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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hoiword2015.04.03 15:22

 

딸의 변명

 

(뉴스앤조이, 2015.4.3.)

고 박윤선 목사의 숨겨진 가족사를 다룬 책 <목사의 딸>(아가페북스). 책이 출판된 지 4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치열해졌다. 처음에는 박 목사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목사의 딸>이 왜곡된 시각으로 쓰인 책이자, 한국교회에 해악을 끼치는 책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관련 기사: <목사의 딸>, 한국교회에 득일까 독일까)

최근에는 한발 더 나가, 책 내용이 대부분 허구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관련 기사: <목사의 딸> 박혜란의 사촌 형부 목사, "이 책은 거짓") <뉴스앤조이>는 사실 확인을 위해 곧바로 박혜란 목사와 인터뷰를 추진했다. 하지만 박 목사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제약이 따랐다. 결국 박 목사가 귀국하는 3월 중순까지 기다려, 박 목사를 직접 만나 보기로 했다.

박혜란 목사는 박윤선 목사와 첫째 부인 김애련 씨의 3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1970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45세 늦은 나이에 덴버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할렐루야교회에서 성경대학 강사로 활동하다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뉴스앤조이>는 3월 25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박혜란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박 목사는 사이버 강의 녹화를 위해 3월 19일 한국을 찾았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70이 넘은 나이 탓인지 귀에 보청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질문에 답할 때면 막힘이 없었고, 사전에 전달한 질문지에도 하나하나 답을 달아 놓았다.

인터뷰는 3시간가량 진행했다. <뉴스앤조이>는 집필 동기부터 박윤선 목사의 상습적 폭행, 김애련 씨(박윤선 목사의 첫째 부인)의 소천 당시의 상황 등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박 목사는 어떤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스스로 '컴맹'이라 자처하는 그이지만, 주변에서 하도 말이 많아 인터넷에 어떤 글들이 올라왔는지 직접 찾아봤다고 했다.


▲ 박혜란 목사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 특히 힘들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책 내용은 모두 사실"

박 목사는 책에 진실이 아닌 내용이나 과장된 내용은 없다고 했다. 편집인이 내용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문장 순서를 바꾸거나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려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소제목이나 과장된 표현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내용은 자신이 갖고 있던 자료(편지, 일기)를 토대로 작성했다고 했다. 책에 담지 못한 더 심한 사건도 있지만, 글의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라 넣지 않았다고 했다.

집필 동기는 분명했다. 진실을 남기기 위한 목적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했다. 박윤선 목사는 신학적으로나 인성적으로 분명한 결함이 있는데, 한국교회는 박 목사를 우상 섬기듯 추앙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잘못된 유산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그 폐해가 한국교회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3년 전에 합신대학교에서 정암 기념 사업회를 열었다. 강단에서 아버지 설교를 복창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세 권짜리 책도 냈다. <부르심, 네 꼴 보고 은혜를 받겠느냐>, <기도, 죽기 내기로 기도하라> 등이었다. 내용은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제목부터 문제가 심각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다. 죽기 살기로 하는 걸 어떻게 교제라고 할 수 있나? 아버지는 이런 것들을 많이 강조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

아버지의 잘못된 가르침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아무런 성찰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기도를 열심히 해서 뭘 받아 내려고 한다. 우상숭배다. 마치 신령 나무에 딱 매달려 놔주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기를 쓰고 교회에서 살게 하고, 헌금하게 하고, 봉사하게 한다. 다 교세를 늘리기 위한 방편이지, 교회의 본래 가치가 아니다. 아직까지 이런 내용의 책을 팔고, 설교하는 게 문제다."

