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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에벨링의 가족


게르하르트 에벨링의 신학적 해석학


최덕성 해석학 강의록 19

 

1. 신해석학의 주역

 

게르하르트 에벨링(Gerhard Ebeling, 19122001) 만큼 많은 정력을 신학의 해석학적 문제를 성찰하고 그것을 보급하는 데 바친 금세기 신학자는 없다.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루돌프 불트만에게 사사했고, 취리히대학교에서 에밀 브루너에게서 배웠다. 박사학위 논문은 루터의 해석학을 다루었다. 튀빙겐대학교와 취리히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1962년부터는 취리히에서 해석학 연구소 책임을 맡아 새로운 해석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

 

에벨링은 신학의 해석학적 문제에 대한 연구, 강의, 집필을 지속했다. 폭스와 더불어 해석학적 신학에 크게 공헌했다. 스승들을 넘어 바르트와 불트만 사이의 해석학적 대립을 극복하려고 했다. 에벨링이 역사와 현재의 종교(Religion in Geschichte und Gegenwart)에 기고한 그의 해석학논문들인 개신교의 교회와 신학을 위한 비평적 역사적 방법이 갖는 의미,” “하나님의 말씀과 해석학,” “하나님과 말씀이 이바지한 바 크다.

 

위 첫 번째 논문은 1950년대까지 전개된 기독교와 철학의 해석학적 토론의 결과를 제시한다. 나머지 논문들은 신학적 해석학에 대한 에벨링 자신의 접근방법의 주요 측면들을 발전시킨 내용의 글이다.

      

2. 신학의 해석학적 본질

 

에벨링은 20세기의 개신교 신학을 위한 일관성 있고 비평적인 해석학을 공식화하려고 시도했다. 푹스처럼 후기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언어 이해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푹스 보다 더 명확하고 힘 있게 언어에 대한 이 새로운 개념과 종교개혁신학을 결합시키려고 했다.

 

에벨링은 개신교 종교개혁 신학의 해석학적 결점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해석학적 주제에 대한 루터신학의 통찰력이 부족함을 간파했다. 루터는 신학 방법 자체에 대한 성찰을 발전시키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은 일반적으로 초대 기독교와 자신들의 시간적 간격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에벨링에 따르면 현대 개신교 신학의 해석학적 질문은 어떻게 계시가 오늘날 우리에게 동시대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믿음에 의해서만(sola fide) 의롭게 된다는 개신교 종교개혁의 교리는 계시를 동시대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어떤 지속적이고 확고한’(secure) 노력도 아예 거부하는 것을 내포하지만, 에벨링은 그것은 또한 이미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 같은 계시와의 만남에 대한 개인적인 차원의 이해를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것에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성찰이 결여되었다. 심지어 불트만의 해석학조차 이 같은 필수적 성찰을 제공하지 않았다.

 

언어에 대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적인 이해는 이 점에 도움을 준다.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에벨링은 언어를 순전히 도구적인 것으로만 보려는 생각을 너무 제한적인 것으로 여겨 거부했다. “언어를 기계적인 도구로만 보는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끊임없는 원천 곧 시간의 요소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다.”

 

언어의 사건적 특징(event-character)이 이와 같은 협의적 접근 방법에서는 상실된다. 그러므로 회복시켜야 할 것은 언어의 근본적 본질이다. 우리의 해석학적 성찰에 적용시켜 볼 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해 영역의 기초적인 현상은 언어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언어를 통한 이해이다.

 

하이데거는 언어의 요청(call)에 대해 말하고, 에벨링은 모든 언어적 사건의 깊은 차원에 대해 말한다. 그는 모든 말씀 사건 속에서 모든 단어(word)가 그 존재의 근거를 두는, 감추어진 그리고 암시적인 단어 사건인 하나님이란 단어가 지칭하는 깊은 차원을 진단한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인간실존의 이 기본적인 상황은 더 이상 공적인 인식 대상이 아니다. 그 결과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사적인 강화(講話)의 움막 속에서 발생하며, 이 같은 언어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언어적인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문구는 그 자체가 이 같은 언어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이해와는 대조적으로, 올바른 이해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속에서 구원의 효력을 가지게 하는 확신을 주는 언어로 이해되는가, 아니면 언어의 선물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되는가, 아니면 우리의 말문을 가로막는 세력들보다 더 월등한 말씀(the Word)을 위한 하나의 권위로 이해되는가에 달려있다.

