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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1권 요약

 

1장

 

칼빈은 본장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 자신을 아는 지식을 연결 짓고 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인간에 의해 언급될 경우, 인간과의 관계적인 존재로 언급될 수 있으며, 인간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진 존재임을 의미한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 때 유한한 인간의 현주소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칼빈의 논리는 참으로 지당하다.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내면에만 갇혀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칼빈은 이에 대하여 “땅 너머의 세계를 향하여 시선을 돌려” 보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인간이 만일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면에서 스스로의 현주소를 찾지 못한다면 인간 스스로에 대한 인식은 너무 피상적인 것이 되어버릴 것이며, 거짓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한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 존재를 논할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말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 스스로에 대한 지식에는 유기적인 요소가 있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것의 순서를 뒤집어도 말이 된다. 즉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의 한계를 충분히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눈길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 칼빈의 입장이다. 이렇게 볼 때, 칼빈이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 스스로를 아는 지식은 서로 나선형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장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 다루면서 경건한 자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것에서 비롯됨을 언급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란 단지 이론적인 지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 나아가서 칼빈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강조점은 신학에 있어서 인간의 학문성뿐만 아니라 신앙이 강조되어야 함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칼빈의 교리뿐만 아니라 그가 삶을 통해 보여준 경건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3장

 

자연계시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칼빈은 인간의 종교성을 다루고 있다. 교의신학의 서론이 칼빈의 이러한 논리의 순서를 본받아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종교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종교성에 대한 언급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종교성에 대한 칼빈의 언급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게 하며 그의 기독교 강요가 꾸며낸 것이 아닌 필연적인 산물임을 천명하는 역할을 한다.

 

4-5장

 

인간은 그가 가진 종교성으로 인해 하나님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히 타락하였으므로 하나님을 바르게 찾아갈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 스스로의 무지로 인해 온갖 우상과 미신을 고안해내고 있다. 하나님으로 인해 창조된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를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칼빈은 여기에 인류역사와 인간 개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덧붙여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편 칼빈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1장의 내용에 비춰볼 때, 이는 인간 존재의 비참함을 깊이 인식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이러한 일반은총의 한계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에 대한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6장

 

성경에 관한 교리는 교의신학의 서론에서 다루고 넘어가는 부분이다. 이것을 칼빈이 먼저 그의 기독교 강요의 초두에 언급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칼빈은 기독교 교리를 다루기에 앞서 그 기초적인 작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교리는 성경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성경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교리는 마치 공중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을 주셨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인간이 오직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오류를 시정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이 은혜를 무시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7장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한다면 성경의 권위는 세상의 그 어떤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일 수 없다. 특히 교회가 성경의 권위를 확정한다는 것은 인간 공동체인 교회의 권위를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려는 그릇된 시도가 된다. 따라서 성경 말씀이 진리라면 그것은 인간 공동체가 그것을 진리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진리가 되는 게 아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의 내적인 증거에 의해 진리로 확증되는 것으로서 인간이 그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자만이 성령의 내적인 증거로 성경 말씀을 진리로 믿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은 구원의 놀라운 비밀이 된다.


칼빈은 이와 같이 계시와 성경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하여 가톨릭교회의 오류를 지적하기 시작한다. 계시와 성경에 관한 교리는 가톨릭교회와 근본적인 차이를 두는 교리인 동시에 이는 기독교 교리를 다루기 위한 기초 단계에 해당되는 것이다. 칼빈은 이를 적절하게 다루고 있다.

 

8장

 

성경의 신빙성과 관련하여 칼빈은 말하기를 성경의 진리가 설득력 있는 것은 그것이 미사여구로 치장되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밝혔다. 성경은 그 자체의 진리로 인해 인간의 문학적 요소를 덧입지 않고도 인간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오늘날 성경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보려고 하는 시도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문학작품 이상으로 보는 칼빈의 관점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신빙성은 인간의 문학과 이성을 전혀 배제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칼빈은 성경의 일부 작품들이 인간의 문학성에 있어서도 전혀 뒤지지 않음을 언급하였다. 또 그는 모세오경을 중심으로 성경이 인간의 이성으로 볼 때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충분히 제시했다. 여기서 필자는 성경에 대한 칼빈의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었다. 본장을 읽으면서 필자가 깨달은 바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그 당시 칼빈이 가톨릭교회를 대항했던 것처럼) 신학의 정통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성경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9장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다룸에 있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언급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면서도 중요하다. 칼빈은 이를 잘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 이성의 작업만으로는 이해하기에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는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경 말씀을 소홀히 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따르려는 자세도 그릇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기록된 말씀을 통해 신앙의 기준을 제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며, 칼빈은 또 말하기를 말씀이 성령의 조명을 베풀기 위한 도구라고 하였다.


오늘날 교회의 사역과 개인의 신앙에 있어서 말씀과 성령의 사역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이들은 성령의 조명이 간과된 신학의 학문성만 추구하며, 또 어떤 이들은 말씀을 무시한 성령운동에 심취해 있다. 이러한 현재의 시점에서 필자는 칼빈의 입장을 따르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고신교단에 성령의 역사를 간과하는 폐단이 있다고 말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씀을 강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의 조명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10-12장

 

칼빈은 그 당시의 가톨릭교회가 성화상 숭배에 빠져있었던 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분명히 성경에서 죄악으로 규정하는 것임을 선언하였다.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형상이나 그림, 기타 상징물들로 표현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물론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상징물로 나타나신 적이 있다. 그러나 “구름 연기 화염은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으나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라는 칼빈의 해석은 얼마나 명쾌한가......

