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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의에 대한 95개조 반박문

The Ninety-Five Theses Against Dispensationalism

 

 

로버트 L. 레이먼드 박사

(번역 : 김안식)

 

 

머리말

 

우리는 사람들이 이 세대주의 반박문을 보고 NiceneCouncil.com이나 역사적으로 성경을믿는 교회들이 모든 세대주의자들을 기독교 신앙에서 이탈해 버린 이들이라 말하고 있다는 식의 해석을 하지 않기 바란다.

 

상당수의 세대주의자들이 기독교의 기본적인 정통 교리를 인정하고 받들고 있다. 16세기의 칭의교리 논쟁과 달리, 이것은 기독교 내부적 논의이며,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의 논쟁인 것이다. 우리는 세대주의의 교리적 틀 안에 있는 모든 거듭난 신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자매로 인정하고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동료인 사도 베드로를 연장자로서 누구보다 더 깊이 사랑하고 존경했음에도, 교회의 건강과 순결을 위해 중요한 신학적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와 진리에 대한 사랑 가운데 베드로를 앞에 두고 공개적으로 책망하였다(갈 2:11).

 

그러므로 우리는 최소한 세대주의가 복음을 선포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 하는 교회의 의무를 약화시켰다고 믿는 고로 진리에 대한 사랑과 진리의 빛을 드러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레이트 그레이트 플래닛 교회 산하 NiceneCouncil.com에서 제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이어지는 주장들에 대해 토론을 진행시킬 것이다.

 

강철은 강철로 더 날카로워진다는 말을 상기하며,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공동체, 교단 등이 이 문제를 두고 논의와 논쟁을 진행시키길 원한다. 주권자이신 우리 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보며 이 논쟁에 참여하자. 약 2000년 전 베뢰아인들처럼, 우리도 “과연 그러한가” 살피기 위해 성경을 매일 탐구해 보자.

 

 

[95 THESES AGAINST DISPENSATIONALISM]

 

세대주의 반박 95개조

 

1.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신학이 성경을 “평이하게 해석한” 결과(찰스 라이리)에 기인한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반대한다. 세대주의 신학은 교회사에 있어 상대적으로 새롭고 획기적인 신학체계로서 약 1830년대에 등장했으며, 기독교 1800년 역사 동안 신학자들은 이 신학체계를 전혀 알지 못했다.

 

2. 우리는 세대주의 신학자들이 “전천년주의는 교회의 역사적 신앙이다(찰스 라이리)”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한다. 초기 전천년주의자인 저스틴 마터는 말하기를, “참된 그리스도인이자 순전하고 경건한 신앙을 소유한 많은 이들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였고, 전천년주의자 이레나에우스도 이에 동의하는 바였다. 오늘날, 주요한 종말론 사상들에는 세가지 정도가 있는데, 각각의 사상들이 갖고 있는 초기 형태들은 2세기 이후부터 존재했다(D. H. 크롬밍가의 ‘전천년주의자의 인정’, 밀라드 J. 에릭슨의 ‘기독교신학’ 등을 보라).

 

3.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이 초기 전천년주의 교부들의 사상과 자신들의 교리를 연관지으려는 시도를 반대한다. 고대 전천년주의자들의 사상적 위치는 근본적으로 라이리가 “세대주의 요체”라 부르는 세대주의 기본 원리와는 거리가 있다. 구체적으로, 고대 전천년주의자들이 주장한 바를 예로 들자면, (1)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별(즉, 교회야말로 참된 이스라엘 민족_저스틴 마터), (2) “유대교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_저스틴 마터)” 등이 있다.

 

4. 세대주의자들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연관지으려는 시도를 통해 그 역사성을 주장하려 하지만, 그들이 근본적으로 기독교적이지 않고 유대교적인 천년왕국을 강조함으로써 그러한 시도는 이내 무위로 돌아간다.

 

5. 우리는 현대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충실히 믿으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대한다. 신약성경은 “정통 유대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만약 구약성경은 믿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주와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현대의 유대인이 있다면, 그는 사실 구약성경도 거부하는 사람인 것이다.

 

6. 우리는 초대교회의 종말론 교리에 있어서 전천년주의적이었다는 세대주의 주장에 반대한다. 설령 천년왕국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자 역사의 궁극적 목표라고 가정한다해도 “교회의 주요 신조들 중에 전천년주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전혀 없다(R.P. 라이트너)”. 우리는 우리의 신조들에 중심을 두고 나아가야 한다.

 

7. 세대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정통성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교회의 보편적 신조들은 전천년주의의 근본 교리와 반대되는 종말적 사건을 확실히 말하고 있다. 즉,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1) 그리스도는 오직 한번 재림을 하신다.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두번 재림하시지 않으며, 7년을 사이에 두고 “휴거”와 “두번째 재림”이 일어나지 않는다.

          (2)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 모두 죽음에서 단 한번에 전체적으로 부활하게 된다.

(3) 모든 사람들의 심판은 전체적이다. 1000년을 사이에 두고 서로 구별된 심판이 있는 것이 아니다.

 

8. 보편 교회의 신조들에 대해 세대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무관심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개인이 아닌 교회에 성경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이다(딤전 3:15).

 

9. 세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논리정연하고 일관적인 해석(존 왈부어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높은 식견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교회의 구원이라는 2개의 구속계획을 가지고 수많은 세대로 성경을 파편화시켰다. 또한 그들은 새 언약, 그리스도의 재림, 육체적 부활, 최후의 심판 등을 이중화하여 성경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무너뜨렸다.

