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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주의 해석학, 종교개혁 해석학

 최덕성 해석학 강의록 6


1. 중세기 해석학

 

신학은 성경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주석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특정 본문이 갖고 있는 신학적 함의들을 조직적으로 고찰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세기에 이르러 텍스트 주석과 그것에 대한 해석이 점차 분리되었다. 성경해석과 신학적 사고가 분리되었다. 이 현상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를 포함한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의 작품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중세 초기에는 어거스틴의 해석 관점이 호응을 얻고 있었다. 수도원, 대학, 도서관은 해석학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빅토의 휴(Hugh of St. Victor, d. 1141)는 주로 어거스틴의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에 큰 영감을 받아 교훈(Didascalicon)이라는 영향력 있는 책을 저술했다. 휴의 해석학은 종교 텍스트를 읽는 독자만 아니라 세속 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지혜(sapientia)까지 발전시켰다. 중세 학교에서 가르쳐진 교양과목의 구조를 분석하고, 성경의 적합한 독해에 관한 논의를 했다. 휴는 종교 텍스트 곧 성경을 적합하게 독해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휴는 종교 텍스트 해석을 건축물에 비유했다. 건물의 기초는 믿음의 원리들이다. 이 원리들을 제공한 교회의 교사들 곧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자면 텍스트의 영적 의미, 풍유적 의미, 도덕적 의미, 신비적 의미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리라의 니콜라스(Nocolas of Lyra, d. 1349)는 위 네 가지의 의미 탐색 방법들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자는 하나님과 우리 조상들이 무엇을 했는가를 보여주고, 풍유는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숨어있는가를 보여주고, 도덕적 의미는 일상생활의 규칙을 주고, 영적 해석은 우리의 분쟁을 결말짓는 곳을 보여준다라고 했다.

 

중세초기에, 문자적 의미는 풍유적 해석에 필요한 믿음의 내용을 제공하는 원천이고, 도덕적 의미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행동규범을 이끌어 내고, 영적 이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한 텍스트의 중요성을 제시한다고 이해되었다.

 

이 무렵에도 실제적인 해석 작업은 문자적 해석과 풍유적 해석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해석학은 서서히 문자적 의미 파악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성경 본문의 문자적 성격은 그것의 신학적 의미들에 대한 논의와 구별되었고, 독립적으로 다루어야 지기 시작했다.

 

현대 신학자들 신학이론과 기독교적 실천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고 싶어 한다.  분열은 중세기에 일어났다.  결과로 신학은 다양한 분야로 구성되었다.  풍유적 의미에 기초한 사변적 신학, 도덕적 의미에 기초한 도덕적 신학, 영적 의미에 기초한 종말론이 신학을 주도했다.

 

2. 스콜라주의 해석학

 

스콜라주의 신학은 12세기에 등장했다. 이 학파는 해석학에 주목했다그 무렵성경해석을 이끌어 온 풍유적 해석은 쇠퇴했고, 본문의 문자적 의미가 주목을 받았다. 중세기 해석학은 몇 가지 점에서 고대 안디옥 학파의 해석 전통과 평행을 이루었지만 스콜라주의 견해와 전부 일치한 것은 아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위대한 신학자였다. 조직신학에 해당하는신학대전(Summa Theologica)을 저술했다. 그는 이 책의 서두에서 해석학적 접근방법을 논의한다. 성경해석의 4가지 원칙을 여전히 고수하면서도, 문자적 의미의 중요성과 범위를 재규정한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다. 인간은 단어로만 뜻을 나타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 안에서 성경의 단어만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로 그분의 뜻을 드러낸다. 일반 학문에서는 사물들의 의미가 단어에 의해서 규명되지만, 신학은 단어에 의해 규명된 사물들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의미작용(signification)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느 단어가 사물을 규명할 때, 첫번 째 등장하는 것은 문자적-역사적 의미이다.