한편 칼빈은 성화상 숭배의 책임을 교회교육의 부재에 두고 있다. 그는 “교회를 다스리는 자들이 가르침의 직분을 우상에게 떠넘겼다.” 라고 언급하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는 교회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닌다고는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가 신앙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그들이 가령 그릇된 신앙체계에 빠져있다면 그 책임은 교육을 담당한 일꾼들에게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교육자들은 교육의 책임을 어떤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라는 일종의 수단에 떠넘기고 있다. 이것은 교회교육의 부실함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은 우상숭배를 인간의 어리석음에 귀결시키는 한편 신성에 속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우상숭배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에게 분배하는 행위로 규정하였다. 이것이 우상숭배라고 할 경우 우리의 삶에는 적지 않은 우상숭배가 습관처럼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칼빈 당시에는 이 우상숭배가 성화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재물과 자기 자신을 포함한 많은 것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이론적인 이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부터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이켜야 할 것이다.

 

13장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칼빈의 이해는 그가 신학을 얼마나 성경에 비춰 정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선 칼빈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련하여 교부시대의 이해를 제대로 파악하고 열거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칼빈은 하나님의 위격에 대해 다루면서 ‘비공유적 특성’을 언급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비공유적’이라는 표현을 하나님의 삼위의 위격 중 한 위격과 다른 위격이 공유하지 않은 특성에 대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비공유적 특성’이 하나님께는 있으나 인간이 가지고 있지 않는 특성을 말하는 데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성경과 정통 교의에 비춰볼 때, 우리가 수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임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공식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에서부터 예수님을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하게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칼빈은 신구약 성경에서 많은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성자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심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다시 한 번 칼빈이 성경에 대해 얼마나 박식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기독교의 교리를 가르치고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성경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14장

 

본장에서 칼빈은 물질세계와 영적세계의 창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는 인간의 겸손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사색”은 부당하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천지창조가 인간의 인식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안에 종속된 인간이 어찌 시간 밖의 일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천사에 대한 사변 역시 무의미한 것이라고 칼빈은 밝히고 있다. 이는 성경이 멈추는 데서 멈춰야 한다는 칼빈의 신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는 고린도전서 11장 16절의 말씀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본장에서 필자가 깨달은 다른 한 가지를 언급해보겠다. 필자는 과거 교의신학의 신론을 접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하여 천사와 마귀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데 대하여 의문을 가졌었다. 신론은 하나님에 관해 다루어야지 왜서 천사와 마귀가 마치 부록의 내용인 것처럼 다루어지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본장을 볼 때, 칼빈은 하나님께서 신성에 있어서 유일한 분이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천사의 존재를 거론한 것이었다.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광을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에게 분배하는 그 당시 가톨릭교회의 그릇된 교리를 배경으로 생각할 때, 영적존재에 대한 정의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시대적인 배경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15장

 

본장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의신학에서는 인간론을 별도로 다루지만 칼빈은 신론 중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하여 인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신학이 하나님 중심의 신학임을 보여준다. 인간의 창조와 관련하여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와 인간 영혼의 본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는 칼빈이 인간의 영혼과 육체와 관련하여 이분설이나 삼분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인간을 통합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이분 혹은 삼분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릇된 입장이라고 생각된다. 칼빈도 이를 직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칼빈은 타락한 상태 이전의 인간의 상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였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인간은 완전한 존재였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타락이 어디로부터의 타락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 회복은 어디로의 회복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인간의 창조와 타락 및 구원의 전반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16-17장

 

하나님의 창조의 연장선상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신 후 피조세계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것이 제대로 운행하도록 섭리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준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 때, 우리는 또한 이 상에 우연이란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우리 눈에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실상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져가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편 칼빈은 이러한 섭리의 교리가 스토아 철학의 운명론과는 전연 다르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하나님의 섭리의 교리가 칼빈이 이해한 바와 같이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가 중요하게 깨달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느냐 라는 점이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모든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다는 것이며, 둘째로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를 핑계로 운명론에 빠지거나 자기 의무를 하나님께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8장

 

세상에는 얼마간의 선이 있겠지만 악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이러한 선하고 악한 일 모두는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즉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선하고 악한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주권자인 셈이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칼빈이 성경의 여러 군데에서 언급하였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악하다고 생각하는 일까지 계획하시고 이루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다. 이것은 어쩌면 모순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칼빈은 본장에서 이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칼빈의 놀라울 만치 순수하고 확고한 신앙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에 대한 이해는 그야말로 우리의 입술이 뭐라고 고백하는지와 상관없이 우리의 신앙의 자세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필자는 본장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과거에 필자는 이 양자를 분별없이 사용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렇지 않음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류역사와 인생사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치시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인간이 자기 인생을 나름대로 살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해서 전부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인간의 동기와 목적인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해보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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