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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hoiword2015.03.19 22:15
목사의 딸과 아버지의 딸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박윤선은 율법주의, 기복신앙, 권위주의, 인간을 높이는 것 가장 싫어했던 분”

“목사의 딸”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돌아가신 박윤선 목사님의 딸이 아버지 박윤선 목사님과 얽힌 가정사와 목사 박윤선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서술한 수기형식의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족들이 겪은 고생과 아픔에 대한 연민과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주를 위해서 살겠다는 사람들은 교회 지도자로, 나라를 위하여 살겠다는 이들은 독립운동에 나서면서 그 와중에 그들의 가족들은 철저하게 희생당하는 시절을 살아낸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그 고통과 고생을 담보로 맺어진 열매를 박윤선의 제자들과 한국교회가 누렸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에게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박윤선의 가족들이 어떤 고생을 하였으며 박윤선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품고 오랜 세월을 지냈는지 저는 나름대로 이미 익히 알고 있는 터였습니다. 그리고 부모에 대하여 한 맺힌 분노를 품고 살았던 큰 아들 춘호씨가 2008년 77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마지막 5년 동안을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며 처절하게 회개하고, 그간 분노하고 증오하였던 여러 사람들을 찾아가서 혹은 전화로 일일이 사과하고 화해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았는가, 특별히 새어머니인 이화주 사모님에게 어떻게 사죄하고 화해하며 지냈는가를 박은혜씨를 통하여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박은혜씨는 생전에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가장 격렬하게 표출하였던 아들로 알려진 박윤선의 큰 아들 춘호씨의 딸이고 박윤선의 친손녀입니다. 이 부부는 미국에서 돌아와 3년 전에 신학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천안에서 매우 열악한 환경가운데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씨를 통하여 그의 삼촌이었던 다니엘 씨도 세상 떠나기 얼마 전에 그 부부를 통하여 예수를 영접하고 얼마나 통렬하게 회개하고 눈물로 살았는지 들었습니다. 특히 평생 가장 증오했던 새어머니에게 전화로 통곡하며 사죄하였고 이화주 사모는 비행기로 날아오고, 후에 다른 이복형제들도 비행기로 날아와 화해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은혜씨를 통하여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은혜씨는 자기 아버지 춘호씨에 대하여 해소할 수 없는 분노와 한을 품고 살았지만 마지막 5년 동안의 모습을 보며 자기 아버지를 용서하고 감사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내력을 알고 있어서인지 사실 박혜란씨의 ‘목사의 딸’은 매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박윤선과 상당 기간을 같이 보낸 여러 사람들이 그 책에 기술된 어떤 사실들에 대하여 사실성 여부를 갖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반론을 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진술들의 사실성 여부보다 더 충격적으로 제게 다가온 것은 그 책이 소개하는 박윤선에 대한 특정의 일화들에 대한 저자의 안목이었습니다. 책의 전편에 흐르는 저자의 분노에 찬 기운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생생하게 감지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이 많이 힘들었던 것은, 저자가 일관되게 분노에 찬 안목으로 자기가 소개하고 있는 각각의 사건들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른 자녀들도 이 사건을 이렇게 이해하고 해석할까 하는 의구심이 여러 곳에서 들었습니다. 저자는 목사의 딸이 아니라, 아버지의 딸로 맺힌 한이 많아 보였습니다.

박윤선이 주석 집필에 전념하느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고, 많은 도리들을 소홀히 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본인도 말년에 이르러 많이 아쉬워했던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는 합신에서 한 교수에게 자기는 학생들을 교육하는데 실패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주석집필에만 전념하느라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돌보는 일에 소홀히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합신에서는 이제 그 일에 전념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하기를 애썼고 어느 때는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불러서 돈이 든 봉투를 건네주며 격려하였습니다. 거의 언제나 그와 동행했던 이화주 사모님의 두꺼운 수첩에는 제자들의 기도제목이 빼곡히 적혀 있곤 했습니다.

그가 가장 소리를 높이며 반대했던 것이 율법주의와 기복신앙과 권위주의, 그리고 인간을 높이는 태도였습니다. 그가 가장 힘주어 배격했던 것들을 놓고 그의 딸은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단정을 자신의 책에서 하고 있어서 그 점이 가장 의아했습니다.

박윤선은 어린 제자가 설교를 해도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아멘 아멘 하며 설교를 듣고, 그가 사회를 하고 강단을 내려오면 아무리 어린 제자라 하여도 설교자의 신발을 바로 놓아주며 자리에 돌아오는 모습은 수없이 목격된 일입니다.

죽기 직전에도 인간 박윤선의 의를 제거해달라고 소리쳐 기도했다는 증언, 평생을 바쳐 저술한 주석임에도 그것이 박윤선의 개인적인 의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다 불살라 버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실 저는 박윤선의 설교를 연구한 설교학 박사 논문 하나를 지도해보려 해도 그의 설교 자료가 충분히 남아있지 않아서 포기한 상태입니다. 박윤선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서 그의 유품 하나도 제대로 모아놓지 않은 그의 후예들에게 사실 저는 서운함이 많이 있습니다. 개인을 높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평생의 지론과 그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후학들의 지나친 조심으로 역사적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것은 오히려 큰 실수입니다.

그가 언어 실력이 없어서 중국어 번역 성경을 보았을 뿐이라는 진술은 박윤선을 알거나 배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율법주의자 기복신앙가 권위주의자 언어에 무식한 자이었는지는 딸이 그렇다하면 그런 것으로 결론이 나는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으로 해석학적으로 학문적으로 논증이 되어야 할 일들입니다.

이미 숱한 학문적, 경험적 논의를 통하여 그는 그런 사람과는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논증되어온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책에서 피력한 이러한 단정들에 대하여는 다시 하나씩 검증하고 논증하는 일들이 합신이나 혹은 다른 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목사의 딸로서 쓴 글일는지는 몰라도, 30년 가까이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70대 중반의 딸이 아버지의 딸로 쓴 글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이 책을 덮으며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오히려 박윤선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많은 이들에게 박윤선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게 하는 좋은 기회를 주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어서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동시에 20대 후반에 박윤선을 만나서 그의 제자요, 그의 신학과 사상과 인격으로부터 평생 영향을 받고 그로부터 유익을 얻으며 살아오고 있는 나로서는 그분 때문에 험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분의 딸은 물론 이미 세상을 떠난 대부분의 다른 가족들과 남아 있는 후손들에게 여전히 미안한 마음입니다.

박윤선을 지칭하는 것 같은 맥락으로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는 디모데전서 5장 8절을 인용한 이 책의 추천자에 대하여 저는 고린도전서 4장의 말씀으로 답을 하고 싶습니다.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