 

그런데 단어들에 의해 규명된 의미는 또 하나의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영적인 의미라는 것이다. 문자적 의미에 기초하고 그것을 전제로 하므로 성경해석에 어떠한 혼동도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의미들이 하나의 의미 곧 문자적 의미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자적 의미에서만 논증이 이루어질 수 있다. 어거스틴이 말하는 풍유적인 의미에서는 논증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어느 부분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소멸되지 않는다.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가 제공하지 것은 모두 영적인 의미에 포함되어 있다.

 

토마스에 따르면텍스트의 문자적 의미 이해는 모든 신학자들이 분투, 노력해야할 과제이다. 토마스는 풍유적 의미를 평가절하한다. 신학에 과학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결심의 표현이다. 모든 신학적 사고는 새롭게 공식화된 과학적 표준을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시기부터 신학(theological science)에 대한 이 새로운 개념이 두 가지 측면에서 부여되었다. 첫째, 중세 해석가들은 본문 구절에 대한 설명 또는 난외 주석이 제공되었다. 독자의 성경 본문 해석을 지도할 목적이었다. 과거의 권위 있는 해석이 무엇이었는가를 알려줄 목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전통은 성스런 텍스트를 올바로 이해하는 일을 오히려 방해했다.

 

둘째, 신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출현했다. 피터 아벨라드(Peter Abelard, d. 1142)의 영향 때문이었다. 아벨라드는 언어학적 박식함을 소용없는 것으로 보고 거부했다. 그 대신 철학적 사변에 근거한 과학적 신학건설을 주장했다. 이 시대의 철학, 논리학, 수사학은 신학의 시녀였다. 토마스는 신학적 사고에 대한 새로운 교재들이 필요함을 느끼고신학대전을 저술했다. 학구적인 신학의 길을 열었다.

 

토마스가 풍유적 해석을 거부한 까닭은 신학과 성경 본문에 대한 실제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한 시도였다. 그러나 그가 방향전환을 하여 철학에 집중하자 신학적 사고는 다시 성경해석과 구분되었다. 독립적인 분야로 자리를 잡았다.

 

스콜라주의 해석가들은 성경의 텍스트를 재발견하고 문자적 의미를 신중히 받아들였지만, 그들의 새로운 관심은 이전의 교회 교부들의 관심이 그러했던 것처럼 주로 학문적인 기반을 가진 신학(theological science)에 있었다.

 

스콜라주의자들과 그들의 선배 학자들과 중요한 차이는 신학을 교리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신학은 성스러운 책(sacra scriptura) 곧 성경의 내용을 적합하게 드러내는 성스러운 교리(sacra doctrina), 거룩한 가르침이 되었다. 성스러운 책(sacra scriptura)이라는 구호는 성경 텍스트와 따로 움직였다. 텍스트는 점차 사변적 신학사상을 입증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신학자들이 학문성을 추구하는 동안, 경건한 대중들은 영적인 해석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로 오랫동안 존재한 성경과 신앙 전통 사이의 대화(dialectical) 관계가 폐기되었다. 독립된 두 개의 성경 해석체계의 발전으로 때문이었다. 신학은 신학적 전제들을 입증할 목적으로 성경 텍스트들을 이용했다. 대중적인 기독교 영성 운동은 자체의 해석학적 기초를 입증하려고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3. 종교개혁 해석학

 

16세기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일종의 해석학적 사건이었다. 종교개혁은 새로운 해석학 이론의 출발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해석학적 실천의 결과였다. 성경을 새롭게 읽는 실천이었다.

 

종교개혁운동의 해석학적 실천은 당대의 인문주의 정신에 따라 철저한 교육받은 신실한 기독인들이 성경 본문을 재해석하면서부터 출현했다. 이들은 성경을 로마교회가 배타적으로 사용한 라틴어 역본(Vulgate)으로 읽지 않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읽었다. 자신들의 성경 해석을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의 교회적, 영적 현실들과 비교했다.

