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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교회 벽화

 

알렉산드리아 학파, 안디옥 학파

최덕성 해석학 강의록 4

 

1. 유대교의 텍스트 해석방법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 신앙, 문화,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나님이 내려준 삶의 규범이며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이다. 이스라엘이 야훼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할 것과 그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본분을 담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헬라인(Greek)은 그들의 문헌들이 신에 의해 영감되었다고 믿었다. 인간의 글이 신의 감의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교는 성경을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글로 나타낸 것으로 이해했다. 성경(토라)은 인간의 삶에 대한 완전한 진리를 제공한다. 텍스트 해석은 본문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백성 각자의 상황으로 전달하는 작업이었다. 텍스트들이 항상 분명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난해한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간격 곧 성경과 그것을 읽으면서 일관성, 논리성, 명확성을 가진 의미를 찾는 독자 사이 간격은 유대인들의 텍스트 해석 작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유대교 성경 해석학은 이스라엘의 영적이고 문화적인 반응이었다. 단순한 텍스트 해석 원리와 철학만으로 이해될 수 없었다.

 

예수와 제자들이 활동하던 당시의 유대교는 문자적, 미드라쉬적(Midrashic), 페셔적(Pesher), 그리고 풍유적(allegory) 해석을 도입했다.

 

문자적 해석은 독자가 텍스트가 말하는 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토라(오경)의 규범적인 성질은 이러한 접근방법을 요청했다. 신명기를 해석하는 데 적합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해석 방법은 항상 전적으로 적합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종종 문자적 해석을 무색하게 했다. 텍스트를 문자 이상의 넓은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미드라쉬 해석은 신학 프레임으로 텍스트를 해석하는 접근방식이다. 랍비학파는 이 방법으로 분명한 의미를 곧 바로 알 수 없는 텍스트들의 뜻을 밝히려고 개별 텍스트에 파고들었다. 성경구절의 문맥보다 적합한 성경해석을 위한 본문끼리의 유사성들을 고려했다. 영적인 해석이 오용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텍스트들이 의도적으로 또는 비의도적으로 잘못 이해되는 것을 막고, 본문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다.

 

페셔 해석법은 쿰란 공동체가 도입한 방법이다. 성경의 예언들을 최근 사건들과 동시대 사건들에 적용시켰다. 이 방법은 신적인 신비들에 대한 특별한 지식의 필요성을 요청했다. 이 방법이 아니고는 미드라쉬 해석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에서 우선권을 지녔다.

 

풍유적 해석은 특정 본문의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텍스트가 말하고 있지 않는 바깥 관점들의 도움을 받아 해석한다. 텍스트를 텍스트 그 자체가 말하는 것 보다 더 심오한 상징적 실재라고 여긴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교 학자들과 기독교 학자들은 그리스-로마 문화 보다 성경과 유대사상이 더 합리성, 논리성, 현재적 탁월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려고 풍유적 해석 방법을 정교하게 사용했다.

 

성경의 잘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은 풍유적으로 접근하면 쉽게 해석될 수 있다. 예컨대, 천지창조 기사, 앞뒤가 맞지 않은 구성, 천박한 이야기들은 그 텍스트의 문자적 의미를 뛰어넘어 성경해석을 신학적인 틀 속에 통합될 수 있다.

 

해석활동에 대한 총체적인 초점은 공동체의 종교적 정체성과 일관성을 보호할 수 있었다. 신학적 관심으로 변증을 해야 하는 상황은 텍스트를 풍유화 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텍스트에 따라 어느 경우는 문자적으로, 어느 경우는 미드라쉬적으로, 어느 경우는 이를 넘어 페셔적으로, 때로는 이를 넘어서는 풍유적 해석이 필요했다.

 

2. 초기기독교의 텍스트 해석

 

예수의 종말론적인 설교는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적당한 지침들에 대한 논의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와 부르심에 대한 실제적인 응답을 요청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선포와 그 나라의 현현은 토라에 대한 바리새 학파의 율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해석과 종교 행습에 끼친 그들의 특별한 영향에 반발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성경에 부합하는 영감된 삶과 설교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실천적이고 전적인 반응을 요구하고 그것에 초점을 두었다. 예수는 성경에 대한 비문자적인 해석을 택했다(5:17이하; 15:1-20; 2:23-28; 13:10-17 참고).

 

예수의 해석은 미드라쉬 전통에 가깝다. 그는 종종 토라 텍스트들에 관련된 율법적인 요구를 비평하는 설교를 했다. 예수의 해석 초점은 점차 그것에 대한 적합한 해석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텍스트가 되었다.

 

초기 기독인들은 유대교 배경에서 예수의 선포, 죽음, 부활과 관련하여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구약성경을 재해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규범적인 신약성경을 갖게 되었다. 신약성경도 적합한 해석 전략을 필요로 했다.