아버지는 '개인' 아닌 한국교회 '지도자'

박혜란 목사는 아버지의 허물을 들춰내기 위해 책을 쓴 게 아니라고 했다. 아버지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이고, 아버지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에 집필을 다짐했다고 했다. 그 역시 논란이 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이렇게까지 크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김수흥 목사(박윤선 목사의 조카사위)가 <목사의 딸>을 비판하며 창세기의 노아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노아)가 술에 취해 벗었을 때 아들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버지 행동을 떠벌렸으나, 셈과 야벳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나를 함과 비교한 것이다. 하지만 노아와 아버지는 완전히 다르다. 노아는 한 개인이지만, 아버지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다. 하나님은 지도자였던 모세의 잘못은 엄중히 꾸짖으셨다. 아버지 역시 지도자로 숭배를 받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한 개인에 불과했다면 이런 책을 쓸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지만,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아직도 아버지를 성인 모시듯 한다.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주변 목회자들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한국교회 문제를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박윤선 목사에 대한 비판이 필요했다. 마침 나에게 자료가 많았고, 한국교회를 위해 책을 쓰게 됐다."


▲ 박 목사는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전에, 한국교회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비춰지고 있는지, 한국교회가 본질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목사의 딸>은 삼류 소설?…"아버지는 욱하는 스타일"

박윤선 목사 가정과 가까이 지낸 박 목사의 제자들은 책의 내용이 허구라고 말한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박윤선 목사의 조카사위였던 김수흥 목사는 책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글을 <뉴스앤조이>에 기고했고, LA에 사는 박혜란 목사의 이복동생인 박성은 전도사도 참고 자료라며 장문의 메일을 <뉴스앤조이>에 보냈다. 이들은 책의 내용이 대부분 허구라고 주장했고, 박 목사의 저의를 의심했다. 박혜란 목사에게 이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먼저 박윤선 목사가 김애련 씨와 자녀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일부터 물었다. 박혜란 목사는 사실이라고 했다. 박윤선 목사는 분노가 많고 성미가 급한 성격이어서 폭행은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고 했다. 집에 잠깐 머물고 돌아갔던 외부인들이 폭행 사실을 모르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김애련 씨)께 다녀왔다고 인사했다. 평소 같았으면 왔느냐며 반갑게 맞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방 안에 가만히 숨어 계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렸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을 여러 번 목격했다. 춘호 오빠(박윤선 목사의 첫째 아들)나 요한 오빠(박윤선 목사의 둘째 아들)는 더 자주 목격했다. 언니 오빠들은 어머니가 맞는 모습도 봤다. 밖에서는 성인처럼 추앙받는 아버지였지만, 가정에서는 자녀들과 어머니께 폭력을 행사하는 분이었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우리를 더 힘들게 했다.

재혼하고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화주 어머니(박윤선 목사의 둘째 부인)가 오신 후로는 자녀들에게나 어머니에게나 폭력을 쓰지 않았다. 아예 말대꾸 자체를 하지 않았다. 싸움을 걸어오면 가만히 계셨다. 어머니(김애련 씨)가 갑작스럽게 떠난 후로 충격을 받으셨던 것 같다. 조강지처가 빨리 죽은 사람들은 후처에게 굉장히 잘한다. 또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서다. 이복동생들은 아버지의 예전 모습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와 성은이는 14년 차이가 난다. 우리 형제들은 이복동생들에게 예전 일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박윤선 목사와 김애련 씨가 다툰 이유를 자식들 때문이라고 한다. 교단이나 신학교 내에서 박 목사가 바른 소리를 하면 "박 목사는 자기 아들이나 잘 다스리라"는 소리를 들었고, 이런 문제가 부부 싸움의 발단이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목사는 첫째 오빠(박춘호 씨)의 비행으로 아버지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버지의 잘못에서 비롯된 싸움도 잦았다고 했다.

"춘호 오빠는 아버지의 의처증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임신을 피하기 위해 잠자릴 거부하시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의심했다. 낮에 남자가 집안에 뭘 고치러 와도 큰 싸움이 났다. 춘자 언니(박윤선 목사의 첫째 딸)는 아버지의 급한 성미를 싸움의 원인으로 생각했다.

돈 문제도 있다. 많은 사람이 아버지께서 가난한 신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신 내준 일을 회자한다. 헌데, 어느 누구도 어머니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녀는 6명이고, 신학생들과 손님들은 거의 매일같이 집에 찾아와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모든 일을 어머니와 상의 없이 혼자 결정했다. 어머니는 홀로 가정 살림을 떠안고 있었다."

