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부인 박순천 여사

by reformanda posted May 06, 2020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0235_25078_562.jpg



박정희 대통령 부인 박순천 여사


원제: 가짜 뉴스


정성구 목사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요즈음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최근 김정은이 20일 동안 잠적해 있는 동안 유튜브에서 “김정은이가 죽었네, 살았네, 중병에 걸렸네”라고 뉴스가 나왔다. 그러나 김정은이가 멀쩡하게 나타나자 그 동안의 뉴스가 모두 가짜라는 것이 들어났다.


그러나 어떤 이는 ‘가짜 뉴스는 공영방송도 마찬가지다’ 라고 한다. 최근에 ‘누가 신문을 보고, 누가 TV를 보느냐?’란 자괴 섞인 말이 회자 되고 있는 시대다.


그러니 세상에는 어떤 언론 매체도 중립적인 것이 없고, 모두가 사주(社主)나 기자의 이데올로기와 입장에 따라서 뉴스를 가공하고 이용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을 가공하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정권에 유리하도록 조작하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가짜 뉴스는 또 다시 발이 달리고 손이 달려 거대한 음모가 되기도 한다. 그리 되면 그 가짜 뉴스가 나중에 사건의 진실이 되고, 진리가 되고 역사가 되어 버리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


인류의 역사는 그런 가짜 뉴스가 재생산 되어 역사를 왜곡하고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형편없는 몹쓸 사람으로 저 평가 시키기도 한다. 역사에 큰 인물일수록 공격이 많고 비난도 많다. 그래서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는데, 그 가짜 뉴스가 정설이 되도록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그것이 진정으로 역사적 기록에 맞는 진실한 사실(fact)인가 하는 것이다.


가짜 뉴스는 의도적인 것도 있지만, 어떤 때는 무지해서 가짜 뉴스가 되는 경우도 많다.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8.15 경축일에 문세광이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크나큰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다. 전세계 모든 언론들은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문세광이가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다가 그만 육영수 여사가 유탄에 맞은 것을 대서 특필했다. 국민들은 평소 육영수 여사의 고매한 인품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묵묵히 일 한 것이 한편에는 더욱 큰 슬픔이었다. 국상이었다.


그 때 나는 암스텔담에 살았다. 이런 세계적 뉴스가 화란신문에 특종으로 안날리 없었다. 화란에서 최고 부수를 자랑하는 「Trauw」지에 육영수 여사의 장례식 사진이 크게 났고, 하얀 국화 꽃으로 뒤덮인 영구차를 떠나 보내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애절한 모습이 크로즈업 되었다. 그런데 기사의 해설은 이랬다.「박정희 대통령 부인 <박순천> 여사의 상여가 떠나가자 박 대통령의 침통한 모습」이라 썼다.


 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보고 나는 기겁을 했다. 최고의 공신력을 자랑하는 트라우지가 얼마나 한국을 몰랐으면 당시 야당 총재였고, 고 박정희 대통령의 반대 입장에 섰던 야당 당수인 박순천 여사를 대통령 영부인으로 바꾸어 치기 했을까? 나는 급히 대사관으로 연락을 했으나, 대사관, 영사관 할 것 없이 한국외교관도 함께 일하는 직원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서부터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한국언론이나 외국언론이나 잘 믿지 않는다. 사실 역사에도 가짜 뉴스가 많고, 그 가짜 뉴스가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사실로 둔갑하는 경우도 참으로 많았다.


내가 운영하는 칼빈 박물관에는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사람이 방문한다. 하루는 내가 잘 아는 재미 교포 목사님이 칼빈 박물관을 관람 중에 내게 말하기를 「칼빈이 사람 죽였다면서…」라고 했다.


또 어떤 날 어느 여 집사님이 헐레 벌떡 와서 “「칼빈이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라고 했다. 내가 묻기를 “누가 그런 말을 합디까?” 했더니 그 집사님이 “어느 잘 알려진 한국의 부흥사가 그런 말을 하기에 확인 차 왔습니다”고 했다. 대게 사람들은 칼빈의 책 한 권도 읽지도 않고 ‘누가 카더라’하는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쎄르베투스를 칼빈이 죽였다는 말을 퍼뜨린 모양이다. 쎄르베투스는 스페인의 의사로서 신학을 연구한 평신도였다. 그런데 그의 교리가 당시의 신앙과 신학체계에 맞지 않아서 스페인에서 사형 선도를 받고 제네바로 도망해왔다. 그는 익명으로 칼빈과 서신을 주고 받는 사이였다.


