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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hoiword2015.03.31 10:26

 

<목사의 딸>이라는 책을 읽고

 

정문호 목사

 

정문호는 총신대학교 신대원에서 1977년부터 2000년까지 <성경적 교회성장> 및 <신학생과 성경> 과목을 가지고 23년 동안 강의하였으며 현재 예손교회 원로목사이다.


나는 지금 85세 된 원로목사이다. 나는 박혜란 목사의 열서너 살 때부터 너무나 잘 알 뿐 아니라 가정의 모든 자녀들도 잘 아는 목사이다. 그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박 목사님의 교육과 감화를 받고 목회자로 부흥사로 헌신한 목사이기도 하다.

왜, 왜, 왜?
왜, 목사의 딸이 아버지 목사의 모든 것(인격, 주석, 교육, 설교)을 부정했을까?
왜, 딸 목사가 아버지의 신앙을 바리새적인 인격자라고 매도했을까?
왜, 목사의 딸이 아버지의 인격은 짓밟고 자기만 자랑했을까?
왜, 딸이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화살 맞은 맹수로 느꼈고, 아버지는 새어머니의 농간에 넘어간 완전한 장님으로 느꼈을까?
왜,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전처 자식에 대하여 정죄의 도끼로 내려쳤다고 느꼈을까?
왜, 전처 자식들은 육신의 자식, 후처 자식들은 영의 자식이라고까지 느끼고 살았을까?
왜, 한국교회 수천 명의 교역자와 성도들이 충격 받을 이 책을 세상에 내어놓았을까?
왜, 얄팍한 상술로 이 책을 썼다고 느끼게 했을까?
 
아버지를 비난하고 폄하하다

자신도 목사 된 사람으로 이렇게 아버지를 난도질할 수 있을까? 아버지를 유교적 권위주의, 샤머니즘적 기복주의, 왜곡된 율법주의자로 매도할 수 있을까? 딸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선자, 바리새인으로 매도하였다. 아버지가 십자가의 사랑을 자녀들에게 베풀 여유도 없이 분주한 시간을 보낸 것(주석집필, 신학교육, 목회사명)을 허물이라고 이야기했다. 저자는 새어머니도 저주에 가까운 악평을 하였다.


 (해방 후) 부산에 와서도 불면증에 시달린 아버지는 자주 어머니(친모)와 말다툼했고, 말다툼 끝에 어머니에게 손찌검한 적도 많았다. 정말 보았는가? 또 왜 그랬을까?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 어머니의 상기된 모습에서 아버지가 손찌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그런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나쁜 손버릇은 그쯤 멈춘 듯하다(30쪽). 그런데 한참 뒤에 가서는 자녀들이 보는 가운데서 아버지는 거의 상습적으로 어머니를 구타했다(245쪽)고 비난한다. 앞뒤가 잘 안 맞는 이야기다.


이 일에 대하여 왜 아버지가 그렇게 했는가에 대한 정황은 숨기고 아버지만 몹쓸 사람으로 정죄하고 있다. 왜 아버지가 큰 오빠, 작은 오빠의 사춘기에 있었던 잘못에 대하여 분노하면서 매질을 했을까? 사춘기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아버지가 “이놈들아, 목사의 얼굴에 똥칠한다”고 매질을 했다고 하는데 그 똥칠이 어느 정도였을까? 구체적으로 말하지 아니하였다. 나는 짐작이 간다. 박 목사님께서 큰 아들의 일로 교장직 사표까지 내고 학교에 출근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는 것은 내가 학생 때 있었던 일이다.


아버지를 흥분 잘하고 성 잘 내는 그리고 손찌검하는 분으로 그리면서 그것에 대하여 진실을 밝히는 용기라고 했는데 허물을 덮을 수 있는 용기는 없었던가?


박 목사님의 성역 50주년 기념예배에 대한 것을 이렇게 쓰고 있다. “1976년 성경 66권에 대한 주석을 완간하신 아버지는 그해 ‘성역 50주년 감사예배’를 드렸다”(254쪽). 그 해는 1976년이 아니고 1984년 4월 27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버지가 “저는 육십 년 묵은 죄인입니다”(255쪽)라고 했다고 했는데 박윤선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저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라고 하셨다.


이처럼 역사적인 사실조차 바로 기억하지 못하는 딸의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다 믿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아버지에 대하여 평하기를 이것은 겸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지사충성의 삶을 지극한 가치로 삼아온 아버지의 자기 고백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255쪽). 그러나 십자가에 깊이 잠길 때 나의 죄밖에 안 보이고 높은 하나님의 은혜를 쳐다볼 때 감사밖에 없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안타깝다.


딸은 아버지에 대해서 그 중심에는 당신 홀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죽기까지 충성하고자 했던 이기적 칼빈주의가 자리잡고 있었고, 이런 충성심을 부추긴 새어머니와 주변에 있는 동료들 그리고 아버지를 숭배하기를 일삼았던 한국교회가 한몫했다고 지적하고 그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답게 행동하지 못하게 한 공범의 자리에서 비껴날 수 없었다(247쪽)고 질타한다.


