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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브르크성, 루톨프 불트만 거리에서 본 전경


어네스트 푹스의 신해석학


최덕성 해석학 강의록 18

 

1. 신해석학의 등장

 

바르트와 불트만 이후에 실존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삼아 조립된 그리고 이들의 사상을 넘어서는 신해석학’(New Hermeneutics)이 출현했다. 이 학파의 중요한 철학적 특징은 언어에 대한 후기 하이데거의 철학적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다. 중요한 신학적 특징은 이 새로운 철학적 출발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한 종교개혁적 이해의 회복을 특유하게 결합시킨 것이다.

 

바르트와 불트만의 논쟁은 독일에서 이루어졌지만 신해석학은 국제적인 독자와 참여자들을 끌어들였다. 특히 다수의 미국인 신학자들(James M. Robinson, John Dillenberger, Robert W. Funk, John B. Cobb, Jr.)이 해석학적 논쟁에 참여했다.

 

신학 분야의 해석학적 성찰은 미국 드류대학교(1962)에서 열린 신해석학 대회와 이어진 논문집의 출간이다. 신해석학(1964)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신학저널에 대서양 양쪽 신학자들이 기고를 했다. 이 책은 미국인 신학자 로빈슨(James M. Robinson)과 캅(John B. Cobb, Jr.)의 편집으로 출간되었다.


신해석학의 주역은 여전히 독일 신학자들이 맡았다. 어네스트 푹스(Ernst Fuchs, 1903-1983)와 다음 장에서 소개할 게하르트 에벨링은 마르부르그대학교의 불트만의 제자였다. 폭스는 1932년에 본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부르크에서 해석학 연구소 소장으로 일했다. 2차세계 대전 이후의 신해석학의 발전에 창의적인 자극을 준,  20세기의 신해석학의 주역이었다.

    

푹스는 난해한 문학적 문체 때문에 독일어권 밖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에벨링의 저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지속적으로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푹스와 에벨링은 친밀히 상호협조하고, 신학적 해석학의 여러 측면에 일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출발점이 달랐다. 푹스는 특히 후기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고 불트만의 해석학적 강령을 하이데거의 후기 언어철학의 빛 아래서 수정하려고 시도했다.

 

에벨링은 하이데거의 강한 영향을 받았으나 하이데거의 언어철학과 루터의 말씀의 신학을 종합해 보려고 시도했다. 한스-게오르그 가다머의 해석학을 수렴했다. 현대 신해석학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표자로 부상했다.

 

푹스는 많은 논문들과 저명한 책 해석학(Hermeneutik, 1954)에서 해석학에 대한 자신의 접근방법을 발전시켰다. 하이데거의 초기 실존철학을 신학에 적용시켰던 불트만과는 달리, 푹스는 언어에 대한 후기 하이데거 철학의 관심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불트만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인간이 그의 존재에서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던 반면, 푹스에게 주도적인 질문은 어떻게 인간 존재에 대한 방해를 받지 않은 언어(undisturbed language of being)를 듣는 법을 배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이데거의 후기 저작의 관심은 존재의 언어에 대한 통찰에 있었다. 언어는 존재에 관해서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의 부름 곧 존재의 부름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고, 그것에 반응해야만 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언어는 그것의 기호적인 특징 곧 그것이 무엇인가를 의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게 정의될 수 없다. 그 대신 언어는 존재 그 자체의 사건(ereignis)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그 같은 존재의 사건이 온전하게 파악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언어는 존재를 나타내기도 하고 동시에 숨기기도 한다. 초기 하이데거의 특별한 언어를 후기 하이데거의 강령에 적용시킴으로써 진정한 실존”(authentic existence)은 인간이 언어를 통한 존재의 이 부름을 듣고 반응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존재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하이데거는 시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그 이유는 시인들의 가장 고상한 과업은 우리들로 하여금 존재 그 자체의 목소리의 가장 좋은 표현에 귀를 기울이게 함으로써 존재로 되돌아가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임스 로빈슨과 존 캅이 편집한 신해석학(The New Hermeneutic, 1964) 중 로빈슨의 글 바르트 이후의 해석학은 아주 가치 있는 보고서이다. 로빈슨은 어떻게 하여 푹스가 하이데거를 따르면서도 언어를 더 이상 인간의 자기이해의 객관화로만 보지 않고(불트만은 그렇게 보았다) 인간의 자기이해의 구성 요소로 보았는가를 지적했다. 진리를 존재의 표현”(Spruch des Seins)으로 정의했다.

 

2. 예수의 사랑 언어

 

푹스는 대부분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비진정성에 대한 하이데거의 불평을 참된 언어가 개입할 수 있는 부정적인 폴리오(folio)로 이해했다.