 

성경 본문들(신약성경의 덕에 의한 구약성경 포함)은 이 보편적인 언어적 사건을 증거 한다. 그러나 성경 본문은 이 사건과 동일시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성경적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하는 말씀 사건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말씀 사건은 특별한 이해관계에 의해 닫혀 진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개방시키며, 획일성이 아닌 언어적인 창조를 강력히 요구한다.

 

에벨링에 따르면 말씀의 정상적 기능이 방해를 받을 때 마다 해석이 요청된다. 그러나 그는 이 해석의 한계를 서둘러 밝힌다. “그러한 해석의 목표는 말씀의 이해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여기서 에벨링의 신학적 해석학의 개념의 핵심이 무엇인지 분명해 진다. 신학적 해석학은 필수적이다. 모든 신학은 해석적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신학의 목적은 텍스트 해석활동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롭게 하려는 항상 새로운 시도이다.

 

다른 곳에서 에벨링은 신학을 말씀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수납하도록 요청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신학적 해석학의 임무는 인간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보다 민감하고 보다 책임성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임무는 우리 자신의 말(word)의 상황에 대한 비평적 평가를 포함한다. 이 평가는 우리가 하나님이 그의 말씀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에벨링은 성경의 말씀이 다음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상황을 드러낸다고 결론짓는다. 인간의 기본적인 상황이란 (1) 수수께끼와 신비 사이의 긴장을 가진 분리된 실재(reality), (2) 복잡성과 변화 속에서 인간을 구두적 책임의 지점에 묶어두며... 그로 하여금 생명을 주는 말씀의 은혜를... 간청하고 그리고 부여받게 하는 그 분을 향해 그가 울부짖게 하는 말의 실재, 그리고 (3) 신앙을 요구하고 궁극적으로 예수의 권위 있는 말씀의 약속 아래에 서게 하는 실재이다.


3. 에벨링의 해석학은 얼마나 비평적인가?

 

의심할 여지없이 에벨링의 해석학적 사상은 개신교 신학 안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에벨링은 그의 동료 푹스보다 훨씬 더 전체 기독교 전통과 현대철학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발전을 가져온 그의 지식은 동시대의 신학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바르트와는 달리 그는 해석학적 주제에서 신학과 철학의 긴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옹호했다. 그리고 개신교 신학이 종교개혁으로부터 물려받은 해석학적 및 방법론적인 문제들을 언급하고 평가했다.

 

그러나 에벨링은 철학적 해석학과 신학적 해석학 사이의 창조적인 긴장을 계발하지 못했다. 대신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이들 상호간의 원천을 밝히고 따라서 인간의 의사전달의 조건에 대한 분석을 우주의 본질과 미래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결합시켰다. 한편으로 인간의 의사전달, 특히 텍스트-해석에 대한 해석학적 의의에 대한 비평적 성찰과, 다른 한편으로 신학적 사고의 해석학적 성격에 대한 비평적 성찰은 더 이상 생산적인 변증법적 관계와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보았다.

 

에벨링은 말씀의 신학이라는 개신교 전통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그 자신의 신학적인 종합 속에서 이 변증법적 관계를 부인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전통을 비판적인 질문 없이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그 때 에벨링의 종합은 신학을 위한 가장 좋은 해석학적 안을 제공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말씀의 신학의 바로 이 전통과 특별한 해석학적 전제들이 비판적으로 검증된다고 해도 해석학에 대한 에벨링의 주된 접근방법은 역시 보다 더 비평적으로 다루어질 필요성이 있다.

 

에벨링은 항상 각각의 의사전달 조건이 일단 계시와 같은 행위를 수납할 수 있도록 되기만 하면 말씀의 능력은 그 자신을 당장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상황 밖에서 성경 텍스트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그의 성찰에 나타나지 않는다. 유일한 참다운 해석학적 상응(correspondence)은 말씀과 신앙 사이에 일어난다고 보았다.