 

10.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이 독립적이고 분명한 세대를 각각 구분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 성경은 구속사의 흐름의 윤곽을 그려나가면서 역사의 유기적 전개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신약성경은 “약속(단수)의 언약들(복수)_엡 2:12)”을 말씀하고, 구속사의 통합을 요구하는 비유들을 사용한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의 신약 백성들은 구약에 뿌리를 박은 감람나무인 것이다(롬 11:17-24).

 

11. 우리는 구속사를 7개의 세대로 구분하는 세대주의적 구조화를 반대한다. 성경은 구속사에 대하여 옛 언약과 새 언약이라는 기본적인 구분을 말씀하고 있다(눅 22:20; 고전11:25; 고후 3:6; 히 8:8; 9:15). 심지어 성경에는 “새 언약은... 첫째 것은 낡아지리니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질 것이다(히 8:13).”라는 선언까지도 나오는 것이다.

 

12.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이 자주 성경 기록들을 각각의 세대로 구분할 필요성이 있다며 증거로 내세우는 디모데후서 2:15, ‘바르게 구분하여’를 인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모든 현대의 역본들과 비세대주의 주석가들은 이 구절을 번역할 때 성경에 대하여 각각의 역사적 ‘구분’을 한다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 역본들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다루어(NASB)’, ‘올바르게 다루어’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13. 1830년대 이전에는 세대주의적 역사 구조란 것이 교회에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이 역사를 구조화하여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구분”했던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14. “하나님의 상이한 섭리를 이해하는 것은 다양한 섭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정확하게 해석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찰스 라이리)”라는 세대주의 주장은 논리적 순환오류의 한 예라 할 만하다. 왜냐하면, 어떤 세대의 독특한 특성을 만드는 계시의 특별한 본질을 먼저 이해해야 그 세대를 제대로 알 수 있는데도, 특정 세대의 계시를 알기도 전에 그 세대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15.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의 바른 이해를 위해 필요하다며 유명한 7개의 뚜렷한 세대 구분을 말하지만, 세대주의 내 학자들은 “4개, 5개, 7개 혹은 8개의 세대로 구분하는 사람도 존재하며 그런 사람도 일관성 있는 세대주의자(찰스 라이리)”라 말한다. 따라서 세대를 적절히 구조화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16. 세대주의자들이 역사를 독특한 세대들로 구분짓고, 각각의 “세대에는 하나님의 목적에 맞는 외적 사역 속에 구별할 수 있는 섭리가 있다”면서 그 세대 속에는 “서로 다른 계시, 시험, 실패, 심판”(찰스 라이리)을 포함한다고 주장하지만, 대럴 보크와 크레이그 블레이싱과 같은 현대 세대주의 학자들은 세대들이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점차 바뀌는 특징을 갖고 있으므로 앞선 세대는 이어지는 세대의 열매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17. 세대주의자들은 교회시대 속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강력히 주장한다. 하지만, 세대주의 초기 형태(와 오늘날, 여러 일반적인 세대주의 형태)는 은혜가 율법적 모세 세대의 특징임을 부정한다. 설령 십계명 자체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다(출 20:2)”라 말씀하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보여줄지라도, 스코필드는 그리스도의 강림과 함께 “시험의 의미는 더 이상 율법적 순종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요 1:17 참조)라는 주장을 폈다.

 

18. 우리는 “은혜의 교리를 서신서에서 찾아 볼 수 있을 뿐 복음서에서는 그렇지 않다(스코필드관주성경, p. 989)”는 결론을 내림으로서 율법과 은혜를 서로 ‘정반대의 개념(찰스 라이리)’으로 구조화시키는 세대주의를 반대한다. 요한복음 1:17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 복음서는 은혜의 교리를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그리고 성경 말씀 중 가장 유명한 구절에서도 은혜의 교리를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19.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이 산상수훈은 오직 이스라엘을 위한 설교로써, 하늘나라의 삶을 정의하고 “은혜가 아닌 율법(스코필드관주성경, p. 989)”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 역사적 입장에 반대한다. 역사적 정통주의 복음주의자들은 산상수훈을 현재 시대의 교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최고의 설교라고 본다. 즉, 우리에게 팔복을 적용할 수 있고(마 5:2-12), 우리의 부르심이 세상의 소금이 되는데 목적이 있으며(5:13),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하고(마 7:21-27), 우리가 주의 기도를 하도록 만드는데 유용하다는 것이다.

 

20. 세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교리에는 결코 구원의 2가지 방식 즉, 율법의 준수를 통한 구원과 은혜만을 통한 구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력히 주장하지만, 원본 스코필드 관주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언약과 새 언약은 “구원”에 대하여 모세의 언약과는 다른데 “아브라함의 언약과 새 언약은 구원에 있어 오직 한가지 조건 즉, 믿음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출 19:6절의 각주를 보라).

 

21. 우리는 (추정적) 문자주의를 도입하여 성경을 “평이하게 해석(찰스 라이리)”한다는 세대주의자들의 핵심 주장을 반대한다. 성경의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없어서 천사들(벧전1:12), 사도 베드로(벧후 3:15-16), 곧 회심할 자들도 놀라고 당혹해 했다. 성경은 이를 이해하여 은혜 가운데 성장할 것(히 5:11-14)과 다른 이들에게 설명해 주는 특별한 선생들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말씀을 왜곡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유의할 것도 요구한다.

