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중교회 제도의 문제점/ 이성호

by dschoiword posted Feb 2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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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적 성도(VIsible Sains)와 교회 언약(Church Covenant) : 회중교회의 두 기둥 - 존 오웬 (John Owen, 1616-1683)을 중심으로]

이성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역사신학)

1650년대는 영국 혁명이 발생하여 왕이 처형되었다. 교회의 머리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그 교회를 지탱하던 주교들도 폐위되었기 때문에 국교가 폐지되었다. 젠트리 계급을 중심으로 한 신흥 세력들이 청교도들이 지원을 입고 정권을 잡았고 최종적으로 군대를 지휘하였던 울리버 크롬웰이 국정 최고 수반의 자리에 올랐다. 오웬은 크롬웰의 신망을 받아 종교에 관한 한 최고의 고위 공직자 자리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영국의 종교 정책을 추진하였거, 최고의 대학인 옥스포드 대학의 학장을 맡아 미래의 주역들을 교육시켰다. 그는 최선을 다하여서 영구의 모든 교회들이 자신이 구상한 대로 교회가 재건되기를 기대하였다....

아마도 모든 청교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힘을 모아 오랜 기간 동안 이 일을 추진하였으면 오늘날 영국교회는 많이 달라졌을 지 모른다. 하지만, 크롬웰이 정권을 잡은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다지 성공적이지도 못했으며 무엇보다 그의 후계자가 될 아들은 국정을 이끌기에 무능력하였다. 결국 대륙에서 피난하였던 찰스 1세가 1660년대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왕으로 즉위하였고, 새 왕은 이전의 모든 것들을 다시 원위치 시켰다. 오웬이 추구했던 교회의 재건도 수포도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오웬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국가적인 규모에서 교회를 중건하는 것은 실패하였지만 시골 작은 마을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한 작은 교회를 목회하면 성경적/ 초대교회적 이상대로 세우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용히 지나면서 여러 책들, 특히 방대한 히브리서를 주석하였는데, 이런 훌륭하고 탁월한 저술들은 이후 세대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고 교회의 개혁, 부흥, 증건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솟아나는 신학적 원천이 되었다.

오웬의 교회관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 그 당시 영국 교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안에는 명목상의 교인들이 너무 많다.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이 너무 많다. 대부분의 교회의 경우 등록카드만 작성해도 교인이 된다. 솔직히 교회의 회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제 교회 생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교인들을 끌어 모으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각 신자들이 실제로 산돌이 되게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또한 성도들 사이의 유대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웬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교회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웬의 고민에 귀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오웬은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에 큰 과제를 던진다. "어떻게 교회를 바로 세워야 하는가?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개체교회를 말한다. 오웬의 교회론은 교파에 상관없이 적어도 교회를 개척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오웬의 말대로 아니 성경의 말씀대로 교회의 본질이 건물(돌)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교회를 개척하는 이들은 사람을 새우는 일에 모든 사역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오웬은 교회의 모든 회원들이 성령으로 중생된 자들이어야 할 뿐 아니라 서로가 교회 언약으로 자발적으로 굳게 결속되어야 한다고 보었다. 그렇다면 교회를 개척하는 이들은 각 신자들을 먼저 중생한 자들, 즉 가시적 성도들을 만드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중생은 오직 복음을 들음은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목사는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데 전심전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일단 중생한 자들을 확보한 다음에는 성도들끼리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것에 힘써야 한다. 그것이 꼭 교회 언약이라는 방법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교회언약은 성경적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은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지 교회의 회원권은 지금보다는 더 그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장로교회의 경우 입교를 결속력은 지금보다 훨씬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회중교회주의자들은 기존의 교회론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모든 정통 기독교인들은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 고백하면서 교회를 "성도의 교제"로 이해한다. 그러나 어떤 성도 어떤 교제에 대해서는 모든 교파가 달리 해석을 하고 았다. 회중교회주의자들은 성도를 중생의 경험을 고백할 수 있는 가시적 성도라고 보았다. 성도의 교제는 상호간의 철저한 연대인 교회 언약으로 해석하였다. 이런 교회론적인 이해 속에서 회중교회주의자들은 명목상의 신자들이 가득한 영국교회를 기초부터 다시 새우려고 하였다.

오웬이 세우려고 하였던 참 교회의 상은 그가 살았던 시대 속에서 잉태한 산물이다. 아무리 옳은 신학적 견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얼마든지 오용될 수 있다. 그는 영국의 모든 교회를 칼빈주의 신학에 근거한 회중주의 교회로 만들려고 하였지만, 오웬 이후의 실제적인 역사를 볼 때, 조나단 에드워즈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회중주의교회는 점차적으로 개혁주의를 완전히 떠났고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좌경화된 신학을 양산하는 중심이 되어 버렸다. 회중주의 교회론에 따르면 개체교회를 먼저 잘 세우면 국가의 전체 교회들이 바로 서게 된다. 이론은 그럴듯하고 전혀 실현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아 보이지만 교회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점에서 우리는 회중주의 교회론이 지난 한계를 뚜렷하게 보게 된다. 그 한계는 장로교 교회론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제27기 정기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 페이스북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