 

에벨링에 따르면 텍스트와 해석 사이의 이 상응은 그것이 말씀과 신앙 사이의 이 신학적 상응을 지칭하는 범위 안에서만 탁월성을 가진다. 이 때의 해석학은 신학의 한 기능 역할을 하며, 텍스트와 해석의 변증법적 관계와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에 대한 성찰을 목표로 하는 자율적인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누리지 않는다.

 

그래서 에벨링은 슐라이에르마허가 구상했던 독립적인 학문다운 철학적 해석학에서 멀어졌고, 궁극적으로 철학적 해석학의 논의를 그의 특별한 신학적 필요에 전적으로 종속시켰다.

 

이 전환은 해석학적 문제들을 성찰하려는 범학문적 노력에서 해석학을 뽑아내어 이제는 오로지 특정 신학적 전통에만 집중시켰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해석학적 초점을 축소시키려는 이 노력은 신학의 해석학적 지평을 결정한 특별한 전통(에벨링의 경우 말씀신학의 전통)이 더 이상 그 자체로는 해석학적 회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에벨링은 이해에 대한 신학적 교리로서의 해석학은 곧 하나님의 말씀의 교리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신학적 해석학의 사고의 일차적인 임무는 따라서 언어 신학적 교리”(Theologische Sprachleher)를 공식화하는 것이다.

 

비록 에벨링은 조직신학 곧 이제는 해석학적으로 새롭게 이해된 조직신학이 궁극적으로는 닫혀 진 체계의 고착된 교리 덩어리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사고에 대한 판단 능력을 중재하고 책임 있는 신학적 진술들을 탄생시킬 양식(mode)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그는 결코 말씀의 신학의 전통에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에벨링에게서 해석학은 이 전통의 관점 내에서 볼 때 봉사의 기능이라는 성격을 가진다. 그는 해석학의 비평적 기능을 인정하지만 다만 이 전통 내에서 그러했다.

 

4. 종합 평가

 

20세기의 신학적 해석학 발전의 요점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모든 해석학자들의 논의가 성경에 대한 역사주의(실증주의)적 해석학의 이데올로기적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는 것이다.

 

해석학에 대한 바르트와 불트만의 논쟁은 결과적으로 신학적 해석학의 두 유형의 출현을 알렸다. 바르트의 해석학은 근본적으로 해석학적 질문들을 자신의 신학적 통찰에 종속시켰다. 불트만의 해석학은 적어도 원칙적으로 인간이해에 대한 철학적 고려들과 신학에 대한 그의 특별한 실존주의적 해석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려고 했다. 불트만의 해석학이 지닌 약점 곧 그의 비신화화 개념과 언어에 대한 비평적 이론의 부재는 그의 주요 업적, 다시 말하면 그가 도모했던 철학적 해석학과 신학적 해석학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평가 절하하지는 않는다.

 

신해석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운동은 위 두 접근방법의 변증법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다. 이 운동의 대표자인 푹스와 에벨링은 그 대신 내적인 신학적 해석학 곧 신앙의 해석학을 제안했다. 이것은 철학적 해석학에서 혜택을 얻었지만 말씀의 신학이라는 종교개혁 전통을 육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범위 안에서만 궁극적으로 철학적 해석학에 관심을 가졌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전통 안에서의 신학적 해석학의 목표는 올바른 설교를 고무시키는 것이었지 신학적 사고의 보다 적합한 인식론적 기초를 놓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신해석학은 하이데거의 철학, 특히 언어에 대한 그의 존재론적 이해와 유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학 그 자체의 발전에는 공헌하지 못했다. 그것은 1960년대의 언어학적 논의만이 아니라 해석학적 전통(리꾀르, 하버마스, 바르테스, 푸코, 데리다 참고)에 대한 새로운 비평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이들은 모두 언어에 대한 하이데거의 철학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또한 에벨링은 해석에 있어서 윤리문제도 제기했으나 오직 특정 개신교 전통의 상황 안에서만 그러했다.

 

에벨링은 말씀(Wortverantwortung)에 대한 해석자의 책임성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신해석학은 가치 있는 많은 신학적 통찰들에도 불구하고 불트만 보다는 바르트와 많은 공통점을 지녔으며, 전체적으로 보아서 신정통주의 신학의 범위 안에 머문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저작권자  리포르만다무단 전재-재배포-출처 밝히지 않는 인용 금지

 

choicolle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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