 

22. 세대주의자들은 “문법-역사적 해석 원리”(찰스 라이리)를 따른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모든 부분들이 참인 성경이 상징들과 본보기들을 말하고 있다고 보는 대부분의 비세대주의적 복음주의자들이(심지어 “진보적 세대주의자들도) 거부한 방식을 재정의해 버렸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라는 이사야서(사 2:2b)와 미가서(미 4:1b)의 예언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높임을 받게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반면에 세대주의자들은 이 말씀에 나오는 산이 그 위치와 구조에 있어 실제의 화산이라 언급하고 있다. 즉, 천년왕국 기간 동안 “성전의 산이 모든 다른 산 위에 높이 들려 찬송받으며”(존 세일해머) 세워진다고 보는 것이다.

 

23. 세대주의자들은 “평이한 해석”이란 반드시 “모든 단어에 일반적인 용법 상의 동일한 의미를 부여”(찰스 라이리)해야 하며,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이 방법만이 적절하고 변론력있는 것으로 확신하지만, 이런 방법을 차용함으로써 그들은 신약성경 속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행한 것들을 부인하는 결과를 맞게 된다. 즉, 신약성경 속에서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 선지자가 돌아오리라는 예언이 성최되었다고 하셨으며, 사도들은 “다윗의 장막”이 재건된다는 예언을 교회가 영적으로 세워진다는 것(행 15:14-17)으로 해석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다른 성경 구절들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전하고 있다.

 

24. “그리스도 시대 때의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해석법과 현재 우리의 해석법은 동일하다(펜테코스트)”는 주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 세대주의자들은 이른바 문자주의에 대해 불완전한 방어를 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해석법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오해하여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당시 유대인들이 해석한 왕으로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대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점을 하찮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25. 세대주의자들이 1세기 유대인들의 해석법을 이용하여 이른바 문자주의를 불완전하게 방어하지만, 그와 같은 “문자주의”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무너진 성전을 3일 안에 재건하시거나(요 2:20-21), 회개하는 자는 반드시 다시 모태로 들어가야 한다거나(요 3:4), 예수께 영적인 물이 아닌 단순한 물을 받아야 한다(요 4:10-11)거나 혹은, 실제로 주님의 살을 먹어야 한다(요 6:51-52)고 믿는 등, 그리스도의 기본 가르침을 잘못 이해해 버렸다(요 2:20-21).

 

26. 세대주의자들의 해석론이란 신약을 참고하지 않고 그 자체의 장점들을 바탕으로 구약을 해석해야 하며, 그에 따라서 “‘구약의 견지에서 신약’을 해석”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렇지만, 성경의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본질과 그 예표론적이고 중첩적인 특징들로 인해 우리는 신약을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구약의 해석자로 생각해야한다. 모든 예언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이고 아멘”(고후 1:20),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영”(계 19:10) 등의 말씀을 주의 깊게 보라. 그리고 사실, 많은 구약성경의 구절들은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되었으며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취었던 비밀”이었다(골 1:26; 계 10:7).

 

27.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이... 모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찰스 라이리)는 주장을 반대한다. 많은 예언들이 “평이한”(라이리) 문자적 방식으로 성취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며, 수난을 당하실 때에 그리스도 주변에 황소와 개들이 둘러싼다(시 22:12, 16)고 말하는 시편 22편의 예언이나, “그를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임”을 말하는 이사야 7:14의 처녀에 대한 예언 등의 말씀이 그렇다.

 

28. 세대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이... 모두 ‘문자적으로’ 성취 되었다”(찰스 라이리)고 주장을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방어할 수 있는 방식은 그저 특별 변론과 순환논법 뿐이다.

(1) 대부분의 비세대주의적 복음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신다는 모든 예언들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5)고 선포하셨던 그분의 초림 때에 성취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세대주의자들은 이 예언들을 그리스도의 재림 때로 미뤄놓는다.

(2) 그들은 1세기에 그리스도를 따르던 자들이 그분을 왕이라 전하고 다녔으며(행 17:7), “땅의 왕들을 통치하는 자”(계 1:5)로 선포하였다는 것을 간과한다.

 

29. 세대주의자들은 소위 문자주의가 “논리정연하고 일관적인 해석”(존 왈부어드)를 제공 한다며 성경의 “평이한 해석”(라이리)을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그 해석법은 사람들과 원리들, 계획들, 기획들, 운명 등을 여러 가지로 다르게 구분지어 결국 다채롭고 복잡한 신학체계를 만들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찰스 라이리의 주장과 달리) 성경은 그렇게 “평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30. 세대주의자들이 예언의 “문자적” 성취를 주장하지만, 신약성경에 분명히 나타나는 비문자적 성취를 접했을 때, 그들은 (1) 원래의 예언은 “언어적 형태”를 취한다고 말하거나(스코필드), (2) 예언의 성취가 아닌 구약성경의 “적용”으로 설명한다(폴 탠). 즉, 세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체계에 반하는 증거들을 앞서 열거한 두 개의 설명방식으로 재해석 하여 그 증거들을 무력화시키려든다는 뜻이다.

 

31. 세대주의자들이 성경의 “평이한 해석”(라이리)를 강하게 신봉하고 다니엘의 칠십 이레를 “중요한 전천년주의의 상징”(왈부어드)으로 생각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신학체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칠십 이레” 속에 또 다른 연대기적 진행 기간을 삽입할 수 밖에 없다. 그 기간은 이미 전체 칠십 이레(490년)의 4배나 된다.