그 옛날에는 교리적으로 잘못되면 종교재판을 통해서 사형 또는 감옥 형을 받던 중세기였다. 쎄르베투스는 결국 제네바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사형 언도를 받았다. 그런데 칼빈은 그를 찾아가서 그의 이단설을 취소하라고 진심으로 권면 했다. 사실 칼빈은 제네바 셍 피에레교회 목사였고 제네바의 목회자들을 가르치는 지도자였다. 칼빈은 사실상 시의회에서 아무 법적 어떤 권한도 없는 고문의 신분이였을 뿐이다.


더구나 칼빈은 제네바에서는 굴러온 돌이었다. 그는 불란서 사람으로 그의 생애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제네바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외국인 신분으로 살았다. 그러므로 칼빈은 제네바시 의회의 어떤 종류의 결정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칼빈은 제네바 시의회로부터 사사건건 충돌이 있었고, 제네바 셍삐에레교회를 부임한지 얼마 못되어 그는 제네바시 의회로부터 축출되었다.


그런데 한때 칼빈을 따르던 제롬 볼섹(Zerom Bolsec)이란 사람이 칼빈과 예정론에 대한 차이 때문에 다시 로마 카톨릭 교회로 돌아갔다. 그 후 볼섹은 칼빈에 대한 온갖 입에 담을 수 없는 나쁜 글을 남겼다. 오늘 날 마치 야당에 있던 국회의원이 여당으로 당적을 옮기니, 자기의 처신을 합법화 하고 인기도 얻으려고 자기가 몸 담았던 야당을 깎아 내리고 비방한 것과 꼭 같다. 현대인들은 전혀 사실이 아닌 볼섹의 글들을 읽고 칼빈이 사람을 죽였다느니 등 온갖 부정적 말을 한다.


오늘의 역사가들은 500년 전의 가짜 뉴스를 재생산 하고 있다. 나는 50년간 칼빈의 신학과 신앙을 연구하고 자료를 정리했다. 칼빈은 불후의 명작 「기독교 강요」를 27세에 썼고, 신구약 66권을 90%이상 썼으며 수많은 논문을 남겼다.


그는 27년간 셍피에레 교회의 목사였고, 교회개혁자였고, 사례금을 쪼개어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왔고, 친히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는 진실한 목회자였다. 그러니 제네바시에서는 당대에 칼빈과 견줄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는 성경의 박사이자, 고전어학의 천재였고, 교부들의 원전을 완전히 통달했고, 레토릭(Rhetoric)의 천재였다.


하지만 그는 두통, 위장병, 신경통, 기관지 천식, 폐병 등등으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할 만큼 병약한 사람이었다.


당시 제네바에서 카톨릭이나 이단들이나, 자유주의 자들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도저히 칼빈을 당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합심해서 칼빈의 개혁운동을 깍아 내리고 흠집을 내려고 쎄르베투스를 죽였다느니 등등 말도 안되는 가짜 뉴스를 만들었다.


칼빈은 의회주의자였고 민주공화제를 존경하는 자였다. 그는 쎄르베투스의 석방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제네바 시의회의 결정을 뒤집을 수 없어 결국 쎄르베투스의 사형을 최종 동의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카톨릭과 이단들과 자유주의자들이 힘을 합하여, 모든 책임을 칼빈에게 덮어 씌운 당시의 가짜 뉴스는 500년 후인 오늘도 움직이고 있다.


한국과 한국교회는 지금도 여러 가짜 뉴스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은 가짜 뉴스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조직적으로, 직업적으로 만들어서 교회를 공격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퍼뜨려 요상한 프레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 가짜 뉴스가 나라도 망치고, 사회도, 문화도, 교회도 망치고 있다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