또 아버지의 생각 속에는 유교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한글성경에도 여전히 유교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번역이라고 주장했다. 이 점에서 아버지의 성경주석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에서 딸은 십자가의 사랑에서 멀리 떠나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도 사랑을 운운할 수 있을까? 정결한 마음과 깨끗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딤전 1:5)

심리에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숨어 있다

딸의 심리에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숨어있다고 느꼈다.


고교시절에 아버지가 너는 독일어를 전공하면 좋겠다는 권면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생각하기를 아버지가 독일어에 약함으로 딸의 도움을 받으려고 권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나는 독일어를 전공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더구나 아버지를 돕기 위하여 목사가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선교사 스푸너 목사가 한국에 와서 고려신학교에서 우리들을 가르쳤다. 때가 되어 스푸너 선교사가 귀국하게 되었다. 그때 사정상 비행기로 가지 못하고 군함으로 가게 되었고 배편으로 가시는 스푸너 목사를 찾아 달려가서 송별예배를 드렸다. 바로 그날이 주일날이었다(예배 시간이 그날밖에 없었다.) 이 사실로 인해 박 목사님은 교장직을 내놓게 된 것이다(면직). 이에 대하여 딸은 우리가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정죄했던 것을 아버지가 고스란히 값으로 받는 셈이 되었다라고 쓰고 있다. 이렇게 느끼는 쾌감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했습니까?” 둘째 아들인 요한이 아버지에게 한 질문이다. 이에 대해 1971년 12월 27일에 아버지가 딸 혜란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주로 목사 안수를 받기 전 일본에 있을 때 약간 다툰 일이 있고, 또 나로서 지나치게 분노한 일이 있는 것(심지어는 조금 때린 일도 있음)은 뼈아픈 일이고 회개한다. ……내가 주님의 일에 지나친 충성을 하였는지 모르나 너희를 위해서는 시간을 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내가 요한이를 데리고 있은 때가 많지 못함은 후회한다. 그런데 모든 일에 하나님의 판단이 있을 것이다.”(100쪽)


정 목사는 아버지의 이 편지를 회개의 편지로 생각한다. 아버지의 체면을 모두 접고 이렇게까지 편지하기가 쉽겠는가?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식의 강요가 과연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도리라는 말인가? 여기에는 딸의 지나친 교만과 잘못된 어떤 복수심이 깔려있다.


박 목사님의 자녀들이 너무나 아버지에 대하여 마음이 닫힌 상태에서 신앙을 찾으려고 애썼다는 생각이 든다.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은 성령의 역사밖에 없다. 그런고로 아버지께서 자녀들의 상태를 아시고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자랑하지 말라

50세에 덴버신학교에서 구약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사랑을 실천한다고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그곳 반석교회를 방문하여 열심히 봉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반석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도 하고 이렇게 지내는 가운데 ‘정은이’라는 불쌍한 초등학교 2학년, 불구자가 되어 엎드려 살아가는 정은이를 걸어다닐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여 일을 성취했다는 이야기도 읽었다.


‘해 뜨는 마을’이라는 범죄소년원에 가서 영어교사를 하면서 이웃을 사랑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복음의 씨를 뿌렸으니 훗날 말씀의 열매를 거둘 것이라고 자신의 말을 나열하였다.


또한 꿈에도 생각하지 않던 목사 안수를 받았고, 자녀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시작된 목회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5년 동안 난지도, 범죄소년원에서 봉사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버지를 지독히 비난하는 것과 대비해 보면 그의 마음과 신앙이 어떤지 드러난다. 자기를 죽이는 십자가는 없고 자기를 높이는 마음밖에 없다.


춘호 오빠를 어떻게 소개하는지를 보라. 아버지와 관련된 큰 오빠의 많은 잘못은 덮으면서도 회개하는 오빠는 잘 소개하려고 애쓴다.


허랑방탕하던 큰 오빠가 일찍 결혼하였으나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해 그 부인은 영양실조에 걸려 고생하다가 어린 자녀 다섯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 결혼도 실패로 끝나 이혼하고 말았다. 세 번째 결혼을 통해 지혜로운 여성을 만나 잘 살아가는 듯 했지만 허랑방탕한 생활로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할 정도로 심한 상태가 되었다. 이때 아내와 자식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고 마침내 춘호 오빠의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 후 가족의 보살핌과 하나님이 생명을 연장시켜주심으로 5년을 더 살았다. 그렇게 된 춘호 오빠는 자신이 잘못한 사람에게 전화로 용서를 구하고 친척들에게 전화로 용서를 구했다. 큰 오빠가 그렇게도 미워했던 새어머니와도 만나기를 요청하여 새어머니를 보고서는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로 자기 잘못을 회개했다.


큰 오빠는 이렇게 회개했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자녀들에게 잘못했다고 청산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는 식으로 딸은 따진다.