 

인문주의 해석이론과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교부들과 어거스틴의 해석 방법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성경해석에 대한 숙련된 기술이 아니라 해석자 자신의 변화된 자기이해였다.

 

어거스틴과 그의 해석학적 추종자들에게 성경해석은 궁극적으로 기독교회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루터, 칼빈, 쯔빙글리 그리고 나머지 종교개혁자들에게 그것은 기독교 전통과 교회의 삶 둘 가운데 어느 쪽이 정통 기독교 신앙에 부합하는가, 개혁을 필요한가를 가늠 하는 결정 방식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들 이전의 유대교-기독교 사상가들이 발전시킨 해석방법에 따라 성경 텍스트를 쉽게 지속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성경을 독특하게 읽을 수 있는 권위와 합법성에 관한 관점들은 선배 신학자들의 그것과 달랐다.

 

종교개혁운동은 중세기 동안 진행된 교회개혁의 결과이다. 여러 명의 비평적 사상가들이 마련한 길을 따라 일어났다. 피터 왈도, 위클리프, 오캄의 윌리엄, 얀 후스, 타볼파와 후스파 등은 교회 권력자들의 권위주의적 성경 해석에 항거했다. 교권을 쥔 교황이 성경의 진정한 독해와 그 텍스트의 궁극적 의미를 결정할 수 있다는 사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항거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기독교 교리와 생활의 적합한 신학적 해석을 위한 유일한 기준이었다. 성경을 새롭게 읽고 깨달은 결과였다. 로마교회처럼 제도적 권위로 자신들의 성경해석의 정당성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올바른 안내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적절한 해석과 정확한 이해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성경 본문을 읽고 연구하는 사람은 그가 찾고자 하는 모든 것을 그 텍스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경은 성경 그 자체로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종교개혁자들은 교회 권력과 전통이라는 권위과 규범을 배격했다.

 

인간의 이성(理性)은 성경이 갖고 있는 자기 해석적 성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도구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인간 이성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경해석 역사에서 인간 이성에 대한 적대감은 그 이성을 신학과 해석의 도구로 사용한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에서 나타났다.

 

오직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원칙은  그 이후에 발달된 성경의 축자 영감 교리와 동일하지 않다. 마르틴 루터, 울리히 쯔빙글리), 존 칼빈은 축자영감 교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 같은 교리가 그 시대에는 아직 문제시 되지 않았다. 기존의 기독교 전통의 주된 흐름과 동일하게, 이들은 성령이 성경의 저자이고 따라서 하나님은 분명하고, 일관성 있고, 인간구원에 충분한 방식으로 성경 본문을 거쳐 말씀하신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성경 본문에 나타나는 모순과 모호한 표현들은 성경의 명료성에 대한 확신을 무용지물로 만들지 않으며, 오히려 유한하고 따라서 한계를 지닌 해석자에게 끊임없는 도전을 던져준다고 보았다.

 

루터, 쯔빙글리, 칼빈은 성경을 읽는 독자 개인이 텍스트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하는 신학적 독해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종교개혁운동의 해석학적 돌파는 두 가지로 구성되었다. 첫째, 성경 본문을 하나의 통일체(unity)로 이해하려는 신학적 독해 관점의 발전이었다. 둘째, 인문주의 사고에 의해 자극받아 개인적인 사명감으로 텍스트를 연구하면서 자신의 기독교적인 삶 속에서 텍스트가 요구하는 바에 개인적으로 책임성 있게 반응하고자 하는 독자들의 변화된 의식이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모든 전통적인 짐과 제도적인 울타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석적 자유를 심어준 인문주의는 이제 자유로워진 종교개혁가들이 발전시키기 시작한 새로운 신학적 독해관점, 해석학에 의해 도전받았다. 종교개혁 시대의 해석학의 기원을 더 자세히 이해하려면 마르틴 루터의 해석학의 출발을 상술할 필요가 있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저작권자  리포르만다무단 전재-재배포-출처 밝히지 않는 인용 금지

 

choicolle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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