 

32. 세대주의자들은 모순없는 성경의 완전성을 신봉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문자주의의 복잡한 형태와 각 세대들의 분리성과 명징(明徵)성으로 인해 고린도전서 15:51-53에 나오는(교회 시대의 끝에 있을 휴거의 신호라고 믿고 있는) “마지막 나팔”과 마태복음 24:31에 나오는 (재림 시에 있을 대환란에서 선택된 유대인들을 모으는) 나팔 사이에 변증적 긴장이 형성된다. ‘문자주의자’들로 평가받는 세대주의자들은 이 후자의 나팔을 “마지막” 나팔이 울리고 7년 후에 울릴 나팔로 보고있다.

 

33. 세대주의자들이 역사-문법적 해석을 발전시키려는 바람을 갖고 있지만, 그들이 그 방법을 “평이한 해석”(라이리)이라 말함으로써, 이는 보통의 독자들이 고대 성경 본문을 그 원래 내용으로 보지 않고 현대적이고 서구적 내용 및 사람들이 가르친 관점으로 보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평이한”이란 말의 뜻이다.

 

34. 세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평이한 해석”이 강력한 성경적 지지를 받는 해석학적 방법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만(찰스 라이리), 그들은 소위 문자주의를 일관성 없이 적용한다. 그리고 그들이 작성한 학문적인 글들을 대하는 일반 세대주의 신자들과 대중적 지지자들은 기타 복음주의적 성경해석들이 세대주의적 해석을 “문자주의!”라 얕잡아 말한다며 아주 단순하게 이를 평가절하해 버린다.

 

35. 세대주의자들이 문자주의는 “언어의 수용 법칙”(라이리)에 딱 들어맞는다는 주장을 하며 자신들의 문자주의 정의를 방어하려 하지만,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분석연구 이후로 언어 “법칙”이나 적절한 언어 철학에 관한 철학자들 간에 이루어진 일반적 합의사항은 없다.(크렌쇼)

 

36. 세대주의자들이 모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O.T. 앨리스 박사가 바르게 관찰하여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세대주의자들은 극단적인 문자주의자들이면서도, 일관성은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예언의 해석에서 있어서는 문자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역사를 해석할 경우는 가장 열렬한 비유의 해석자들조차 적용한적 없는 전형적 해석 원리를 극단적으로 적용한다.”...

 

37.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과 교회 간의 분리된 계획의 핵심을 이루는 “[아브라함] 언약의 무조건적 특성”(J. D. 펜테코스트)을 주장하지만, 성경은 신명기 30장 등에서 아브라함 언약이 조건적이며,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 모두가 땅과 언약적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그리스도를 통해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

 

38. 세대주의자들이 두 말할 나위없이 아브라함의 언약은 무조건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에는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즉, 세대주의자들은 에서가 야곱의 쌍둥이 형제로 이삭의 아들이긴 하지만(창 25:21-25), 그는 자신의 장자권을 팔아버려 이른바 가나안과 아브라함의 축복이라는 “무조건성”에서 배제되어버렸다고 가르친다.

 

39. 세대주의자들은 아브라함 언약 속에 무조건적으로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임에 대한 약속이 들어있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다(히 11:10)”고 말씀하시는데, 그 성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계 21:2)이라 하신다.

 

40. 세대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을 위한 “약속의 땅이 갖는 영원한 이름”이라 부르며(J. D. 펜테코스트) 성지에 대하여 열성적으로 일하지만, 신약성경은 땅에 대한 약속을 전세계로 확장시킨다. 그 확장성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포함된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롬 4:13a)”에 대해 이야기한다.

 

41.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 12지파의 후손들이 아브라함 언약 안에서 모든 약속의 땅에 거주한 적이 없고, 하나님께서는 결코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므로 유대인들이 장차 그 약속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은 반대로 이야기한다. 여호수아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수 21:43,45)”.

 

42. “예루살렘은 천년왕국 정부의 중추가 될 것(왈부어드)”이라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세대주의자들은 예루살렘과 시온산이 다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소위 문자주의적 요구를 하고 있지만, 새 언약은 이런 지리적 장소들을 1세기에 시작된 새 언약의 교회에 일어나는 영적 실제를 가리키는 예표로 본다.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히 12:22)”이라는 말씀을 상기해 보라. (참조 갈 4:22-31)

 

43.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철저히 구분짓는데 근본적인 신학적 노력을 기울이지만(라이리), 신약성경은 육적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두 개의 “이스라엘”(롬 9:6-8)을 말씀하고 있다. 영적으로 유일한 참 이스라엘은 교회 속에서 온전히 성숙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스라엘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약의 확장이다.) 이런 연유로 신약성경은 교회의 일원들을 “아브라함의 씨”(갈 3:26-29)라 칭하고 교회 자체를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44.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두 개의 별개의 목적을 두고 일하고 계시는데, 한 가지 목적은 지상과 관련된 것이고, 나머지 목적은 하늘나라와 관련된 것이다(채퍼, 라이리)”.

이러한 주장 때문에 세대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방인들과 영원히 구분된 존재들이라고 주장한다. 신약성경은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 2:15)” 라 말씀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영원한 한 몸으로 연합할 것이라고 한다.

 

45. 우리는 유대인들이 민족 중심적 구원(은혜를 통한 구원이 아닌 민족을 통한 구원)을 받을 거라는 세대주의 주장에 반대한다. 그리스도와 신약 기자들은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족보나 민족이 구원을 보증하리라는 생각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요 1:12b-13; 3:3)”이기 때문이다.