정 목사는 고 박윤선 목사께서 학생들에게와 가정 자녀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떠오른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결코 실패하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그렇게 자녀들이 세상으로 나가 불신앙 가운데 헤매지만 하나님께서 다 아셔서 뜻대로 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때가 이르매 큰 아들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


박혜란 목사는 남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자기 아버지는 끝까지 미워했을까? 새어머니를 미워하면서 무슨 이웃을 사랑한단 말인가? 자만에 빠지지 말고 겸손하면 좋겠다. 성경에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는 말씀도 있지 아니한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벧전 4:8).


진정한 복음적 자유?

딸 혜란 씨는 45세에 덴버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만난 그라운즈 교수에게 눈물 흘리면서 자기 입장(부모와의 갈등)을 말했다. 그 교수가 말하기를 혜란 목사의 잘못이 아니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경직된 신앙관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딸은 모든 염세주의적 죄책감과 두려움에 떨던 마음이 깨끗이 씻겨간 듯 한없는 기쁨을 맛보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185쪽).


나는 그라운즈 교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잘못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딸의 생각 그 자체가 잘못인 것이다. 아버지가 세상의 향락을 위하여 육신의 쾌락을 도모하려고 자녀에 대해 무관심한 것인가? 주님의 사명을 위하여 평생 몸 바쳐 오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깨달으려고 노력했다면 아버지를 이렇게 매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 목사는 박혜란 목사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미국 덴버신학교에서 발견한 사실은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복음에서 참 자유를 발견하고, 신앙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박혜란 목사는 성경에서 많은 것을 발견한 중에 복음 안의 자유를 발견했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아버지의 인격이나 신학조차 대부분 단죄하고 있다는 것이 과연 자기 죄를 발견하고 자유를 누리는 사람의 심리인지 궁금하다. 그런 자유가 과연 진정한 복음적 자유이겠는가?


아무리 영리하고 머리가 좋을지라도 그것들이 십자가의 용광로 속에서 녹아지지 못하면 자신의 영안을 흐리게 한다. 성경을 너무나도 개인적이고 철학적으로 해석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성경이 말한다 하지 말고 성경이 말하는 것을 성경이 말한다고 내가 말한다”고 한 칼빈의 주장도 모르는 것 같다.


자기 자랑, 자기의 사색, 자기의 체험 이 모든 것은 교만에 근거한 것이니 이 뿌리를 뽑아버려야 그때부터 성경의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히 12:15). 왜? 왜? 왜? 창세기 9:20-27의 내용도 모르는 것일까?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존경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목사의 딸>은 교계에 물의를 일으켜 어떤 이익을 바라보는 술책으로 보인다. 이처럼 부모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면 박혜란 목사도 부정을 당하지 않을까 두렵다.


새어머니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자기 가정에 그런 불행이 왔다고 하면 그 새어머니의 친 자녀들도 불행했어야 할 것 아닌가? 자신의 문제를 환경이나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른으로서 가질 태도는 아니다.


한국교계에 많은 목사들 가운데 박혜란 목사와 같은 사정과 가정 형편에 처했던 자녀들이 한두 가정이겠는가? 그럴지라도 아버지를 그토록 모독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를 향한 하나님의 감추인 뜻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이렇게 교만에 꽉 찬 책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녀에 대한 애정까지 모두 희생시키면서 묵묵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한국교회를 위하여 성경주석을 완간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준비시킨 그 어떤 뜻이 있었다고 박혜란 목사가 마음을 넓히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정 목사는 22살부터 85세 오늘날까지 박 목사님의 가르침과 설교와 행동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써 살아온 사람인데 박 목사님을 딸이 말하는 대로 그렇게 잘못된 성격의 사람으로 여긴 적이 없다.


정 목사는 이 책을 세 번이나 읽고 이 글을 쓰는 데 2주일이 걸렸다. 나도 피곤한 상태이다. 이제 말을 맺으려고 한다. <목사의 딸>이라는 책은 자서전도 아니요 소설도 아니요 있을 수 없는 불효의 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박 목사님은 지상에 있는 목사님 중에 훌륭한 목사의 한 사람이다. 비록 박 목사님이 자녀들에게 행한 무관심이 있었다 할지라도 <목사의 딸>이란 책으로 박 목사님을 통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 큰 오빠가 회개하고 행복하게 아름답게 살다가 77세로 생을 마친 것을 보고 깊은 생각이 있어야 하겠다. 박혜란 목사도 남은 생애를 주님이 주시는 참 평강을 누리며 보람 있는 인생으로 달려가 주님 앞에서 아버지 정암과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정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싶다.


감사하면 강해지고
기뻐하면 젊어지고
사랑하면 예뻐지고
용서하면 능력 받고
기도하면 신앙 용사가 되고
십자가로 승리한다. 아멘

앞을 향하여 진격하는 아군 보병의 머리에다 수 없는 포탄을 터뜨리는 포병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똑똑한 포병일 수는 없다. 실수로나 그렇게 할 수 있다. 박 목사님의 위대한 점은 이러한 가정의 어려운 시험, 고통, 환난, 자녀들의 불신앙, 비난 속에서도 신구약 66권의 주석을 쓰셨다. 위대한 나의 스승이시다. 존경합니다. 더욱 더 존경하게 됩니다. 더불어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주후 2015년 3월 11일
정 문 호 목사

 

<기독신문>(2013.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