 

사도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들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해석했다. 유대교에 없는 텍스트에 대한 추가적인 관점이었다. 구약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은 대체로 풍유적 해석 또는 모형론(typology)이라 불려진다. 구약성경 전체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들과 예언들이라고 해석했다. 예수는 그림자인 모형과 예언의 실체라고 보았다.

 

모형론 해석자들은 구약성경 텍스트에 주목하고 그것들이 전달하려는 의도를 고려하면서 텍스트들을 이해하기보다는, 이 텍스트들을 그들 자신의 신학적인 가정들 속에 밀어 넣는다. 기독교의 구약 해석은 본문자체가 요구하는 많은 것들을 무시하는 독단성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해석이 구약 텍스트에 대한 유일한 합법적인 접근이라고 주장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서로 다른 종교적 경험은 텍스트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해로 이끌었다. 그 때부터 오랜 기간 동안 유대교와 기독교는 비슷한 해석방법을 적용하면서도 구약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불신임했다.

 

신약 정경의 출현은 기독교 공동체 안에 해석학적 질문을 부각시켰다. 영지주의가 기독교 해석에 위협을 가하자 기독교 신학자들은 정경에 대한 해석 원리를 확립했다. 기독교는 유대 해석학 전략과 동일한 것을 사용했다. 문자적 해석과 풍유적 해석을 동원했다. 풍유적 해석을 따른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문법적-역사적 전략을 따른 안디옥 학파가 등장했다.

 

기독교 정통신앙은 성경에 대한 그들 각자의 접근에서 모두 풍유적 방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이레네우스(Ireneus, 순교 202)는 교회적 기준을 가진 적합한 해석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성경 해석자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사도적 전통을 가진 지역교회와 대열을 같이할 때, 수납된 기독교 규범에 따라 텍스트를 올바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기독교가 영지주의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사도적 전통이 진리의 기준’(regular veritatis)으로 부각되었다. 기독교 해석자들로 구성된 합법적인 공동체만이 기독교적 해석에 필요한 확실한 해석의 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신학자 터툴리안(Tertulian, 160-220)은 성경에 대한 비기독교적 석의는 효용성이 없다고 보았다. 교회 밖에는 참된 해석이 전혀 있을 수 없다. 성경은 교회만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성경석의에 참여할 어떠한 합법적 권리가 없다. 교회적 기준은 올바른 성경석의와 그릇된 성경석의를 구분 짓는 기초로 이해되었다.

 

3. 알렉산드리와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신학자들은 그곳의 필로의 해석학적 유산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d. 214)는 모든 성경은 신비한 상징적 언어로 말하기 때문에 풍유적 해석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는 이를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

 

오리겐(Origen, c. 185-254)은 하나님, 우주, 인간구원과 같은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을 다루고 나서 자신의 해석학적 방법을 논의했다. 오리겐에 따르면,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영감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예언 성취는 성경 영감의 분명한 증거이다. 이 출발점은 성경 본문을 풍유적 방법으로 읽을 것을 요구한다.

 

오리겐이 남긴 결정적인 업적은 텍스트의 영적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성경은 상징을 사용하지 않고는 결코 풀 수 없는 궁극적인 신비를 담고 있다. 상징들을 문자적으로 취급하면 바르게 이해되지 않는다. 풍유적 접근만이 텍스트 속에 감추어진 신비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할 수 있다.

 

오리겐은 텍스트 의미를 삼중적 구조 곧 문자적, 도덕적, 영적 의미로 구분했다. 실제로는 오직 문자만을 구분했다. 이레네우스와 마찬가지로 오리겐도 해석자가 교회의 신앙규칙에 지도를 받을 필요성을 인정했다.

 

안디옥 학파는 유대교 석의 전통을 따라 성경의 문자적 해석 이론을 발전시켰다. 본문의 문법적 검토를 강조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오리겐식 해석학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보았다. 그래서 '성경계시의 역사적 실재성'을 집요하게 주장했다. 역사적 사실을 상징과 그림자의 세계에 빠뜨리려고 하지 않았다.

 

안디옥의 성경 해석자들은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 너머에 있는 더 심오한 성경의 의미를 캐내려고 시종 문자에 집착했다. 성경의 숨은 의미를 거부했다. 텍스트는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모든 독자들에게 분명하고 이해 가능한 실재(actual realities)를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의 예언들은 어떤 상징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실제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언자들은 실제적인 것을 이야기한다.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의도적으로 이야기한다고 보았다. 예언적, 메시아적, 기독론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진단된 문제의 텍스트들을 정경에서 제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은 오늘날까지도 서로 다른 해석학 패러다임을 대표한다. 알렉산드리아는 전체적인 신학적 지식의 관점에서 본문의 영적 의미를 드러냈다. 안디옥 학파는 본문의 열린 메시지를 연구했고 문자적인 방식으로 본문의 영적인 질을 평가했다. 두 해석학 견해들은 지적 전통의 양극단을 대변했다. 이 두 패러다임 가운데 어느 것도 초대교회에서 순수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저작권자  리포르만다무단 전재-재배포-출처 밝히지 않는 인용 금지


choicolle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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