 

46. 우리는 “교회는 구약에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다”(J. D. 펜테코스트)라는 세대주의적 주장에 반대한다. 신약 기자들은 구약을 구속사에 있어 그 신적 목적과 역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 비밀은 신약의 모든 이들에게 드러난 것과 “같은” 정도로 “사람의 아들들에게” 드러나지 않았다(엡 3:4-6)고 선언하고 있다. 심지어 그 기자들은 그것을 교회의 새 언약 시대의 시작을 포함하여(욜 2:28-32/행 2:16-19) 구약 예언의 성취라고까지 말한다(호 1:10/롬 9:22-26).

 

47. 세대주의가 교회란 하나님께서 (민족적 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춘) 역사 가운데 당신의 주요 계획 속에 집어넣은 ‘삽입체’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신약성경은 교회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계획 가운데 당신의 미리 정하신 결과물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순히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임시적 조직이 아니라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신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는 조직이다(엡 1:22; 고전 15:24-28).

 

48. 우리는 예레미야의 “새 언약이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을 위한 것이었음(성경지식주석)이 분명하다는 세대주의 가르침을 반대한다. 이 가르침은 선대 세대주의자(커티스 크렌쇼)가 작성한 문서에 나오는대로 인간이 만들어낸 문자주의적 관점과 세대주의 신학의 이스라엘 중심성에 기인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새 언약은 이방인들을 포함하며 실제로 이스라엘의 연속으로써 새 언약의 교회가 세워졌다(눅 22:20; 고전 11:25; 고후 3:6).

 

49. 우리는 구약의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어 그리스도께서 진정 정치적 실체로서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왕국”을 주실 것(J. D 펜테코스트)이라는 세대주의 주장에 반대한다. 복음서를 찾아보면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는 유대인들이 “물리력으로 자신을 임금 삼으려” 할 때 그들을 “피하여 떠나가셨다”고 나와있다(요 6:15).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50.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 진정 이스라엘에게 정치적 왕국을 주시려 했으나(J. D 펜테코스트), 이스라엘은 이를 받을 능력이 없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그리스도를 보내 죽게 하셨고(요 12:27) 그의 죽으심에 대하여 분명히 예언되었기 때문에 이 점을 놓친 자들은 “어리석다”(눅 24:25-27)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말씀을 듣는 청중들에게 자주 자신이 죽으러 왔음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성경은 분명히 그의 죽으심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계 13:8)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행 2:23)라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왕국에 대한 세대주의 주장은 하나님을 표리부동한 분으로 그리스도를 사기꾼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51.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연기하셨으며, 주님이 재림하신 후에야 이를 주실 것이다(J. D. 펜테코스트)”라는 세대주의 신념을 반대한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하셨고, 이어,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마 8:11-12).

 

52.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적 희생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빌라도에게 당신의 왕권의 형태는 “진리를 증거하는 것(요 18:37)”이라 하셨고, 로마가 임명한 총독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을 수 없다(요 18:38)”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그들의 교리는 주님께서 진정으로 로마와 싸우는 정치적인 나라를 추구하였고 결국 로마에 대한 반역죄를 범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법률적인 것으로 정당화한다.

 

53.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은 “ 더 이상 머물러 있지 않으려는 사람들처럼”(할 린지) 어느 때라도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것을 기대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곧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자들이 “어리석은 자”(마 25:1-9)들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우리에게 “그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눅 19:13)”라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이 “아버지의 권한 아래 정해진 때와 기한(행 1:6-7)”을 기다려야만 한다고 말씀하심으로 이스라엘의 회심이 “지금” 일어날 것이라는 제자들의 소망을 꺾으시기까지 하셨다.

 

54.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1세기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항상 ‘임박’해 왔으며,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J. D. 펜테코스트)는 세대주의 교리를 반대한다. 신약성경은 주님의 재림은 ‘더디’고(마 25:5) ‘오랜’ 시간이 지난 후(마 24:48; 25:19; 벧후 3:1-15)에 일어날 것이라 말씀한다.

 

55. 우리는 1980년대 세대주의 서적들의 제목들(‘아마게돈의 시한과 지구 2000’, ‘인류는 살아남을 것인가’ 등)에서 볼 수 있듯 휴거의 시기를 정하고 말초적인 예언을 행하는 세대주의자들의 경향성을 반대한다. 성경은 “생각지도 못한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너희가 모르는 그때(마 24:50)” 등의 말씀을 하고 있다.

 

56. 세대주의자들이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는 시대적 표징들에 대해 자주 경고하지만(린지), 그들의 급박한 재림 교리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표징들의 실현성이란 있을 수 없다(존 왈부어드)는 것이다. 다음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휴거가 일어나기 전, 그 어떤 일도 바울이 살았던 시대에 일어날 이유가 없었듯이 우리 시대도 그러하다(팀 라헤이).”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그 날과 그 시를 알 자가 아무도 없다(마 24:36a)”고 경고하셨다.

 

(* 53, 54, 55, 56은 예수님의 재림 시기를 세대주의자들은 지나치게 특정하려 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했다. 즉, 그 재림의 시점을 ‘알 수 없음’의 범위에 두지 않고, ‘지금 당장’으로만 편향적으로 두려한다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흡사 ‘시한부종말론’과 유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은 언제일지 알 수 없으므로 오늘 당장일수도 있지만 100년 후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성경적인 재림의 관점이다. - 학자의 혀 )

 

57. 세대주의자들은 “초림과 재림 사이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어떤 가르침도 있지 않기(존 왈부어드)”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세대주의 지도자들은 계시록 2장과 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들이 “교회의 계획표에 관하여 현재를 약술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즉, 거기에는 “종교개혁”과 우리가 사는 현시대를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다(J. D. 펜테코스트).