 

언어(language)로서의 탄식은 더 이상 상실에 속하지 않고 언어의 본질이 그가 어떤 의사소통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과 같은 유익을 사람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언어 속에 작용하고 있는 힘에 대한 근접성(nearness)은 모든 인간의 참여에 우선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언어를 낳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히려 언어로부터 태어났다. 인간이 언어를 강탈당한 실존의 도구로 만들었다는 것은 단지 표적이 빗나간 일상의 삶에 인간이 친숙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푹스는 예수의 사랑의 언어에서 진정한 언어를 찾았고, 따라서 진정한 언어를 추구하는 하이데거의 탐구의 목표를 신약성경 본문이 증거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기독론적인 경험과 동일시했다. 그러므로 푹스에게 해석학적 문제는 이제 우리가 어떻게 신약성경 본문에서 하나님의 언어를 올바르게 들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 활동 곧 우리의 보는 것이 어느 범위에까지 듣기에 달려있는가를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해석학적 문제이다. 이것은 날마다 우리에게 새롭게 제기된다. 이것이 신약성경을 위한 출발점이다.”

 

20세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는 과학적인 관심에 의해 너무 제한되어 왔다.

 

어려운 점은 잘못된 방법론이 아니라 의식 있는 경험의 부족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해석학자들의 문제이다. 우리는 사후에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각할 수 없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조사된 사실 세계의 테두리 내에서 신적인 것들에 맞추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가정할 뿐이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 무언성(無言性)의 상황에서 신약성경은 우리가 언어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신약성경은 그 자체가 해석학의 교과서이다. 그것은 신앙의 해석학-간단히 말하면 신앙의 언어-를 가르치고,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해 지도록 하기위해 이 언어를 우리 자신이 시용(試用)하도록 독려한다.”

 

푹스는 일상 언어의 회복을 제안했다. 이것은 그가 그러한 언어만이 우리를 신약성경 본문의 의미와 관련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우리의 해석학 규범은 설교이다. 텍스트는 하나님이 선포될 때 해석된다! 그래서 우리는 텍스트가 우리에게 말하도록 해야 하고, 텍스트가 우리를 데리고 가고자 하는 자리까지 그것과 함께 가야한다. 이것은 일상적인 삶이다. 텍스트가 일상적인 삶과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우리는 신약성경의 진리를 경험한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이 책이 빛나면 빛날수록 매일의 삶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남아 있으려고 한다. 아마 이것은 정확하게 우리 시대를 향한 근본적인 해석학적 진술일 것이다.”

 

3. 바르트와 푹스

 

위 인용문단은 푹스, 바르트, 불트만 사이에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를 증명해 준다. 이들 세 신학자들 모두는 성경 본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현대인이 새롭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해석학적 강령을 공식화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다 하나님의 하나님 됨에 대한 존경을 회복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해석학에 대한 이들 각자의 접근방법은 자신들의 철학적 성찰에 따라 서로 달랐다. 바르트는 성경해석에 대한 어떠한 철학적 강요도 거부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 푹스는 일반적 해석학의 필요성을 느꼈고 따라서 이 점에서는 슐라이에르마허를 따랐는데 그의 해석학적 의도는 특별히 하이데거에 의해 채택된 것이었다.

 

푹스는 언어에 대한 하이데거의 개념에서 배우기를 희망했을 뿐만 아니라 참된 언어를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하는 데 까지 나아갔다. 더욱이 그는 불트만과 함께 성경 본문(주로 신약성경 본문, 두 사람 다 구약성경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음)이 실존적 상황에서 나온 진술이며 오늘날 우리의 인간실존을 위해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 본문은 단순한 문서들이 아니라 실존적인 의미를 가진 텍스트이다. 동시에 이 해석행위는 오늘날 우리 실존의 진실을 밝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 차이점들을 제외한다면 푹스의 해석학적 강령은 결국 바르트가 천거한 것과 동일한 극치에 도달한다. 곧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선포되기를 원하며, 우리의 텍스트 해석의 기반은 이 세계에서의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선포이다. 따라서 올바른 해석학은 신앙언어-교육”(Sprachlehre des Glauben)이라고 말했다.

 

바르트의 해석학의 여러 측면에 대한 푹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총체적으로 바르트의 관심과 비슷했다. 푹스는 기본적으로 신앙의 해석학, 즉 내용적으로 오리엔테이션이 된 해석학을 제시했다.

 

그가 일반적 해석학의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재빨리 진정한 의미 탐구에 대한 신학적 본질을 토론하려고 했고, 우리로 하여금 신약성경 본문의 실존적 해석에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그러나 다만 어떤 철학적 통찰력과 신학적 확신 간의 일치성을 주장한다고 하여 신학적 확신이 비평적 검토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평적 해석학은 텍스트 자체에 대한 철저한 신학적 비평만이 아니라 언어와 언어의 조건 그리고 언어의 수행에 대한 비평적이며 자기 비평적인 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푹스는 언어에 대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적인 개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이데거 사상에 내재해 있는 문제점들에는 비판적이지 않았다. 텍스트가 우리를 데리고 가고자 하는 곳으로 함께 가야한다는 단순한 요구는 비평적 해석을 위한 만족할 만한 제안이 못된다. 신약성경에 대한 현대의 종교적 독해가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 보다 굳게 뿌리박혀야 한다는 점에서 푹스의 주장은 옳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푹스는 우리가 어떻게 이 일상적인 경험을 가장 적합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또 텍스트 자체에 대한 참다운 비평적 해석을 위한 알 맞는 활동이 가능한가에 대하여 충분히 성찰하지 않았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저작권자  리포르만다무단 전재-재배포-출처 밝히지 않는 인용 금지

choicolle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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