교회는 지금까지 그 사건에 대해 공적인 참회고백을 하지 않는다. 친일과 야합의 대명사인 정춘수 감독의 개종을 받아주는 귀정식(歸正式)을 떠들썩하게 거행하고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계급 제도를 가진 한국천주교회는 과거사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 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과거사를 참회하여 새로운 천년기를 성공적으로 시작하라고 권했지만 한국천주교회는 묵묵부답이었다.

 

3. 한국천주교가 일제 말기에 수년 동안 저지른 우상숭배와 민족배신 행위는 교황의 칙서에 따른 종교적, 민족적 범죄였다. 그 범죄는 한국천주교에 속한 아들들과 딸들이 저지른 것인 동시에, 교황과 교회가 저지른 것이었다.

 

4. 한국천주교회의 상당수 신자들이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까닭으로 순교했다. 그러나 천주교회는 신사참배 문제가 제기된 1930년대 말부터 조상제사를 수용하고 있고, 김수환 추기경이 어느 유생의 묘소에서 6번 큰 절을 하고 예 ()를 올리는 등 제1계명, 2계명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조상숭배, 조상제사 허용은 문화적응주의 정책과 종교다원주의라고 하는 혼합주의적이고 타협주의적인 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5. 교회의 범죄에는 참회의 유효시기가 없다. 로마가톨릭교회(바티칸)가 지난 두 천년기 동안에 교회의 자녀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참회고백을 한 것은 불행한 역사를 과감히 단절하고 새 천년기를 새롭게 시작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한국천주교회와 한국 개신교회는 신앙공동체의 성결성과 권위를 높이고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양심의 교사의 자격을 갖추어야 할 세기적, 천년기적 관문에 서 있으면서도 일제시대에 저지른 우상숭배, 백귀난행, 민족배신, 비인도적 행각을 포함한 과거사에 대해서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바티칸은 지난 두 천년기 동안에 저지른 죄악을 참회하는 참회고백 문서를 발표하면서도 우상숭배에 대해서는 참회하지 않았다.

 

6. 로마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은 교회와 세상의 화해를 위한 선결 조건들을 보여준다. 조상이 범한 죄에 대해 자손이 참회고백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 곧 어제와 오늘의 교회가 연대감과 책임을 가지고 있다. 과거사는 1, 2천년이 지나도 저절로 청산되지 않는다. 공적인 참회고백이 없이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교회가 공적으로, 기구적으로 저지른 잘못은 대표성을 가진 합법적 기구에 의해 공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로마가톨릭교회권 일부에서 행해진 과거사도 교황과 바티칸에 그 책임이 있다. 교회-그리스도가 범죄를 했으면 세상을 향해서도 참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화해와 일치는 과거사를 고백하고 뉘우치며 역사를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된다.

 

7. 로마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은 예수가 세상을 향하여 석고대죄를 청한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명을 수행한다고 하는 로마가톨릭교회는 2천년 동안 신자들의 참회고백을 받아주고 용서해 주는 일을 해 왔다. 그러나 제3 천년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향해 참회했다. 예수께서 멍석을 깔고 세상을 향하여, 세상에게 내가 잘못했다,” “나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한 사건이다.

 

8. 교회의 과거사 참회고백은 로마가톨릭교회가 지난 800년 동안 유지해 왔고 특히 19세기와 20세기에는 확고하게 수용한 교황 무류 교리가 허황된 것임을 스스로 천명한 것이다.

 

9. 로마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은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여 정치권력을 확보하거나 대중적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문화 적응주의(accomodationalism)의 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세계인들에게 신뢰감을 증가시키는 계기였다. 기독교의 본질에 부합하는 일이여, 역사의식을 가진 솔직한 양심선언이기도 하다.

 

10. 교회는 무치(無恥) 공동체가 아니며, 반인륜적 범죄에 공소 유효 시기가 없다. 교회가 저지른 범죄에 참회고백의 시효가 있을 수 없다.

 

11. 참회고백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순결성-거룩성, 사도성, 통일성, 보편성을 회복하기 위한 거룩한 방편이다. 신앙 양심의 회복은 거칠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세상의 유혹들을 이기고 난관을 극복케 하는 용기 있고 진실 되고 충성된 일이다.

 

12. 참회고백과 양심회복은 역사를 바르게 세우는 일이다. 잘못을 참회하는 일은 언제나 용기 있고 충성스런 일이며, 영적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다. 억눌려 온 신앙공동체의 양심을 자유하게 하고, 더러운 윗물을 차단하고 맑고 신선한 생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이라고 한다.

 

이 책이 다룬 주제들은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2000)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2000)에도 나타난다. 프랑스교회의 참회고백은 중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이 책은 한국개신교회와 한국천주교회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도록 이바지했을 것이 분명하다. 21세기의 세계교회사와 한국사 차원에서도 크게 기여한 책이라 생각된다. 한국천주교회가 이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로 수용했는지, 무슨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나는 저자 최덕성 교수의 문하생으로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 과정에서 그가 가르친 교의학 과목들(신학서론과 성경론, 구원론, 성령론, 교회론 등)을 수강했다. 그는 독특한 문장력과 수사기법으로 학생들의 영적, 학적 발전을 꾀했다.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 있는 폭넓은 이야기로 학생들을 열광시켰다. 수업시간마다 열변을 토하고 학문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학생들은 그의 풍부한 지식과 영성의 깊이에 감탄했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들에 굴하지 않고, 변함없이 강의와 연구에 집중하여 신학자다운 성과물을 내놓았다. 흐트러짐 없는 굳건한 모습은 경외심을 갖게 한다. 학자의 임무를 가장 우선적인 과제 삼는 스승의 책을 소개, 설명, 논평하려니 감회가 새롭다.


강미나 박사는 창원대학교 외래교수, 일본학을 가르친다.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목사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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