 

58. 상당수의 세대주의자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부터 오직 “말세”라고 믿지만 신약성경은 분명하고도 반복적으로 “말세”는 1세기에 시작되었고 교회 역사 자체가 그렇다고 가르친다(행 2:16-17, 고전 10:11, 히 1:1-2; 9:26).

 

59. 세대주의자들은 갑작스러운 휴거론과 여타 종말론적 교리들이 경건한 삶을 위해 중요한 수단임을 주장하지만, 세대주의 교리를 정립한 이들은 종종 서로 싸우고 다른 계열의 신자들에 대해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플리머스 형제단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사소한 몇가지 점들로 인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분열을 거듭하였으며 결코 하나의 기독교 구성체를 이룰 수 없다.(존 거츠너)”

“그들은 다비의 가르침을 받아 생성된 최초의 분열조직일 뿐이다.(복음주의 인명사전)”

 

60. 우리는 세대주의가 창조한 독특한 그리스도의 이중 재림 교리(재림과는 별도로 이루어지는 휴거)를 반대한다. 재림과 휴거는 너무나 차이점이 많아서 “이 두 가지 사건 사이에 어떤 조화도 이룰 수 없다(왈부어드)”다고 설명한다. 성경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 재림(강림하심, 계시)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마 24:3; 고전 15:23; 살전 3:13; 4:15; 5:23; 살후 2:1, 8; 약 5:7; 벧후 3:4; 1 유 2:28), 주님은 “두 번째 나타나실 것(히 9:28)이며, “반복하여” 나타나시거나 세 번째 나타나시지 않으실 것이라 증언한다.

 

61. 세대주의는 “예수께서 교회의 휴거를 위해 은밀히 공중 재림 하실 것(팀 라헤이)”으로 가르치지만, 세대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비밀스런” 재림 교리에 대한 증거 성구로 말하는 데살로니가전서 4:16 말씀은 주의 재림이 굉장히 공개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건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주님은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강림하실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62. 우리는 세대주의의 두 가지 부활 교리를 반대한다. 그 교리는 휴거 때 신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휴거 후 1007년이 지난 천년왕국 말엽에 불신자들이 부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마지막 날이 있기 전 수세기 동안 일어날 부활이 아닌, “마지막 날”에 일어날 신자들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다(요 6:39-40, 44, 54; 11:24).

 

63. 우리는 세대주의의 두 가지 부활 교리를 반대한다. 그 교리는 휴거 때 신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휴거 후 1007년이 지난 천년왕국 말엽에 불신자들이 부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종말에 천사들이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게 될(마 13:30b)” 때 신자들의 부활이 있기 전 불신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임(물론 동시다발적인 사건의 일부이지만)을 말씀하고 있다.

 

64. 세대주의가 지지하는 교회의 은밀한 휴거 교리, 즉 세대주의자들이 세상에 크리스천들은 사라지고 오직 믿지 않는 자들만이 남게 된다는 주장을 하지만 예수께서 곡식과 가라지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을 것임을 가르치셨고(마 13장),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까지도 드리셨다(마 17:15).

 

65. 세대주의자들이 성경의 “평이한 해석”(찰스 라이리)과 마태복음 24장의 대환란을 강조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23:37-24:2)” 선언하실 때 그것이 1세기 성전의 돌들을 가리키는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또한 일관성 없게도 제자들이 “언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느냐?(마 24:3)”고 여쭤보자 주님께서 그 사건 이후에 수천년이 지나 발생할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라고 말씀하셨다는 마태의 기록도 인정한다(성경지식주석).

 

66. 세대주의자들이 이른바 예언의 문자주의를 지지하고 마태복음 24장의 대환란 구절들을 강조하지만, 그들은 예수께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24:34)” 말씀하셨을 때 주님께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 세대”(예를 들어, 마 11:16; 12:41,42)라는 용어를 그때 그때 다른 의미로 사용하셨으며, 심지어 직접적인 문맥(마 23:36)에서도 그러하기 때문에 “이 세대”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시던 때를 언급하시는 것이 아닌(왈부어드)” 수 천년 후의 미래를 가르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교묘한 주장을 내세운다.

 

67. 7년 대환란의 마지막 기간 동안 급격한 “이스라엘의 국가적 거듭남”이 일어날 것(프루흐텐바움)이라는 세대주의 가르침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성경적이지도 않다. 왜냐하면 설령 집단적 이스라엘인들이 그렇게 거듭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것은(복음을 전하는 역할인) 교회와 (회개를 일으키시는 행위자인) 성령이 지상에서 사라진 후에나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68. 대부분의 세대주의자들은 짐승의 수를 3개의 숫자 6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이것을 세 개의 숫자 6(6-6-6)이 아니라, “육백 육십 육(계13:18b)”이라는 전체적인 숫자 가치를 지닌 단일수(666)으로 나타난다.

 

69. 많은 세대주의자들은 짐승의 표가 “주입식 마이크로칩(티모시 데미)”라고 예상하지만, 계시록 13장은 그것이 물체의 종류가 아닌 어떤 표식이라고 말씀한다.

 

70. 우리는 아마게돈 전쟁이라는 대재앙으로 도래할 확고부동한 미래의 지정학적 왕국에 대한 세대주의자들의 믿음에 반대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왕국은 어떤 표적과 함께 오지 않는 영적 왕국이라 가르친다. 또한 그 왕국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오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이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보아라,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눅 17:20-21)" 라고 말씀하셨듯이, 1세기에 이미 임한 것이다.