"내막도 모르는 사람들이 거짓 운운"


▲ 박혜란 목사는 아버지가 겉으로는 거룩하게 보여도, 그 이면에 감춰진 모습도 많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목사의 딸>에는 김애련 씨의 사망 당시의 상황이 자세히 나온다.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이던 박윤선 목사는 김애련 씨 사망 후 10일 만에 귀국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박혜란 목사가 아버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당시 정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글을 썼다고 비판한다.

"귀국이 늦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시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귀국 후 행동이 문제였다. 충격에 빠진 자녀들에게 아무런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자기 할 일에만 몰두했다. 그 뒤로도 어머니의 추도 예배를 한번도 드리지 않았고, 어머니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재혼 문제도 그렇다. 아버지가 공부와 목회만 아는 분이었고, 젊었기 때문에 여자가 필요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당시 요한 오빠는 17살이었고, 나는 13살이었다. 자녀들에게 허락을 구했어야 했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알려는 줬어야 했다. 따로 나가서 살 것 같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집으로 데리고 올 사람이라면 결혼 전에 결혼한다는 말이라도 해야 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박윤선 목사의 둘째 부인인 이화주 씨가 전처의 자녀들을 차별했다는 내용은 사실일까. 책에 따르면 이화주 씨는 전차와 후처의 자식들을 차별하고, 전처의 자녀들에게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박윤선 목사의 제자들은 이화주 씨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후처로서 전처 자녀들에게 그만큼 잘한 분도 없다는 것이다.

"책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집에 잠깐 들러서 아버지와 얘기나 하고 돌아갔던 사람들이다. 부엌에서 살림을 도와줬던 아주머니들이 그들보다 집안 사정을 더 잘 알 것이다. 남자들은 그런 걸 볼 수도 없고, 또 그들이 보는 앞에서는 이화주 어머니가 저주하는 말을 뱉을 수도 없다. 허순길 박사는 단열(박윤선 목사의 셋째 아들)의 공부를 봐주기 위해 집에 들락거렸다. 허 박사와 인사는 했지만, 한번도 대화를 해 보지 않았다. 글을 보니까 나를 혜란이라고 부르더라 상당히 불쾌했다.

이복동생들이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 또한 당연하다. 우리 형제들은 이화주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외부에 전혀 말하지 않았고,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나와 제일 가까운 분인 외숙모에게도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버지께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께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걸 집념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어떤 이들은 이화주 어머니가 남에게 돈을 꾸어 나의 대학 등록금을 대 줬는데 어떻게 차별 운운할 수 있냐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도 사실이 아니다. 돈 꾸는 일은 자주 있었다. 등록금 말고도 생활비가 항상 부족해 큰아버지 신세를 많이 졌다. 당시 서울대학교 등록금은 다른 대학의 반도 안됐다.

4년 내내 등록금을 대 준 것도 아니다. 1년간은 가정교사를 하면서 스스로 학비를 마련했고, 한 학기는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등록금을 낼 때면 항상 불평했다. 혜란이 등록금 때문에 못살겠다는 말을 자주했다. 집에 가면 그런 불평을 계속 늘어놓으셨다. 집에 가는 게 끔찍이 싫었다."

의문의 꼬리는 책의 출판 시기로까지 이어진다. 박윤선 목사와 이화주 씨가 살아 있을 때는 책을 내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책을 출판한 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반론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악랄한 말들이다. 도대체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5년 전부터 집필을 준비했고, 4년 전에 탈고했다. 아가페 출판사에 찾아가기 전에 ㅅ출판사와 ㅎ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했다. 두 곳 모두 처음에는 반겼다. 하지만 내부 회의를 거쳐야 한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고, 결국에는 출판을 못하겠다고 하더라.