 

71. 세대주의자들은 소위 문자적 전천년주의가 계시록 20:1-6이 자신들의 신학체계를 확실히 지지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다른 복음적 관점에 비해 월등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세대주의 관점은 사자와 이와 사람의 얼굴을 한 전갈(계 9:7-8), 입에서 나오는 불 예언(계11:5), 일곱 머리 가진 짐승(계 13:1) 등등의 내용이 나오는, 성경에서 가장 상징적인 책에 타당성이나 일관성이 없는 문자적 신학체계를 도입한다.

 

72. 계시록 20:1-6이 문자적 전천년주의를 확립하는 분명한 구절이라는 세대주의의 주장은 진지함이 결여된 비일관성을 갖고 있다. 또한 이 주장은 교회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이 천년왕국에 참여하지 못하게 만든다. 계시록 20:4은 목베임을 당하고 짐승에게 저항을 하는 이들에게 천년왕국을 제한하기 때문인데, 그와 같은 일들은 교회의 휴거 이후(그들 관점에서) 대환란 동안 일어나는 일들인 것이다.

 

73. 세대주의적 관점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들에 대한 천년왕국의 영광을 말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헤르만 호이트가 “구속 받아 살아난 국가 이스라엘은 거듭나 자신들의 땅으로 모여들 것이며, 그들은 지상의 모든 열방들을 다스릴 것임”을 주장하는 예에서 보듯이, 세대주의자들은 거듭난 이방인 신자들은 유대인들에게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는 성경적이지 못한 교리를 가르친다.

 

74. 세대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 종말에 모든 민족들을 통치하리라 주장하지만, 성경은 “그 날에 이집트에서 아시리아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아시리아 사람이 이집트로 가고 이집트 사람은 아시리아로 갈 것이며, 이집트 사람이 아시리아 사람과 함께 경배할 것이다.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와 이집트와 함께 있어 이 세 나라가 세계 중에 복이 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 이집트, 내 손으로 만든 아시리아, 나의 유업 이스라엘에게 복이 있어라(사 19:23-25).’ 하실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75. 세대주의적 천년왕국설을 뒷받침하는 방법론이 “평이하고 단순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돌아와 부활한 성도들과 부활하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섞여 살게 될 것이란 기묘한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부활하지 않은 사람들이란 “신자들의 새 세대”로써 대환란에서 벗어나 천년왕국으로 들어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재림 시에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대로 살아남은 불신자들이라는 주장이다(왈부어드).

 

76. 세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관점이 합리적이라 주장하지만, 그들은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부활의 성도들이 평온하게 1000년을 지낸 후 “바다의 모래 같이” 거대한 수의 부활하지 않은 죄인들이 영광의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에 대항하여 일어난다는 기묘한 가르침을 부여잡고 있다.

 

77. 세대주의자들이 갖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근본적인 원리가 있지만, 그들은 두 번째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지상으로 오셔서 천년왕국을 세우시고 직접 1000년 동안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오직 종말을 향한 주님의 직접적이고 은혜로운 통치에 대항하는 “바다의 모래 같이” 수많은 반역자 무리들만이 존재하는 시대라는 것이다(계 20:7-9).

 

78.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이라는 현실적인 가능성에 열광하여” (랜덜 프라이스) 연구를 하고 이에 관련하여 자금을 대는 수많은 세대주의 지지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성전제도가 갖는 총체적인 관점이 “점점 낡아지고” 1세기에 “사라져버릴”(히 8:13) 옛 언약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79. 우리는 장차 천년왕국이 도래하여 물리적 성전이 세워지고, 그곳에서 문자 그대로 짐승 피를 바치는 제사를 드리게 되리라는 세대주의자들의 기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유월절과 구약의 제사제도를 충족시키셨으므로, 그의 희생은 최종적이며 "단번에(히 10:10b)" 이루어진 사건임과 새 언약은 그 희생으로 옛 언약을 “폐기시킨” 것임을 가르친다(히 8:13).

 

80. 우리는 물리적인 성전이 재건되리라는 세대주의 가르침을 반대한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성전이 세워진다는 말로 표현한다. 즉,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주님 안에서 함께 성전이 되어 간다”는 말이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성전이야말로 참되고 영원한 성전인데, 지상의 임시적인 성전에 대하여 히브리서는 이를 “그림자”요 “모형”(히 8:5; 9:24)이라 말씀하고 있다.

 

81. 세대주의자들은 미래의 제사제도에 대한 에스겔의 예언들은 그 성격상 “기념”이란 의미를 갖고 있을 뿐이라서 주의 만찬과 동일하며, 성전이 물리적으로 재건되는 것을 보게 된다는 예언은 “속죄”를 결과하는 제사를 말한다(겔 43:20; 45:15, 17, 20)고 주장하여 그 예언들을 재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를 마지막 피 흘리는 제물임을 인정하는 피 없는 기념의식이다.

 

82. 세대주의자들은 예언의 성취라는 중요성을 지녔다는 의미에서 유대인들에게 헌신하고 이스라엘의 고귀한 미래를 믿지 않는 복음주의자들에 대하여 “반유대주의”라 비난한다(핼 린지). 세대주의자들이 스가랴 13장 8절의 예언에 대하여 일단 유대인들의 귀환이 완료되면 “이스라엘 백성 중 2/3는 멸망하리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지만(왈부어드), 지금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로 귀환하라고 설득하고 있다.

 

 

83. 우리는 세대주의 주장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 논제를 반대한다. 그러나 “사람에게보다 하나님께 순종함이 마땅하다(행 5:29)”는 말씀 등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의무를 요구하실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만약 주 너의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신 28:15, 63)” 멸망할 것을 이스라엘에게 경고까지 하셨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경은 이 세대주의 논제를 고대유대주의학의 한 형태로 본다.

 

84. 우리는 "각 세대는 독특한 계시와 시험, 실패와 심판의 사상“을 갖고 있어서 그 각 세대는 실패와 심판으로 끝난다고 보는 부정적 원리의 세대주의 역사 구조를 반대한다. 성경은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통하여 구속사의 긍정적 목적을 확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세상이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 3:17)”,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시고(고후 5:19a)"

 

85. “현 시대는 배도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날 것(월보어드)”이며 “믿기 힘든 고난의 때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찰스 라이리)” 등의 미래에 관한 세대주의 비관론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하늘과 땅 위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시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실제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8-20)”는 명령을 하고 계신다.

 

86. 어떤 세대주의 학자들은 천국 비유들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려드는데, 그들은 마태복음 13장 8절에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의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변화를 “시대의 과정”으로 해석하며, 또한 마태복음 13장 31절에서 33절 말씀을 “겨자씨는 하나님의 목적이 현 시대에 곡해되는 것을 말하며, 누룩은 하나님의 종들의 타락을 이르는 것(J. D 텐테코스트)”으로 설명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이 비유들이 당신께서 세우셨으며, 다른 비유들에서 보물로 설명하신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87. “가라앉는 배 위에서 놋그릇을 닦을 필요가 없다(J. V. 맥지)”,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셔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지 물고기가 담긴 그릇을 깨끗하게 씻으라고 하지 않으셨다(핼 린제이)” 등의 문화적 후퇴에 관한 세대주의의 역사적 논쟁이 있어왔지만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두움의 일을 밝히 드러내는(엡 5:11)” 온전한 문화적 참여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만드는(고후 10:4-5)” 일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88. 세대주의가 사회·도덕적 악을 뿌리 뽑으려는 실제적인 시도를 한다지만 그 자체의 본질적 이유로 인해 사회 참여를 위한 장기적 안목을 계발할 수도 없으며, 정치·문화적 문제들을 언급하는데 필요한 고려사항들에서 율법을 제거해 버리기 때문에 통일성을 갖춘 세계관을 설명할 수도 없다.

 

89. 세대주의자들은 세대주의 이외의 신학체계들이 “자유주의에 적합하게 약간씩 수정 되었다(존 월보어드)"는 비판을 하지만, 20세기 초엽 모더니즘을 받아드린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세대주의 신학이다.

 

90. 세대주의자들이 복음을 통한 구원을 확언하지만, 그들의 전도방식과 기본적 신학은 사람들이 진실로 회개하지 않았을 때 구원의 잘못된 확증을 갖게 할 수 있는 가정적 믿음(사실 믿음이라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조장한다.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고백을 아주 빨리 받아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예, “많은 이들이 주님의 이름을 믿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으셨다"_요 2:23b-24a).

 

91. 세대주의자들이 “참되고 건전한 영성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찰스 라이리)”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신학은 사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선언하고 나면 그저 살고 싶은대로 살면 그만이라고 가르쳐 불의한 삶을 조장한다. 이와 비슷하게, 세대주의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필요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죄인들을 포용한다(제인 핫지)”고 가르친다. 복음서가 예수님이 ‘너희가 내 말 안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요 8:31)’라며 유대인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요 10:27’)라고 선언하셨다.

 

92. 초기 세대주의자 및 현대의 다양한 세대주의주의자들이 “신약은 분명코 구원받지 못한 이들의 회개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L. S. 채퍼, 제인 핫지)”고 가르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하였다(행 20:21).”

 

93. 우리는 세대주의가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것과 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서로 나누어 구분하며, 따라서 구원의 믿음에는 “결코 영적인 책임이 있지 않다(제인 핫지)”고 주장하는 교리에 대하여 반대한다. 성경은 구원의 믿음이 가지는 하나의 법칙으로 이 두 가지 사실을 모두 말씀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믿음의 순종”을 인간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롬 16:26; 약 2:14:20).

 

94. 세대주의가 “참되고 건전한 영성(찰스 라이리)”를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상 하나님께서 율법을 의의 표준으로 정하셨다는 것을 부인하여 반율법주의(antinomianism)에 빠지게 만든다. (십계명을 포함하여) 율법은 또 다른 세대에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이방인들은 율법을 받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인에게 이 율법은 폐기되었다(찰스 라이리)”는 이유로 십계명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신약성경은 모든 인간이 “율법 아래 있으며 모든 입을 막고 모든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한다”고 가르친다. (로마서 3:19)

 

95. 세대주의는 그리스도인을 영적 그리스도인과(찰스 라이리의 말에 따르자면 “엄청난 수의 육신적 그리스도인”을 결과하는) 육적 그리스도인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그러한 계층적 구분을 말씀하지 않는다. 성경의 가르침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는 것이다.

 

 

“Dispensationalism has thrown down the gauntlet: and it is high time that Covenant theologians take up the challenge and respond Biblically.”


-- Dr. Robert L. Reymond, author,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세대주의가 도전하고 있다. 그리고 바야흐로 언약 신학자들이 이 도전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대응 할 때이다.”


- 로버트 L. 레이먼드 박사(‘기독교신앙의 새로운 조직신학’의 저자),


이 분이 미국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 교수였고, 고신대학교에서 특강도 한 그 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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