내가 직접 아가페에 원고를 보내진 않았다. 친구에게 원고를 보여 줬고, 그 친구가 아가페에 원고를 보냈다. 아가페도 출판 여부를 놓고 직원들의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정형철 대표가 출판을 적극 지지했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늦어진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복수심이다 이런 말은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다. 처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20년이 넘었다. 진실을 남겨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책을 썼다."


▲ 인터뷰는 3시간 가까이 이어졌지만, 박 목사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어렸을 적 추억을 얘기할 때는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아버지에 의한 강제 결혼이었나…가치관 차이로 남편과 불화

결혼 문제는 어떨까. 박혜란 목사는 <목사의 딸>에서 자신은 결혼을 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박윤선 목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혜란 목사가 결혼을 밀어붙였다고 주장한다. 박윤선 목사가 신앙이 약했던 사람을 사위로 받아들일 리 없고, 둘은 죽고 못 사는 연애 끝에 결혼했다는 것이다.

박혜란 목사는 황당해했다. 도대체 자신의 연애사를 어디에서 듣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공대를 다니다 보니 주변에 남자들이 많았다. 나는 남자를 무서워했다. 결혼할 생각도 없었다. 현재의 남편이 졸업 후에도 계속 따라다녔다. 집에 가면 문밖에 와 있었고, 어딜 가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 당시에는 친구가 없어 외로웠고, 일할 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남편의 도움을 받았다. 그때부터 왕래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추호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부산으로 내려가시기 전에 그 남자와 결혼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 그냥 친구다"라고 했고, 아버지는 결혼할 사람도 아닌데 왜 만나느냐며 화를 내셨다. 만나는 남자가 있는데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하니, 아버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께 뺨을 맞았다.

아버지는 많이 불안해했다. 나 혼자 서울에서 지내는 것도 그렇고, 당시에는 일이 늦게 끝나 통행금지 시간이 다 돼서 집에 도착하곤 했으니 말이다. 당시에 나는 자존감이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 없이 자란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를 던진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과 결혼한 것 같다.

도대체 남의 연애사를 얼마나 잘 안다고 그런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의 결혼 문제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연애 얘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왜 남의 결혼 문제까지 추측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 반항했다는 얘기도 나오더라. 부모님께 꾸지람받은 일은 거의 없었다. 결혼 문제로 아버지께 처음으로 맞았다. 그때 아버지가 자유 방종 뭐 이런 말을 했고, 그 말을 어머니가 이복동생이나 김수흥 목사에게 얘기한 것 같다."

책에 쓰인 대로 그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가치관의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어느 정도 단념하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지낸다고 했다. 경제적인 상황도 좋아져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 수 있는 수준은 된다고 했다.

남편과의 불화로 불면증을 앓기도 했다. 젊었을 때부터 민감한 성격 탓에 종종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6년 전에는 증상이 심해져 전문 상담가를 찾아가 상담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남편과의 갈등이 누적되고, 나이가 들자 증상이 심해졌다. 하지만 지속적인 상담 치료와 목회 활동을 통해 현재는 거의 완치됐다고 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이화주 씨의 자녀들은 이복형제들을 친누나와 친형처럼 따랐는데, 박혜란 목사는 왜 항상 자신들을 이복동생이라고 부르는지, 동생들은 궁금해한다."

박 목사는 이복동생들을 차별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사용한 건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계모나 이복동생이라는 표현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이복동생(Half-Brother)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한인 교계에는 박윤선 목사의 전처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책에서 이복동생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했다.

한국교회 갱신 위해 책 집필

박혜란 목사는 인터뷰 내내 아버지를 힐난할 목적으로 책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통해 한국교회가 말씀과 기도의 전통을 유산으로 받았고, 동시에 아버지의 한계를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그대로 답습한다고 했다. 한국교회를 위해 아버지에 대한 바른 평가가 필요했고, 아버지의 한계를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에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했다.




▲ 박 목사는 저녁 식사 후에는 항상 성경을 읽는다고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성경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고 했다. 자신은 철저한 문자주의자라며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 의미를 찾는다고 했다. 현재는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을 대조해 가며 잘못 번역된 부분을 수정하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